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6: The Public Domain Review, "더 남쪽으로: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듯, 에드거 앨런 포와 아서 고든 핌의 대칭적 관계"

2021. 12. 23. 19:25번역/비문학

더 남쪽으로 :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듯, 에드거 앨런 포와 아서 고든 핌의 대칭적 관계

 

 

글쓴이 · 존 트렉(John Tresch)

번역 · 오성진

 

발간일 · 2021년 6월 16일

(표지 사진 출처)

 

1838년, 미국에서 남해를 향해 탐사를 떠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던 당시, 에드거 앨런 포는 남쪽으로의 탐방을 모방한 소설을 출간했다. 존 트렉은 포의 소설에서 묘사된 남쪽으로의 기묘한 여행을 설명하며, 이 기이한 여정 안에 담긴 의미를 고찰해본다.

 

1853년, 매튜 폰테인 마우리(Matthe Fountaine Maury)가 남태평양을 기록한 파일럿 차트에서의 세부요소. — 자료 출처.

 

1837년 5월, 미국 경제에 갑작스러운 제동이 걸리면서 전국적인 공황을 자아냈으며 마틴 밴 뷰렌(Martin Van Buren, 미국의 제8 대 대통령)은 임기를 시작하며 이 재난과 같은 상황을 물려받은 덕택에 혼란은 더더욱이 가중되었다. 영국에 지불해야하는 이자율은 급격히 상승하고 솜의 가치는 폭락하고야 말았다. 그 후 미국은 7년이라는 기간 동안 지속될 경제 침체기를 맞이했다. 

 

그 사이 에드거 앨런 포는 가뜩이나 늘어난 굶주림 덕분에 날카로워진 신경을 활용하여 열심히 작업에 임했다. 몇 년 전, 그러니까 포가 자신의 소설집 ‘폴리오 클럽 이야기(*Tales of the Folio Club, 이 단편소설집에 담긴 각각의 소설은 각자 확연한 색깔을 띄고 있었으며 당시 자리잡고 있던 작가들과 장르들에서 이용되어오던 클리셰들과 전형적인 부분들을 과하게 과장하며 비꼬았다)’을 출판해내기 위해 편집자들에게 편지를 쓰던 당시, 편집자들은 포에게 그 당시 대중의 단편들을 모아 놓은 단편집을 향한 관심이 확연하게 줄어들었다는 경고를 건넸다.1 그 중 하퍼 앤 브라더스(Harper & Brothers)지에서 제임스 커크 폴딩(James Kirke Paulding)은 미국인들은 “책 한 권 안에, 하나의, 연결 된 이야기가 담긴 형식을 좋아한다”고 더 자세하게 말해주었다.2

 

그리고 포는 그들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1836년 후반, 아직 버지니아 주, 리치몬드에 있던 포는 로빈슨 크루소를 읽고 영감을 받아 해상에서의 여행 일지를 담은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그 소설의 주인공 이름은 어딘가 포의 이름과 비슷한 부분이 많은 아서 고든 핌(Arthur Gordon Pym)이었다. 포의 소설은 당대 사람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정부 지원을 받아 남해로 떠나는 여정, 즉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과학적인 탐구를 위한 여행을 모티프를 통해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이 ‘국가적 차원의 탐사’는 J. N. 레이놀즈(J. N. Reynolds)라는 강연자에 의해 불꽃이 붙었는데, 그는 “서부의 뉴턴(Newton of the West)"이라는 별명을 지닌 존 클레브즈 심즈(John Cleves Symmes)라는 강연자가 내세운 “구멍 난 지구(hollow earth)” 이론에 상당한 영향을 받은 사람이었다.3

 

켄터키 주, 미주리 주, 오하이오 주, 등등을 돌아다니며 군장교로 근무했던 적이 있던 심즈는 지구의 표면은 그 안에 있는 표면들까지 포함한 다섯 개의 표면 중에 하나라고 굳게 믿었다. 그는 각각의 극지에 평평하게 열린 공간이 있으며 누구든지 최남단이나 최북단을 통해 행성의 안쪽에 위치한 층으로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심즈는 바깥 구(그리고 그 안에 자리잡은 네 개의 또다른 구들)의 안쪽 면은 반사된 빛으로 따뜻해지고 환하게 밝혀졌을 것이며, “따뜻하고 자원이 풍부하며 외부 세계에는 알려지지 않은 채소들과 동물들로 가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4 화학자 험프리 데이비(Humphry Davy)와 자연주의자 알렉산더 본 험볼트(Alexander von Humboldt)를 자신의 “경비원들”이라고 칭하며 심즈는 “사슴들과 썰매”를 끌고 “얼어붙은 바다의 떠다니는 얼음"을 가로질러 지구의 내부로 향하는 여정을 함께 떠날 “백 명의 용감한 동반자”들을 공개적으로 모집했다.5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연설을 할 줄 아는 레이놀즈는 심즈와 함께 강연을 하는 투어를 다니며 미국 정부가 그들의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떠나는 여정을 후원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심즈가 주장하는 ‘구멍 난 지구’의 안으로 향하는 입구의 모습. 이 그림은 ‘하퍼 사 월간지(Harper’s New Monthly Magazine)’의 1882년 발간호에 실렸다. 1880년대에 들어서서 이미 잡지에 공식적으로 글을 기고하는 글쓴이가 “심즈가 누구였는지, 그리고 그가 주장하는 바가 뭐였는지는 굉장히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온전하게 이해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라고 말해도 충분히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 자료 출처.

 

레이놀즈가 정부와 훗날 이야기 했을 땐 - 당시 레이놀즈는 심즈의 이론을 이미 멀리하고 남해로 탐사를 떠나고 싶은 마음만 강하게 지키던 시기였다 - 포는 “남부의 문학 메신저(Southern Literary Messenger)”의 한 호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글을 기고했다.6 포는 자신의 글에서 남극으로의 과학적 탐사는 “국가적 긍지와 영광"이 달린 문제라고 적었다. 미국은 단번에 세계의 지식을 위해 나서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한 문제를 밝히고자 하는 생각이 있는 한, 과학의 폭은 넓어져야만 한다, 그리고 자연과 자연의 법칙은 더 넓게 이해되어야 하며 그 이해심을 바탕으로 각각의 상황에 적용되어야만 할 것이다.” 포는 이러한 여정을 통해 미국은 향유(고래 기름), 물개 가죽, 샌달우드, 그리고 깃털의 거래량을 확연히 늘릴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여정을 떠나기 전에 올바르게 항해 일지를 수정할 줄 알고 인류학과 전역사에 있어서 “귀중한 것들을 수집하고 보관하며 분류할 줄 아는”, “과학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푼 과학인들로 이루어진” 집단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이들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신체적, 정신적 능력, 태도, 습관, 성격, 그리고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관계망”을 기록하며 “지난 세계에서 일찍이 동족이었을” 사람들의 언어를 공부하며 인간의 기원에 대해 고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837년 초, 포는 뉴욕으로 이사를 마친 상태였고 그의 수익은 거의 보이지 않는 듯 했으며 그는 기숙사 학교를 운영하는 그의 고모이자 장모인 마리아 클렘(Maria Clemm)의 도움 덕택에 생존할 수 있었다. 그 해 유월, 경제 침체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전망이 캄캄하던 시절, ‘하퍼 앤 브라더스(Harper & Brothers)’ 출판사는 포가 쓴 소설들의 저작권을 등록했다. 포가 책 한 권 안에 담아 낸 ‘하나의, 연결 된 이야기’에는 포가 단체로 떠나는 탐사, 그리고 오래된 언어들을 해석하는 데 얼마나 많은 열망이 있는지, 그대로 비춰졌다. 신선한 충격을 주는 문단들과 어딘가 불길해보이는 시각적 정보들로 가득 찬 그의 이야기는 이해하기 힘든 허들들을 중간중간 배치해 놓았지만, 동시에 독자들에게 새로운 상상거리들을 던져주었다.

 

*찰스 얼스킨(Charles Erskine)이 찰스 윌키즈(Charles Wilkes) 지휘 하에 미국 탐방 여행을 떠났던 기억이 담겨있는 책, “돛 아래에서 보낸 이십 년(Twenty Years Before the Mast)”에 실린 “판자 모양의 빙산(A tabular iceberg)”. — 자료 출처.

 

기묘한 여행

 

그렇게 ‘아서 고든 핌의 모험(The Narrative of Arthur Gordon Pym of Nantucket)’은 1838년에 출판되었다.7 그리고 이 책의 표지는 어마어마한 107개의 단어로 이루어진 부제가 가득 메우고있었다. 그리고 그 부제는 “1827년 6월, 남해를 향해 출항한 미국의 그램퍼스 호 위에서 일어난 폭동과 잔인한 살상들”에 관한 세세한 이야기까지 전부 담겨져 있을 것임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고, 추가적으로 “선이 부서지고 그로 인해 선원들이 겪게 되는 고통들”, “구조되는 내용”, “선원들 사이에서 벌어진 대학살”, “남위 84도 선에 위치한 섬을 방문한 내용”. 그리고 “그보다도 더 남쪽으로 가서 해낸 엄청난 모험들과 발견들”이 담겨있다고 적혀있었다.

 

한 비평가는 “독자 여러분, 이 표지 장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고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표지 페이지에는 정작 포의 이름은 적혀있지 않았으며 심지어 소설이란 사실마저 기재되어있지 않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포가 자신의 책이, 적어도 처음 책을 본 사람에게 만큼은, 정말 여행책처럼 보이는 것을 원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책 안에 자세하게 담긴 해류, 날씨, 그리고 바다와 공중에 떠있는 생물들 이야기는 이미 그럴 듯해 보이는 책의 내러티브에 더 많은 신빙성을 심어주었다. 포의 책은 현재까지도 굉장히 유명한 장르 중에 하나인 일인칭 시점에서 쓰인 여행기와 많이 닮아있었다. 책 안에는 레이놀즈가 포토맥(Potomac)으로 떠난 항해기, 그리고 그 안에서 이루어진 고래잡이들의 거래의 세세한 특징들이 담겨져있었다(레이놀즈가 쓴 ‘모카 딕(Mocha Dick)’은 훗날 허먼 멜빌의 이목을 끌게 된다).9 ‘핌의 모험담’은 같은 해, 팔 월에 남해로 떠난 탐사조의 출항시기와 맞춰 출판되었으며 내레이터도 이를 언급하며 그들의 여정이 “나의 진술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 가장 믿기 힘든 부분들을 증명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부분도 실려있다.10 첫번째 판본에는 하퍼 앤 브라더스에서 출간한 다른 책들 -- 여행기, 역사, 그리고 전기, 등등 -- 에 대한 공지문도 적혀있었는데, 이는 홍보라기 보다는 독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손 안에 있는 책이 실제 사실들이 담긴 이야기인 것 처럼 받아들여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행해졌다. 

 

그리고 이러한 “은둔”의 과정을 거쳐 자연스럽게 책을 쓴 작가는 “아서 고든 핌”인 것으로 인식된다.11 그러나 포가 책의 초반 몇 장(chapter)을 전년도에 메신저(Messenger)지에 소설이라는 카테고리 아래 기고하고 그 밑에 추가로 ‘에드거 앨런 포(Edgar A. Poe)’라고 서명까지 한 전적이 있었다.

 

*미상의 일러스트레이터가 상상한대로 그린 아서 고든 핌의 모습, 이 그림은 소설의 1884년본에 담겨져 있다. — 자료 출처

 

“아서 고든 핌(A. G. Pym)”의 이름으로 서명된 서문에는 이와 같이 의심스러운 정황을 해명하기 위해 “남해에서 지내면서 겪었던 엄청난 모험들”을 다 마친 후에, “핌”은 “리치몬드에 있는 신사들 몇 명”을 만났고 그들은 그에게 모험담을 출간하라고 종용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핌”은 그의 경험이 “너무도 굉장해서” 독자들이 과연 그의 이야기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 지”를 걱정하며 이를 한사코 거절했다는 내용이 적혀져 있었다.

 

하지만 “‘남부 문학 메신저’ 지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계신 포 씨”가 “비록 이야기가 조금은 거칠지 몰라도, 오히려 허구처럼 읽히는 부분들 덕분에 독자분들께서는 이를 더욱 진실로써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핌”은 결국 그의 이야기를 포가 대신 적어서 “소설이라는 명목 아래” 이야기를 낼 것을 조건으로 이를 받아들였고, 그렇게 해서 ‘아서 고든 핌의 모험’의 초반 부분이 일전에 ‘남부 문학 메신저’ 지에 담겨졌던 연유가 해명되었다. 이렇게나 허술하게 약간의 “우화”와 비슷할 것 같은 느낌만 조금 쥐어주었을 뿐인데도, 당시 많은 독자들이 소설 속 이야기를 실제로 믿었다고 한다. “핌”은 점점 그의 여정에서 관찰한 사실들을 읽고, 덤덤하게 있는 그대로를 적는다는 가정 하에,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진실을 사람들이 충분히 읽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될 것이라는 확신에 차게 되었다. 그렇게 그는 그가 눈여겨 본 사건들을 있는 그대로, 그의 “본명”을 걸고 적기로 결심하였다. 

 

독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진실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핌”과 “포” 사이에 이루어진 열띤 토론 끝에 이야기는 덤덤한 톤으로 시작했다: “내 이름은 아서 고든 핌이다. 나의 아버지는 내 고향 난터켓의 수산 시장에서 존경받는 상인이셨다.”12 열일곱 살이 되던 해, 핌은 그의 친한 친구 어거스터스와 함께 “일탈”을 즐기기 위해 작은 고기잡이 배, 애리얼(Ariel) 호에 올라탔다고 한다. 애리얼 호는 커다란 범선, 펭귄(Penguin) 호에 충돌해 거의 산산조각이 났지만 다행히도 펭귄 호가 그들에게 돌아와 핌과 어거스터스를 구출해주었다. 

 

어거스터스는 핌을 꼬드겨 또 한 번의 항해를 함께 떠난다. 이후 핌은 어거스터스와 함께 루이스와 클라크라는 인물들의 신상 정보를 도용해 어거스터스 아버지의 범선인 그램퍼스(Grampus) 호에 몰래 승선했다. 선박 위에서 반란이 이루어지던 사이 선 아래칸에 참담할 정도로 역겨운 공간에 갇혀 있던 핌은 거의 질식사를 할 뻔했다고 말한다. 인도 사람의 피 반, 유러피안 사람의 피를 반씩 지닌 더크 피터스(Dirk Peters)와 또다른 선원인 리차드 파커(Richard Parker)의 도움을 받아 핌과 어거스터스는 반란 분자들이 믿는 미신을 역이용해서 그들을 무찌른다. 몰아치는 폭풍이 배를 망가뜨린 뒤, 굶주리는 상태에 빠져버린 선원들은 결국 “잔인하기 그지없는 결론(fearsome speculation)”에 도달하여 리차드 파커를 모두 함께 먹는 지경에 다다른다. 그리고 끝내 어거스터스는 죽고, 오로지 핌과 피터스만 남게 된다.

*발렌타인 에드가 밴 유뱅크(Valentijn Edgar Van Uytvanck)가 1918년에 그린 추상화 작품자료 출처.

 

리버풀에서 출항해 그들의 앞을 지나가던 스쿠너(*schooner, 스쿠너는 보통 2개 이상의 돛대를 가지고 있고 모든 돛대에 가프 세일을 달고 있는 배를 뜻한다.), 제인 가이(Jane Guy) 호에 의해 구조된 그들은 여태껏 그 어떤 유럽인도 가보지 못한 거리의 최남단으로 항해를 하게 된다. 그들은 머리카락, 피부, 그리고 이빨까지 전부 새까만 원주민들이 사는 섬, 쌀랄(Tsalal) 섬에 도달하는 데, 쌀랄 섬 원주민들은 하얀 피부를 지닌 유럽인들과 그들의 항해술에 놀라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며 “테켈릴-리!(Tekeli-li!)”라고 외쳤다고 한다. 원주민들을 보며 “상업적인 기회”를 고안해낸 가이 선장은 시장을 열어 유럽인들에게 필요 없는 물건들을 팔아 당시 섬에 즐비하게 많았던 식용 해산물들과 교환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섬의 예비 정복자들이 떠올린 계획대로 순차적으로 흘러가는 듯 했지만 이내 곧 그들은 쌀랄인들이 세워 둔 함정에 걸려 죽을 위험이 농후한 눈사태 지역에 묻혀버렸다.

 

그렇게 결국 다시 한 번 핌과 피터스는 선원들 중 유일하게 생존한 인물들이 되었다. 굶주림에 견디지 못한 그들은 검은 화강암에 파인 균열을 따라 계속해서 움직여야만 했고 그들이 걷는 길은 점차 글자처럼 보이는 이상한 모양의 길을 그려냈다고 한다. 둘은 동굴의 한쪽 면에서 돌을 깎아서 만든, 무언가를 가리키는 듯이 보이는 사람 형상을 발견하기도 했다. 끝내 핌과 피터스는 쌀랄인 한 명과 함께 작은 카누를 타고 섬을 탈출했다. 그들이 미친듯이 노를 젓는 동안 그들의 선박은 점점 “더 남쪽으로” 이끌려 갔다. 그곳의 공기는 비교적 따뜻했으며 그곳의 바닷물은 우윳빛을 띄웠고 하늘을 가득 메운 하얀 새들은 “타켈릴-리!”라고 울어댔다. 해류가 상승하면서 그들의 배 위에는 하얀색 재들이 쏟아져내렸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두려움을 부르는 높이”를 뽐내는 웅장한 크기의 하얀 폭포수가 그들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늘의 어둠이 “점차적으로 깊어지고 많아졌으며, 커다란 폭포수에서 튀는 하얀 물을 제외하고는 전부 암흑 속에 갇혀있었다”는 게 너무도 명백한 나머지 두려움에 사로잡힌 쌀랄 섬의 원주민은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죽어버렸다고 한다.13 그들의 배가 폭포수를 향해 빠르게 움직이는 와중에 그들이 따르고 있던 균열의 문양이 크게 열리면서 그들을 그 안으로 삼키려고 했다고 적혀있는데, 그 직전까지 가는 골목에는 가려진 폭포수 뒤로 사람의 형상이 보였고, 그 인물의 크기는 사람의 평균적인 크기 보다 말도 안 될 정도로 훨씬 더 컸다고 한다. 또한 그 사람의 피부의 색은 눈처럼 완벽하게 하얀 색을 띄웠다고 한다. 여기, 바로 이 지점에서 -- 정말 갑자기, 그리고 정말 뜬금없게 -- 핌의 내레이션은 뚝 하고 끊긴다.

 

*쥘 베른(Jules Verne)의 에세이, “Edgard Poë et ses oeuvres(에드가 포, 그리고 그의 작품들)”에 삽입 된 프레드릭 릭스(Frederic Lix)의 그림. 이 그림에서는 핌이 말했던 하얀 새들과 커다란 사람 형상을 볼 수 있다. — 자료 출처.

 

마치 소설의 시작 부분처럼 소설의 마무리 또한 어딘가 믿기 힘든 구석이 있는, 핌이 미국으로 돌아가 사망하였고, 출판사는 “포 씨"에게 핌의 여정의 마지막 부분들에 살을 덧붙여 이야기를 마무리 짓기를 제안했지만 포가 한사코 거부했다는 “노트(Note)”와 함께 마무리를 짓는다.14

 

이 마지막 “노트"를 쓴 이는 - 이 사람은 “핌"도, “포"도 아니었다 - 잠시 쌀랄 섬의 사람들이 새겨놓은 무늬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기술했다. 이집트어, 아랍어, 그리고 에티오피아 글자들을 이용해서 파악한 바로는 그들이 각각 “그늘진", “하얀", 그리고 “남쪽의 종교"를 의미한다고 판단되었다. 그리고 “노트"는 어딘가 종교적이면서도 미심쩍은 문장과 함께 끝난다: “난 이것을 산속 어딘가에 새겨두었다. 그리고 내 피의 복수는 돌속 먼지 위에 새겨놓았다.”

 

*그림 1. “핌과 피터스가 돌아다닌 ‘균열'의 전반적인 모형을 보여준다"; 그림 2. 이 그림은 “균열 속, 높은 곳에 위치한 또 다른 공간, 방금껏 둘러보았던 공간을 마치 세로로 세워놓은 듯한 공간"을 보여준다; 그림 3. 이 그림은 세 번째 균열을 보여준다, “첫째, 둘째와 비슷하지만 방향에서 약간 다른 점을 보여준다"; 그림 4. 이 그림은 균열 속에 “새겨져 있던 문양들"이다: 제일 왼쪽 위에 위치한 그림은 핌이 “약간의 상상력을 가미한다면 마치 뻣뻣이 서있는 인간이 두 팔을 뻗어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기술해놓았다. 그림 5. 이 그림은 “깊이가 엄청난 두 삼각형 모양의 구멍"을 나타내며 세번째 균열에서 발견되었다고 적혀있다. — 자료 출처.

 

핌의 여행기를 담은 책의 끝부분은 -- 검은 화강암 균열 속에서 발견한 고대 문자들, 안개가 자욱한 구석에서 발견한 하얀색 사람 형상, 갑자기 끝나버린 이야기, 그리고 핌이 미국으로 귀환한 뒤 죽음을 맞이했다는 노트 까지 -- 명쾌한 답 보다는 애매모호한 질문들을 훨씬 더 많이 만들어냈다. 애초에 “남극 대륙에 실존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진 적이 없다”고 말하며 가이 선장에게 극남단으로 향하자고 제안한 건 바로 핌이었다.15 물론 핌은 그의 주장을 통해 시작 된 여정에서 벌어진 “잔인하고 참담한 사건들(열댓명의 원주민들과 제인 가이가 이끄는 선원들 전원의 죽음)"을 두고 안타까워 했지만 그는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엄청난 관심을 필요로 했던 비밀을 향해 과학의 눈을 돌리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흐뭇해 했다. 알 수 없는 수수께끼로 가득한 핌의 이야기는 값진 발견을 위한 여정과 그 여정을 위해 치러야만 하는 대가에 관한 이야기였다.

 

상태의 변화로 가득 찬 이야기

 

아직 형사 소설(detective fiction)이 존재하지 않았던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 여담이지만 핌의 모험담이 출간 후 삼 년이 지난 뒤, 포는 공식적으로 이 형사 소설이라는 장르를 만들어낸다 -- 핌이 남긴 기묘한 이야기들은 독자들에게 끝도 없는 퍼즐을 제공해주었다. 쌀랄 족의 균열 속에 발견된 문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는 책의 마지막 문단은 실로 다양한 해석들을 가능케 했다: “이와 같은 결론들은,” 그 문단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다양한 해석거리와 재밌는 생각들을 낳을 수 있는 공간을 충분히 제공해왔다.” 여기에서 화강암 균열과 같이 숨겨진 곳에 적혀있는 고대 글씨들을 미시적 관점으로 문헌학적 조사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부분만으로도 이 책은 필수적인 존재 가치를 입증해낸다.16

 

예를 들어서, 독자들은 책의 마지막에 “화이트 아웃” 현상의 원인을 찾아 생각에 빠질 수도 있다: 어쩌면 선원들은 심즈가 “구멍 난 지구”라고 예측했던 구멍으로 빠져버린 걸 수도 있다고 말이다. 어쩌면 “하얀색 형상"은 다가오던 범선이 흐릿해지면서 만들어낸 환각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그 범선이 책의 초반부에서 핌과 어거스터스를 살려준 펭귄 호일 수 있다는 해석 또한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17

 

*“길목에 흐릿하게 보이는 인간의 형상이 우리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핌의 이야기집의 1898년호에 담긴 A. D. 맥코믹(A. D. McCormick)의 그림 — 자료 출처.

 

아니면 사실 포는 독자들이 하얀색 형상을 보고 핌이 ‘신성한 진리'와 마주친 것이라고 생각하도록 의도한 것일수도 있다, 마치 요한묵시록(the book of Revelation)에서 “일곱 개의 금촛대”가 “하얀 양털로 된 머리”를 한 형상과 마주쳤을 때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또 다른 추론으로는 이야기가 사실 정치적 견해를 내비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자칫 극적인 흑백론에 빠진 비평가들은 “남쪽 지역”을 보고 노예가 있는 땅을 의미하는 거라고 보기도 하고 햄의 후손들에게 노아가 내린 신학적 저주라고 보는 이들도 있으며 어떤 이들은 쌀랄 원주민들의 무서운 폭동은 훗날 결과적으로 노예들이 같은 양상으로 불러 올 사태에 대한 경고문이라고 읽기도 했다.

 

책은 그 안에 담긴 내용이 해석의 여지가 다양하게 열린 점에 대해서 대놓고 말하기도 한다: “가장 단순한 정보를 두고도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쉽게 찬성 또는 반대를 하거나 어떠한 편견에 사로잡히는 일은 매우 어렵다.” 착시, 또는 환각과 비슷한 현상을 두고 포는 데이빗 브루스터(David Brewster)의 ‘기이한 자연 현상에 관하여(Letters on Natural Magic)’을 언급했다. 핌은 환영, 즉 황혼이 시각적으로 왜곡된 광경을 본 것이며, 여정이 끝나는 시점에 등장하는 “죽은 이의 유령”은 멀리 떨어진 표면에 비춰진 관찰자 스스로의 그림자였을 수도 있다. 핌의 이야기는 브루스터의 전반적인 메시지를 증명하며, 특히나 쉽게 속는 자들에게 시각적 속임수가 얼마나 강력하게 통하는지 강조했다. 핌은 스스로를, 그리고 자신의 앞에 있는 커다란 형상을 선박에서 반란을 일으킨 사람들의 “미신에 대한 두려움과 죄책감”이 담긴 시체와 동일시 하며 마치 거울을 보는 듯 하다고 말하며 “상당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모험담에서 핌이 처음으로 목격한 죽음은 한 선원이 귀신으로 추정되는 존재에게 당한 것이기도 했다.20 

*카밀 플라마리옹(Camille Flammarion)이 그린 죽은 이의 유령, 이 그림은 ‘L’atmosphère météorologie populaire (1888년)’에 실려있다. — 자료 출처.

 

책 속 화자의 생각이 계속해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독자는 자연스레 ‘신빙성 없는 화자(*unreliable narrator, 소설과 영화 등에서 이야기를 진행 수법의 하나)’이 이끄는 이야기를 읽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핌의 정신 상태가 계속해서 정상과 비정상 사이를 오가는 경우는 다양했다. 처음 올라탄 배의 밑에서 숨어있던 와중에 질식사 직전까지 간 핌은 기절한 상태로 꾼 꿈에서 노예들, 악마들, 사막을 목격했으며, 부서진 배에서 굶주림에 지쳐가던 때, 그는 “감각이 무뎌지는 현상”을 느끼며 “초록색 나무들, 논밭위에 가득히 서있는 시든 풀잎들이 몸을 흔드는 광경, 춤추는 여인들의 행진, 기사단의 행군, 그리고 그 외에도 많은 환상들”을 목격했다고 한다. 소설의 초반부터 핌은 작은 배, 에리얼(*템피스트(The Tempest)에 등장하는 마법사, 프로스페로의 친척의 이름) 호 위에서 이룬 첫 번째 모험에서 기면증 증상이 있는 패턴을 보여주고 또다시 환각을 보는 상태에서 의식적인 상태를 오가기를 반복한다.

 

이런 방식으로 독자들을 계속해서 환각과 현실 사이를 오가게끔 하면서 포는 취한 상태, 일그러진 희망, 굶주림, 등등의 물리적인 환경들이 어떻게 사람의 정신에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준다. 이런 식으로 강조한 심리적 요소들을 통해 애드가 앨런 포는 앤 래드클리프(Ann Radcliffe)와 호레스 월폴(Horace Walpople)의 고딕 형식에 추가적으로 보다 더 깊은 심리학적, 그리고 철학적 관점을 더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데 퀸시(De Quincey)의 ‘고백(Confessions)’에 담겨있듯, 핌의 이야기에서 또한 진리는 언제나 잡히지 않을 속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타겟이었다.21 “말 그대로,” 한 때 포는 이렇게 말했다, “추론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이야기의 모든 것이 전부 담겨져있고,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두려운 미궁 속에 담겨져 있다면 말이다.” 표면 위로 보이는 모든 것 안에는 사실 그와 정반대의 현실이 숨어있을 수도 있다, 그 현실의 이유가 의심 속에 갇힌 채 보이지 않겠지만 말이다. 이러한 시각적 효과들과 믿기 어려운 현상들은 핌과 독자들을 같은 선상에서 움직일 수 있도록 묶어주며 모두가 함께 망상과 계시들, 붕괴, 매장(burial)으로 가득한 꿈과 같은 경험을 겪게끔 도와준다.

 

거꾸로 쓰기

 

포는 언제나 그의 책 안에 활자들의 모양과 물리적인 배치, 즉 시각적 “구성”을 두고 상당한 관심을 쏟았다.22 그가 매번 미세한 단위로까지 정확한 손글씨체를 쓸 수 있었던 것 또한 그가 프린터와 타입세터를 항상 가까이에 두고 일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보는 이의 눈을 사로잡는 핌의 모험담의 표지 페이지의 레이아웃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 안에 담긴 의미를 해석해 주기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만 같이 보였다. 핌의 모험기의 불어 번역본은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1937년 그림 속 거울에 등장한다. 르네 마그리트는 이미지, 단어, 그리고 물체들 사이의 관계에 엄청난 집착을 했던 르네였기에, 그의 작품에 나온 포가 쓴 여행기 원본의 표지에서 이루는 대칭들은 보다 더 깊은 관찰을 필요로 한다고 볼 수 있다.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금지된 재현(La Reproduction interdite), 1937년작. — 자료 출처 (자유 이용 저작물이 아님)

 

표지에는 여덟 단어로 이루어진 제목, 그리고 그 밑에 제목보다 더 길고 작은 글씨로 적힌 부제가 적혀있다. 실눈을 뜨거나 고개를 약간 기울여서 본다면 표지에 적힌 제목이 그려낸 반원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반원은 그 밑에 있는 글자들이 만들어낸 또다른 반원과 함께 하나의 원을 그려낸다. 각각의 반원은 지구본의 두 반구를 그려내는 듯 하며: 위쪽은 대부분 하얀색을, 글자수가 많은 아래쪽은 대부분 검은색을 담아낸 것 처럼 보인다. 자연스럽게 보는 이의 눈은 아래쪽으로, “더 남쪽으로" 향하게 되며 출판사와 출판 날짜가 적힌 마지막 부분까지 닿게 된다. 이런 식으로 책을 보기도 전에 짤막하게 이루어지는 시각적 여행은 책의 첫 장에서 부터 이미 책 안에 이야기가 지구의 남쪽, 어쩌면 가장 근원이었던 지점으로 향하는 이야기를 그려낼 것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퍼 앤 브라더스(Harper & Brothers) 사에서 1838년에 처음으로 발매한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Arthur Gordon Pym)’의 표지 — 자료 출처.

 

자, 이제 다시 한 번 표지를 보아라. 네 줄 짜리 제목이 두 줄의 돛을 연상시키고 그 밑에 글자로 가득 메운 부제는 배의 몽통부분을 연상시키지 않는가? “EIGHTY-FOURTH PARALLEL OF SOUTHERN LATITUDE (남위 84도)”라고 적혀있는 줄에 밑의 그림에서처럼 평행선 하나를 그렸다고 상상해보자. 그러면 그 밑에 있는 단어들이 조금은 작아진 모양으로 위에 있는 텍스트 블록과 비슷한 모양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마치 저 멀리서 바다 위를 거닐고 있는 배를 보는 것 처럼 배와 돛과 그 밑, 수면 위에 반사된 배의 잔상 또한 볼 수 있다. 책에서 만나볼 수 있는 해상에서 이루어지는 여행에 적절한 그림인 동시에 그 안에 담겨진 반복, 균열, 그리고 환각들 또한 나타내는 것이다.23 

*하퍼 앤 브라더스(Harper & Brothers) 사에서 1838년에 처음으로 발매한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Arthur Gordon Pym)’의 표지 — 자료 출처.

 

대칭과 반전은 핌의 모험담의 깊은 곳에서 부터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24 포가 선험적으로 알고 있었듯이 당시 글을 출력하기 위해서는 타입세터에 글자들과 단어들을 컴포징 스틱(composing stick)으로 거꾸로 배치해야만 했다. 이 말은 즉슨 당시에 글을 쓰고 읽는 일이란 모두 거꾸로 행해졌다는 것인데, 이는 철자 하나라도 잘못 인식하거나 잘못된 곳에 배치할 위험이 너무도 컸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포는 ‘핌의 모험담'의 구조에 있어서도 이런 형식의 대칭과 반전을 설계했다. 안에 담긴 스물 다섯 개의 장(chapter)들은 깔끔하게 그 중간을 기준으로 두 파트로 나뉜다. 그리고 첫 열두 장에 담긴 사건들은 그 후에 나오는 열두 장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과 명백한 대칭을 이룬다. 13장의 중간에 위치한 문단 -- 그러니까 책의 중간 장의 정중앙에 위치한 문단 -- 을 보면 그램퍼스호가 적도를 지나면서 핌의 가장 친한 친구, 어거스터스가 죽음을 맞이하고 선박이 뒤집힌다. 바로 전장에서 벌어진 식인 행위는 -- 이 부분에서 비춰진 이미지들이 ‘마지막 만찬’의 기괴한 패러디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겠다 -- 바로 다음 장에서 메아리처럼 반복 된다. 크리스마스 항구(Christmas Harbor)에서 배가 출항하며 핌이 상징적으로 다시 살아난 듯한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적도 근처에서 그들이 아무 음식 없이 굶주리면서 돌아다니던 부분과 대칭을 이루는 부분에서는 그들이 섬들을 따라 산더미 같은 음식을 싣고 바다 위를 떠다닌다. 이와 같이, 그램퍼스 호 위에서 벌어진 반란은 쌀랄인들의 반란과 대칭을 이루고, 이야기 초반에 조그마한 애리얼 호에서의 항해가 실패한 부분은 마지막 부분에 카누를 타고 떠난 여정과 대칭을 이룬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 책은 ‘교차’(chiasmus, 예를 들면 “say what you mean and mean what you say(진심인 대로 말하고 말할 때 진심이어라)”25), 즉 한 부분에 담긴 내용이 그 부분과 대칭하는 부분에 반전된 채로 담겨져 있는 이미지를 의례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편집자가 끝에 넣은 “노트"에서는 “단어들을 떠올리게 할 만한 여정의 이미지들”인 쌀랄 섬의 균열에 새겨진 모양들의 뜻에 대한 해석이 어느 정도 담겨져 있다, 와중에 표지 장에는 “여정의 이미지들을 떠올리게 할 만한 단어들"이 있는 것 또한 결코 우연이 아니다.26 첫째 장들과 마지막 장들은 기능적으로 그 사이에 문자로써 담긴 여정을 완벽하게 감싸고 있는 것이다. 

 

책 속 불길한 대칭들은 유순한 현실 속 숨겨진 진실 몇 가지에 조명을 비추고 있다. 이야기 가장 초반에 핌은 그를 바다로 이끄는 비뚤어진 소원들과 “부서진 선박과 굶주림, 그 안에 포함된 야만인들의 죽음"의 환상을 말한다. 이와 평행을 이루는 마지막 장에서 핌은 마치 절벽 끝에 매달려 손을 놓아버리는 것을 상상하듯이 “이 환상들은 각자 그들만의 현실을 만들어냈고 상상마다 다른 유형의 공포를 몰고 나를 덮어버렸다"고 했다.27 이는 마치 이야기 후반부의 핌은 그의 머릿속에서 만들어 낸 환상들의 과장된 현실을 겪어내는 것 처럼 보이게 한다. 핌은 자신의 생각과 환상을 원래 크기보다 더 거대한 형태로, 그리고 거꾸로 뒤집힌 채로 직접 마주쳤으며 이는 마치 핌이 균열이 일어난 거울이나 만화경, 또는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라틴어로 '어두운 방'을 의미한다)나 마법 랜턴 속을 지나가는 것 처럼 보이게 한다.28

 

1642년 마리오 베티니(Mario Bettini)가 그린 ‘Apiaria Universae Philosophiae Mathematicae’ 안에 그려진 열두 개의 구멍이 있는 카메라 옵스큐라 — 자료 출처.

 

핌은 마치 태어나기를 신학자로 태어난 사람처럼 그가 겪은 경험들 뒤에 담겨있을 종교적인 설계와 의미들을 탐구했다. 예를 들어 그는 쌀랄 섬에서 “연속적으로 벌어진 명백한 기적들"을 두고 “자연의 계획"일 수 있다고 하며 그들이 마치 신성한 의도에 의해 꾸며진 일인 것처럼 해석할 여지를 던져준다. 그렇지만 눈에 훤히 그 의도나 의미가 뚜렷하게 보이는 계시는 없었다. 또한 중간에 있는 장에서 기진맥진하고 굶주린 상태로 난파선에서 구조되었을 때 핌은 “너무 뒤늦게, 그리고 너무나도 신의 의도대로 받은" 공포스러웠던 순간들을 되돌아본다.29 이와 비교해서 그가 당시 느끼고 있던 고통들은 “단순한 악재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그보다 더 고차원 적인 완전한 ‘선'이나 ‘악'의 문제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 어떤 존재, 그리고 그 존재를 파악하는 우리의 판단은 전부 그 존재와 비교하게 되는 다른 비교대상들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30 이런 주제 의식은 제인 가이가 이끄는 선의 선원들과 쌀랄 섬의 원주민들 사이에서 대칭적으로 나타난다. 핌을 포함한 “문명화 된" 선원들은 식인종으로 변한 와중에, 원주민들은 그들의 섬에 도착한 백인들과 얼마나 잔인한지, 또 얼마나 잘 속는지에 있어서 별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만약 책에서 정말 말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인종에 관한 우화였다고 해도 사회 전반적 양상에 꽤 크나큰 혹평을 쥐어주는 이야기로서의 기능을 해냈을 것이다.

 

핌의 이야기에 마지막 줄, “난 이것을 산속 어딘가에 새겨두었다. 그리고 내 피의 복수는 돌 속 먼지 위에 새겨놓았다”는 핌이 겪은 고난들이 신이 좋은 의도로 만들어낸 게 아니라 어떤 신성한 복수를 위해 만들어낸 현상들이라는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사실 돌아보면 어디에다가 글자를 새겨놓거나 먼지 위에 복수심을 새겨놓는 것과 같은 일은 언제나 인간이 끝도없이 겪는 고통의 근원적인 원인이었다. 어쩌면 창조자의 “복수"란 -- 그 창조자가 신일지, 아니면 에드거 앨런 포일지는 확실치 않지만 -- 모든 여정에 중요해 보이는 힌트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는 궁극적으로 따를만큼의 설계된 계획이 없다는 것일 수도 있다.

 

포가 그려낸 해상에서의 이야기는 굉장한 수준의 문학적 정확도를 이용해서 따로 답을 제시하지 않고 여러 질문들을 던졌다. 그 질문들의 의미는, 얼마나 많은 대칭점들이 즐비하냐를 떠나서 완전한 미스터리로서의 존재를 입증해냈다.31

 

19세기 후반에 출간한 G. H. 닉커슨 (본명: 조지 해서웨이, G. H. Nickerson - George Hathaway)의 입체 사진, “빙산, 롱 포인트", 그리고 그 안에 별다른 설명이 없는 형상들. 자료 출처.

 

 

*존 트렉(John Tresch)은 월버그 재단에서 미술, 과학, 그리고 전통 양식의 역사를 가르치는 교수이자 석좌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그가 출간한 책들로는 과학사 사회(History of Science Society)에서 2013년에 화이자 상(Pfizer Prize)를 받은 ‘로맨틱 머신: 나폴레옹의 죽음 이후 유토피아적 과학과 기술(The Romantic Machine: Utopian Science and Technology after Napoleon)’, ‘밤이 어두운 이유: 에드거 알랜 포와 함께 보는 미국의 과학(The Reason for the Darkness of the Night: Edgar Allan Poe and the Forging of American Science), 2021), 그리고 조만간 시카고 대학 출판사를 통해 출간될 ‘코스모그램즈: 세상에서 무언가를 하는 일이란(Cosmograms: How to Do Things with Worlds)’, 등이 있다. 

 

 

원문 출처: 자유 이용 저작물인 존 트렉(John Tresch)의 'Still Farther South'를 번역했습니다. 원문을 구할 수 있는 링크를 여기에 남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