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9: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제1 장" (2)

2021. 9. 25. 21:23번역/문학 (소설)

위대한 개츠비

 

글쓴이ㆍF. 스콧 피츠제럴드
번역ㆍ오성진

 

(표지 사진 출처 / 본문 사진 출처)

 

PART 2

 

톰의 목소리는 그의 외관이 뿜어내는 아우라와 어긋나는 일 없이 낮고 거칠었다. 톰의 내뱉는 말들에는 어딘가 가부장적인 증오심 비스무리한 감정이 담겨있었는데, 그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런 느낌이 전달되었고 대학교 시절엔 바로 그 점 때문에 그를 싫어하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자자, 내가 말한대로만 진행될거라고 지레 겁먹을 필요 없다고,”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내가 너보다 더 강하고, 더 남성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말이야.” 우리는 학생회 생활을 같이 한 적이 있었는데, 비록 톰과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지만 난 언제나 그가 나를 인정해주고 나로 하여금 톰만의 거칠고 고집스러운 열정이 섞인 마음으로 자신을 똑같이 바라봐줬으면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는 햇빛 가득 내리쬐는 현관에서 몇 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여기에 구한 집이 꽤 괜찮아,” 그가 말했다, 그의 두 눈은 쉼없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톰은 한 팔로 내 몸을 반대쪽으로 돌리면서 다른 손으로 집 앞 풍경을 가리켰다. 그의 손이 가리키고 있는 자리엔 반 에이커 만큼의 향이 강한 장미들과 이탈리아 정원 그리고 코가 무너진 모터 보트가 파도를 맞받아치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석유 관련 일을 하던 드메인이란 남자의 것이었지.” 그는 친절하지만 너무 갑작스럽게 팔에 힘을 주고 내 몸을 원위치로 되돌려놓았다. “자, 이제 들어가볼까.”

 

우리는 천장이 높은 복도를 지나 앞뒤 끝에 달린 프랑스산 창문으로 아슬아슬하게 집안에 위치한 밝은 장밋빛 공간에 도달했다. 양쪽에 위치한 창문은 살짝 열려있었는데 그 열린 틈 사이로 보이는 잔디는 조금만 있으면 집안으로 들이닥칠 것만 같았다. 방 안에 약한 바람이 불면서 한쪽으로는 커튼을 안 쪽으로 들여오면서 반대편으로는 커튼이 창백한 깃발처럼 펄럭이게 만들었는데, 커튼이 그렇게 올라갔다가 와인색 러그 위로 잔잔하게 떨어지면서 그림자를 짓는 광경이 마치 바다 위에 바람이 불었을 때의 그것과 같았다. 

 

방 안에서 유일하게 움직이지 않는 물체는 거대한 소파였는데, 그 위에 앉아있는 두 여인은 바닥에 묶인 풍선마냥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둘 다 하얀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둘의 드레스는 마치 집 주변에 비행기라도 착륙하고 있는 것 마냥 펄럭이고 있었다. 난 아마도 얼마간 가만히 서서 커튼이 펄럭이면서 만들어내는 채찍같은 소리와 벽에 걸린 그림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쿵! 하고 뷰캐넌이 뒤쪽 창문을 닫아버리자 방 안에서 활개치던 바람이 죽어나가면서 커튼, 러그, 그리고 두 여인 모두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둘 중 더 어린 쪽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소파 한 쪽 끝에 아무런 움직임 없이 앉아있었는데, 그녀의 턱은 마치 쉽게 떨어질만한 물체를 지탱하고 있기라도 한 것 처럼 이상한 각도로 들려있었다. 그녀가 옆눈으로 나를 힐끗 봤다고 한들 나로선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데다가 오히려 너무도 놀란 나는 내가 방으로 들어온 바람에 그녀를 방해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사과를 내뱉을 뻔했다.

 

반대쪽에 앉아있던 데이지는 일어나기 위해 몸을 앞으로 살짝 숙이다가 멈춰서더니, 이상하고도 매력적인 웃음을 내비쳤다. 나는 그녀의 웃음을 신호로 여기고 같이 웃으면서 방 안 깊숙이 걸어들어갔다.

 

“여기까지 와주다니 너무 좋아서 몸이 얼어붙었네.”

 

그녀는 마치 자신이 매우 위트있는 말이라도 한 냥 한 번 더 웃고는 내 손을 잠시 잡고 내 얼굴을 올려다보며 세상에 나만큼 보고 싶었던 사람이 없었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녀에게는 그런 능력이 있었다. 데이지는 옆에 눕듯이 앉아있는 여인의 성이 베이커라고 속삭이듯이 일러주었다. (언젠가 데이지의 속삭이는 습관은 사람들이 몸을 그녀 가까이 기울이도록 만들기 위함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런 악담에도 그녀의 속삭임이 지닌 매력은 좀체 줄어들지 않았다.)

 

베이커 양의 입술이 흔들릴 때마다 그녀는 티가 날듯 말듯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보이고는 그녀의 턱 위에 놓인 가상의 물체가 떨어지기를 두려워하는 것 처럼 황급히 머리를 다시 치켜세웠다. 다시 한 번 사과가 담긴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어떤 유형으로든 인간이 완전히 스스로 만족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넋이 나간 채로 경의를 표하는 것은 나의 고유한 습관 중 하나였다.

 

나는 그녀만의 낮고 들뜬 목소리로 여러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는 내 육촌 동생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한 번 듣고나면 다시는 들을 수 없을 것만 같이 음절음절마다 열심히 듣게 되는 특징이 있었다. 슬픔과 사랑스러움이 묻어나는 그녀의 얼굴에는 밝은 것들이 들어있었다. 밝은 두 눈과 밝게 불타오르고 있는 입은 둘째 치고, 데이지의 목소리에는 그녀를 좋아하는 남자들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요소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안달이 난 듯한 그녀의 “있잖아,”라는 속삭임, 그 속삭이는 목소리 안에 최근에 그녀가 굉장히 신나고 즐거운 일들을 해냈으며 앞으로 흘러갈 몇 시간 내에도 비슷한 정도로 즐겁고 신나는 일들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찬 듯한 공기 또한 흐르고 있었다.

 

나는 동부로 건너오는 길에 하룻동안 머무른 시카고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안부를 물어봤는지 말해주었다.

 

“나를 보고 싶어해?” 그녀는 흥분 섞인 신음을 짧게 내뱉었다. 

 

“너가 없다고 온마을이 죽상이던데. 모든 차의 왼쪽 뒷바퀴가 사라진 너의 자리를 기리기 위해 검은색으로 칠해져있었고 북쪽 해안을 따라 매일 밤 울음소리가 울리는 모양인가봐.” 

 

“세상에! 톰, 거기로 돌아가자. 내일 당장!” 데이지는 그렇게 말하고서 뜬금없게도 “너가 우리 애를 꼭 봐야되는데,"라고 덧붙였다.

 

“좋지.”

 

“지금은 자고 있어. 두 살이야. 한 번도 본 적이 없던가?”

 

“한 번도.”

 

“그렇다면 오늘 정말 잘 왔네. 딸애가…”

 

방 안을 쉴새없이 빙빙 돌아다니던 톰이 멈춰 서서 내 어깨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닉, 요새는 무슨 일을 하고 있지?”

 

“주식하고 채권 관련 일을 하고 있어.”

 

“어디서?”

 

그에게 회사 이름을 말해주었다.

 

“그런 이름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걸,” 톰은 확신에 가득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꽤나 거슬렸다.

 

“앞으로 듣게 될거야,” 난 짧게 되받아쳤다. “동부에 정말 계속 남아있을 계획이면 말이야.”

 

“오, 동부에는 계속 남아있을거야, 걱정하지 마,” 톰은 이렇게 말하면서 마치 내가 모르는 중요한 일이라도 있는 것 처럼 데이지를 한 번 보고, 그리고 내게 시선을 돌렸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여기 말고 다른 곳으로 떠날 일은 없겠지.” 

 

바로 이 때 베이커 양이 “그래야지!” 하고 외쳤는데, 너무도 갑작스럽게 말하는 바람에 나는 흠칫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방에 들어온 이후로 그녀가 처음 내뱉은 말이었다. 베이커 양이 별일 없다는 척 일어나 빠르게 하품을 여러 차례 하는 모습을 보니 그녀도 내가 놀라는 모습에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

 

“몸이 완전 찌뿌둥해,” 그녀가 불평했다, “저 소파에 얼마나 오랫동안 누워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

 

“나를 왜 봐,” 데이지가 쏘아붙이듯이 말했다. “내가 오후 내내 뉴욕에 같이 가자고 말했잖아.” 

 

“난 안 마시겠어,” 베이커 양은 집사가 가져다 준 네 잔의 칵테일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은 완전히 절제해야 돼서.”

 

톰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렇단 말이지!” 톰은 마치 잔의 바닥에 남은 몇 방울을 마시는 것처럼 술을 한 모금에 해치웠다. “뭐, 당신이 뭘 어떻게 하든 내 알 바는 아니지.”

 

난 베이커 양을 바라보며 그녀가 “뭘 어떻게 했단"건지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그녀를 바라보는 일은 꽤나 큰 즐거움이 따르는 일이었다. 날씬한 몸매의 베이커 양은 가슴이 작았고 특히나 여느 집안의 막내가 하듯이 어깨를 펴고 등을 뒤로 젖힌 모습에서도 눈에 띄게 올곧은 그녀의 체형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오랜 시간 동안 햇빛을 본 적이 없는 듯한 그녀의 두 회색 눈은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는데, 어딘가 불만족스러워 하는 듯한 그녀의 매력적인 얼굴엔 친절하게도 내가 지니고 있던 정도의 호기심이 담겨있었다. 그제서야 언젠가 그녀를, 아니면 그녀의 얼굴이 그려진 그림이라도 본 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웨스트 에그에 살고 계신다고 했나요,” 베이커 양은 약간 경멸하는 듯한 투로 되짚었다. “거기에 사는 사람 한 명을 아는데.” 

 

“저는 아직 한 명도 모르…”

 

“그래도 개츠비는 아실텐데요.”

 

“개츠비?” 데이지가 따지듯이 물었다. “개츠비가 누구야?”

 

개츠비와 내가 바로 내 옆에 사는 이웃사이라고 말을 뱉기도 직전에 저녁 식사 준비가 다 됐다는 이야기가 먼저 들렸다. 톰은 그의 강한 팔을 내 팔 밑으로 찔러넣고선 마치 체커 말을 다른 칸으로 옮기듯이 끌고 갔다.

 

두 여인은 엉덩이 위에 손을 올린 채 가볍고 느린 동작으로 우리를 앞질러 노을이 드리운 장미색 문을 열었고 다이닝 룸에는 잠잠해진 바람과 싸우고 있는 네 개의 촛불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있었다.

 

“왠 초?” 불만스럽게 얼굴을 찌푸리며 데이지가 말했다. 그녀는 손가락을 튕겨 테이블 위 모든 촛불을 꺼버렸다. “2주만 지나면 올해 가장 길고 긴 하루가 시작될 참이야.” 데이지는 빛이 뿜어나오는 두 눈으로 우리들을 바라보았다. “매번 일 년에 한 번 올까말까한 날을 기다리기만 하다가 막상 그 날이 오면 아무 것도 못하고 날을 보내본 적이 있어? 난 매년, 일 년에 한 번 오는 날을 기다리기만 하고 정작 그 날이 오면 아무 것도 못해.”

 

“계획을 짜야겠지,” 베이커 양이 하품을 하며 말했는데, 그녀는 마치 잠자리에 들려는 사람처럼 자리에 앉았다. 

 

“좋아,” 데이지가 말했다. “뭘 계획하면 될까?” 그녀는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계획해?”

 

내가 답을 할 수 있기도 전에 데이지는 놀란 듯이 그녀의 손가락을 바라보며 감탄사를 뱉었다.

 

“이것 봐!” 그녀가 불평하는 투로 말했다. “여기 다쳤어.”

 

모두 데이지의 손가락을 바라봤다, 확실히 그녀의 너클 부분에 검푸른 색이 눈에 띄었다.

 

“이건 당신이 한거야, 톰,” 그녀가 따지듯이 말했다. “일부러 한게 아니란 건 알지만 그래도 당신이 한 건 당신이 한 거야. 몸좋은 남자랑 결혼해서 얻는거라곤 이런 것 뿐이지, 언제든 터지기 일보 직전인 거대한 몸뚱…”

 

“그 ‘터지기 일보 직전’이란 표현, 내가 싫어하는거 잘 알잖아,” 톰은 데이지의 말을 끊고 말했다, “아무리 장난이라고 해도 말야.”

 

“터지기 일보 직전 맞잖아,” 데이지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가끔 데이지와 베이커 양이 서로의 말이 맞물리도록 이야기를 하고는 했는데, 몇 번 말이 겹치고 나서는 서로의 말을 막으려는 기색도 없이 각자 하고 싶은 말을 계속해서 줄줄이 말했고 그렇게 말하는 둘의 모습은 그들의 하얀 드레스처럼, 그리고 모든 유형의 탐욕에서 벗어난 듯한 그들의 눈빛처럼 멋있었다. 그들은 여기 이 자리에 있었고, 톰과 나를 받아주고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또는 우리를 통해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해주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들은 이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가 끝이 날 것이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는 이 밤도 결국 아무렇지도 않게 막을 내릴 것을 아주 잘 인지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이건 시간이 줄어들수록 하나의 일을 하다가도 재빨리 다른 일을 하는 와중에도 매번 기대를 저버리는 현실에, 또는 현실 그 자체에 실망하곤 하는 서부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데이지, 너와 있다보면 내가 문명화가 덜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난 꽤나 근사한 클라렛을 두 잔째 마시며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내가 뱉는 말은 농작물이나 밭일 같은 이야기나 다를 바가 없을 것 같다고.”

 

분명 별뜻없이 내뱉은 말이었지만 톰은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다.

 

“문명이란건 이미 붕괴되고 있어,” 톰이 공격적으로 적막을 깨며 말했다. “요즘따라 모든 일들을 상당히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어. 고다드(Robert Goddard)라는 작가의 ‘유색인종의 저항(The Rise of the Coloured Empires)’라는 책을 읽어본 적 있어?”

 

“어? 아...아니," 그의 격앙된 톤에 놀란 내가 얼버무리며 답했다

 

“꽤 괜찮은 책이야, 모두 한 번씩 읽어봤음 해. 책이 말하는 바는 간단하게, 우리가 잘 관리하지 않는다면 백인종은… 완전히 뭉게질 거라는 거야. 과학적으로 쓰인 글이니까 분명 검증도 된 이야기일테고."

 

“톰은 툭하면 진지해지려고 해,” 데이지가 슬픔에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저이는 복잡한 단어들이 나오는 어려운 책들을 읽곤 해. 저번에도 무슨 단어를 얘기했었는데 그게 뭐였…”

 

“그건 모르겠고, 내가 읽는 책들은 전부 과학적으로 쓰였어,” 참을성 없는 톰은 데이지를 바라보며 자기가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이 작가 양반이 다 설명해놨다니까. 우리가 여기서 힘쓰지 않으면 다른 인종들이 우리의 자리를 꿰차는 데까지는 시간 문제라고.” 

 

“몽땅 다 잡아다가 패버려야 돼,” 데이지가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을 향해 윙크를 하며 속삭였다.

 

“그런 얘기는 캘리포니아 가서나 하는 건 어ㄸ...” 베이커 양이 입을 열었지만 톰은 시끄럽게 의자의 방향을 틀면서 그녀의 말을 끊었다. 

 

“이 사람 말에 따르면 우린 전부 북유럽에서 건너온 사람이라는거야.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그리고…” 정말 짧은 찰나의 순간 동안 고민하던 톰은 살짝이 고개를 끄덕이며 데이지도 북유럽 그룹에 넣어주었고 데이지는 나를 향해 다시 한 번 윙크했다. “그리고 그렇게 건너온 우리들끼리 과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들을 발전시키면서 이 문명화된 사회를 일궈낸 거라고… 무슨 말인지 좀 알겠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식으로는 더이상 자극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보이는 톰의 태도에는 분명 한심한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안에서 전화 벨이 울리자, 이건 거의 순식간에 이뤄진 일인데, 집사가 맨션 안으로 들어가면서 잠시 동안 대화의 흐름이 끊겼다. 그리고 그 사이, 데이지는 재빨리 내 바로 옆으로 다가왔다.

 

“여기까지 왔는데 안 들을 수 없지.”

 

“저 사람이 처음부터 집사였던 건 아니야, 식기류에 다시 광이 나게끔 닦아주는 일을 했는데 뉴욕에서 이백 명이나 고객층으로 두고 있었대. 아침에 일을 시작해서 밤이 될 때까지 화학품을 사용해서 식기류에 광을 내다보니까, 그게 글쎄 결국 코에까지…”

 

“못생긴 코가 더 이상해지게 된거죠,” 베이커 양이 말했다.

 

“맞아. 원래부터 못났던 코가 훨씬 더 못생겨져서 결국 일을 그만두게 되었대.”

 

태양이 오늘 마지막으로 뿜어내던 햇빛은 데이지의 얼굴 위를 살랑이며 덮어주었다. 그녀의 목소리 덕에 나는 그녀에게 가까이 몸을 기대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그녀의 얼굴에서 천천히 자취를 감추던 햇빛은 마치 땅거미가 진 거리 위를 쓸쓸히 떠나가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 같았다.

 

집사는 서둘러 돌아와 톰의 귀에다가 무엇인가 웅얼거렸다. 무슨 이야기였는지 톰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의자를 뒤로 격하게 밀어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톰이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이 데이지를 특정 방식으로 자극시켰는지 그녀는 다시 한 번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으며 빛나는 목소리로 노래하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오늘 저녁 자리에서 볼 수 있게 되어서 너무 기뻐, 닉. 너는 마치… 마치… 장미 같아. 완벽한 장미 한 송이. 그렇지 않니?” 데이지는 베이커 양에게 동의를 구했다.

 

이건 사실과 멀었다. 나와 장미는 멀어도 너무 멀었다. 데이지가 단지 순간적으로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했는데, 데이지의 표정을 보니 그녀는 내가 장미랑 닮았다는 말 말고도 그녀의 심장을 내놓은 것처럼 정말 중요하고 흥분될만한 말을 건네줄 것 처럼 따뜻한 기운을 내뿜었다. 그렇지만 그도 잠시, 데이지는 갑작스레 들고있던 냅킨을 테이블 위로 던지고선 잠시 실례하겠다는 이야기와 함께 집안으로 들어갔다.

 

원문 출처: 자유 이용 저작물인 F.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의 'The Great Gatsby'을 번역했습니다. 원문을 구할 수 있는 링크를 여기에 남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