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 W. W. 제이콥스, "원숭이 손" (2)

2021. 7. 3. 12:48번역/문학 (소설)

원숭이 손

 

글쓴이ㆍW. W. 제이콥스
번역ㆍ오성진

 

(그림 출처)

 

Part 2

 

다음 날 아침, 허버트는 한껏 겨울스러운 햇빛이 아침상 위에 내려앉은 광경을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그는 문득 어제 두려움에 빠져 침대로 달려가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헛웃음을 터뜨렸다. 부엌엔 어제는 자리하지 않았던, 수상할 정도로 단조로운 공기가 공중에 나돌고 있었다. 원사가 놓고 간 물건은 어제 허버트가 던져둔 탁자 위에, 여전히 더럽고 쪼그라든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원숭이 손의 초라해보이는 모습은 그 안에 영적인 힘이 깃들어있다는 이야기의 신빙성을 한없이 떨어뜨렸다. 

 

“늙은 퇴역 군인들은 다 똑같나 보구나,” 가장 먼저 부엌의 적막을 깨트린 인물은 화이트 부인이었다. “그렇게 허무맹랑한 소리를 한참이나 듣고 앉아있었다니! 요새 소원을 들어준다는 둥, 원숭이 손에는 힘이 있다는 둥 하는 이야기를 믿을 사람이 대체 어디에 있겠니? 그리고 정말 만약에 소원을 들어준다고 해도 말이야, 고작 이백 파운드에 어떻게 끔찍한 결과가 생길 수 있다는건지… 안 그래요, 여보?”

 

“길을 걷다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이백 파운드에 머리를 맞는다면 또 모를 일이죠,” 긴장이 풀린 허버트는 원래 성격대로 다시 경솔한 이야기를 했다.

 

“모리스 말로는 그것보다는 조금 더 말이 되는 인과관계가 따라온다고 했어,” 그의 아버지가 말했다, “소원을 취소하고 싶을 정도의 결과들이라고 하더군.” 

 

“네, 어쨌든 제가 돌아온 다음에도 별로 변한게 없었으면 좋겠네요,” 허버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버지가 욕심 그득한 사람으로 변해계실까봐 걱정이 돼요, 그러면 아버지를 집에서 내보내야 할 수도 있잖아요.”

 

그의 엄마는 문앞까지 아들의 마중을 나가며 웃었다. 도보를 따라 걸어가는 아들을 한참 바라보던 그녀는 식탁으로 돌아오면서 자신의 남편이 가끔씩 심할 정도로 허구의 이야기를 맹신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또 한 번 웃음보를 터뜨렸다. 그녀는 한참을 웃다가도 우체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표정을 싹 바꾸고 총총걸음으로 서둘러 문을 열었다. 우체부가 건네준 봉투 안에 납세고지서를 확인한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스스로 알게모르게 원사가 술김에 이야기한 내용을 믿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방금 있었던 일을 말해주면 허버트가 또 다시 비꼬는 말투로 몇 마디 할 것 같네요,” 화이트 여사가 식탁 앞에 앉으면서 말했다.

 

“그것 참 끔찍한 소리구만," 맥주를 잔에 따르던 화이트씨가 말했다. “근데 당신, 정말로 거짓말이 아니라 분명히 어젯밤에 저게 내 손에서 꾸물댔어. 정말이야."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겠죠," 노년의 여인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로 그렇다고 하잖아," 반대편에 앉아있는 남성이 말했다. “생각 같은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니까, 분명 그… 당신 왜 그래?”

 

아내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녀는 집밖에서 서성이는 한 남자의 수상한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남자는 대문을 지나 노부부의 집으로 들어올지 말지 한참을 망설여하는 것 처럼 보였다. 이미 그녀의 머릿속에는 ‘이백 파운드'라는 단어로 가득했던 탓인지 그 남자의 잘 차린 옷차림과 누가 봐도 새것인 티가 물씬 나는 실크 모자가 그녀의 시선을 끌었다. 그는 대문 앞에서 세 번이나 멈춰섰다 다시 서성이기를 반복했다. 같은 패턴의 행동을 네 번이나 반곡하고 나서야 대문을 잡고 있는 그의 손에 결단력이 생긴 것 같았다. 큰 결심을 마친 듯한 남자는 문을 열어제끼고 정문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다. 화이트 여사는 양손을 등뒤로 뻗어 허겁지겁 그녀의 앞치마 끈을 풀었다. 그녀는 효용성으로 완벽히 무장한 옷감을 의자 위 쿠션 밑에 찔러넣었다.  

 

그녀는 도통 편안해보이지 않는 표정의 낯선 이를 집안으로 초대했다. 남자는 부인의 눈치를 살피며 힐끔거렸다. 그녀가 집안꼴이 난잡한 점과 남편이 주로 정원에 갈 때만 입는 더러운 코트를 가리키며 필요 이상으로 미안하다고 할 때 마저 남자의 정신은 다른 곳에 팔려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는 참을성을 가지고 남자가 자초지종을 설명할 때 까지 기다렸지만 그는 한참동안 입을 열지 앟았다.

 

“제가… 어쩌다보니 제가 소식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침묵을 깨고 말을 꺼낸 그는 다시 머뭇거리며 그의 바지에 붙은 솜쪼가리를 떼어내고 있었다. “아, 저는 모앤메긴스 소속 직원입니다.”

 

늙은 여인은그의 말에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그녀는 숨도 쉬지 않고 질문을 퍼대었다. “허버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거예요? 무슨 일이죠?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예?” 

 

그녀의 남편이 끼어들었다. “여보, 잠깐만, 글쎄 잠깐만,” 그가 재촉했다. “우선 여기 앉아봐. 성급하게 결론짓지 말자구. 저기, 젊은 신사 양반. 제 눈에 당신은 나쁜 소식을 가져올 사람처럼 보이진 않아요, 내 말이 틀렸나요?” 화이트씨는 절박한 눈빛으로 남성을 바라보았다. 

 

“면목이 없습니다……” 방문객이 입을 열었다.

 

“아이가 다쳤나요?” 어머니가 따지듯이 물어보았다.

 

“심각하게 다쳤습니다,” 방문객은 동의의 표시로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리고 조용한 목소리로 더했다, “하지만 아무 고통도 느끼지는 못 했을 겁니다.”

 

“그럼 됐네요!” 나이 든 여인이 박수치며 소리쳤다. “오, 하나님, 천만 다행이네요! 정말로 다해…” 그녀는 비로소 남자가 한 말 뒤에 숨은 사악한 악취를 뿜어내고 있는 진실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자의 뒤틀린 표정을 통해서 진정 그녀가 두려워하던 문제가 현실이라는 사실마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는 숨을 고르며 이해력이 더딘 남편 쪽으로 몸을 돌려 그의 손 위에 떨리는 그녀의 손을 올렸다. 방 안엔 길고 긴 적막이 내려앉았다.

 

“허버트씨는 기계 사이에 끼고 말았어요,” 방문객은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겨우겨우 문장을 마쳤다.

 

“‘기계 사이에 끼고 말았다’ 라고요...” 화이트씨가 초점 흐린 눈으로 남성의 말을 따라했다. “아 예, 어떻게 그런 일이 있었을까요...” 

 

노인은 창밖을 멍하게 바라보며 40년전 풋풋하게 연애를 하던 시절처럼 두 손을 포개 아내의 손을 감싸주었다.

“유일하게 우리에게 남아있던 아이였습니다,” 노인은 천천히 방문객에게 고개를 틀며 말했다. “받아들이기 많이 어렵네요.”

 

남성은 헛기침을 몇 번 내뱉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앞 까지 느린 걸음으로 걸어갔다. “회사측은 여러분의 크나큰 상실에 진심으로 애도의 마음을 표하는 바입니다,” 그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저는 단순히 시키는대로 회사의 입장을 전달드리고 있는 일개 사원이라는 점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의 말은 아무 답변도 구하지 못했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나이든 여성의 시선은 남자의 뒷통수만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고 어느새 자취를 감춘 그녀의 숨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남편 얼굴엔 아마 첫 번째 소원이 이루어졌을 당시 원사의 그것과 같을 듯한 표정이 어려있었다.

 

“저는 모앤메긴스사는 그 어떠한 법적 책임도 지지않겠다는 소식도 전해야 하기도 합니다,” 남자는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아드님께서 회사에 기여한 공로를 고려하여 두 분에게 작게나마 성의를 표할 수 있는 금액을 전달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화이트씨는 아내의 손을 떨구고 두 발로 서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님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공포심에 질린 채 떨렸다. 그의 마른 입술은 겨우겨우 움직여 짧은 문장을 만들어냈다, “그... 금액이 얼마요?”

 

돌아온다는 답변은 “이백 파운드 입니다,”이었다.

 

노인은, 아내가 내지르는 비명을 듣지도 못한 채, 허탈하게 웃으며 장님처럼 손을 뻗어 봉투를 받았고 이내 곧 봉투와 그 안의 내용물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원문 출처: 자유 이용 저작물인 W. W. 제이콥스(W. W. Jacobs)의 'The Monkey's Paw'를 번역했습니다. 원문을 구할 수 있는 링크를 여기에 남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