번역가(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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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 F. 스콧 피츠제럴드, "이치에 맞는 일" (완)
이치에 맞는 일 글쓴이ㆍF. 스콧 피츠제럴드 번역ㆍ오성진 (사진 출처) Part 4 이듬해에도 무더운 9월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테네시의 어느 도시, 구릿빛으로 피부를 바짝 태운 청년이 기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그는 긴장한듯이 주변을 둘러보고 역에서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는 점에 안심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후 남자는 택시를 타고 도시에서 가장 좋다고 알려진 호텔로 도착했고 페루에서도 여전히 쓰고 있는 그의 이름, 조지 오켈리 밑으로 예약된 방에 만족스럽다는 듯이 입장했다. 그는 몇 분간 창가에 앉아 익숙한 거리들을 내려다보았다.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떨리는 그의 손은 전화기로 향했고 그는 조심스럽게 기억을 따라 번호를 눌렀다. “혹시 존퀼이 집에 있나요?” “제가 존퀼인데요.” “아…” 불안..
2021.07.14 -
#021: F. 스콧 피츠제럴드, "이치에 맞는 일" (1)
이치에 맞는 일 글쓴이ㆍF. 스콧 피츠제럴드 번역ㆍ오성진 Part 1 여느 때와 같이 미합중국의 중대한 점심시간이었다. 조지 오켈리는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황급히 자신의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무실에 있는 그 누구도 그가 조급하다는 사실을 알아채서는 아니된다. 사람들은 조지가 ‘성공은 주변환경에 달려있다'는 명언을 따라 청소하고 있다고 생각해야지, 정작 그의 관심이 칠백 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가있다는 사실을 들켜서도 안 된다. 드디어 빌딩에서 나오게 된 조지는 주변 눈치를 볼 새도 없이 이를 꽉 물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가 달리면서 힐끗대던 정오의 햇빛은 타임 스퀘어에 느릿느릿 길게 늘어진 채로 쉬고있는 사람들을 감싸주고 있었다. 거리의 관중은 살짝이 위를 올려다보며 봄향기가 담긴 공기를..
2021.07.06 -
#018: W. W. 제이콥스, "원숭이 손" (1)
원숭이 손 글쓴이ㆍW. W. 제이콥스 번역ㆍ오성진 Part 1 모든 것이 기분 나쁠 정도로 차갑게 젖어있는 밤. 래버냄 빌라, 블라인드가 모두 열려있는 거실만큼은 바깥과 다르게 벽난로속 불꽃이 환하게 타오르며 따뜻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체스경기가 한창이었는데 그중 아버지는 게임이 조금 더 박진감 넘치길 바랬는지 자신의 왕을 굉장히 날카롭고 위험한 지역에 계속해서 밀어넣었다.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구석 벽난로 앞에서 평화로이 바느질을 하던 늙은 여인이 그에게 나무라듯이 한마디 던질 정도였다.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깨달은 화이트씨. 아들이 실수가 벌어진 현장을 발견하지 못 하게 주의를 산만하게 하려는 어설픈 노력을 보이며 입을 열었다. “바람소리를 잘 들어보렴." “듣고 ..
2021.07.01 -
#017: 커트 보네것, "2 B R 0 2 B" (완)
2 B R 0 2 B 글쓴이ㆍ커트 보네것 번역ㆍ오성진 Part 2 로라 던칸이 초상화를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그녀가 그렇게나 우러러본다던 히츠 박사가 대기실에 등장했는데, 그의 키는 210센티미터는 족히 넘었다. 박사는 세상에서 중요한 위치를 쥐었으며 이루어낸 성과가 상상을 초월하고 삶의 즐거움으로 가득한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아우라를 세차게 뿜어 내는 바람에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던칸 씨, 던칸 씨!” 히츠 박사는 밝게 외치며 농담을 던졌다. “여기서 뭐하시고 계신가요? 여기는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는 곳이 아니라 바로 세상에 입장하는 곳인데요!” “제가 박사님과 같은 그림 안에 들어갈 거라고 해요,” 그녀가 수줍게 말했다. “그거 듣던중 반가운 소식이네요!..
2021.06.27 -
#015: 어니스트 헤밍웨이, "나의 아버지" (완)
나의 아버지 글쓴이ㆍ어니스트 헤밍웨이 번역ㆍ오성진 Part3 나의 아버지는 그 레이스를 통해 많은 돈을 벌게 되셨고 그래서인지 아버지와 내가 파리로 놀러가는 횟수가 점점 잦아졌다. 트랑블레에서 경기를 마치고 메종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버지는 우리를 파리 한가운데 세워달라고 하셨고 그 길로 우리는 자연스레 카페 드 라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곤 했다. 파리의 카페에 가만히 앉아있는 일은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전구를 주무르면 화들짝 뛰는 요상한 토끼들을 파는 남성들이 걸어오면 나의 아버지는 그들과 농담을 주고받곤 하셨다. 아버지는 영어를 하시는 것 만큼 불어로도 유창하게 말할 줄 아셨는데 아버지와 비슷하게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들은 아버지가 그들과 같은 타입이라는 사실을 늘 기가 막히게..
2021.06.20 -
#014: 어니스트 헤밍웨이, "나의 아버지" (2)
나의 아버지 글쓴이ㆍ어니스트 헤밍웨이 번역ㆍ오성진 Part 2 이른 아침 파리에서 우리를 처음으로 맞아준 것은 길고 더러운 기차역이었고 아버지는 그곳이 파리의 게어 드 리옹역이라고 알려주었다. 파리도 밀란처럼 상당히 큰 도시였는데, 되돌아보면 밀란의 모든 사람과 트램은 어딘가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서로 부딪히는 일이 없었다. 그에 반해 파리는 모든 움직이는 것들이 한데 뒤엉켜 서로를 괴롭히고 있는 것처럼만 보였다. 물론 나로서는 파리의 그러한 복잡함이 싫지는 않았다, 심지어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경마 레이스 코스까지 있다니 더더욱이 마다할 이유가 없는 도시였다. 아마 난장판 덩어리에서 튀어나온 버스가 목적성 없이 제일 가까이에 있는 또다른 난장판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식의 불규칙성 속 규칙성..
2021.06.17 -
#013: 어니스트 헤밍웨이, "나의 아버지" (1)
나의 아버지 글쓴이ㆍ어니스트 헤밍웨이 번역ㆍ오성진 Part 1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뚱뚱한, 그러니까 흔히 볼 수 있는 누우면 굴러갈 것만 같을 정도로 뚱뚱한, 사람치고 나의 아버지는 그래도 제법 봐줄만 했던 것 같다. 당신의 말년을 제외하고, 아버지께서는 평생동안 그 정도로 살이 붙은 적이 없었다. 조금 살집이 있었던 말년의 아버지마저 어차피 말을 타고 간단한 장애물 넘기만 하셨기 때문에 당시 몸상태는 별로 문제되지 않았다. 아직도 져지 몇 벌 위에 고무 셔츠, 그리고 커다란 스웻셔츠를 입고 정오가 되기 전에 땡볕으로 나를 끌고나가 함께 달리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훤하다. 아버지는 새벽 네 시쯤 토리노에서 돌아오던 아버지는 라조의 말들 중 한 마리를 데리고 모든 것에 이슬이 서릴 때까지 달리셨다. 시..
2021.06.14 -
#008: The Public Domain Review, "고래잡이의 미학:난터켓 고래잡이 배에서 발견된 항해일지 속에서 숨어있던 그림들"
고래잡이의 미학: 난터켓 고래잡이 배에서 발견된 항해일지 속에서 숨어있던 그림들 글쓴이ㆍ제시카 보열(Jessica Boyall) 번역ㆍ오성진 19세기의 고래잡이는 잔인무도했다. 그 곳엔 고래 지방기름과 피가 넘쳐났으며 안타깝게 죽어나가는 생명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고래가 나타났다!(there she blows!)” 하고 미친듯이 외쳐대는 사이, 선원들에게는 새로운 것을 창작할 시간 또한 충분했다. 제시카 보열은 본에세이에서 난터켓(Nantucket)선의 고래잡이꾼들이 남긴 항해일지와 일기를 들여다보며 그들의 그림들을 탐구해보는 시간을 갖기로 한다. 원문 게시일ㆍ2021년 1월 13일 그림 출처 케이프 코드(Cape Cod, Massachusetts)에서 대략 30마일 정도 떨어진 섬 난터켓(Nantuc..
2021.05.14 -
#007: The Public Domain Review, “짐승의 자국”:조지 왕조 시대의 영국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백신 반대 운동
“짐승의 자국”: 조지 왕조 시대의 영국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백신 반대 운동 글쓴이ㆍ에리카 아이젠(Erica X Eisen) 번역ㆍ오성진 얼굴이 황소처럼 변해버린 아이들, 뿔이 자라나는 성인 여성들, 그리고 분열된 정신. 이 모든 것은 천연두에 대항하여 에드워드 제너가 개발한 백신의 뒤를 따라다니던 말들이었다. 에리카 아이젠(Erica X Eisen)은 사상 최초의 ‘안티백서’(Anti-vaxxer, *역주: 백신 반대 주의자)를 소개해주며 백신에 처음 쓰인 바카(*역주: 라틴어로 ‘소'를 의미하는 ‘Vacca’는 백신의 어원이 되었고 그 이유는 밑에 이야기를 읽으면 알 수 있다), 그 단어가 어떻게 소와 연결지어졌는지, 또 왜 당시 백신에는 짐승과 비슷해지는 부작용이 들어있다는 인식이 퍼지게 되었는지 ..
2021.05.10 -
#006: The Public Domain Review, "흑사병과 페트라크:역병의 시대의 사랑, 우정, 죽음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
흑사병과 페트라크: 역병의 시대의 사랑, 우정, 죽음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 글쓴이ㆍ폴라 핀드렌(Paula Findlen) 번역ㆍ오성진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학자였던 프란체스코 페트라크(Francesco Petrarch)는 역사상 가장 위험했다고 일컬어지는 흑사병, 그러니까 유라시아와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2억명이란 사상자가 발생한 14세기를 살아냈다. 편지들과 더불어 그가 우리 후손들에게 남겨준 페트카르 특유의 문서들을 통해 폴라 핀드렌(Paula Findlen)은 그가 어떻게 시간을 기록하고 당대를 향한 경의를 표하며 사랑하는 사람들 중 숨을 거둔 이들을 두고 애도하는지 탐구하며 이를 통해 이 기록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줄 수 있는지 생각해본다. 원문 게시일ㆍ2020년 6월..
2021.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