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 28. 16:01ㆍ번역/비문학
Living Like Weasels
족제비처럼 살자
글쓴이ㆍ애니 딜라드(Annie Dillard)
번역ㆍ오성진
I.
족제비는 영 제멋대로인 동물이다. 족제비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도통 알 수가 없다. 족제비는 지하소굴에서 꼬리로 얼굴을 덮은 채 잠에 든다. 가끔씩은 이틀동안 소굴 속에서 생활할 때도 있다. 소굴 바깥에서 족제비는 토끼, 사향쥐, 새를 쫓아다니며 자신이 먹을 수 있는 양보다 많은 동물들을 사냥해 소굴까지 시체를 끌고 온다. 본능에 충실한 족제비들은 사냥감의 목덜미를 물어 경정맥을 끊거나 두개골을 물어 뇌를 부숴버린다. 족제비는 한 번 물은 사냥감을 놓아주는 법이 없다.
자연을 사랑하던 어느 사람의 일화이다. 이 사람은 방울뱀마냥 자신의 손 깊은 곳까지 문 족제비를 죽이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떤 수단을 써도 조그만 족제비를 손에서 떼어내지 못한 그는 물이 있는 곳 까지 800 미터 정도를 걸어갔고, 그제서야 마치 끈적거리는 라벨지를 손에서 떼어내듯이 대롱대는 족제비를 물에 적셔가며 겨우 떨쳐낼 수 있었다.
어니스트 톰슨 시튼이 이야기한 족제비에 관련된 일화도 재미있다. 어느 남자가 하늘을 날고 있던 독수리를 쐈다고 한다. 남자는 독수리를 살펴보던중 독수리의 목구멍에 송곳니를 쳐박고 있던 족제비의 마른 두개골을 발견했다. 짐작해보자면 독수리가 먼저 족제비를 덮친 순간 족제비가 재빨리 몸을 접어 본능적으로 독수리의 목을 물어뜯고 심지어 거의 이길뻔하기도 한 상황이었던 것 같았다. 나는 사냥 당하기 몇 주, 아니면 몇 달 전에 독수리를 봤으면 했다. 과연 그 때 독수리를 발견했더라면 독수리 목에 펜던트처럼 달라붙어있는 족제비를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독수리가 닿는 데까지 발톱을 뻗어 족제비의 가슴 부분을 물어 뜯어 하늘에 족제비의 뼈들을 흩뿌렸을까?
II.
내가 족제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계기는 족제비와 마주쳤던 지난주 어느날이었다. 서로에게 놀란 우리는 한참을 서로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버지니아주에 위치한 우리집 주변에는 ‘홀린스 연못’이라는 이름의 연못이 하나 있다. 팅커 계곡 주변에 위치한 저지대의 2400평 남짓을 차지하고 있는 깊이 15센티미터의 이 연못 위에는 수련잎이 6,000개나 떠다닌다. 계곡의 한편에는 보트들이 시속 88킬로미터로 달리고 있고, 또 반대편에는 짝지은 오리 한 쌍이 여유롭게 움직이고 있다. 덤불마다 그 아래에 사향쥐가 판 구멍이나 빈 맥주캔이 있다. 저 반대편 끝으로는 논밭과 풀숲이 길게도 나있는데, 그곳엔 오토바이 트랙들이 설치되어 있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선 야생 거북이들이 알을 낳는다.
지난 주 해질녘 무렵에 연못을 향해 걷던 길이었다. 해변가 주변에 놓여있던 통나무 위에 앉았다. 나는 연못잎들이 잉어들의 움직임을 따라 흐트러지는 광경을 보던 중이었다. 노란색 동물이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나타났다가 내 등 뒤로 사라져버렸다. 얼마 있지 않아 그 동물을 다시 발견했고, 나는 다시 녀석을 보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잠시 지나자 나는 족제비를, 족제비는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III.
족제비라니! 실제로 야생의 족제비를 본 건 처음이었다. 족제비의 몸은 길이가 25 센티미터였는데 세상에 근육질의 리본이 있다면 이렇게 움직이지 않을까, 싶은 움직임을 지녔다. 족제비의 얇고 유연한 몸은 짙은 갈색이었고, 나를 경계하느라 상당히 긴장되어 있었다. 화가 가득차있던 족제비 얼굴은 도마뱀 얼굴처럼 작고 뾰족해서 화살촉으로 써도 무방할 것 같았다. 족제비의 턱은 두 개의 갈색 털로 덮을 정도로 조그만했고 그 밑으로 순백의 털이 자라있었다. 두 검은 눈은 너무도 투명해서 마치 깨끗한 창문을 보는 것만 같았다.
1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부스스한 들장미 덤불숲을 헤짚고 나오던 족제비는 나를 보고 깜짝 놀라 석상처럼 서있었다. 나도 깜짝 놀라는 바람에 뒷걸음질 치며 쓰러지듯이 나무 기둥에 몸을 기댔다. 서로를 향한 시선은 강력하게 붙어있어서 떨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우리의 시선은 마치 외나무 다리에서 예상치 못하게 만난,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두 애인 또는 원한 깊은 두 원수가 서로를 바라볼 때의 그것과 비슷해서 복부를 주먹으로 강하게 맞은 기분마저 들었다. 풍선 두 개를 많이 문지른 뒤에 정전기가 생기듯이 우리의 뇌는 서로에게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도 느껴졌고 우리의 폐가 텅텅 빈 것만 같았다. 우리의 만남은 숲을 무너뜨리고, 땅을 뒤흔들고, 연못물을 모두 증발시켰으며, 전세계는 블랙홀같이 깊은 족제비의 두 눈 속으로 무너지고 쓸려갔다. 만약 당신과 내가 이러한 방식으로 서로를 바라봤다면 우리의 두개골은 반쪽이 나서 어깨 위로 우수수 쏟아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우리의 두개골은 소중하기에 그러지 않도록 하자.
그리고 족제비는 서둘러 자취를 감췄다. 아직 한 주도 지나지 않은 일이었지만 도대체 우리 사이에 일어난 마술같은 순간을 깨뜨린 것은 무엇이었는지 벌써부터 기억이 가물거렸다. 내 생각에는 당시에 내가 눈을 깜빡이면서 족제비의 뇌에서 나의 뇌를 회수해온 것 같다. 돌려받은 뇌를 살피면서 도대체 내가 뭘 본건지 기억하려고 애쓰던 차에 족제비는 내 뇌가 떨어져 나갈 때 생긴 충격으로 현실로 돌아와 본능을 따라 도망친 것 같았다. 족제비는 들장미 덤불 밑으로 사라졌다. 나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기다렸고, 내 머리는 수많은 정보로, 내 영혼은 다시 그 순간을 갈망하는 마음으로 가득찼지만 족제비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내게 ‘접근-회피 갈등’을 논할 생각이라면 사양하겠다. 나는 정말 60초라는 시간 동안 그 족제비의 뇌속에 들어갔고, 그 족제비 또한 내 머릿속에 같은 시간 동안 들어왔다. 뇌는 은밀하고 고유한 과거의 흔적들을 담고 있는 사적인 공간이다. 그렇지만 나와 그 족제비는 달콤하고 충격적이었던 시간 동안 서로의 흔적들을 연결했다. 설령 족제비의 뇌에 아무런 정보가 없다고 한들 그 날 내가 겪은 경험을 부정할 수 있을까?
내게 족제비의 머릿속에 뭐가 있을지 궁금한가? 족제비는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한가? 족제비는 그 부분에 있어서 별말이 없었다. 족제비의 뇌에 담긴 기록 속에는 진흙, 여기저기 떠다니는 깃털, 쥐의 뼈와 피 같은 장면들이 특별한 유기성 없이 존재했다.
IV.
나는 제대로 사는 법을 배우고 - 아니면 기억하고 - 싶다. 그런데 홀린스 폰드 연못에서의 경험은 제대로 사는 방법 못지 않게 그를 잊는 방법의 중요성도 가르쳐줬다. 사실 뜨거운 피를 빨아마시거나, 꼬리를 치켜들거나, 내 손모양의 발자국들을 만들며 걸을 일도 없는 나로서는 야생동물로에게 특별히 배울만한 ‘잘 사는 법’이라는게 있을리가 없다. 그렇지만 순수하게 육체의 감각을 따르며 편견이나 의도가 없는 족제비의 성격만큼은 본받을 만하다고 느낀다. 족제비에게 생존은 필수라면 우리 인간들에게 생존은 선택이다. 인간들은 평생 그렇게 생각하다가 삶의 발톱에 잡힌 채 수치심을 느끼며 수명을 다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제 명을 사는데 충실한 족제비 처럼 살고 싶다. 시간과 죽음에 구애받지 않고, 주변에 모든 것을 인지하며, 과거는 한 치도 기억하지 않은 채, 뾰족하게 날이 선 의지로 내게 주어진 삶을 택하고 싶다.
V.
나는 주어진 기회를 놓친 것이다. 족제비의 목덜미를 물었어야 했다. 족제비의 턱 밑 흰색 줄무늬를 향해 뛰어들었어야 했다. 족제비가 진흙탕과 들장미숲을 뚫고 나를 질질 끌고 가더라도 고귀한 인생을 위해 족제비의 목덜미를 물고 늘어졌어야만 했다. 우리 모두 들장미 밑에 있는 족제비처럼 조용히, 세상에 대한 특별한 이해 없이 살 수 있다. 나도 혼란스러운 야생의 상태를 침착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도 지하소굴에서 이틀 동안 쥐털에 기대어 몸을 말아 눕거나 새뼈 냄새를 맡고, 눈을 깜빡이며, 풀뿌리에 내 머리칼이 파묻힌 채로 사향 숨을 내쉬는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저 아래는, 하나의 생각만 존재할 수 있는, 좋은 장소이다. 저 아래는 ‘벗어남’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토록 의존하는 정신에게서 벗어나서 날 것 그대로의 감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족제비의 머릿속에서 본 침묵은 길고 긴 혼란 속에서 이루어지는 단식과 같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족제비는 매순간 시끄러운 무음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시간과 사건은 우후죽순으로 발생할 뿐, 어떤 표식도 없이 경정맥에서 내장으로 흐르는 피처럼 직접적으로 주입된다. 과연 이 세상에서, 이런 방식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이 두 명 이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 들장미 밑에 있다가도 함께 연못 주변을 탐험하며 각자의 유연한 사고가 하늘에서 내리는 눈처럼 언제 어디서나 모두에게 존재하며,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서로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세상이 가능할까?
아마 “그럴 수 있다”가 정답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대로 살 수 있다. 사람들은 선택적으로 가난, 순종, 순결, 심지어 침묵마저도 맹세할 때가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주어진 바를 능숙하고 유연한 방법으로 따르는 것, 즉 가장 자신답고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을 찾아 삶과 연결하는 것이다. 이것은 양보이지, 싸우는 것이 아니다. 족제비는 그 무엇도 ‘공격’하지 않는다. 족제비는 주어진 운명대로 살 뿐이다, ‘필수적 생존’이라는 완벽한 자유를 위해 매순간을 양보하는 것이다.
VI.
당신에게 부여된 삶 하나만을 쥐고 절대 놓치 않는 행위는 옳고 적절한 삶의 방식인 동시에 순종적이고 순수하기까지 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산다면 피할 수 없는 죽음마저도 당신을 당신의 삶으로부터 떨어뜨릴 수 없을 것이다. 움켜쥐어라, 그리고 그것이 당신을 움켜쥐고 하늘로 날아가더라도, 그래서 당신의 두 눈알이 타오르고 떨어지더라도, 당신의 살점이 바닥에 조각조각 떨어지더라도 받아들여라. 그리고 당신의 뼈들이 떨어져나가 논밭 위로 아무렇게나 흩뿌려지도록 두어라. 떨어지는 장소가 논밭, 풀숲, 어디라도 특별한 생각도 하지 않으며, 마치 독수리가 나는 높이만큼 엄청난 높이더라도 신경쓰지 마라.
*이 글은 Annie Dillard의 'Living Like Weasels'이라는 짧은 글입니다. 자유 이용 저작물은 아니지만 학원에서 준 과제들을 하면서 블로그에 하도 글을 못올렸던 게 답답하던 터라 그냥 올리려구요. 이 글의 저작권은 제게 없습니다. ALL RIGHTS TO ANNIE DILLARD. (원문 링크)
아, 그리고 오랜만에 인사드린 김에 말씀드리자면 이제 학원 끝났습니다. 앞으로는 더 자주 인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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