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 F. 스콧 피츠제럴드, "이치에 맞는 일" (3)

2021. 7. 9. 23:37번역/문학 (소설)

이치에 맞는 일


글쓴이ㆍF. 스콧 피츠제럴드
번역ㆍ오성진

 

(사진 출처)

 

Part 3

 

상황이 극에 달한 건순간은 다음날 둘 사이에 오간 열기 가득한 설전 중에 찾아왔다. 두 사람 모두 서로의 본심은 어떤 것일지 제멋대로 판단했지만 둘 중 존퀼은 그들에게 닥친 상황을 받아들일 준비가 조금 더 되어있는 편이었다.

 

“지금처럼 계속 살아갈 수 없는 건 너도 잘 알잖아,” 그녀가 상심에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너 스스로도 너가 얼마나 보험회사에서 일하기 싫어하는지, 그리고 그 일을 진짜 일처럼 받아들이고 그 회사에서 잘 해낼 수도 없다는 거, 너도 알지 않아?”

 

“그게 문제가 아니야,” 남자는 고집스럽게 말했다, “단지 혼자서 일하는게 싫을 뿐이야. 너가 나와 결혼하고 함께 뉴욕에서 살아준다면 난 모든지 잘 해낼 수 있다니까! 내 걱정은 단지… 단지 너가 여기, 이렇게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고있는 거, 그거 하나 뿐이야.”

 

그녀는 그의 말에 답하기 전에 한참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녀에게는 이 대화가 어떻게 끝날지 또렷하게 보였기 때문에 침묵을 지키면서 그녀가 생각을 했다기 보다는 단순히 다음 내뱉을 말이 적절한 목소리와 함께 동반될 수 있도록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존퀼은 그녀가 뱉을 단어 하나하나가 건너편에 서있는 남성의 마음을 날카롭게 찌를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그녀가 입을 열었다:  

 

“조지, 난 너를 사랑해. 내 모든 것을 걸 수 있을 정도로. 심지어 내가 너말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모습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야. 너가 두 달 전에 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다면 우린 이미 결혼했을거야.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우리가 결혼하는 모습이... 이치에 맞지 않아보여.”

 

이 말을 들은 남성은 혼자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녀 주변에 그녀가 숨겨둔 다른 남자가 분명히 있을 것이 분명하다고!

 

“아니야, 아무도 없어.”

 

이것은 사실이었다. 제리 홀트같은 남성들은 그녀에게 해봤자 조지와의 관계에서 생긴 억압된 감정들을 풀어주는 도구일 뿐, 그녀에게 그 이상, 그 이하의 의미도 가지지 못 했기 때문이다.

 

조지는 이 상황을 잘 받아들이지 못 했다. 그는 그녀를 팔 안에 안고 억지로 키스를 하려고 했다. 그의 딴에서는 이마저도 결혼을 승낙받기 위한 가여운 노력이었다. 그의 작전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조지는 자기비하적인 말들을 한없이 읊조리기 시작했다. 매력이 전혀 묻어나지 않은 이 행동은 그가 자신을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는 여자의 눈빛을 뒤늦게 발견할 때 까지 계속됐다. 그는 당장이라도 떠나겠다고 -- 그의 본심은 당연히 그러지 못했다 -- 윽박을 질러댔지만 정작 그녀가 그것이 최선인 것 같다고 이야기 했을 땐 남자는 떠나지 않았다. 

 

잠시동안 여자는 남자가 불쌍하다고 느꼈지만 그 조금의 시간 마저 지난 뒤에는 그런 생각마저 들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돌아가는게 나을 것 같아,” 설움에 복받친 그녀가 울면서 말했고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도 커서 캐리 부인이 다급하게 아래층으로 달려서 내려오게 만들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거니?”

 

“어머니, 예정보다 조금 일찍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조지가 깨진 목소리로 전했다. 존퀼은 어깨를 들썩이며 방을 나갔다.

 

“조지, 너무 상심하지 마렴.” 캐리 부인은 깊은 동정심을 담은 눈빛으로 남성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는 남성을 진심으로 가엾게 생각하는 마음과 더불어 이 작은 비극이 거의 끝났다는 점에 행복해하는 마음도 섞여있었다. “어머니가 계신 집으로 가서 일주일동안 지내는 건 어떻니. 지금 이 상황을 고려해보면 아마 그게 제일 이치에 맞는 일이지 않겠…”

 

“제발 그만하세요,” 그가 울부짖었다. “저에게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마세요!”

 

존퀼이 다시 방으로 들어왔을 때, 그녀가 느끼고 있을 슬픔과 긴장감들은 이미 그녀의 얼굴에 펴발라진 파우더와 립스틱, 그리고 모자 속에 숨어있었다.

 

“택시 불렀어,” 그녀가 차갑게 말했다. “기차가 올 때 까지 차 타고 바깥 공기나 쐬자.”

 

말을 마친 여자는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조지는 코트와 모자를 걸치고 나가려다 말고 복도에 지친 기색으로 잠시 서있었다. 아무래도 뉴욕을 떠난 뒤로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한 게 문제였다. 캐리 여사는 그에게 다가가 그의 머리를 감싸주며 이마 위에 입을 맞추어줬지만 그는 속으로 겨우 이딴게 그에게 어울리는 마지막 장면이라는 사실에 기분이 울적해졌다. 어젯밤에 존퀼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건네고 눈치껏 떠났더라면 이렇게 자존심은 구기지 않아도 됐을텐데, 라고 생각하는 조지였다. 

 

택시가 도착했다. 한적한 차도 위를 달리는 차속에서 한 시간 남짓 되는 시간 동안 한 때는 연인이었던 두 사람이 어색하게 앉아있었다. 남자는 여자의 손을 잡았고 창문 너머 햇빛을 맞으며 조금씩 침착함을 되찾고는 그제서야 둘 사이에 더이상 할 이야기나 할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묵묵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다시 돌아올게,” 그가 말했다.

 

“그러겠지,” 그녀가 목소리에 반가워하는 느낌을 억지로 더해가며 답했다. “그리고 가끔씩 서로 편지도 주고받겠지.”

 

“아니,” 그가 말했다, “편지는 더이상 안 돼. 그것만은 못 버티겠어. 그냥… 그냥 내가 언젠가는 돌아올 거라고만 알아줘.”

 

“절대 너를 잊지 못할거야, 조지.”

 

둘은 제시간에 역에 도착했고 그녀는 표를 사러 가는 조지를 따라 걸었다.

 

“아니, 이게 누구야! 조지! 존퀼!”

 

조지가 동네에서 일했을 당시 알고 지내던 남녀가 외쳤다. 존퀼은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준 그들에게 감사하다는 듯, 조금 풀린 표정으로 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네 명의 성인들은 같은 자리에 서서 오 분동안 쉬지않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 사이 기차는 눈치껏 제시간에 역에 도착했고 조지는 고통스러움을 애써 참는 표정으로 존퀼을 향해 팔을 펼쳐보였다. 그녀는 그를 향해 확신이 부족해 보이는 발걸음을 내딛다가 이내 친구도 아닌 사이끼리 하듯 밋밋하게 그의 손을 쥐어주었다. 

 

“잘가-, 조지,” 그녀가 먼저 말을 건넸다, “조심히 들어갔으면 좋겠네.”

 

“잘가-, 조지. 다음에 돌아올 땐 우리랑도 놀자.”

 

저 멀리서부터 밀려오는 고통의 파도를 온몸으로 맞아내던 조지는 쥐고있던 수트케이스를 꼭 쥐고 힘풀린 눈으로 천천히 열차 위에 몸을 실었다. 

 

과거의 장면들이 흐르는 교차로들을 지나며 석양을 향해 달리는 기차는 점차 속도를 더해가며 도외지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아주 어쩌면 그녀도 석양을 보며 잠시 멈춰 뒤를 돌아보며 기억에 잠길 수도 있겠다. 그녀가 잠에 들며 그에 대한 기억을 하나둘 벗겨내기 전까지 말이다. 깊어져만 가는 오늘 밤 이 황혼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익히 알고 있던 테네시의 작은 동네에 뜬 태양을, 나무를, 꽃들을, 그리고 웃음을 하나씩 갉아먹고 있는 것만 같았다.  

 

 

원문 출처: 자유 이용 저작물인 F.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의 'The Sensible Thing'을 번역했습니다. 원문을 구할 수 있는 링크를 여기에 남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