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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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 F. 스콧 피츠제럴드, "이치에 맞는 일" (2)
이치에 맞는 일 글쓴이ㆍF. 스콧 피츠제럴드 번역ㆍ오성진 Part 2 지금 기차역 플랫폼 위에서 조지를 발견하고 달려오는 여인의 이름은 존퀼 캐리였다. 조지는 일생동안 그녀의 얼굴처럼 예쁘고 연약해 보이는 건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조지를 향해 양팔을 벌려 그의 키스를 기다린다는 듯이 입술을 쭉 내밀고 서있었다. 영화같은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그녀가 갑자기, 그리고 조심스럽게 조지의 팔을 놓고 약간 부끄러운 눈치로 주변을 살피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녀의 뒤에는 조지보다 어려보이는 두 명의 남자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이쪽은 크래독씨, 그리고 이쪽은 홀트씨,” 존퀼은 명랑하게 두 남자를 소개해주었다. “저번에 놀러왔을 때 서로 만난 적 있을거야.” 키스에서 갑작스러운 지인소개로 전환되는 상황을 찝찝해하던..
2021.07.08 -
#021: F. 스콧 피츠제럴드, "이치에 맞는 일" (1)
이치에 맞는 일 글쓴이ㆍF. 스콧 피츠제럴드 번역ㆍ오성진 Part 1 여느 때와 같이 미합중국의 중대한 점심시간이었다. 조지 오켈리는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황급히 자신의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무실에 있는 그 누구도 그가 조급하다는 사실을 알아채서는 아니된다. 사람들은 조지가 ‘성공은 주변환경에 달려있다'는 명언을 따라 청소하고 있다고 생각해야지, 정작 그의 관심이 칠백 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가있다는 사실을 들켜서도 안 된다. 드디어 빌딩에서 나오게 된 조지는 주변 눈치를 볼 새도 없이 이를 꽉 물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가 달리면서 힐끗대던 정오의 햇빛은 타임 스퀘어에 느릿느릿 길게 늘어진 채로 쉬고있는 사람들을 감싸주고 있었다. 거리의 관중은 살짝이 위를 올려다보며 봄향기가 담긴 공기를..
2021.07.06 -
#020: W. W. 제이콥스, "원숭이 손" (완)
원숭이 손 글쓴이ㆍW. W. 제이콥스 번역ㆍ오성진 (그림 출처) Part 3 노부부는 집에서 2마일 정도 벗어난 곳에 위치한 거대한 공동묘지에 아들의 시신을 묻어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둘은 약속한 듯이 그림자 안에 숨어 침묵에 잠겼다.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는 바람에 처음에는 제대로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던 두 늙은이에게는 시간이 흐를수록 둘이 감당해내기 너무도 힘든 이 사태의 무게를 덜어줄만한 새로운 일들이 벌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무심하게도 시간은 별일없이 흘렀고 그들의 헛된 기대는 점점 식어만 가서 두 노인이 지니게 된 고통스러운 마음에 더 많은 짐을 짊어주었다. 그들은 가끔씩 몇 마디만 주고받을 뿐, 제대로 된 대화도 하지 못 할 지경으로 길고 지루한 하루하루를 보내..
2021.07.04 -
#019: W. W. 제이콥스, "원숭이 손" (2)
원숭이 손 글쓴이ㆍW. W. 제이콥스 번역ㆍ오성진 (그림 출처) Part 2 다음 날 아침, 허버트는 한껏 겨울스러운 햇빛이 아침상 위에 내려앉은 광경을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그는 문득 어제 두려움에 빠져 침대로 달려가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헛웃음을 터뜨렸다. 부엌엔 어제는 자리하지 않았던, 수상할 정도로 단조로운 공기가 공중에 나돌고 있었다. 원사가 놓고 간 물건은 어제 허버트가 던져둔 탁자 위에, 여전히 더럽고 쪼그라든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원숭이 손의 초라해보이는 모습은 그 안에 영적인 힘이 깃들어있다는 이야기의 신빙성을 한없이 떨어뜨렸다. “늙은 퇴역 군인들은 다 똑같나 보구나,” 가장 먼저 부엌의 적막을 깨트린 인물은 화이트 부인이었다. “그렇게 허무맹랑한 소리를 한참이나 듣고 ..
2021.07.03 -
#018: W. W. 제이콥스, "원숭이 손" (1)
원숭이 손 글쓴이ㆍW. W. 제이콥스 번역ㆍ오성진 Part 1 모든 것이 기분 나쁠 정도로 차갑게 젖어있는 밤. 래버냄 빌라, 블라인드가 모두 열려있는 거실만큼은 바깥과 다르게 벽난로속 불꽃이 환하게 타오르며 따뜻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체스경기가 한창이었는데 그중 아버지는 게임이 조금 더 박진감 넘치길 바랬는지 자신의 왕을 굉장히 날카롭고 위험한 지역에 계속해서 밀어넣었다.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구석 벽난로 앞에서 평화로이 바느질을 하던 늙은 여인이 그에게 나무라듯이 한마디 던질 정도였다.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깨달은 화이트씨. 아들이 실수가 벌어진 현장을 발견하지 못 하게 주의를 산만하게 하려는 어설픈 노력을 보이며 입을 열었다. “바람소리를 잘 들어보렴." “듣고 ..
2021.07.01 -
#017: 커트 보네것, "2 B R 0 2 B" (완)
2 B R 0 2 B 글쓴이ㆍ커트 보네것 번역ㆍ오성진 Part 2 로라 던칸이 초상화를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그녀가 그렇게나 우러러본다던 히츠 박사가 대기실에 등장했는데, 그의 키는 210센티미터는 족히 넘었다. 박사는 세상에서 중요한 위치를 쥐었으며 이루어낸 성과가 상상을 초월하고 삶의 즐거움으로 가득한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아우라를 세차게 뿜어 내는 바람에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던칸 씨, 던칸 씨!” 히츠 박사는 밝게 외치며 농담을 던졌다. “여기서 뭐하시고 계신가요? 여기는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는 곳이 아니라 바로 세상에 입장하는 곳인데요!” “제가 박사님과 같은 그림 안에 들어갈 거라고 해요,” 그녀가 수줍게 말했다. “그거 듣던중 반가운 소식이네요!..
2021.06.27 -
#016: 커트 보네것, "2 B R 0 2 B" (1)
2 B R 0 2 B 글쓴이ㆍ커트 보네것 번역ㆍ오성진 “고민거리가 있나요? 전화를 주세요. 고민을 해결해 드립니다 -- 여태껏 그랬듯이요!” Part 1 모든 것들이 문제없이 돌아가는 시대가 도래했다. 감옥도, 빈민가도, 정신병원도, 절름발이도, 가난도, 전쟁도 더이상 자취를 감춘 세계. 모든 질병에는 각각 고칠 수 있는 방법이 마련되었고 노화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죽음, 심각한 사고는 꼭 원하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모험적인 엔터테인먼트로 몰락한지 오래였다. 그리고 미합중국의 인구는 사천 명 이상을 넘기지 않도록 조정되었다. 시카고에 어느 산부인과가 맞이한 밝은 아침, 아내의 출산을 앞둔 에드워드 K. 웰링라는 이름의 사내가 대기실에 비치된 의자에 앉아있었다. 병원에서 출산소식을 기다리며 앉아있는..
2021.06.24 -
#015: 어니스트 헤밍웨이, "나의 아버지" (완)
나의 아버지 글쓴이ㆍ어니스트 헤밍웨이 번역ㆍ오성진 Part3 나의 아버지는 그 레이스를 통해 많은 돈을 벌게 되셨고 그래서인지 아버지와 내가 파리로 놀러가는 횟수가 점점 잦아졌다. 트랑블레에서 경기를 마치고 메종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버지는 우리를 파리 한가운데 세워달라고 하셨고 그 길로 우리는 자연스레 카페 드 라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곤 했다. 파리의 카페에 가만히 앉아있는 일은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전구를 주무르면 화들짝 뛰는 요상한 토끼들을 파는 남성들이 걸어오면 나의 아버지는 그들과 농담을 주고받곤 하셨다. 아버지는 영어를 하시는 것 만큼 불어로도 유창하게 말할 줄 아셨는데 아버지와 비슷하게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들은 아버지가 그들과 같은 타입이라는 사실을 늘 기가 막히게..
2021.06.20 -
#014: 어니스트 헤밍웨이, "나의 아버지" (2)
나의 아버지 글쓴이ㆍ어니스트 헤밍웨이 번역ㆍ오성진 Part 2 이른 아침 파리에서 우리를 처음으로 맞아준 것은 길고 더러운 기차역이었고 아버지는 그곳이 파리의 게어 드 리옹역이라고 알려주었다. 파리도 밀란처럼 상당히 큰 도시였는데, 되돌아보면 밀란의 모든 사람과 트램은 어딘가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서로 부딪히는 일이 없었다. 그에 반해 파리는 모든 움직이는 것들이 한데 뒤엉켜 서로를 괴롭히고 있는 것처럼만 보였다. 물론 나로서는 파리의 그러한 복잡함이 싫지는 않았다, 심지어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경마 레이스 코스까지 있다니 더더욱이 마다할 이유가 없는 도시였다. 아마 난장판 덩어리에서 튀어나온 버스가 목적성 없이 제일 가까이에 있는 또다른 난장판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식의 불규칙성 속 규칙성..
2021.06.17 -
#013: 어니스트 헤밍웨이, "나의 아버지" (1)
나의 아버지 글쓴이ㆍ어니스트 헤밍웨이 번역ㆍ오성진 Part 1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뚱뚱한, 그러니까 흔히 볼 수 있는 누우면 굴러갈 것만 같을 정도로 뚱뚱한, 사람치고 나의 아버지는 그래도 제법 봐줄만 했던 것 같다. 당신의 말년을 제외하고, 아버지께서는 평생동안 그 정도로 살이 붙은 적이 없었다. 조금 살집이 있었던 말년의 아버지마저 어차피 말을 타고 간단한 장애물 넘기만 하셨기 때문에 당시 몸상태는 별로 문제되지 않았다. 아직도 져지 몇 벌 위에 고무 셔츠, 그리고 커다란 스웻셔츠를 입고 정오가 되기 전에 땡볕으로 나를 끌고나가 함께 달리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훤하다. 아버지는 새벽 네 시쯤 토리노에서 돌아오던 아버지는 라조의 말들 중 한 마리를 데리고 모든 것에 이슬이 서릴 때까지 달리셨다. 시..
2021.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