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 어니스트 헤밍웨이, "나의 아버지" (1)

2021. 6. 14. 16:45번역/문학 (소설)

나의 아버지

 

글쓴이ㆍ어니스트 헤밍웨이
번역ㆍ오성진

 

 


Part 1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뚱뚱한, 그러니까 흔히 볼 수 있는 누우면 굴러갈 것만 같을 정도로 뚱뚱한, 사람치고 나의 아버지는 그래도 제법 봐줄만 했던 것 같다. 당신의 말년을 제외하고, 아버지께서는 평생동안 그 정도로 살이 붙은 적이 없었다. 조금 살집이 있었던 말년의 아버지마저 어차피 말을 타고 간단한 장애물 넘기만 하셨기 때문에 당시 몸상태는 별로 문제되지 않았다. 아직도 져지 몇 벌 위에 고무 셔츠, 그리고 커다란 스웻셔츠를 입고 정오가 되기 전에 땡볕으로 나를 끌고나가 함께 달리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훤하다. 아버지는 새벽 네 시쯤 토리노에서 돌아오던 아버지는 라조의 말들 중 한 마리를 데리고 모든 것에 이슬이 서릴 때까지 달리셨다. 시간이 조금 지나 이제 막 어느새 태양이 고개를 내밀려고 할 때 쯤이 다 되면 나는 아버지의 부츠를 벗겨드렸다. 그러면 아버지는 스니커즈로 갈아신고 이것저것을 걸쳐입은 뒤에 나와 함께 햇빛이 가득한 거리로 달리기 시작하셨다.

 

“가자, 아들아,” 하고 항상 운을 떼시던 아버지는 자키 드레싱룸 난간위에 두 발을 번갈아 분주하게 올랐다 내렸다, 조깅 자세를 취하면서 “출발해야지"하고 말하시곤 했다. 

 

그렇게 아버지를 선두로 우리는 필드 한 바퀴를 뛰고나서 출구 쪽으로 나가 나무들이 양쪽으로 수두룩하게 서있는, 산 시로 지역의 길 위를 달렸다. 산 시로 길을 달릴 때에는 가끔씩 내가 앞장서서 달리기도 했는데 헉헉대며 뛰다가 뒤를 돌아보면 아버지는 여유롭게 내 뒤를 따라오셨고 시간이 좀 지나서 다시 돌아보면 그제서야 땀이 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이셨다. 한 번 땀이 나기 시작하면 참 많이도 땀을 흘리시던 아버지는 내 등에 시선을 고정해놓고 조금은 힘든 모습으로 꾸준히 발걸음을 옮기셨다. 하지만 뒤를 돌아본 내 얼굴을 보시기라도 하면 아버지는 “늙은이 얼굴에 땀이 가득하지?”라고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웃는 얼굴을 보고 같이 웃음이 나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한참 더 산지 쪽으로 달리다가 아버지께서 “조!”하고 외치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면 허리춤에 차고 계시던 젖은 타월을 목에 두르고 나무에 등을 대고 앉아계셨다. 

 

앉아계신 아버지를 발견하면 나는 항상 왔던길을 돌아가서 아버지 곁에 앉았다. 아버지는 그렇게 앉아계시다가도 매번 주머니에서 줄넘기를 꺼내셨다. 뜨거운 태양 밑에서 아버지는 얼굴이 흘러내릴 것 같이 땀을 뿜으셨고 줄넘기는 타닥, 타닥, 탁, 탁, 탁 소리와 함께 바닥에 뽀얀 먼지를 일으켰다. 햇빛이 강렬해질수록 아버지는 더더욱 힘을 내서 열심히 줄넘기를 하곤 하셨다. 암만 생각해봐도 아버지가 줄넘기를 하시는 모습은 꽤 재미있는 볼거리였다. 아버지는 줄넘기를 엄청 빠르게 돌리는 법도 아셨고 때로는 천천히, 그러면서도 근사하게 뛰어넘는 방법도 알고 계셨다.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놈들이 지나가면서 우리를 바라보던 표정은 지금 생각해도 재미있다. 카트를 끄는 거대한 흰소들과 함께 걸어가던 놈들은 미친놈이라도 본 것 마냥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들이 자리에 그대로 서서 가만히 당신을 바라보다가 막대기를 들고 소를 찔러 다시 제갈길에 오를 때까지 줄넘기로 빠르게 이중뛰기, 삼중뛰기를 연속으로 하시곤 했다.

 

땡볕 아래서 머리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도록 운동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가만히 앉아서 바라볼 때면 난 언제나 아버지를 향한 강한 애정을 느꼈다. 아버지는 시종일관 장난스러운 모습을 잃지 않으시면서도 마지막까지 온힘을 다해서 운동하셨다. 항상 막바지가 되면 땀을 폭포수처럼 흘리며 그 어떤 잔재주 하나 없이 줄넘기를 일정한 속도로 넘기셨는데, 이마저 마치시면 그제서야 나무에 줄넘기를 걸어놓고 흠뻑 젖은 웃옷과 타월을 목에 두른 채로 나무에 등을 기댄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으셨다. 

 

가끔씩 “몸을 관리한다는건 정말 죽을 맛이야, 조,"라고 입을 떼시던 아버지는 긴 숨을 들이 마시며 “어릴 때랑은 달라도 너무 다르구먼"이라고 하시곤 했다. 거기까지가 아버지의 몸무게 관리법이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걱정하셨다. 대부분의 기수들은 말을 한 번 탈 때마다 일 키로씩 살이 빠졌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원하는 만큼 몸무게를 조절할 수 있는 반면에 나의 아버지는 어찌된 일인건지 이렇게 땀 한 바가지를 내놓을 때까지 뛰지 않으면 도무지 살이 빠지지 않는 것이었다.

 

한 번은 산 시로에서 있었던 일인데, 레골리라는 쬐끄만 이탈리아 놈과 관련된 일이었다. 부조니라는 이름의 말을 책임지던 녀석은 승마 대기소를 지나 종종 바를 향해 걸어가곤 했고 아버지는 그럴 때마다 놈을 응시하셨다. 하루는 레골리가 먼지라도 털려는 것인지 채찍으로 부츠를 몇 번 치면서 무게를 재러 들어갔다. 아버지는 레골리 다음 순서로 늘 레골리가 나오고 난 뒤에서야 무게를 재러 가셨는데, 무게를 재고 안장과 함께 힘없이 걸어나오는 아버지 표정은 잿빛으로 가득했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젊은 레골리놈이 술집 문에 기대고 서서 폼나면서도 아이같아 뵈는 모습을 넋놓고 바라보셨다. 그럴 때면 나는 “아버지, 무슨 일 있나요?”하고 여쭤봤는데, 당시 어렸던 내 생각으로는 레골리가 몸무게를 재던 도중 아버지와 싸움을 벌이거나 이상한 말이라도 했을까 봐 걱정이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에게 대답하는 대신 레골리를 지긋이 바라보며 “망할”이라고 짧게 내뱉으시고는 드레싱 룸으로 들어가셨다.

 

그나마 쉬운 코스가 있다면 밀란과 토리노였기 때문에 아버지가 밀란에 주욱 살고 밀란과 토리노 지역에서만 말을 탔다면 어쩌면, 정말 어쩌면 모든 것이 괜찮았겠다는 생각도 든다. “늘 있는 일이야, 조,” 유럽놈들이 신나는 추격전이라고 떠들어대던 경기에서 일등을 하신 아버지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하셨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덧붙이셨다. “내가 코스 위를 달리는게 아니야, 코스가 달려주는 것 뿐이지. 그렇기 때문에 얼마나 빠르냐에 따라 장애물 뛰어넘기가 위험해지는거야, 조. 여기서 빨리 달릴 일은 없어, 게다가 장애물도 그렇게 어렵지 않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뛰어넘기가 아니라 언제나 그 속도에 있다는 점을 명심해. 침착하게만 한다면 문제가 없는게 장애물 넘기 경주란다."  

 

산 시로에는 내가 본 코스중에 가장 근사한 코스가 있었는데 아버지는 언제나 산 시로 경기장을 싫어하셨다. 그럴만도 한 것이 아버지는 산 시로와 미라피오레 지역을 번갈아가며 왔다가며 매일 승마를 해야 했으며 이틀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밤에 승마 연습을 해야만 하셨다.

 

어렸을 적 나는 코스 말고도 경마장의 말들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것 같다. 말들이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와 함께 달려나가는 모습에는 끌릴 수 밖에 없는, 설명 못 할 무언가가 숨어있었다. 자키가 그들을 꽉 잡고 있는 줄을 얼마나 풀지 조일지에 따라 달리는 속도가 달라지는 말들은 마치 서로 다른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내 마음에 가장 큰 소용돌이가 일렁일 때는 바로 말들이 경기 시작 전 배리어 뒤에서 흥분을 못 참고 기다릴 때였다. 특히나 산 시로에 그 드넓은 초록빛깔 필드, 뒷배경에는 저 멀리 산들이 보이고 뚱뚱한 이탈리아놈과 기수들이 서로 다른 크기의 채찍을 휘두르고 있는 그 순간. 바로 그 순간에 시작종이 울리고 말들을 막고 있던 배리어가 올라가며 모든 경주마가 한꺼번에 앞으로 뛰쳐나가는 장면은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뛴다. 스탠드에 안경을 끼고 앉은 채로 그 장면을 보고 있을 때면 마치 시간이 멈춘 채로 그들을 뛰게 해주는 자유의 벨이 굉장히 긴 시간 동안 울리는 것처럼 들렸다. 그 어떤 것도 그 장면을 대체해줄 수는 없었는데, 어느 날 드레싱룸에서 사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계시던 아버지는 내게 한 마디 하셨다. “아들아, 저기 밖에 서있는 것들은 우리와 같은 동물이 아니란다. 파리에 가면 고작 살가죽, 말발굽 때문에 매일같이 죽어나가는 놈들이 저 놈들이야.” 아버지 입에서 그 말이 나온 날은 아버지의 말, 란토나가 막 딴 샴페인 코르크 처럼 폭발적인 속도를 유지하면서 결국 당신께서 프레미오 커머시오 경기에서 우승하신 날이었다. 그 우승을 거머쥔 뒤로 우리는 이탈리아를 떠났다. 

 

나의 아버지와 홀브룩, 그리고 손수건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온종일 닦아대는 뚱뚱한 이탈리아놈은 갤러리아에서 대화 도중 말싸움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세 명 모두 불어를 썼기 때문에 나로선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나머지 두 사람이 내 아버지에게 무언가 추궁하는 상황이라는 점만큼은 확실했다. 긴 말들이 오간 후에 결국 나의 아버지는 자리에 조용히 앉은 채로 홀브룩을 응시했다. 나머지 둘은 번갈아가며 아버지에게 쏘아붙였고 뚱땡이 이탈리아인은 홀브룩 말 도중에 꼭 끼어들곤 했던 걸로 기억한다. “조, 나가서 스포츠 신문 좀 사와주겠니?” 아버지는 홀브룩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내게 말씀하셨다. 나는 갤러리 앞에 있는 상점에서 얼른 신문을 사다왔지만 세 명의 대화에 함부로 끼어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좀전보다 더 멀리 떨어진 곳에 우뚝이 섰다. 아버지는 거의 눕듯이 의자에 등을 기대어서 손에 든 커피를 내려다보며 숟가락으로 손장난을 치고 계셨고, 그 앞에서 홀브룩과 뚱땡이는 울그락불그락 성난 표정으로 서있었다. 뚱땡이는 고개를 저으면서 이마에 난 땀을 닦았는데 아버지는 마치 그들이 앞에 없는 것 마냥 나에게 “조, 얼음 좀 줄까?”라고 하셨다. 홀브룩은 아버지를 내려다보며 아주 천천히, 그리고 힘을 주어 “너 이 개새끼,”라고 하고는 이탈리아 돼지와 함께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아버지는 가만히 앉아 나를 보며 웃음을 지으셨는데, 당신 얼굴은 창백할대로 창백했으며 심각한 병에 걸린 사람만 같아 나는 순간적으로 너무 무섭고 어지러운 감정을 느껴야만 했다. 누군가 아버지를 “개새끼”라고 불렀는데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걸 보면 심각한 일이 벌어진 것이 분명했다. 아버지는 스포츠 일간지를 펴시고는 경마 베팅 결과가 있는 칸을 찬찬히 보시며 말씀하셨다. “조야, 세상에서 가질 수 있는 건 다 가지는 쪽이 좋단다.” 삼 일 정도 지났을까, 우리는 수트케이스와 여행가방에 들어갈 수 없는 짐은 전부 경매에 부쳐버리고 토리노역에서 파리행 기차에 올라타 그 길로 영원히 밀란을 떠났다.



원문 출처: 자유 이용 저작물인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의 '나의 아버지(My Old Man)'을 번역했습니다. 원문을 구할 수 있는 링크를 여기에 남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