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 요즘 학원에서 한다는 "과제", SAMPLE #01

2022. 1. 26. 15:49번역/비문학

(표지 사진 출처 / 본문 사진 출처)

 

**어쩐지 번역량은 늘었다고 적어는 놨다만 정작 번역물의 개수가 왜 늘지 않는지 아무 설명이 없었습니다. 번역록에는 간간이 적어두긴 했지만 제가 현재 번역 학원 두 군데를 다니고 있는데 여기서 내주는 과제나 작업들도 전부 번역하는 시간으로 상정하고 작업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학원에서 번역하게 되는 작품들은 보통 자유 이용 저작물이 아닌 경우가 많아 이 블로그에 올리지는 못했는데 그래도 어떤 식으로, 어떤 텍스트들을 작업하는지 기록 정도는 해두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샘플로 이번에 한 번역본 하나만 올려두겠습니다. 앞으로 학원 두 군데 모두 이개월 정도 남았는데 응원해주세요.

 

(…)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라고 한다면 여러가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우선 이동 중에 과연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예측이 가지 않는다는 점도 있었고 이미 지쳐버린 몸뚱아리를 이끌고 사람들을 온전히 내 힘으로 이끌고 가야만 한다는 점도 있었다. 본부에 계실 다른 전도사 분들도 지금 내 모습을 보고 모두 케런처럼 나를 두고 신앙심 부족한 겁쟁이라고 욕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들은 사실 나를 비난하려 들지 않고 깊은 이해심으로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을 알게된 것은 더 나중이었다.) 게다가 일주일만 기다리면 마을에 보급물자를 가져다주는 비행기가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것은 수송기에 가족을 태워 포르투벨류로 보내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넋을 놓고 앉아있기에는 케렌이 죽을 가능성이 너무나도 높았다. 일찍 이곳을 떠나 여정길에 오르는 위험부담이 수송기를 기다리는 위험부담보다 적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단지 내가 더이상 가만히 있고 싶지 않다는 이유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 더이상 매일 밤마다 내가 나 스스로와 가족들에게 쓸모가 없어질 때까지 마냥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뭐라도 해야만 했다.

 

케런을 데리러 둑 위로 올라가자 늙은 피라항인 사바기가 내게 다가와 도시에 다녀오는 길에 성냥과 담요 등 여러 물자들을 구해와달라고 부탁했다. “지금 케런이 아파요, 섀넌도 마찬가지고요. 지금 그런 것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나는 화를 내며 답했다. (만약 내가 파라항어로 비속어를 말할 줄 알았더라면 그 자리에서 과감하게 뱉었을 것이다.) “내가 도시로 가는 이유는 오로지 제 가족들을 낫게 해줄만한 물(약)을 먹이기 위해서예요.” 

 

나는 화가 났고, 늙은이에게도 내 감정을 충분히 보여준 것 같았다. 내 가족 전체가 위험에 빠져있는데 피라항인들이 한다는 말은 고작 자신들을 위한 생필품을 사와달라는 것이라니. 나는 줄을 당겨 소형 존슨 엔진에 시동이 걸었다. 수면 위로 올라온 카누의 건현은 고작 8센치 정도 뿐이었고 당시는 연중 수중 깊이가 백오십 미터 정도까지 차올랐던 시기였기 때문에 시작도 전에 좌우로 흔들리던 카누는 여정에 오르기도 전인 우리 앞에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만약 경험이 부족한 나의 실수로 카누가 뒤집히기라도 한다면 즉시 재앙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 눈에 훤했다. 구명조끼 하나 없는 카누 위엔 해변까지 헤엄칠 능력이 있을리가 없는 아이 둘과 위독한 상태의 승객 둘이 타고 있었다. 내게 마이시 강의 강력한 강류를 뚫고 모두를 구해낼 방법이 있을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움직여야만 했다. 

 

네. 잘 알겠습니다, 주님. 이제 저도 제가 그동안 인상깊게 봐왔던 선교인들의 이야기 중 하나의 주인공이 된거군요. 부디 저희를 안전하게 보살펴 주십시오, 주님. 나는 속으로 신께 말을 건네드렸다.

 

카누는 둑에서부터 출항했다. 피라항인들은 외쳐댔다. “성냥! 담요! 카사바! 통조림 고기!” 그 뒤로도 그들은 원하는 것들을 줄줄이 늘어놨다. 칭얼대는 두 대의 모터 소리 위로 불길하게 울부짖던 붉은색 앵무 한 쌍은 둥지로 가는 동안 우리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햇볕은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다. 온도는 화씨 칠십도를 훨씬 더 웃돌았지만 시간은 아직 오전 여덟시도 채 되지 않았었다.

 

시속 9킬로미터를 달리는 카누 덕분에 그나마 바람을 맛볼 수 있었다. 햇빛은 케런과 섀넌의 얼굴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카누가 강 위를 달린지 한 시간쯤 지나자 크리스틴은 배가 고프다고 말했다. 나는 속도를 줄여 크리스틴에게 복숭아 통조림을 까주었다. 크리스틴에게 옆에 강물에 손을 씻고 손으로 복숭아를 꺼내먹으라고 말했다. 케일럽도 똑같이 했다. “엄마, 복숭아 좀 먹을래요?” 크리스틴이 케렌을 향해 몸을 돌려 물었다. 그러자 케렌은 상체를 일으켜 크리스틴의 뺨을 때렸고 그 장면을 본 나는 화들짝 놀랐다. 케렌은 크리스틴에게 닥치라고 말하고는 다시 풀썩 쓰러졌다. 크리스틴은 울지 않았지만 내게 고통과 혼란스러움이 섞인 표정을 지어보였다. “케렌, 지금 엄마는 아프단다. 아마 제정신이 아닐거야.” 내가 말했다. 크리스틴과 케일럽은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섀넌은 복숭아를 안 먹어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끼리 복숭아를 나눠 먹었고, 캔 안에 남은 시럽은 크리스틴과 케일럽에게 양보했다.

 

카누 양쪽으로 우중충한 녹색 정글이 지나갔고 강 위에 다른 배는 없었다. 물이 너무도 높았기 때문에, 나는 주된 수로에서 벗어나 늪으로 향하는 잘못된 수로로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했다. 다행히도 주된 수로는 보통 찾기가 쉬웠다. 물론 매번 그렇지는 않았지만. 내 눈앞에 물길이 갑자기 여태껏 따르던 수로 대신 늪지처럼 퍼지거나 수많은 수로들이 한꺼번에 생겨난 것처럼 보일 때면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한 시간 정도 다시 지났을까, 케런은 몸을 일으켜 세워 물을 달라고 했다. 그녀의 입에 물을 따라주려고 했지만 케런은 내 손에 있던 수통을 쳐내고 컵을 꺼내들었다. 케런은 컵을 멀리 들고 그 안에 물을 따라보려고 했지만 죄다 자기 다리 위에 쏟아붓고 있었다. “여보, 내가 해줄게. 지금 물을 다 낭비하고 있잖아.” 나는 그녀에게서 수통을 받아내려고 애를 쓰며 말했다.

 

케런은 눈을 부릅뜨고 나를 노려보며 답했다, “이번 여행은 당신과 함께하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즐거웠을거야.” 말을 마친 그녀는 수통을 입에 넣고 물을 들이켜기 시작했다. 난 섀넌에게도 물을 조금 나눠주고 다시 길을 나섰다.

 

몇 시간이 더 지나서 왼편 둑 위에 트인 지면에 서있는 집 한 채를 발견한 나는 카누를 세웠다. 집을 발견했다는 것이 우리가 벌써 마데이라 제도로 향하는 길 위에 들어섰다는 점을 의미하는지 궁금해졌다. 나는 기본적인 포르투갈어 밖에 알지 못했지만 둑을 올라 집 앞으로 걸어갔다. 집 앞에서 박수를 여러 번 치자 집안에 있던 여성이 창가에 모습을 비쳤다. 난 정확하게 발음하기 위해 입을 양옆으로 넓히며 그녀에게 이곳이 “산타 루-찌-아"인지 물어보았다.

 

“그런 이름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녀가 답했다.

 

“혹시 제가 찾는 곳을 알만한 사람이 주변에 없을까요?” 나는 거의 구걸하다시피 그녀에게 물었다.

 

시간은 어느새 오후 두시가 다 되어갔고 연료 탱크 안에 가솔린은 반의 반도 채 남지 않았다. 아마 한두시간 정도 더 가면 금세 바닥이 보일 듯 했다. 산타루치아를 얼른 찾아내지 못한다면 노를 저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어쩌면 우리 모두 카누 위에서 잠을 청해야만 할 수도 있었다.

 

여인은 강 상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위에 파쿠에이마도(Pau Queimado) 사람들이라면 당신들이 찾고 있는 장소를 알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제가 방금 저기에서 내려올 때만 해도 사람들이 살만한 곳은 보지 못했는걸요.”

 

“저 강을 따라 가다가 왼편에 첫번째로 보이는 입구를 통해서 들어가보세요,” 더 구체적인 정보를 알려주는 여인이었다.

 

난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보트로 달려갔다. 날은 너무도 더웠고 땡볕에 익어버린 내 살은 불그스름하게 그을려졌다. 가족들 모두가 똑같은 상황이었다. 카누에 다시 몸을 싣던 나는 이번엔 저 안에 사는 가족이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상상하면서 그녀의 집을 바라보았다. 집 외벽에는 회반죽이 펴발라져 있었다. 집안에 여유가 있지 않고서야 결코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저들은 왜 집 외벽에 회반죽을 발랐을까? 햇빛의 열을 반사시키기 위해서? 그것도 이유가 아닌 것 같았다. 분명 보여주기식으로 해낸 일이 틀림없었다, 그것도 사람들이 잘 찾지도 않는 이 정글에서 말이다. 육즙이 많고 붉은 사과같이 생긴 열매가 자라는 열대 나무들도 있었다. 파파야 식물들도 있었다. 카사바, 사탕수수, 고구마, 그리고 카라카라 오렌지가 자라는 논밭이 집에서도 충분히 보이는 아래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던 집 주변에는 마체테로 손질한 푸른빛 잔디와 모랫빛 토양이 보기좋게 깔려있었다. 그리고 집의 손수 직접 깎은 판자로 지어진 것 같았는데, 그녀 남편의 실력인 것이 분명했다. 카누를 세워둔 곳 주변엔 살아있는 아마존 노란점 거북 몇 마리들이 집 앞 둑 위에 박힌 막대기에 묶인 채 얕은 물 위를 잠방거리고 있었다. 그 거북이들은 아마존 지역의 카보클로들이 - 카보클로란 브라질에 살면서 포르투갈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을 부르는 명칭이었다 - 거래상품이나 식용으로 가장 선호하는 동물이었다. 나는 줄을 풀고 카누 머리를 다시 강물 상류 쪽으로 돌리면서 거북이를 잡는 일로 먹고 산다는 건 실로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

 

*원문 출처: 대니얼 L. 에버렛(Daniel L. Everett)의 독특한 선교 경험을 담은 'Don't Sleep, There Are Snakes: Life and Language in the Amazonian Jungle'의 극히 일부 발췌본을 번역했습니다. 이 작품은 아직 자유 이용 저작물이 아니라는 점, 유의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