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 20. 16:09ㆍ번역/문학 (소설)
나의 아버지
글쓴이ㆍ어니스트 헤밍웨이
번역ㆍ오성진
Part3
나의 아버지는 그 레이스를 통해 많은 돈을 벌게 되셨고 그래서인지 아버지와 내가 파리로 놀러가는 횟수가 점점 잦아졌다. 트랑블레에서 경기를 마치고 메종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버지는 우리를 파리 한가운데 세워달라고 하셨고 그 길로 우리는 자연스레 카페 드 라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곤 했다. 파리의 카페에 가만히 앉아있는 일은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전구를 주무르면 화들짝 뛰는 요상한 토끼들을 파는 남성들이 걸어오면 나의 아버지는 그들과 농담을 주고받곤 하셨다. 아버지는 영어를 하시는 것 만큼 불어로도 유창하게 말할 줄 아셨는데 아버지와 비슷하게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들은 아버지가 그들과 같은 타입이라는 사실을 늘 기가 막히게 알아보았다. 거기엔 아마 아버지의 체격이 누가봐도 말을 타는 사람의 것인 점과 우리가 언제나 카페 드 라페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 거리에는 혼인 신고서를 파는 남성들도 있었고 몇몇 여성들은 꽉 쥐면 수탉이 튀어나오는 고무 달걀을 팔기도 했다. 주름이 지렁이 마냥 자글자글하던 한 노인은 파리의 사진이 있는 엽서를 팔았는데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지나간다 싶으면 그는 상자의 안쪽이 보이게끔 위쪽의 엽서들을 들었다. 그러면 그 안에 있었던 야한 사진들을 본 사람들이 상자 깊숙이 있는 사진들을 사기 위해 너나할것없이 달려들곤 했다.
카페 드 라페에 앉아있으면서 본 재밌는 행인들은 한 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이 없을 정도로 말이 많았다. 밥먹을 시간 즈음이 되면 몇몇 여성들이 거리에 쭈그려 앉아 밥 사줄 이들을 찾곤 했는데 그들은 아버지가 지나갈 때마다 아버지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불어로 그들에게 농담을 던지고는 내 머리를 한두 번 쓰다듬어주시고는 계속해서 가던 길을 가셨다. 한 번은 미국인 여성이 그녀의 어린 딸과 우리 옆 테이블에 앉은 적이 있었는데, 둘 다 얼음조각을 연거푸 씹어먹고 있었다. 여자아이는 너무도 예뻐서 나는 뚫어져라 그녀를 바라봤고 한 번은 미소를 지었는데 그 아이도 내게 똑같은 미소로 답해주었다. 그 후로 난 다시 소녀를 만나면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할지, 소녀와 친해진다면 어떻게 그녀의 어머니에게 우리 단둘이 오뙤유나 트랑블레를 걸어다닐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해볼지 매일같이 생각했지만 안타깝게도 다시는 그 둘을 볼 수 없었다. 서로 한 번씩 주고 받은 미소가 우리의 전부였다. 근데 뭐, 생각해보면 그게 우리의 최선이었을지도. 어린 시절의 내가 기껏 떠올린 계획이라고는 그녀에게 “실례합니다, 저희 이벤트에 당첨되셨습니다. 경품을 원하시나요?”라고 말하는 것이었고 정말 계획대로 말했다면 그녀는 나를 잡상인 취급해버렸을 수도 있다.
어느 날에서 부터인가 아버지는 평소와 다르게 술을 많이 드시기 시작하셨다. 더이상 승마를 하지 않으셔서 그랬는지, 아버지는 위스키를 마시면 살이 빠진다고 우스개소리를 하시면서 계속해서 술을 드셨다. 하지만 내가 본 아버지는 술을 드실 때마다 살이 붙었다면 붙었지, 절대 빠져보이지는 않으셨다. 언제부턴가 아버지는 메종에서 같이 어울렸던 옛친구들은 갑작스레 멀리하시고 주로 나와 함께 밖에 앉아 계시기를 즐겨 하셨다. 거기에 더해 하나 꼭 챙겨서 하신게 있다면 매일 경마장에 돈을 뿌리는 일이었다. 만약 아버지 뜻대로 경주가 진행이 되지 않는 날에는 언제나 마지막 경주가 끝난 뒤에 아버지는 약간 우울해보이셨다. 그러다가도 우리의 고정자리로 가서 위스키 첫 잔을 마시면 다시 모든 것이 괜찮아진 것처럼 온화한 표정을 짓곤 하셨다.
아버지는 스포츠 일간지를 읽으시다가 내쪽을 바라보시며 “조, 그 때 그 꼬마 아가씨는 어디로 간거니?”하곤 일전에 말했던 그 여자아이 얘기로 농담을 트셨다. 나는 아버지가 그러실 때마다 얼굴이 붉어지곤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아이가 나를 대상으로 하는 농담의 소재로 쓰인다는 점이 좋기도 했다. 그 아이 이야기는 늘 내게 좋은 기분을 안겨다 주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늘 “그 아가씨가 지나갈 수도 있으니까 항상 눈을 날카롭게 뜨고 있으라구, 조. 분명히 언젠간 돌아올거야”하고 이야기를 끝맺으셨다.
아버지는 내게 여러가지 질문을 하셨고 내 답변은 가끔씩 아버지께서 웃으시게끔 만들기도 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다른 주제들을 엮어 이야기를 이어나가셨다. 이집트에서 승마를 했던 경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세인트 모릿츠의 얼음 위에서 말을 탔던 경험, 그리고 한창 전쟁중에 있던 프랑스 남부에 있었던 일반 승마 대회, 그러니까 승마 산업을 지키기 위해 상금이나 베팅액이나, 관중같은 것들이 필요가 없던 시절의 대회에서 기수들이 얼마나 멋지게 말을 몰고 달렸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셨다. 정말이지, 아버지가 들려주시는 얘기는 - 특히나 아버지가 술을 몇 잔 걸치신 채로 해주신 이야기들은 더더욱이 그랬다 - 몇 시간이라도 즐겁게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켄터키 소년 시절 라쿤 사냥을 갔던 경험,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거지가 되기 전인 과거 미국의 모습도 이야기해주셨다. 그리고는 끝에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다. “조, 여기 상황이 조금이라도 안 좋아지면 너는 미국으로 돌아가 학교를 다녀야만 한단다.”
그러면 난 항상 이렇게 되물었다. “돌아가봤자 모두 거지신세일텐데 제가 굳이 그런데 가서 학교를 다닐 필요는 없잖아요?”
“그건 다른 문제란다,”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시고는 쌓여있는 술잔들의 값을 치르신 뒤에 나와 함께 택시를 타고 메종으로 향하는 열차가 있는 역까지 가버리곤 하셨다.
하루는 오뙤유에서 벌어진 막상막하의 경주가 끝나고 나의 아버지는 30,000프랑을 지불하고 우승마를 구매하셨다. 아버지는 많은 돈을 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는데 다행히 마굿간 측에서 말을 일찍 놓아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건 이미 승마 자격증이 있었던 아버지에게 그 다음주에 정식으로 유니폼을 받기만 하면 아버지는 다시 기수로서 필드를 달리실 수 있다는 뜻이었다. 정말이지 당시 나는 말의 주인이 되신 아버지가 너무도 자랑스러웠다. 개인 마굿간을 구비한 아버지는 찰스 드레이크와 함께 마굿간을 청소 하고 장비를 마련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다시금 뜀박질과 미치도록 땀을 흘리는 아버지 특유의 몸매 관리법에 돌입하셨고 당시 경마팀 스태프라고는 아버지와 나, 단둘이 다였다. 새 말의 이름은 질포드였는데, 질포드는 아일랜드 태생의 정말 멋진 점프 실력을 갖춘 말이었다. 아버지도 직접 말을 타보시고 훈련을 해보시고는 질포드가 상당히 멋진 말이라고 하셨다. 나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는 당시 상황이 좋았고 질포드가 차르만큼이나 근사한 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질포드는 굉장한 점프력을 지닌 베이 호스 였으며 마음먹고 달리면 엄청난 속도로 달려나갈 준비도 되어있는 말이었고 심지어 외모에서 마저 많은 매력이 흘러내렸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난 질포드와 사랑에 빠졌다. 처음 나의 아버지와 질포드가 2,500미터 허들 장애물 경기에 나갔을 때 둘은 삼 등을 차지했는데 경기를 마치고 땀범벅인 얼굴 위에 뿌듯한 미소를 펼친 채로 체중을 재러 가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마치 이번이 아버지가 생애 처음으로 순위권 안에 든 경기인 것 마냥 기뻐했다. 오랜 시간동안 경기를 하지 않은 기수와 함께 지내다보면 그 기수가 과연 승마를 한 적이 있었는지 의심될 때도 있는 법인데, 그래서인지 질포드와 함께 지닌 이후로 내게는 모든 것들이 달라보였다. 아버지는 밀란에서 아무리 큰 금액의 경마 베팅을 따내더라도 더이상 별로 기뻐하지 않으셨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직접 말을 타는 경기 전날이 다가오면 나나 아버지나 밤에 잠에 들지 못 할 정도로 흥분감에 휩싸였다. 직접 말을 몰고 경기에 참여한다는 작은 변화가 우리의 모든 일상을 변하게 만든 것이다.
질포드와 나의 아버지의 두 번째 경기는 비가 오던 오뙤유의 프리스 두 마라트에서 벌어진 4,500미터 레이스였다. 아버지가 준비하러 경기장으로 들어가시자마자 나는 아버지가 경기 관람을 위해 사다주신 새 망원경을 챙겨다가 얼른 스탠드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가 앉은 곳에서 반대쪽인 저 구석에서 경기가 시작될 예정이었는데 시작점인 배리어쪽에서 무언가 소란스러운 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 고글을 쓴 사내들이 배리어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장면도 잠시, 나는 아버지가 우리의 검은 자켓, 하얀색 십자가 목걸이, 그리고 검은색 모자를 쓴 채로 질포드 위에 앉아 질포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기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고 각각 경주마에 걸린 배당금이 순서대로 적힌 나무 판자가 게시되었다. 그 때 심장이 얼마나 떨리던지, 제대로 나의 아버지를 볼 수도 없을 정도였지만 숨을 들이마쉬고 아버지와 질포드가 앞지르며 나타날 나무에 망원경 초점을 맞추었다. 곧이어 검은색 자켓을 입으신 아버지와 질포드는 세 번째로 나무 뒤를 지나 마치 한 마리의 새처럼 뛰어올라 장애물을 넘어다니는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내 스탠드가 있는 곳을 지나 장애물들을 하나씩 부드럽게 뛰어 넘으며 멋지게 달리며 다시 작은 점처럼 보일 때까지 먼 곳으로 달려나갔다. 주변에 말들도 하나의 점으로 합세해 모두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달리는 것 처럼 보였다. 그러다 모두 도랑이 붙어있는 울타리 장애물을 뛰어 넘을 때, 무언가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말 한 마리는 기수 없이 필드를 날뛰고 있었지만 내가 앉은 자리에서는 도무지 누구의 말인지 볼 수 없었다. 그 와중에 트랙은 길고 험난했던 좌회전 구간을 겨우 지나며 바삐 달리는 말들로 가득했다. 돌벽을 뛰어넘은 말들은 스탠드 앞에 놓인 도랑을 뛰어넘기 위해 힘차게 달려왔다. 그들이 달려오는 모습을 집중해서 보던 나는 아버지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환호를 내질렀고 아버지는 조그만 차이를 두고 선두에서 원숭이같은 가벼운 움직임으로 도랑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다닥다닥 살이 맞닿은 채, 조금이라도 더 앞서기 위해 달리던 말들 모두 동시에 도랑을 뛰어넘었고 바로 그 때 충돌사고가 벌어지고야 말았다. 제일 바깥쪽에 서있던 말 두 마리는 안전하게 계속해서 달려나갔고 나머지 세 마리는 사고지점에 뭉쳐있었다. 이 와중에 어디를 봐도 나의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말 한 마리는 무릎을 꿇고 기수를 등에 태워 상금을 위해 열심히 달리기 시작했다. 또 다른 말은 목이 삐딱하게 꺾인 채로 우왕좌왕대고 있었고 그 말의 기수는 트랙 한 쪽에 있는 울타리에 몸을 기댄 채 엎드려있었다. 다음엔 도랑 밑에서 기어나오는 질포드를 발견했는데 말굽 하나가 벗겨진 질포드는 다리 세 개로 허둥지둥 달리고 있었으며 그제서야 아버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머리는 하늘을 향한채 풀숲에 대자로 누워계셨고 그 주변은 나의 아버지 머리 한 쪽에서 흘러나온 피로 사방이 범벅이었다. 나는 스탠드에서 뛰어내려 군중들을 뚫고 레일을 뛰어넘으려고 했지만 기어코 경찰관 한 명에게 잡히고 말았다. 들것을 들만한 거구의 사람 두 명이 아버지를 향해 달려갔고 반대편에서는 일찍이 달려나간 세 마리의 말이 한 바퀴를 돌고 나무 뒤에서 나타나 장애물을 뛰어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이 들것에 아버지를 들고 의료실로 데려갔을 때 아버지의 얼굴엔 살아계셨을 때에 그 미소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의사가 귀에 무언가를 꼽고 아버지의 심장 소리를 듣기 위해 묘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트랙 저편에서 탕! 하고 크게 울려퍼지는 총소리를 들렸고 난 그 소리가 곧 그들이 질포드를 죽였다는 뜻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끌려갈 때 난 들것에 올라타 아버지 곁에 매달린 채로 울음을 그치지 못 했다. 너무도 창백한 아버지의 얼굴은 죽음, 그 자체였다. 난 아버지가 만약 돌아가셨다면 그들이 질포드를 죽일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굽 같은건 금방 고칠 수 있지 않나 싶었던 것 같다. 뭐가 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난 그저 아버지를 너무 사랑했다.
이후 방 안으로 들어온 남자 몇 명중 한 명이 내 등을 토닥여주었다. 남자는 침대쪽으로 걸어가 누워있는 아버지를 한참 바라보다가 다른 침대에서 시트를 벗겨내고는 아버지 위에 덮어주었다. 다른 남자 한 명은 전화기를 붙잡고 불어로 아버지를 메종으로 데려다줄 앰뷸런스를 요청했다. 그리고 난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울고 또 울고 목이 메일 정도로 울어서 숨이 막혔다. 그리고 조지 가드너가 들어오더니 내 옆에 앉아 어깨를 감싸주며 “가자, 조. 씩씩하게 일어날 수 있겠지? 나가서 우리 같이 앰뷸런스를 기다려 보는거야"라고 말해주었다.
조지와 나는 게이트를 통과해 밖으로 나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흐느끼던 나는 울음을 그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고 조지는 손수건을 꺼내 내 얼굴을 닦아주었다. 우리는 조금 뒤로 빠져 모든 관중들이 게이트를 통과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는데 남자 몇 명이 우리가 서있는 곳 주변에 서서 재잘대기 시작했다. 그 중 한 명은 손에 다발을 들고 마권 수를 체크하며 “그래도 이 정도면 제값을 치렀다고 봐야지"이라고 말했다.
“그런 사기꾼 새끼가 제값을 치뤘는지 어쨌는지 알게 뭐야. 그간 해온 짓을 생각해보면 이건 약과에 불과하다구.” “나도 그 말엔 동의하네,” 또다른 남성이 말하고는 마권 다발을 반으로 찢어버렸다.
혹시 내가 이 대화 내용을 듣고 이해했을지 - 물론 하나도 빠짐없이 듣고 제대로 이해했다 - 걱정이 되었는지 조지 가드너는 나를 바라보고 “저 거지같은 놈들이 말한건 듣지도 마라, 조. 너의 아버지는 정말로 근사한 인간이었단다.”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은 뭐였는지 아직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쩌면 원래 세상 산다는 것이 잘 풀리다가도 한 번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가진걸 모조리 잃게 될 때까지 바닥으로 향하는 걸지도.
원문 출처: 자유 이용 저작물인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의 '나의 아버지(My Old Man)'을 번역했습니다. 원문을 구할 수 있는 링크를 여기에 남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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