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제2 장" (2)

2021. 10. 5. 22:18번역/문학 (소설)

위대한 개츠비

 

글쓴이ㆍF. 스콧 피츠제럴드
번역ㆍ오성진

 

(표지 사진 출처 / 본문 사진 출처)

 

 

Part 2

 

나는 하는 수 없다는 듯이 그들을 따라가기로 했다. 택시는 158번가에 길고 하얀 케이크 한 조각 처럼 생겨난 한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윌슨 여사는 마치 자신이 살던 동네로 오랜만에 돌아온 왕족처럼 주변을 한 번 훑어보더니 강아지는 한 쪽 팔에, 다른 쪽 팔에는 오늘 구매한 여러가지가 든 가방들이 들린 채로 위풍당당하게 건물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맥키 부부한테 올라오라고 해야겠어요,” 올라가는 엘레베이터 안에서 머틸이 말했다, “물론 그리고 제 여동생도 부를거예요.”

 

건물에 제일 윗층에 있는 그녀의 집에는 작은 거실, 작은 다이닝 룸, 작은 침실 하나, 그리고 작은 욕실 하나가 있었다. 거실에는 문 바로 앞까지 태피스트리 공예물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 크기가 너무도 커서 공예품 위에 수놓인 베르사유 정원에서 그네를 타고 있는 여인들을 밟지 않고서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벽에는 필요 이상으로 확대된 사진도 한 장 걸려있었는데, 사진에는 흐려서 잘 보이지도 않는 돌 위에 암탉이 앉아있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그렇지만 조금 거리를 더 두고 재차 들여다보니 그 암탉은 둘이 아니라 한 노년의 여성의 모자 안에 들어가고 있었다. 굉장히 단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늙은 여성은 창문을 통해 바깥을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그녀의 책상 위에는 “마을의 소문들(Town Tattle)”이 몇 권 정도, “베드로라 불린 시몬(Simon Called Peter)"이라는 책이 한 권, 그리고 브로드웨이의 뜬소문들을 담아둔 잡지 몇 권이 함께 쌓여있었다. 윌슨 여사는 강아지부터 걱정이 되었는지 딱봐도 일하기 싫어하게 생긴 엘리베이터 보이를 시켜 지푸라기로 가득 찬 박스 하나와 우유를 가져오게 했는데, 그 아이는 시키지도 않은 강아지용 비스킷을 우유에 담아주었고 그 비스킷은 오후 내내 무심하게시리 찻받침 위에서 천천히 녹아내렸다. 그 사이 톰은 잠겨있는 지하 창고에 들어가 위스키 한 병을 들고 나왔다.

 

나는 살면서 정확히 두 번 술에 취해봤는데, 두 번째가 바로 그 날 오후였기에 현시점에서 돌아보는 당시 기억 위에는 탁한 연기가 드리워있다, 여덟 시가 넘도록 그 집 안에는 밝은 햇빛으로 가득했지만 말이다. 윌슨 여사는 톰의 무릎에 앉아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집으로 불렀고, 담배가 다 떨어져있는 걸 발견한 나는 같은 블럭에 코너를 돌면 나오는 약국에 다녀왔다. 내가 다녀온 사이 거실에 있던 톰과 그의 불륜녀가 사라져있는 걸 확인한 나는 상황 파악을 하고 조용히 거실에 앉아 “베드로 라고 불린 시몬(Simon Called Peter)”의 한 장을 읽었는데, 책이 지독하게 재미가 없는건지 아니면 위스키 때문인건지, 알 방법은 없었지만 머릿속에 책 내용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톰과 머틀 - 첫 잔을 나누고 윌슨 여사와 나는 각자의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기로 했다 - 이 다시 등장했고, 이내 곧 초대받은 사람들 중 한 명이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다. 

 

머틀의 여동생, 캐서린은 날씬하고 마음이 착한 여자였다. 서른 정도 되어 보이는 그녀의 머리는 붉은 색이었고 그녀의 피부는 우윳빛깔의 하얀 색이었다. 그녀의 눈썹이 죄다 뽑힌 자리에는 각진 눈썹이 새로 그려져있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힘이 그녀의 옛눈썹 선을 다시 불러오면서 그녀 얼굴엔 애매한 인상이 감돌았다. 캐서린이 지나간 자리에는 그녀의 손목에 달려있는 팔찌들이 끊임없이 짤랑거리는 소리로 가득했다. 집주인처럼 허겁지겁 집안에 들어와 집 안의 가구들을 마치 자신의 것인 냥 살펴보는 모습을 보고 난 그녀가 이 곳에 사는 사람일 것이라는 착각도 했다. 하지만 내가 그녀에게 물어보니 그녀는 호탕하게 웃으며 내 질문을 한 번 똑같이 읊어보이고, 자신은 현재 동성의 친구와 함께 호텔에서 지내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밑층에서 올라 온 맥키 씨는 창백한 피부의 다소 여성스러운 남자였다. 광대뼈 부근에 하얀색 거품이 묻어있는 것을 보니 그가 방금 막 면도를 하고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방 안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을 미루어 보아 그가 정말로 예의 바른 사람이란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그는 내게 자신이 “예술 쪽"에서 일하고 있다는 말만 했지만 이내 곧 그가 사진을 찍고 있으며 머틀의 어머니가 등장한 저 벽에 걸린 사진을 찍은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의 아내는 날카로운 목소리와 늘어진 자세를 지녔으면서 잘생긴 동시에 한 편으로는 못나기도 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결혼 이후 여태껏 남편이 백 하고도 스물 일곱 번이나 자신의 사진을 찍어주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다는 듯 말해주었다. 

 

언제 또 의상을 갈아입은건지 머틀은 오후에 어울릴 만한 시폰 재질의 크림색 드레스를 입고 다시 등장했는데, 그녀가 움직일 때 마다 드레스가 방바닥 위를 쓸어내는 소리가 울렸다. 그녀의 남편이 운영하는 차고지에서부터 빛을 발하던 머틀의 생기 넘치는 기운은 순식간에 엄청난 자만심으로 변해있었다. 그녀의 웃음, 그녀의 몸짓, 그리고 그녀의 표현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난폭하게 변해갔으며 그녀의 기운이 거대해져가면서 그녀 주변의 공간은, 마치 그녀가 계속해서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는 연기 속을 헤매는 것 처럼 보일 때 까지, 계속해서 줄어들어만 갔다.

 

“자기야,” 그녀는 찢어질듯 높은 목소리로 자신의 여동생을 불렀다, “남자라는 놈들은 말이야, 만나봤자 전부 바람이나 펴댈거야. 저 사람들이 원하는 건 돈밖에 없거든. 지난주에 내 발 상태를 보게 했는데 여의사 한 명을 불렀는데 그 사람이 얼마를 요구했는지 알게 되면 무슨 내가 맹장 수술이라도 한 줄로 알걸.”

 

“그 여자 이름이 뭐였죠?” 맥키 여사가 질문했다.

 

“에버하르트 여사였어요.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사람들 발을 봐주는 걸로 유명하죠.”

 

“드레스가 맘에 드네요,” 맥키 여사가 말했다, “사랑스러워요.”

 

머틀은 오만하게 눈썹을 들어올리는 걸로 그녀의 칭찬에 반응했다.

 

“그냥 산지 한참 된 옷이에요,” 머틀이 말했다. “제가 어떻게 보이는지 신경도 안 쓰일 때나 가끔씩 입곤 하죠.”

 

“그런데도 정말 잘 어울리시는걸요, 정말로요,” 맥키 여사는 기어이 한 술 더 떴다. “지금 그 포즈로 우리 체스터가 사진을 찍는다면 근사한 사진이 나올게 분명해요.”

 

우리는 모두 눈앞을 가리던 앞머리를 넘기면서 환상적인 미소를 짓고 우리를 바라 본 머틀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맥키 씨는 머리를 끄덕이며 아내의 말에 동조하는 듯 자신의 얼굴 앞에다가 손을 가져다 대고 머틀을 바라보았다.

 

“조명을 좀 바꿔봐야 겠네요,” 잠시 있다 맥키 씨가 말했다. “모델로 쓰려면 몸매를 제대로 봐야겠어요. 머리를 뒤로 묶은 모습도 보고 싶구요.” 

 

“굳이 조명까지 바꿀 필요가 있나요,” 맥키 여사가 크게 말했다. “뭘 또 그렇게까지…”

 

그녀의 남편이 “쉿!”하고 아내의 말을 끊었고 우리는 다시 전부 피사체를 바라보았는데, 상황을 지켜보던 톰 뷰캐넌은 하품을 내뿜으며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맥키 씨, 당신 부부는 조금 취한 것 같군요,” 톰이 말했다. “머틀, 얼음이랑 물 좀 내와, 이러다 다들 뻗어버리겠어.”

 

“이미 엘리베이터 보이한테 얼음을 가져오라고 얘기해놨어요.” 머틀은 그녀에게 지시하는 듯한 톰의 말투에 단단히 기분이 상한 듯,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여간 남자들이란! 언제나 뒤치다꺼리를 해줘야 된다니까.”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별안간 의미 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강아지에게 달려가서 매우 신이 난 몸짓으로 강아지와 입을 맞추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아마 부엌에는 그녀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을 셰프들이 열 명 이상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싶어서 그랬을 것이다. 

 

“롱 아일랜드에서 꽤나 괜찮은 작업들을 한 적이 있죠,” 머틀의 목소리가 끊긴 공기를 뚫고 가장 먼저 말을 꺼낸 건 맥키 씨였다.

 

톰은 시큰둥하게 사진가를 바라보았다.

 

“그 중 두 개는 액자에 담아 이 아래, 저희 집에서 보관 중이죠.” 

 

“두 개의 뭐요?” 톰이 따졌다.

 

“연습용으로 찍어둔 작품들이죠. 하나는 ‘몬탁 포인트 - 갈매기’라고 이름지었고 다른 하나는 ‘몬탁 포인트 - 바다’라고 이름 지었어요.”

 

머틀의 여동생은 소파 위, 내 옆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당신도 롱 아일랜드에 사시나요?” 그녀가 질문을 던졌다.

 

“저는 웨스트 에그에 살고 있어요.”

 

“정말요? 그쪽에서 열린 파티에 지난 달 쯤에 참석한 적이 있어요. 개츠비라는 사람이 연 파티였죠. 그 남자를 아시나요?”

 

“그럼요, 바로 옆집에 사는 걸요.”

 

“그래요? 사람들 말로는 그 사람이 카이저 윌헴의 사촌이라고 하던데요, 그 사람한테서 그 많은 돈을 받고 있는거라고요.”

 

“정말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이 두려워요. 그 사람이 나를 향해 앙심을 지니고 있을까봐 걱정이거든요.”

 

하필이면 맥키 여사가 캐서린을 뜬금없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바람에 내 이웃에 관한 이 엄청난 정보는 그냥 묻혀버려야만 했다.

 

“체스터, 내가 봤을 땐 저 사람하고도 당신이 굉장한 작품을 하나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녀가 목청껏 말해봤지만 맥키 씨는 지겹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다시 톰에게 관심을 돌렸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롱 아일랜드에서 조금 더 작업을 해보고 싶은데 말이죠. 제가 원하는 건 단지 그 사람들이 제게 그 곳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만 주었으면 하는 거예요.”

 

“머틀에게 부탁해보지 그래요,” 톰이 이렇게 말했을 때, 실제로 머틀이 쟁반을 들고 방 안에 들어오자 그는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저 사람이라면 그 쪽 사람들 몇 명에게 소개시켜줄 수 있을거예요, 그렇지 않아, 머틀?”

 

“내가 뭘 한다고요?” 머틀은 화들짝 놀라며 답했다.

 

“당신 남편에게 맥키 씨를 소개해주는거야, 그 사람 사진 몇 장을 찍을 수 있게 말이지.” 이야기를 지어내는 중이던 톰의 입술은 조용히 움직였다. “있잖아 왜, ‘가솔린 펌프에 사는 조지 B. 윌슨’라는 제목같은 걸로 말야.”

 

“둘 다 자신이 결혼한 사람을 조금도 견디지 못해요" 캐서린이 내게 가까이 기대어 내 귓가에 속삭였다.

 

“그런가요?”

 

“정말이라니까요.” 그녀는 머틀을 한 번 바라보고는 톰을 바라봤다. “아니 제 말은, 왜 같이 살지도 못하는 사람들이랑 계속 살고 있냐는 거예요. 내가 만약 저 입장이었으면 바로 이혼하고 둘이 같이 살 수 있도록 해볼텐데 말이에요.”

 

“언니분께서 정말 윌슨 씨를 싫어하시나요?”

 

이 질문에 답은 기대하지 못한 방식으로 튀어나왔다. 답을 한 건 캐서린이 아니라 질문을 엿들은 머틀 본인이었는데, 그녀의 대답은 폭력적인 동시에 상당히 추잡스러웠다.

 

 

원문 출처: 자유 이용 저작물인 F.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의 'The Great Gatsby'을 번역했습니다. 원문을 구할 수 있는 링크를 여기에 남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