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 F. 스콧 피츠제럴드, "이치에 맞는 일" (2)

2021. 7. 8. 20:14번역/문학 (소설)

이치에 맞는 일


글쓴이ㆍF. 스콧 피츠제럴드
번역ㆍ오성진

 

 

Part 2

 

지금 기차역 플랫폼 위에서 조지를 발견하고 달려오는 여인의 이름은 존퀼 캐리였다. 조지는 일생동안 그녀의 얼굴처럼 예쁘고 연약해 보이는 건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조지를 향해 양팔을 벌려 그의 키스를 기다린다는 듯이 입술을 쭉 내밀고 서있었다. 영화같은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그녀가 갑자기, 그리고 조심스럽게 조지의 팔을 놓고 약간 부끄러운 눈치로 주변을 살피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녀의 뒤에는 조지보다 어려보이는 두 명의 남자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이쪽은 크래독씨, 그리고 이쪽은 홀트씨,” 존퀼은 명랑하게 두 남자를 소개해주었다. “저번에 놀러왔을 때 서로 만난 적 있을거야.”

 

키스에서 갑작스러운 지인소개로 전환되는 상황을 찝찝해하던 조지는 존퀼의 집으로 가는 길에 타야하는 차 두 남자 중의 한 명의 것이란 사실을 알아채고 한 층 더 짙은 찝찝함을 느껴야만 했다. 왠지 모르게 네 명 중에 가장 약자의 위치에 서게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녀의 집으로 향하는 동안 존퀼은 앞좌석, 뒷좌석 번갈아가며 바쁘게 수다를 떨었는데, 조지가 팔로 존퀼의 어깨를 감싸려 하자 그녀는 재빠르게 내빼며 어깨 대신에 그녀의 손을 잡으라고 말했다. 

 

“우리 지금 너네집으로 가는거 맞아?” 조지가 속삭였다. “이 길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새로 생긴 길이야. 제리가 오-늘 새차를 구했다고 해서. 우리 집에 데려다주기 전에 나한테 차 구경을 시켜주고 싶다고 했거든.”

 

20분 정도가 지나 존퀼의 집에 도착했을 때 조지는 그를 보고 존퀼의 반짝이던 눈빛에는 그새 빛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했다. 그가 염원해오던 만남, 절정의 순간 같은 건 그렇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흘러가버린 것이다. 하지만 약해진 조명 밑에서 존퀼이 예전같이 그를 감싸안아주며 열 가지 다른 방식으로 - 조지는 그 중에서도 말없이 해주는 방식을 가장 좋아했다 - 그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알려주니 조지의 마음도 금세 풀리는 것만 같았다. 그녀가 보여주는 감정은 모든 것은 결국 괜찮아질 거라고 말해주는 일종의 약속같기도 해서 그를 안심시키고도 남을 정도로 커다랬다.

 

둘은 소파에 같이 앉아 그 어떤 말도 필요없는,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충족감을 만끽할 수 있는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자 존퀼의 부모님이 집에 도착했고 그들은 진심으로 기쁜 마음으로 조지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은 조지를 좋아했고 특히 일 년 몇 개월 전, 조지가 테네시에 처음 왔을 때 부터 그가 대학교 전공을 따라 공학쪽에 경력을 쌓을거라 생각하며 젊은 청년의 창창한 앞날을 기대했다. 물론 조지가 공학을 포기하고 즉시 돈이 될 만한 일거리를 따라 뉴욕으로 갔을 때, 노부부는 유망한 젊은이의 꿈이 꺾인 것만 같아 다소 실망하기도 했지만 둘 다 젊은이의 사정에 공감하려고 노력하며 그들의 딸과 약혼을 진행시킬 날을 계획하고 있었다. 저녁을 먹는 동안 그들은 조지에게 뉴욕에서의 생활은 어떤지 물어봤다.

 

“모든게 잘 풀리고 있어요,” 조지는 자신감에 꽉찬 목소리로 그들에게 답했다. “곧 승진을 하고 더 많은 연봉을 받으면서 일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거짓말을 뱉어낸 조지의 자존감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지만 그 말을 들은 식탁위의 다른 이들은 모두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회사에서 너를 아끼나보구나,” 캐리 여사가 말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삼 주 안에 두 번이나 휴가를 낼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줄리가 없잖니.” 

 

“제가 그래야만 한다고 말했거든요,” 조지가 황급히 에둘러 말했다,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더이상 그 회사에서 일하지 않겠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이제 너도 조금은 돈을 아껴야 하지 않겠니,” 캐리 여사는 부드러운 말투로 조지를 꾸짖었다, “이렇게 왔다갔다 하면서 경비에 다 써버리는 대신에 말이야.”

 

저녁식사는 마친 존퀼과 조지는 다시 온전한 그들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존퀼은 다시 조지의 품으로 돌아왔다. 

 

“와줘서 너무 기뻐,” 그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자기가 다시는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보고싶었어?”

 

“당연하지. 그걸 말이라고 해.”

 

“그… 다른 남자애들이 너 보러 자주 여기에 들려? 아까 그 두 명처럼 말이야.”

 

이 질문을 들은 존퀼은 당황했다. 어두운 벨벳색의 두 눈이 조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래, 당연하지. 매일같이 와. 왜, 내가 편지에서도 여러 번 말하지 않았어, 자기야?”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처음 조지가 도시에 왔을 때 이미 그녀 주변엔 열댓명 정도의 남성들이 줄서고 있었다. 대부분 너무도 눈에 띌 정도로 연약하디 연약한 그녀의 성격을 숭배하듯이 했을 터였고 그 중 아마 겨우 몇 명 정도만이 존퀼의 아름다운 눈을 발견하고 그녀가 얼마나 바르고 착한 사람인지 알게 되었을 것이다.  

 

“내가 누구도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야?” 존퀼이 따지듯이 질문하며 먼 발치에서 조지를 바라보는 것처럼 보일 때 까지 소파 깊숙이 몸을 뺐다. “그냥 내 두 손 묶고 여기 평생 가만히 앉아있으면 좋겠다는 거냐고!”

 

“그게 무슨 말이야?” 조지가 당황하며 말했다. “너 말은 내가 평생동안 결혼자금 하나 마련하지 못 할거라는 거야?”

 

“또 제멋대로 생각하고 있지.”

 

“제멋대로 생각하는게 아니야. 방금 너가 그렇게 말했잖아.”

 

조지는 자신이 대화 속에서 위험한 위치에 처해있다고 감지했다. 다시 그녀를 품속에 안아보려고 했지만 존퀼은 예상 밖으로 조지의 팔을 뿌리치며 말했다, “너무 더워. 저기 가서 선풍기 좀 찾아올게.”

 

그녀가 집어온 선풍기가 돌기 시작하고 둘은 다시 자리에 앉았지만 아직도 굉장히 예민한 상태에서 헤어나오지 못 한 조지는 그간 계속해서 피해오던 대화 주제로 풍덩 몸을 던졌다.

 

“언제쯤 나와 결혼해 줄거야?”

 

“너는, 그럼 너는 나랑 결혼하기 위한 준비가 됐어?”

 

이성의 끈을 놓쳐버린 조지는 순식간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저 개같은 선풍기 좀 꺼줘,” 그가 외쳤다, “저것 때문에 돌아버리겠어. 내가 너랑 있을 때마다 머릿속에서 째깍거리는 시계소리 같아. 난… 나는 뉴욕하고 시간 생각 좀 그만하고 싶어서 기쁜 마음으로 여기까지 오는거란 말이야.” 

 

그는 일어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제자리에 앉을 때에도 짧은 시간 안에 폭삭 무너졌다. 존퀼은 선풍기를 껐고 조지의 머리를 그녀의 무릎 위에 앉힌 뒤 남자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이렇게 앉아있자,”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잠깐만이라도 이렇게 가만히 앉아있자, 내가 얼른 재워줄게. 자기가 너무 피곤하고 긴장해서 그런 것 같아. 내가 여기 있어줄게.”

 

“이렇게 누워있기 싫어,” 그가 불평하며 몸을 일으켜세웠다. “이렇게 누워있기 정말 싫어. 그냥 너가 키스해줬으면 좋겠어. 그러면 조금은 쉰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아. 뭐, 물론 긴장한 건 내가 아니라 너겠지만. 난 전혀 긴장하지 않았거든.”

 

긴장하지 않았음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조지는 소파에서 일어나 방 건너편에 놓인 흔들의자에 몸을 앉았다.

 

“내가 겨우 결혼할 준비가 되었을 때 너는 항상 세상에서 제일 긴장한 말들을 늘여놓은 편지들을 보내왔잖아, 도망치듯이 말이야. 그러면 지금처럼 항상 내가 달려와야만 했고…”

 

“오기 싫으면 오지 않아도 돼.”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잖아! 조지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조지는 스스로 굉장히 침착하고 논리정연하게 말하고 있지만 존퀼이 일부러 그가 대답하기 힘들 질문들만 골라서 하고 있다고 느꼈다. 대화에 단어가 하나씩 더해질 때마다 그들 사이의 간격이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고 조지는 자신의 목소리에 더이상 걱정한다거나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묻어나지 않도록 조절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일 분 정도 지났을까, 존퀼은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고 조지는 다시 소파로 돌아가 한 팔로 그녀를 안아주었다. 이번엔 조지가 그녀를 달래줄 차례였다. 조지는 그녀의 머리를 그의 어깨 위에 올려주었고, 그녀가 어깨 품속의 여인의 떨림이 줄어들 때 까지 그들만의 익숙한 이야기들을 읊조려주었다. 거리 위 다른 집들에서 새어나오던 피아노 반주가 점차 그칠 때 까지, 한 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둘은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조지는 더 이상 움직이지도, 생각하지도, 헛된 희망을 품지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재앙들을 떠올리면서 떨지도 않게되었다. 열한시를 지나, 열두시를 지나, 이층 난간에서 캐리 부인이 둘에게 잘 자라고 할 때까지 둘은 편안한 상태를 말없이 즐겼다. 캐리 부인의 목소리에 간신히 정신이 든 조지는 다시 내-일과 훗날 그를 덮치게 될 슬픈 미래를 떠올리며 잠에 들었다.

 

 

원문 출처: 자유 이용 저작물인 F.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의 'The Sensible Thing'을 번역했습니다. 원문을 구할 수 있는 링크를 여기에 남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