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제2 장" (1)

2021. 10. 1. 18:46번역/문학 (소설)

위대한 개츠비

 

글쓴이ㆍF. 스콧 피츠제럴드
번역ㆍ오성진

 

(표지 사진 출처 / 본문 사진 출처)

 

제2 장

Part 1

 

웨스트 에그와 뉴욕에 중간쯤, 마치 차도가 버려진 땅을 피하려고 몸부림이라도 치는 것 마냥 사백 미터 남짓되는 거리 동안 철로에 들러붙는 구간이 있다. 이 곳은 바로 잿더미가 자라나는 협곡이다, 잿가루들은 곡식처럼 산등성이와 경사로 위에 자라나며 집과 굴뚝, 그 곳에서 흘러나오는 연기, 그리고 굉장한 노력 끝에 겨우겨우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변했다가도 바람에 날려 흩뿌려진다. 가끔씩 줄줄이 달리는 회색 차들이 보이지 않는 차도 위를 따라 기어다니다 소름끼치도록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멈춰 설 때가 있다. 그 후에는 차에서 회색빛 삽들을 들고있는 잿빛 사나이들이 튀어나와 도무지 안을 볼 수가 없을 정도의 구름을 만들어내고는 하는데, 그 먼짓빛 구름 안에서 그들이 무슨 일들을 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음산한 먼지가 끊임없이 떠도는 저 회색 땅 위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바로 저 T. J. 에클버그 의사의 두 눈이다. T. J. 에클버그 의사의 푸른 두 눈은 그 망막만 일 미터 가까이 될 정도로 거대하다. 광고판에 두 눈을 담고 있는 얼굴은 완전히 보이지 않는 대신, 흐릿하게 보이는 코 위에 커다란 노란색 안경이 두 눈을 가린 채 걸쳐져있다. 퀸즈에 거주하는 한 안과 의사가 자신의 병원을 홍보하기 위해서 걸어놓은 그림이 분명했는데, 그 의사가 이제는 당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떤 미지의 장소로 사라졌을지, 아니면 자신이 그려진 광고판을 까먹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을지, 도무지 알 방법이 없었다. 그 와중에 한 가지 확실한 건, 새로 페인트를 칠하지 않고 햇빛과 비를 맞아내며 서서히 벗겨진 그림 속 부릅 뜬 눈빛은 자신만의 생각에 잠긴 채 묵묵히 황량한 쓰레기장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이다.

 

잿가루가 날아다니는 협곡 한쪽엔 작고 냄새나는 강이 경계선을 그리며 서있고 배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도개교가 올라가고 나면 길이 이어질 때 까지 열차 안에서 기다리는 승객들은 족히 삼십 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우울한 광경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 지점에선 언제나 적어도 일 분 동안은 차를 멈춰세워야만 했는데, 바로 이걸 계기로 나는 톰 뷰캐넌의 불륜 상대를 만나게 되었다.

 

그에게 불륜 상대가 있었다는 사실은 톰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물어볼 필요도 없이 암묵적으로 알고 있던 정보였다. 톰의 주변인들은 그가 정부와 함께 사람이 많은 식당에 가고, 테이블에 그녀를 남겨두고 여유롭게 돌아다니며 그가 아는 사람이라면 아무나 붙잡고 이야기를 하는 꼴을 보기를 싫어했다. 나야 물론 그녀가 어떻게 생긴 인물인지, 그 생김새가 보고야 싶었지만 만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결국 그녀를 만나게 되고야 만 것이었다. 어느 날 오후 난 톰과 함께 뉴욕으로 향하는 열차에 올라탔고 잿더미가 쌓인 그 곳에서 열차가 멈춰서자 벌떡 일어난 톰은 있는 힘껏 내 어깨를 쥐고 나를 열차 칸 밖으로 끌고 나갔다.

 

“내리자!” 톰은 끈질겼다. “너가 그 사람을 만났으면 해.”

 

오찬을 즐기면서 꽤나 많은 힘을 보충했던 모양이었던 톰의 마음 속, 나와 함께 그녀를 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튀어나온 것만 같았다. 그의 행동 저변에 나같은 인간에게는 일요일 오후에 할 일이 딱히 없을 것이라는 무례한 전제가 깔려있었다.

 

난 흰색 페인트로 칠해진 낮은 울타리를 톰을 따라 넘어갔고 우리는 에클버그 의사의 집요한 시선에 노출된 채로 기차로 왔던 길을 백 미터 정도 돌아갔다. 거기에서 유일하게 보이는 건물이라곤 쓰레기장 끝쪽에 서있는, 노란색 벽돌로 이루어진 건물 하나였고 그 앞에 대로라고 부를만한 폭의 거리가 있긴 했지만 그 길은 그 무엇과도 연결되어있지 않았다. 딸랑 있던 세 개의 상점 중에 하나는 세를 내놓은 채 비어있었고, 하나는 잿먼지만 우글거리는 식당이었고, 마지막 하나는 차고지였다. 위에 ‘수리. 조지 B. 윌슨. 차를 사고 팝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는 그 차고지 안으로 난 톰을 따라 들어갔다.

 

차고지 내부는 별 특별한 것 없이 조촐했는데, 유일하게 보이는 차라고는 잘 보이지도 않는 어두운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 씌운 채 불쌍하게 찌그러져있는 포드 한 대였다. 차고지 창문에 설치된 블라인드 때문에 어둠이 온통 깔린 내부에는 어딘가 호화스럽고 로맨틱한 공간이 가려져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쯤, 차고지의 주인이 사무실 문을 열고 나와 더러운 천쪼가리에 자신의 손을 닦아내고 있었다. 주인은 금발의 힘없는 남자였는데, 그에겐 빈혈기가 있어 보였고 생김새는 약간이나마 잘생겨보였다. 우리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 안에는 옅고 축축한 퍼런색의 희망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윌슨 씨,” 톰은 말하면서 기분이 좋다는 듯이 남자의 어깨를 툭툭 쳤다. “장사는 잘 되나요?” 

 

“그냥 그렇죠,” 윌슨이 믿음직하지 못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나저나 그 차는 언제쯤 파실거예요?”

 

“다음 주 쯤에요, 안 그래도 지금 제 사람 중 한 명이 알아보고 있어요.” 

 

“일처리가 상당히 느린 친군가 보네요?”

 

“그럴리가,” 톰이 차갑게 말했다. “만약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시는거면 다른 사람한테 팔아야 겠네요.” 

 

“어허, 이 사람,” 윌슨이 재빨리 굽었다. “글쎄, 제 말은 그게 아니라…”

 

조급한 몸짓으로 차고지 안을 둘러보던 톰을 보며 윌슨 씨의 목소리는 서서히 죽어나갔다. 그제서야 나는 육감적인 몸매의 여성이 계단 위쪽 사무실에서 새어나오는 빛을 가리고 서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삼십대 중반으로 보이던 그녀는 조금 살집이 있었지만, 여느 축복 받은 여성들 몇몇이 그렇듯이, 그녀의 여분의 살들은 모두 육감적인 몸매를 모두 필요한 곳에 흘러들어간 모양이었다. 어두운 청색 점박이가 그려진 엷은 비단 드레스 위에 그녀의 얼굴에 날카로운 각이나 미적인 빛깔이 두드러지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몸은 마치 끊임없이 타오르고 있는 것 마냥 멀리서도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생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의 남편이 마치 유령인 것 마냥 스쳐 지나고는, 톰을 음흉하게 바라보며 악수를 나눴다. 그리고 입술을 적시던 그녀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남편에게 부드럽고 음탕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의자 좀 내오지 그래요, 손님들이 앉을 데가 없잖아요.”

 

“아, 그렇지,” 그녀의 말에 동의하던 윌슨은 헐레벌떡 작은 사무실로 들어갔는데, 그 사무실의 시멘트 벽 위의 색깔은 마치 원래 그를 위한 색깔인냥 그에게 달려들었다. 하얀색 잿먼지로 덮인 그의 어두운 양복과 그의 약해빠진 머릿칼은 주변의 모든 빛을 뺏어버렸지만, 차마 톰에게 더 가까이 다가간 그의 아내에게 비춰진 조명까지 앗아가지는 못했다.

 

“보고 싶어,” 톰은 자연스럽게 준비해온 말을 뱉었다. “다음 열차에 올라 타.”

 

“좋아요.”

 

“아래층에 신문 가판대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조지 윌슨이 사무실에서 의자 두 개를 꺼내 들고오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톰에게서 떨어졌다. 

 

우리는 그녀가 거리로 내려와 시야에서 사라질 때 까지 걷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독립기념일을 며칠 앞둔 날이었는데 회색 숯검댕이를 묻힌 꼬마 이탈리아 아이가 철길을 따라 어뢰들을 나열해놓는 모습도 보였다.

 

“참 뭣같은 곳이야, 안 그래?” 에클버그 의사와 찡그린 인상을 주고 받던 톰이 말했다. 

 

“맞아.”

 

“저 여자, 남편한테서 도망치는 편이 좋을거야.”

 

“과연 그녀의 남편도 그렇게 느낄까?”

 

“윌슨? 그 사람은 자기 아내가 어디에 가는 줄도 몰라. 뉴욕에 여동생을 보러 간줄로만 알고 있을걸? 워낙에 멍청해서 자기가 살아있는 줄도 모르는 사람이야.”

 

그렇게 톰과 그의 상간녀, 그리고 나는 함께 뉴욕으로 향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윌슨 여사는 다른 칸에 몸을 싣고 움직였기 때문에 “함께”는 아니었지만. 아무리 톰이라도 열차 안에 있을 이스트 에그 사람들을 두고 그 정도 눈치는 볼 줄 아는 모양이었다.

 

여인은 입고 있던 드레스를 갈색의 무슬린 천으로 짜여진 옷으로 갈아입었는데, 그래서인지 톰이 그녀의 손을 잡고 뉴욕시의 열차 승강장 위로 인도했을 때 그녀의 커다란 엉덩이가 그려낸 곡선이 훤하게 보였다. 신문 가판대에서 그녀는 “마을의 소문들(Town Tattle)”, 그리고 영화 관련 잡지를 각각 한 장씩 구매했고 역내에 있는 약국에선 콜드크림 하나와 작은 향수병 하나를 샀다. 시내로 올라가 택시를 기다리면서 그녀는 택시 네 대나 흘려보내고는 누가 봐도 새로 뽑은 것만 같은 라벤더 색상에 회색 시트가 구비된 택시가 오자 그제서야 차를 멈춰 세웠고, 우리는 그렇게 겨우 쨍하게 내려쬐는 햇빛을 쬐고있는 군중을 뚫고 역 주변 지역에서 멀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창문을 내려다보던 상간녀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재빨리 앞쪽으로 몸을 기울여 앞면 유리를 두드렸다.

 

“저기 있는 강아지, 한 마리 키우고 싶어,” 여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파트 살 때, 한 마리 정도 같이 있으면 좋을 것 같지 않아? 아파트에서는 키우기 좋잖아, 강아지.”

 

우리는 택시를 뒤로 돌려 놀라울 정도로 존 D. 록펠러와 닮은 회색의 늙은이에게 다가갔다. 그의 목에 걸린 바구니 안에는 열마리는 족히 넘는 수의 갓태어난 잡종 강아지들이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얘네 종이 뭐예요?” 윌슨 여사는 택시 창문을 내리고 들뜬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모든 종류가 다 있죠. 아가씨는 무슨 종을 원하시나요?”

 

“그 경찰견 같은 아이로 한 마리 가지고 싶은데… 그런 개는 여기 없겠죠?”

 

남자는 확신이 없는 눈빛으로 바구니 안을 들여다보다가 손을 넣고 한 마리의 목덜미를 잡아다가 들어올렸다. 

 

“그건 경찰견이 아니잖소,” 톰이 말했다.

 

“뭐… 완전히 그렇다고 볼 수는 없겠죠,” 남자의 목소리에는 위축되었다. “에어데일 쪽에 더 가깝습니다.” 남자는 강아지의 갈색 등을 어루만졌다. “이 털을 좀 보십쇼. 괜찮지 않나요? 이런 개야말로 겨울에 감기 걱정 없이 키울 수 있는 개죠.”

 

“귀엽네요,” 윌슨 여사는 매우 신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얼마예요?”

 

“이 놈 말입니까?” 개장수의 눈빛은 반짝였다. “이 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십 달러 되겠습니다.”

 

에어데일은 - 분명 에어데일 같이 생기긴 했지만 강아지의 발은 희한할 정도로 하얬다 - 자세를 고쳐가며 윌슨 여사의 무릎 위에 올라 앉았고 여사는 희열에 달아오른 얼굴로 감기에 걸릴 걱정 없는 강아지의 털을 맘껏 쓰다듬었다.

 

“얘, 남자애예요, 여자애예요?” 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그 놈이요? 숫놈이요.”

 

“그냥 개새끼지 뭐,” 톰은 단언하듯이 말했다. “여기 십달러요, 이걸로 가서 개 열마리는 더 구해보시오.”

 

우리는 차를 타고 5번가로 향했는데, 그날따라 일요일 여름의 오후는 너무도 따뜻하고 부드러웠어서 저 편에 골목 귀퉁이를 돌아 양떼들이 튀어나와도 그다지 놀라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음,” 내가 입을 열었다, “나는 이제 슬슬 가봐야 겠는걸.”

 

“그럴리가,” 톰은 재빨리 내 말을 잘랐다. “집에 같이 가자, 안 그러면 머틀도 섭섭해할거야. 안 그래, 머틀?”

 

“같이 가요,” 그녀가 말했다. “제 여동생 캐서린에게도 전화를 걸어볼게요. 주변에 알만한 사람들도 다 여동생을 보고 아름답다고 했어요.”

 

“글쎄, 그러고는 싶지만, 그게…” 

 

원문 출처: 자유 이용 저작물인 F.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의 'The Great Gatsby'을 번역했습니다. 원문을 구할 수 있는 링크를 여기에 남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