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문학 (소설)(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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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6: 샬롯 퍼킨슨 길먼, "누런 벽지" (2)
누런 벽지 글쓴이ㆍ샬롯 길먼 번역ㆍ오성진 (표지 사진 출처 / 본문 사진 출처) Part 2 어느새 7월 4일(독립기념일)이 지났어! 사람들이 다 가고 나니 진이 다 빠져버린 것만 같아. 존이 나를 보고 사람들을 좀 만나보는게 어떻겠냐고 하길래 일주일 정도 엄마랑, 넬리, 그리고 아이들을 보러 다녀오기도 했어. 물론 가서도 난 아무것도 안 했어. 이젠 제니가 모든 일을 처리하고 있거든. 그런데도 몸이 영 피곤한건 똑같았어. 존은 내 상태가 빨리 회복되지 않으면 가을에 웨어 미첼(Weir Mitchell)선생한테 날 보내버리겠다고 해. 거기에 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어. 그 사람한테 진단을 받아본 친구가 한 명 있는데, 친구 말로는 그 사람이 존이나 내 오빠보다 심하면 더 심했지, 다를 건 하나도 없다..
2021.09.10 -
#045: 샬롯 퍼킨슨 길먼, "누런 벽지" (1)
누런 벽지 글쓴이ㆍ샬롯 길먼 번역ㆍ오성진 (표지 사진 출처 / 본문 사진 출처) Part 1 존과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이렇게나 역사적 가치가 묻어나는 멋진 건물에서 여름을 보내는 일이 흔치는 않을거야.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맨션일지, 귀족들 사이에서 대대로 전해져온 사유지일지, - 나에겐 그저 귀신 들린 집처럼 보이지만 - 나로선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여기서 로맨틱한 분위기까지 더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쨌든 여기에 무언가 이상한 기운이 있단 점 만큼은 부정하지 못할 것 같아. 그게 아니라면 그렇게 싼값에 팔릴 수 있었을까? 그리고 왜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거주하는 사람이 없었을 수 있을까? 내가 이런 생각을 내비칠 때마다 존은 비웃지만 뭐 어쩌겠어, 이 정도는 모든 이들이 결혼에서 겪는 과..
2021.09.07 -
#028: 리차드 코넬, "가장 위험한 사냥감" (완)
가장 위험한 사냥감 글쓴이ㆍ리차드 코넬 번역ㆍ오성진 (표지 사진 출처 / 본문 사진 출처) Part 4 자로프 장군은 방금 한 말은 잊어달라는 듯이 손짓을 하며 말을 건넸다. “아이반이 선생님께 사냥 복장과 음식, 그리고 칼을 챙겨드릴 것입니다. 모카신 재질의 신발을 신으시는 것을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그래야 자국이 덜 남게 될 테니까요. 섬의 동남쪽에 위치한 큰 늪지대도 피하시는 편이 좋을 거예요. 저희끼리는 ‘죽음의 늪’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거기 일대가 퀵샌드거든요. 한 번은 어느 바보 같은 놈이 말을 안 듣고 그 쪽으로 간 적이 있습니다. 근데 슬프게도 라자루스가 그 놈을 따라갔죠. 선생님이라면 제 심정을 이해하실 수 있을겁니다. 저는 라자루스를 매우 사랑했거든요... 무리에서 가장 괜찮은 사..
2021.07.25 -
#027: 리차드 코넬, "가장 위험한 사냥감” (3)
가장 위험한 사냥감 글쓴이ㆍ리차드 코넬 번역ㆍ오성진 (표지 사진 출처 / 본문 사진 출처) Part 3 “저기요! 저길 보세요!” 장군은 으슥한 어둠으로 그득한 정글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레인스포드의 눈에는 오로지 검은색 어둠만 보일 뿐이었지만 장군이 버튼 하나를 누르자 이내 곧 저 멀리 바다까지 환한 불빛들이 일렬로 켜졌다. 장군은 멍한 표정의 레인스포드를 바라보며 실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유일하게 바깥과 연결되는 물길입니다, 불빛이 드리운 길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시에는 살이 찢겨 나갈 정도로 날카로운 암초가 떼를 지어 바다괴물처럼 입을 떡 벌리고 숨어있는 구역으로 넘어가게 되어버리죠. 암초의 날은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해서 배들을 마주쳐도 제가 이 호두를 부시듯이 손쉽게 부숴버리곤 합니다.”..
2021.07.22 -
#026: 리차드 코넬, "가장 위험한 사냥감” (2)
가장 위험한 사냥감 글쓴이ㆍ리차드 코넬 번역ㆍ오성진 (표지 사진 출처 / 본문 사진 출처) Part 2 악수를 제안한 남성을 보며 레인스포드의 머릿속에 바로 든 생각은 그가 말도 안 되게 잘생겼다는 것이었다. 그 다음으로 레인스포드에게 든 생각은 장군의 얼굴에는 무언가 굉장히 독창적인, 너무도 특이해서 거의 이상할 정도의 기운이 서려있다는 점이었다. 키가 큰 장군이 중년의 나이가 지났을 거라는 사실은 선명하게 새하얀 그의 머릿결을 통해 유추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썹과 콧수염만큼은 마치 레인스포드가 뚫고 와야만 했던 정글의 밤처럼 칠흑같이 어두운 검정이었다. 마찬가지로 시꺼먼 그의 눈에서는 굉장한 광채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의 광대뼈, 높은 콧대, 주로 명령을 내리는 사람에게 어울릴 법한 어두..
2021.07.20 -
#025: 리차드 코넬, "가장 위험한 사냥감” (1)
가장 위험한 게임 글쓴이ㆍ리차드 코넬 번역ㆍ오성진 (표지 사진 출처 / 본문 사진 출처) Part 1 "저어기. 저기로 좀 가다보면 곧 커다란 섬이 나올거야,” 휘트니가 말했다. "거기를 둘러싼 으스스한 얘기가 꽤 있는 모양이던데.” "무슨 섬이길래 그래?” 레인스포드가 물었다. "오래된 항해일지에 의하면 함정을 파두고 배를 잡아먹는 섬이라고 해서 쉽 트랩 아일랜드(Ship Trap Island)라고 부른대,” 휘트니가 답했다. "뭔가 이름부터 찝찝하지 않아? 내가 아는 항해사들은 하나같이 이상할 정도로 저 섬을 두려워 해.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만… 그냥 시시한 미신 같은 거면 좋겠어.” "여기선 보이지 않는데,” 레인스포드가 답했다. 요트 위에 똑바로 선 남자는 손끝으로 만져질 정도로 두껍고 후덥지근한..
2021.07.17 -
#024: F. 스콧 피츠제럴드, "이치에 맞는 일" (완)
이치에 맞는 일 글쓴이ㆍF. 스콧 피츠제럴드 번역ㆍ오성진 (사진 출처) Part 4 이듬해에도 무더운 9월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테네시의 어느 도시, 구릿빛으로 피부를 바짝 태운 청년이 기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그는 긴장한듯이 주변을 둘러보고 역에서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는 점에 안심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후 남자는 택시를 타고 도시에서 가장 좋다고 알려진 호텔로 도착했고 페루에서도 여전히 쓰고 있는 그의 이름, 조지 오켈리 밑으로 예약된 방에 만족스럽다는 듯이 입장했다. 그는 몇 분간 창가에 앉아 익숙한 거리들을 내려다보았다.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떨리는 그의 손은 전화기로 향했고 그는 조심스럽게 기억을 따라 번호를 눌렀다. “혹시 존퀼이 집에 있나요?” “제가 존퀼인데요.” “아…” 불안..
2021.07.14 -
#023: F. 스콧 피츠제럴드, "이치에 맞는 일" (3)
이치에 맞는 일 글쓴이ㆍF. 스콧 피츠제럴드 번역ㆍ오성진 (사진 출처) Part 3 상황이 극에 달한 건순간은 다음날 둘 사이에 오간 열기 가득한 설전 중에 찾아왔다. 두 사람 모두 서로의 본심은 어떤 것일지 제멋대로 판단했지만 둘 중 존퀼은 그들에게 닥친 상황을 받아들일 준비가 조금 더 되어있는 편이었다. “지금처럼 계속 살아갈 수 없는 건 너도 잘 알잖아,” 그녀가 상심에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너 스스로도 너가 얼마나 보험회사에서 일하기 싫어하는지, 그리고 그 일을 진짜 일처럼 받아들이고 그 회사에서 잘 해낼 수도 없다는 거, 너도 알지 않아?” “그게 문제가 아니야,” 남자는 고집스럽게 말했다, “단지 혼자서 일하는게 싫을 뿐이야. 너가 나와 결혼하고 함께 뉴욕에서 살아준다면 난 모든지 잘 ..
2021.07.09 -
#022: F. 스콧 피츠제럴드, "이치에 맞는 일" (2)
이치에 맞는 일 글쓴이ㆍF. 스콧 피츠제럴드 번역ㆍ오성진 Part 2 지금 기차역 플랫폼 위에서 조지를 발견하고 달려오는 여인의 이름은 존퀼 캐리였다. 조지는 일생동안 그녀의 얼굴처럼 예쁘고 연약해 보이는 건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조지를 향해 양팔을 벌려 그의 키스를 기다린다는 듯이 입술을 쭉 내밀고 서있었다. 영화같은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그녀가 갑자기, 그리고 조심스럽게 조지의 팔을 놓고 약간 부끄러운 눈치로 주변을 살피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녀의 뒤에는 조지보다 어려보이는 두 명의 남자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이쪽은 크래독씨, 그리고 이쪽은 홀트씨,” 존퀼은 명랑하게 두 남자를 소개해주었다. “저번에 놀러왔을 때 서로 만난 적 있을거야.” 키스에서 갑작스러운 지인소개로 전환되는 상황을 찝찝해하던..
2021.07.08 -
#021: F. 스콧 피츠제럴드, "이치에 맞는 일" (1)
이치에 맞는 일 글쓴이ㆍF. 스콧 피츠제럴드 번역ㆍ오성진 Part 1 여느 때와 같이 미합중국의 중대한 점심시간이었다. 조지 오켈리는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황급히 자신의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무실에 있는 그 누구도 그가 조급하다는 사실을 알아채서는 아니된다. 사람들은 조지가 ‘성공은 주변환경에 달려있다'는 명언을 따라 청소하고 있다고 생각해야지, 정작 그의 관심이 칠백 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가있다는 사실을 들켜서도 안 된다. 드디어 빌딩에서 나오게 된 조지는 주변 눈치를 볼 새도 없이 이를 꽉 물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가 달리면서 힐끗대던 정오의 햇빛은 타임 스퀘어에 느릿느릿 길게 늘어진 채로 쉬고있는 사람들을 감싸주고 있었다. 거리의 관중은 살짝이 위를 올려다보며 봄향기가 담긴 공기를..
2021.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