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 리차드 코넬, "가장 위험한 사냥감” (1)

2021. 7. 17. 17:51번역/문학 (소설)

가장 위험한 게임


글쓴이ㆍ리차드 코넬
번역ㆍ오성진

 

(표지 사진 출처 / 본문 사진 출처)



Part 1

"저어기. 저기로 좀 가다보면 곧 커다란 섬이 나올거야,” 휘트니가 말했다. "거기를 둘러싼 으스스한 얘기가 꽤 있는 모양이던데.”

"무슨 섬이길래 그래?” 레인스포드가 물었다.

"오래된 항해일지에 의하면 함정을 파두고 배를 잡아먹는 섬이라고 해서 쉽 트랩 아일랜드(Ship Trap Island)라고 부른대,” 휘트니가 답했다. "뭔가 이름부터 찝찝하지 않아? 내가 아는 항해사들은 하나같이 이상할 정도로 저 섬을 두려워 해.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만… 그냥 시시한 미신 같은 거면 좋겠어.”

"여기선 보이지 않는데,” 레인스포드가 답했다. 요트 위에 똑바로 선 남자는 손끝으로 만져질 정도로 두껍고 후덥지근한 열대의 공기 사이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너 시력 좋잖아,” 휘트니가 웃으면서 말했다, "저번에는 사백 야드나 떨어진 지점에서 갈색 단풍 속에 숨어있는 무스도 잡아 냈던 걸로 기억하는데, 달빛 한 줄기 없는 카리브 해의 밤 속에서는 고작 사 마일 앞도 보지 못하는 모양이네.”

"사 마일은 무슨. 그 절반이 되는 거리도 못 보겠어," 레인스포드가 순순히 인정했다. "이런 씨, 이래서야 원 축축하고 검은 벨벳을 눈 위에 둘러싸고 있는 거랑 다를 바가 없잖아.”

"리오에 도착하면 공기가 한 층 가벼워질거야,” 휘트니가 약속하듯이 말해주었다. "며칠 안에는 도착할거니 너무 걱정 마. 그나저나 재규어 사냥할 때 쓸 총은 퍼디네 가게에서 구한거면 좋겠네, 물론 아마존에서 하는 사냥은 총이랑 상관없이도 꽤 재미있을 것 같긴 하지만. 사냥은 역시 매력적인 스포츠니까 말이야.”

"사냥을 능가할 만한게 없긴 하지,” 레인스포드가 동의했다.

"사냥꾼한테나 해당되는 말이겠지,” 휘트니가 말을 정정했다. "재규어한테는 딱히 재미있지 않을테니까 말이지.”

"휘트니,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레인스포드가 곧장 맞받아쳤다. "우리는 맹수 사냥꾼이지, 철학자가 아니야. 재규어가 어떻게 느낄지는 우리의 알 바가 아니라고.”

"어쩌면 재규어도 우리랑 똑같이 감정을 느낄지도 모르잖아,” 휘트니가 자신이 평소에 해오던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다.

"아니, 동물에게 무슨 놈의 감정이 있겠어!”

"아무리 우리 인간이 느끼는 모든 것을 느낀다고 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동물도 공포심, 한 가지는 분명하게 있을거야. 고통에 대한 공포심...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심 말이야.”

"말도 안 돼,” 레인스포드가 호탕하게 웃으며 답했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휘트니, 조금 더 현실적으로 생각하는게 어때. 세상에 모든 건 쫓는 입장이거나 쫓기는 입장, 이렇게 두 가지로 분류되는 법이야. 우리는 운좋게 쫓는 입장인거고… 그나저나 너가 말한 그 섬은 아직도 지나지 못 한거야?”

"너무 어두워서 잘 모르겠지만... 지났길 바래야지.”

"왜?” 레인스포드가 물었다.

"말했잖아, 저 섬은 위험하다는 악명이 높다고. 진짜라니까.”

"섬에 식인종이라도 있는거야?” 레인스포드가 이유를 떠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럴리가. 소문의 분위기만 봐서는… 식인종도 저 섬에서는 맘편히 지내지 못할걸. 소문의 진상은 나도 잘 모르겠지만 뱃사람들 사이에서는 엄청 유명한 이야기인가 봐. 오늘 선원들 모두 바짝 긴장한 티가 나지 않아?"

"듣고 보니 오늘 확실히 다들 이상하긴 했지, 닐슨 선장만 봐도…”

"내 말이. 단단하기로 유명한 그 스웨덴 늙은이마저 그렇잖아. 평소 같았어 봐. 직접 악마한테 걸어가서 불 좀 빌려달라고 말했을 사람이야. 그 생선 눈깔 같던 눈알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운으로 가득하다고. 그래서 내가 여러 번 물어봤는데 해준다는 말이 겨우 '신사 분, 이 섬은 바다 위를 떠도는 이들에게 끔찍한 명성을 가지고 있답니다...’ 정도야. 그러고는 아주 엄숙한 톤으로 '뭔가 느껴지지 않나요?’라고 하더군. 마치 공기중에 독이라도 퍼져있는 것 처럼 말이야. 근데 이상한 건 뭔지 알아? - 이렇게 말했다고 비웃지 마 - 선장이 그 말을 할 때 순간적으로 정말 소름이 돋기는 했어. 바람이 불거나 하지는 않았어, 바다 표면도 유리창처럼 아무 움직임 없이 평평하기만 했거든. 마침 그 때 우리가 저 섬에 가까워지고 있었는데, 그 때 느낀건 좀 더 뭐랄까… 머릿속이 차가워지는 느낌이 들더라고.”

"너 상상속에서나 그랬겠지,” 레인스포드가 말했다. "본래 미신을 믿는 놈이 한 명이라도 껴있어도 쉽게 배 전체가 두려움으로 가득차는 법이야.”

"너 말이 맞을수도, 근데 뱃사람들에게는 미리부터 위험을 알려주는 신경이 발달되어 있는 법이기도 하지. 가끔 악(惡)이라는 것이 만질 수 있을 정도로 실체가 있다고 느낄 때가 있잖아. 주파수 같은게 붙어있다고 할까… 빛이나 소리처럼 말이야. 어쨌든 이 지역을 벗어나게 되어서 다행이야. 레인스포드, 난 이제 자러 가봐야겠어.”

"난 아직 졸리지 않아서,” 레인스포드가 답했다. "저 뒤쪽에서 남은 담배나 태우다 들어갈게.”

 

"그래, 그럼 나 먼저 잘게. 내일 아침에 보자.”

"그래. 잘 자, 휘트니.”

레인스포드는 앉은 채로 귀를 기울여 봤지만 한시라도 빨리 배를 지역을 벗어나게 해주기 위해 열일하는 프로펠러 소리 외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의자에 기대 누운 레인스포드는 게으른 동작으로 그가 제일 좋아하는 파이프에 남아있던 담뱃잎을 마저 태웠다. 밤이 선사하는 졸려운 기운은 그를 조금씩 감쌌다. "해도해도 너무 어둡잖아,” 그가 생각했다, "눈도 감지 않고 잠에 들 수 있을 정도야. 내 눈꺼풀 대신에 이 밤의 어둠을 써서 말이지.”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에 레인스포드는 화들짝 놀라며 긴장했다. 소리는 그의 오른편에서 들렸는데, 그의 귀는 이런 쪽으로는 타고 났기 때문에 절대로 그가 틀렸을리 없었다. 다시 한 번 같은 소리가 한 번, 또 한 번 들렸다. 저 쉼없이 어둡기만한 어둠속에서 누군가 세 번이나 총을 발포한 것이 분명했다.

당황한 레인스포드는 빠른 움직임으로 난간에 붙어섰다. 그는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쭉 내밀고 뭔가라도 발견하기 위해 두 눈에 불을 켰지만 그의 행동은 눈 위 까지 덮은 이불 너머 앞을 보려고 하는 것과 같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는 더 나은 시야를 위해 난간 위로 뛰어 올라 균형을 잡고 꼿꼿이 섰다. 그 과정에서 그의 입에 물린 파이프가 선박에 달린 밧줄에 맞는 바람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는 파이프를 잡기 위해 몸을 숙였지만 너무도 순식간에 움직인 탓에 레인스포드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균형을 잃고 말았다. 레인스포드가 바다속으로 빠지면서 내지른 비명소리는 카리브 해의 피를 닮은 따뜻한 물속에 그대로 묻히고 말았다.

그는 수면 위로 목을 내놓고 소리를 지르려고 노력해봤지만 이미 빠르게 움직이고 있던 요트가 사방으로 내뿜는 물보라는 자비도 없이 그의 얼굴을 찰싹찰싹 때리면서 남자가 숨을 쉬지 못 하고 구역질을 할 때까지 그의 입 안에 소금물을 계속해서 뿌려댔다. 레인스포드는 점점 더 멀어지는 요트의 빛을 바라보며 절박하게 소리를 지르며 헤엄쳤지만 채 십오 미터도 가지 못하고 멈추었다. 좀전까지는 요트 사람 중 한 명이라도 그의 소리를 들을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 확률마저 요트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점점 더 희미해져만 갔다. 레인스포드는 두르고 있던 옷을 죄다 벗어 던지고 남은 힘을 모두 쏟아 요트를 향해 소리질렀다. 그렇지만 요트의 불빛은 무심하게도 반딧불이의 뒷꽁무니 마냥 점점 그 밝기가 줄어들다가 얼마 지나지도 않고 아예 새까만 어둠 속으로 묻혀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이 처음으로 맞이한 위기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레인스포드의 머리는 오히려 어느 때보다도 침착한 상태로 변했다.

레인스포드는 총성이 오른쪽에서 들렸던 사실을 기억해냈다. 남은 힘을 아끼기 위해 팔동작을 천천히 헤엄을 치기 시작한 그는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시간 동안 바다와 싸워야만 했다. 그는 팔을 움직이는 횟수를 세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으로는 앞으로 백 회 정도는 더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바로 그 때, 레인스포드의 밝은 귀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튀어나온 그 소리는 높은 비명소리였고 소리를 지른 동물은 어마어마한 양의 긴장과 공포심을 느낀 모양이었다.

그는 소리를 낸 동물의 정체를 파악할 수 없었고 딱히 그러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으며 단지 머리를 비우고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죽기살기로 수영하기 시작했다. 한 번 더 비슷한 위치에서 소리가 들려왔는데 이번에는 스타카토처럼 굉장히 간결하게 강렬한 외마디 비명이 들릴 뿐이었다.

“총소리,” 레인스포드가 우물거리며 계속해서 헤엄쳤다.

십 분 가까이 계속해서 팔을 휘두르고 있는 그의 귀에 또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 이 소리를 들은 그의 표정 위에는 반가움이 사방에 묻어났다 - 그 소리는 바로 파도가 자갈로 이루어진 해변바닥에 부딪히는 소리였다. 레인스포드는 직접 눈으로 보기도 전에 커다란 바위에 부딪혔는데 그 표면이 너무도 날카로워서 만약 그가 평정심을 잃었더라면 큰일이 났을 것이 분명했다. 남자는 몸에 남아있는 힘을 전부 사용해서 몸을 물 밖으로 빼내기 위해 그의 앞에 서있는 거대한 벽을 짚었다. 뾰족뾰족 날카로운 돌덩이들의 표면을 더듬어가며 레인스포드는 한 발 한 발 절벽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고 꼭대기에 위치한 평평한 면을 맨손으로 짚고서야 그는 기어코 큰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갑갑한 정글숲은 절벽 끝까지 마중나와 레인스포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뒤에 서있는 나무들과 덤불 사이에 과연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는 현재 그로서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이 순간 파악할 수 있는 정보라고는 그가 장시간 동안 싸워온 적수, 바로 바다에서부터 안전하게 도망쳐나왔다는 점과 현재 자신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기진맥진한 상태라는 점이었다. 그는 정글의 끝자락에서 풀썩 쓰러지고는 인생에서 누려본 것 중 가장 깊은 잠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레인스포드는 태양의 위치로 보아 지금이 늦은 오후 정도 되었다는 사실을 유추해냈다. 잠은 그에게 다시금 움직일 수 있을만한 힘을 불어넣어주었고 날카로운 허기는 그의 배를 찔러대고 있었다. 남자는 스스로의 모습을 확인하며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총소리가 있는 곳엔 남자가 있는 법이지. 그리고 남자가 있는 곳엔, 음식이 있는 법이고,’ 레인스포드는 생각했다. 하지만 과연 어떤 남자가 있을까 - 그의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 이렇게 험악한 곳에 사는 남자는 어떤 인간일까, 맹수의 입같이 생긴 정글의 초입부는 해변을 향해 떡하니 벌어져있었다.

레인스포드는 제각기 다른 방향을 가리키며 섞여있는 잡초들과 나무들 사이에서는 어떤 길도 파악할 수 없었기에 해변을 따라 가는 편이 훨씬 쉬울거라고 판단하고 허둥대는 발짓으로 물길을 따라 걸었다. 레인스포드가 멈춘 지점은 그가 첫 발을 내딛은 지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무언가 심각하게 다친 자국을 안고 덤불가지 밑에 광폭하게 날뛴 흔적이 많았다. 정글의 잡초들은 죄다 뜯겨져있었고 여기저기 나무가지들이 찢겨져 나간 자국이 있는걸 보면 분명히 큰 동물이 남긴 자국임이 분명했다. 구석에 있는 풀잎은 진홍색 핏자국으로 얼룩져있기도 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작고 반짝이는 물체가 레인스포드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그는 물건을 주워올렸다. 그의 관심을 이끈 물체는 다름아닌 탄피였다.

“22미리,” 그가 읊조렸다. "이상한데. 분명히 커다란 사냥감이었을텐데 이렇게 작은 총으로 처리했다고? 겨우 이런 총으로 사냥을 나오다니… 꽤 배짱이 있나본데. 사냥 당한 짐승도 온순히 당하고만 있진 않았던 모양이고... 처음 들은 세 발은 이 놈을 잡는데 쓴 총 소리였겠군. 마지막 총소리는 여기까지 사냥감을 끌고 와서 확인 사살을 하는데 쓰였겠지.”

레인스포드는 바닥을 찬찬히 탐구하기 시작했다, 사냥용 부츠의 발자국이라도 찾아보자는 심산이었다. 발자국은 한 쪽으로 향하고 있었고 레인스포드는 눈에 불을 켜고 발자국을 따라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여기저기 썩어 문드러진 통나무에 미끄러져 넘어지거나 발을 헛디뎌 쓰러지면서도 그는 한 발짝 한 발짝, 앞을 향해 나아갔으며 밤의 장막이 천천히 드리우던 섬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절망적인 어둠이 바다와 정글을 통째로 집어삼키고 있을 때, 레인스포드는 간신히 저 멀리 보이는 빛을 포착했다. 레인스포드는 불빛들이 잘 보이는 지점에 우뚝이 서서 빛의 출처를 내려다 보았다. 불빛이 너무도 많았기에 레인스포드는 맨처음 그가 어떤 마을에 도착한 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불빛과 가까워지면서 그 많은 불빛들이 하나의 거대한 건물 -- 고층의 건물은 갑갑한 어둠속 구름을 뚫고 하늘을 향해 높게 솟아있었다 -- 에서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윤곽으로만 봐서는 으리으리한 대저택으로 보이는 건물은 절벽 끝에 자리잡고 있었고 건물의 삼면은 바다를 향해 서있었다.

“신기루인가,” 레인스포드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신기루 같은 것이 아니었으며 레인스포드도 뾰족뾰족한 쇠로 이루어진 철문을 열면서 이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밟고 있는 돌길의 감촉은 꽤 그럴 듯했고 거대한 문, 그리고 그 위에 손님을 죽일듯이 노려보는 가고일 석상도 진짜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공기 중에는 아직도 현실과의 괴리감이 잔뜩 남아돌고 있었다.

레인스포드는 문고리를 잡고 올려보려 했고 마치 한 번도 쓰여본 적이 없는 듯한 빳빳한 문고리에서는 끼긱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가 문고리를 손에서 놓자 자유의 몸이 된 문고리는 있는 힘껏 문에 부딪히면서 웅장한 소리를 만들었고 레인스포드는 뒷걸음질 치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건물 안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듯 했지만 출입문은 아직도 굳게 닫힌 채,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레인스포드는 다시 한 번 문고리를 들고 내려놓았다. 그제서야 문이 - 마치 매년 갑자기 등장하는 봄처럼 굉장히 빠른 속도였다 - 열렸고 레인스포드의 호기심으로 가득 찬 눈빛에서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레인스포드의 눈에 처음 들어온 건 그가 생전 본 사람 중에 가장 커다란 사람의 형체였다, 거대한 생명체는 골격마저 광대하고 단단해보였으며 검은색 수염이 허리춤까지 내려왔다. 그의 손에는 총 한 자루가 들려있었고 총구는 정확하게 레인스포드의 심장을 노리고 있었다.

검은 턱수염은 한숨 섞인 콧바람을 뱉고 레인스포드를 바라봤다.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레인스포드는 상대방의 경계를 풀어줄만하다고 생각하는 미소를 하나 골라다가 얼굴 위에 펼쳐보였다. "전 강도가 아닙니다. 요트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바다에서 표류하다가 여기까지 온 거예요. 저는 뉴욕에서 온 샌져 레인스포드라고 합니다.”

거구의 눈 속에 위협감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레인스포드의 심장을 향하고 있는 총구는 마치 석상에 붙어있는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남자는 레인스포드가 외친 말을 이해하기는 커녕 듣지도 못 했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검은 수염은 유니폼을 입고 있었는데, 회색 아스트라칸 모피로 덮은 검정색 슈트였다.

"저는 뉴욕에서 온 샌저 레인스포드라고 합니다,” 레인스포드는 용기를 내서 다시 한 번 말을 건넸다. "저는 요트에서 떨어졌어요. 그리고 무척이나 굶주린 상태입니다.”

거구에게서 볼 수 있는 유일한 반응이라곤 총구를 위로 향하는 동작 뿐이었다. 그리고 레인스포드는 남자의 빈 손이 그의 이마 위로 부리나케 달려가 경례 자세를 만드는 것을 보았다. 그 후 거대한 수염남은 발꿈치를 붙이고 차렷자세를 취했다. 그의 뒤로 한 남자가 우아한 발걸음으로 걸어서 내려오고 있었다. 새로이 등장한 이는 등이 빳빳하게 서있는 날씬한 남자였는데, 그는 잠옷을 입고 있었다. 늘씬한 체구의 남자는 레인스포드에게 다가가서 그의 손을 건넸다.

그의 말에는 살짝이 억양이 묻어나있었고, 그래서인지 그의 말은 왠지 더 정확하고 온전하게 전달되는 듯 했다. 남자가 말했다, "샌져 레인스포드 선생님, 선생님같이 유명하신 사냥꾼을 저희 집에 모시게 되다니, 크나큰 영광과 기쁨으로 가득한 밤입니다.”

레인스포드는 자동적으로 남자가 건넨 손을 잡아 악수를 했다.

"선생님께서 티베트에서 눈표범을 사냥하실 적 이야기를 집필하신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잠옷을 착용한 남자가 설명했다. "저는 자로프 장군이라고 합니다.”


원문 출처: 자유 이용 저작물인 리차드 코넬(Richard Connell)의 'The Most Dangerous Game'을 번역했습니다. 원문을 구할 수 있는 링크를 여기에 남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