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제1 장" (완)

2021. 9. 26. 19:41번역/문학 (소설)

위대한 개츠비

 

글쓴이ㆍF. 스콧 피츠제럴드
번역ㆍ오성진

 

(표지 사진 출처 / 본문 사진 출처)

 

PART3

 

베이커 양과 나는 아무 의미도 담기지 않은 눈빛을 주고받았다. 난 말이라도 건네보려고 입을 열었지만 베이커 양은 곧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게 “쉿!”하고 경고 신호를 보냈다. 방안에서는 들릴듯 말듯한 대화소리가 흘러나왔고 베이커 양은 창피하지도 않은지 소리를 엿듣기 위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웅얼거리던 소리는 한자리에서 만나 고조되었고, 또 다시 낮아지다가도 확 커졌다가 일순간에 약속한듯이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내가 입을 열었다. “당신이 말했던 개츠비라는 사람, 실은 제 이웃이…” 

 

“이야기하지 마세요. 무슨 말이 오가고 있는지 듣고 싶단 말이예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나는 무고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정말로 몰라서 물어보시는 거예요?” 베이커 양이 진심으로 놀란 듯이 되물었다. “다 알고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정말 몰라요.”

 

“아, 왜 그…” 그녀가 힘겹게 말해주었다, “톰이 뉴욕에 무슨 여자랑 만났다나봐요.”

 

“여자?” 나는 텅 빈 목소리로 그녀가 한 말을 되풀이했다.

 

베이커 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여자가 저녁 먹는 시간에 톰한테 전화할 정도로 못배운 여자는 아니었으면 했는데… 안 그래요?”

 

그녀가 한 말의 뜻을 알아채기 전에 살랑거리는 드레스, 그리고 우직한 가죽 부츠 소리가 먼발치에서 들려왔고 톰과 데이지는 어느새 테이블에 다시 앉아있었다.

 

“꼭 둘이 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었어!” 데이지는 힘주어 짜낸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데이지는 자리에 앉았고 나와 베이커 양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말을 이어나갔다. “글쎄 잠깐 밖을 봤는데 풍경이 너무 예쁜거 있지. 큐나드(Cunard)나 화이트 스타(White Star) 배를 타고 건너온 나이팅게일처럼 예쁜 새가 정원에 앉아있었어. 꼬마새가 노래를 어찌나 잘하던지...” 그녀의 목소리는 노래하듯이 울려퍼졌다. “...참 로맨틱 하기도 하지, 그렇지 않아, 톰?”

 

“정말 로맨틱하네,” 톰은 그렇게 답하고는 비참한 눈빛으로 내게 “배가 다 차지 않았다면 저녁 다 먹고 마구간으로 같이 가자.”

 

한 번 더 집안에 전화가 우렁차게 울어댔고, 데이지가 톰을 향해 고개를 홱 돌리고나니 마구간은 물론이고 저녁 자리에서 언급되었던 모든 주제거리가 죄다 공중으로 사라져버렸다. 분위기가 참담하게 깨져버린 지난 오 분동안 별 이유도 없이 촛대에는 다시 불이 붙여졌고 나는 모두를 일일이 바라보는 것 처럼 움직이긴 하지만 실은 그 누구와도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데이지와 톰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지만 분명 본인만의 강력한 회의주의를 갖추고 있는 베이커 양이 오늘 밤의 다섯 번째 손님이 자아낸 경각심을 머리에서 떨쳐낼 수 있지는 못할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보는 이들에게는 이 장면이 흥미롭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내 본능적 직감으로는 당장에라도 경찰을 부르고 싶을 정도였다.

 

두말할 필요 없이 마구간에 있는 말들 이야기가 다시 나올 일도 없었다. 그들 뒷편 서재 속으로 사라지는 몇 피트 정도의 황혼을 배경으로 둔 톰과 베이커 양은 마치 탐나는 몸을 옆에 두고 밤새 기도를 하는 수도승의 기운을 뿜으며 마치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 처럼 연기를 하고 있었으며 난 귀가 먹은 사람처럼 데이지를 따라 베란다에서 현관까지 걸어갔다. 벨소리가 마침내 잦아들자 우리 모두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데이지는 마치 사랑스런 모양의 물건을 느끼듯이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두 눈은 서서히 자주색 황혼을 향해 움직였다. 난 이름 모를 감정이 그녀 안에서 요동치고 있단걸 직감했고 그녀가 평온해질 수 있도록 그녀의 딸에 관한 질문을 몇 개 던졌다.

 

“닉, 우린 서로에 대해 잘 몰라,” 그녀가 갑작스럽게 말했다. “우리가 육촌 사이인데도 말이야. 그 때 내 결혼식에도 오지 않았잖아.”

 

“그치만 난 전쟁에서 돌아오지도 않았었어.”

 

“그건 맞는 말이야.” 데이지가 뜸을 들였다. “쨌든, 나한테도 정말 힘든 시간이 있었어, 닉, 그리고 이제 거의 모든 일들에 회의적으로 생각하게 됐어.”

 

그녀가 이렇게 변한데까지, 너무도 명백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기다렸지만 그녀는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았고 난 다시 어설프게시리 그녀의 딸에 관한 대화를 이어가보려 노력했다.

 

“말도 하고… 잘 먹고… 그렇지, 뭐.”

 

“아,”  데이지의 텅 빈 두 눈은 나를 바라보았다. “닉, 들어봐. 그 애가 태어났을 때 내가 뭐라고 했는지 궁금하지 않아?” 

 

“너무 궁금해.”

 

“아마 이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왜 모든걸 안좋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을거야. 있지, 애가 태어난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았던 때였어, 톰은 어디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고. 마취제가 다했는지 잠에서 깨어났더니 통째로 버려진 기분이 몰려들었지만, 옆에 있던 간호사한테 바로 아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물어봤어. 간호사는 아이가 여자라고 말해주자마자 난 바로 고개를 돌리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어. ‘좋아,’ 내가 말했지, ‘여자애라서 기뻐. 그리고 저 여자애가 나중에 커서 바보로 자랐으면 좋겠어, 그게 이 세상에서 여자 아이가 될 수 있는 가장 좋은 거잖아, 예쁘고 소중한, 바보.”  

 

“있지, 난 이렇게 모든 걸 안좋게만 봐,” 데이지는 확신이 가득 찬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나 말고 모두들 그렇게 생각해, 제일 잘난 부류의 사람들은 말이야. 난 안 가본 곳도, 보지 못한 것도, 해보지 못한 것도 없기 때문에 조금만 배운 사람이라면 정말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 데이지의 눈빛은 거의 톰의 그것처럼 저항의 불꽃을 내뿜고 있었는데, 그녀는 신랄한 조소를 내질렀다. “지적인 여자, 맙소사, 나는 지적인 여자였어!”

 

그녀의 목소리가 갈라지던 찰나에 내 집중력과 신뢰감은 흐트러졌고 그녀의 말에서 가장 기본적인 단위의 진실성도 느끼지 못했다. 순간, 마음이 불편해지면서 어쩌면 오늘 밤이 통째로 내게서 그녀를 위한 특별한 감정을 만들어내기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속임수인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잠시 기다렸고 당연하게도 나를 바라보고 있는 데이지의 사랑스러운 얼굴 위에는 조소가 피어올랐다, 마치 그녀가 톰과 함께 속해있는 하나의 비밀 사회를 지키려는 듯한 웃음이.

 

집안에 진홍색 방에서는 빛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톰과 베이커 양은 각자 긴 소파의 끝자리를 지키고 앉았고 베이커 양은 톰에게 “토요 야간 신문(Saturday Evening Post)”을  읽어주고 있었는데, 그녀가 웅얼거리며 내뱉는 단어들은 편안한 톤으로 방 안을 떠돌고 있었다. 램프 조명은 밝은 빛으로 톰의 부츠를 비추고 있었고 가을 낙엽의 누런 색을 띠고 있는 베이커 양의 머리칼은 그다지 밝게 비춰 주지는 않는 대신 그녀의 얇은 팔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펄럭이는 종이를 순간순간 밝게 밝혀주었다.

 

우리가 방 안으로 들어왔을 때 베이커 양은 손을 뻗어 잠시동안 우리가 아무말도 하지 못하게 했다. 

 

“이야기는 다음 호에서," 그녀가 잡지를 테이블 위로 가볍게 던지며 말했다, “계속 됩니다.”

 

베이커 양의 무릎은 쉴새없이 움직이고 있었는데, 이내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열 시야,” 그녀가 천장에 시계를 보며 말했다. “잠에 들어야 할 시간.”

 

“조던은 내일 토너먼트 경기에 나가거든,” 데이지가 설명해주었다, “웨스트체스터 경기장에서.”

 

“아, 당신이 말로만 듣던 그 조던 베이커군요.”

 

이제서야 왜 그녀의 얼굴이 친숙하게 느껴졌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경멸감 섞인 미소가 담긴 표정을 짓고 찍은 사진을 애쉬빌(Asheville), 핫 스프링즈(Hot Springs), 그리고 팜 비치(Palm Beach)에서 본 적 있었다. 그녀에 관해서 상당히 심각할 정도로 안좋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지만 하도 오래 돼서 그 내용을 한참 전에 까먹어버렸다.

 

“잘 자,” 베이커 양이 부드럽게 말했다. “여덟 시에 깨워줘, 부탁할게.”

 

“한 번에 일어나기만 해준다면 그렇게 해줄게.”

 

“일어날거야. 잘 자요, 캐러웨이 씨. 또 보죠.”

 

“당연히 그래야지,” 데이지가 말했다. “난 둘의 결혼을 주선해주고 싶기까지 한걸. 닉, 앞으로 여기에 자주 와. 내가... 어… 둘을 이어줄게. 그런거 있잖아, 실수로 둘을 옷장에 가둬놓는다든지, 바다 위 보트에 둘만 남겨놓고 빠져나온다든지 하는거.”

 

“잘 자,” 베이커 양은 계단 위쪽에서 한 번 더 말했다. “방금 한 말 하나도 못 들었어.”

 

“괜찮은 여자야,” 잠시 후에 톰도 입을 열었다. “저런 여자를 이렇게 전국방방 돌아다니게 둬선 안 돼.”

 

“누가 그렇게 두면 안 된다는거야?” 데이지가 차갑게 물어봤다.

 

“그녀의 가족.”

 

“베이커한테는 천 살 정도 되는 고모 한 명 뿐이잖아. 이젠 닉이 그 고모를 돌봐주면 될테고, 그렇지 않아, 닉? 분명 쟤한테도 한 번 집에 가만히 있어 보는게 좋은 경험이 되어줄거야.”

 

데이지와 톰은 잠시 동안 소리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저 사람, 뉴욕 출신이야?” 내가 재빨리 물어봤다.

 

“루이스빌 출신이야. 우리 백인 여자들끼리 모인 건 거기서부터였어. 우리 예쁜 백…”

 

“닉이랑 베란다에서 깊은 얘기를 하는 모양이던데?” 톰이 갑작스레 말을 던졌다. 

 

“내가 그랬었나?” 데이지는 나를 바라보았다. “기억이 나질 않는걸, 북유럽 사람들 얘기를 했던 것 같기도 하고… 맞아, 그 얘기를 했던게 분명해. 갑자기 주제가 떠올랐는데, 어찌나 할 말이…”

 

“저 사람이 하는 말 전부 믿지 마, 닉,” 톰이 내게 조언했다.

 

난 별 중요한 얘기는 안 했다고 가볍게 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 가기 위해 일어났다. 톰과 데이지는 문까지 마중 나와 불이 밝게 켜진 곳에 옹기종기 서있었다. 내가 차에 시동을 걸자 데이지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는 듯이 “잠깐! 뭐 하나 물어보는 걸 까먹었어, 중요한 거야. 서부에 살고 있는 여자랑 약혼했다매?”라고 말했다.

 

“맞아,” 톰도 따뜻한 목소리로 증언했다. “약혼했다는 얘기가 나돌던데.”

 

“헛소문이야. 약혼하기 돈이 너무 부족한걸.”

 

“분명 들었는데,” 데이지가 다시 한 번 꽃처럼 활짝 핀 얼굴로 날 놀래키며 끈질기게 말했다, “세 명의 다른 사람들한테 들었으니 분명 사실일텐데.

 

당연히 나도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지만 그 소문은 사실과 너무 동떨어져있었다. 실제로 어디를 가도 이 잘못된 소문이 내 발목을 잡는 바람에 동부에 온 이유도 어느 정도 있었다. 뜬소문 때문에 오래된 친구와 절교할 필요는 없지만 동시에 뜬소문 때문에 원치 않는 결혼까지 해야 할 필요는 더더욱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보이는 관심은 내 마음을 조금 움직였기 때문에 그들이 지닌 ‘나와는 너무 동떨어진 삶을 사는 부자들’의 이미지가 조금 약해지긴 했지만,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헷갈리기도 하고 기분이 조금 나쁘기 까지 했다. 내가 봤을 때 데이지는 아이를 팔에 안고 집 밖으로 도망가야만 했다, 그런데 그녀의 머릿속에 그런 계획이 하나도 없다는게 너무도 명백했다. 톰이 “뉴욕에 어떤 여자"와 만나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책을 읽고 우울한 생각이 들었다는 것 보단 놀라운 소식이 아니었다. 톰은 분명 그의 단단한 육체에서 피어오르는 강력한 에고가 더이상 그의 마음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바람에 위험한 생각과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빛이 드리운 수영장 옆에 빨간색 가스펌프가 놓여져있는 것을 보니 이미 도로변에 있는 집들의 차고와 지붕엔 이미 여름의 깊은 날까지 찾아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웨스트 에그, 나의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내 차를 차고지 안에 두고 잠시 동안 정원 위에 서있는 버려진 잔디깎이 위에 앉아보았다. 바람은 이미 날개를 펄럭이며 나무 사이로 밝고 시끄러운 밤을 떠나버린지 오래였고 지구는 정원 주변에 있는 두꺼비들을 이용해 오르간을 신나게 연주하고 있었다. 움직이는 고양이의 실루엣이 달빛을 뚫고 지나간 후에 고개를 돌리니 난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십 피트 정도 떨어진 곳, 내 이웃 집에서 한 사람의 형상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별들을 바라보며 서있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여유로운 몸짓과 잔디 위에 편안히 서있는 모습을 보아 개츠비 씨 본인이 이 천국같은 동네에 자신이 소유하는 지분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기 위해 직접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난 소리 높여 그를 부르기로 결심했다. 베이커 양이 저녁 시간에 그의 이름을 언급했기 때문에 그걸로 인삿말 정도는 나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저기 서있는 남성은 분명히도 절실하게 혼자 있고 싶어한다는 인상을 받고 이내 그를 부르겠다는 생각을 접어야만 했다. 그는 어두운 물가를 향해 양팔을 신기한 방식으로 벌리고 있었고, 분명 거리가 있어 잘못 본 것일 수도 있지만, 공중에서 그의 두 팔은 떨리고 있었다. 의도치 않게 나도 바다를 향해 고개를 돌려보았지만, 항구 저쪽 끝에 있는 것이라고는  굉장히 먼 곳에서 반짝이는 초록색 불빛 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개츠비를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그는 이미 자리에서 사라지고 없었고, 그렇게 난 다시 이 불안한 어둠 속에 홀로 남겨지게 되었다.

 

원문 출처: 자유 이용 저작물인 F.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의 'The Great Gatsby'을 번역했습니다. 원문을 구할 수 있는 링크를 여기에 남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