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22. 18:51ㆍ번역/문학 (소설)
위대한 개츠비
글쓴이ㆍF. 스콧 피츠제럴드
번역ㆍ오성진
그녀를 감동시킬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황금 모자를 써라.
높이 뛸 수 있다면, 그렇다면 그녀를 위해서도 높이 뛰어봐라.
그녀가 “내 사랑, 황금 모자를 쓰고 높이도 뛸 수 있는 내 사랑,
난 당신을 가져야만 겠어요!”라고 외칠 때 까지.
-토마스 파케 딘빌리에즈 (THOMAS PARKE D’INVILLIERS)
제1 장
내가 지금보다 더 어리고 나약했던 시절, 아버지께서는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을 맴맴 돌고 있게 된 조언 하나를 건네주셨다.
“누군가를 비판할 생각이 들거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너에게 주어졌던 모든 혜택을 누려온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렴.”
아버지께서는 그 외로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으셨지만 당시 우리는 이미 부자간에 말을 아끼면서도 전하고 싶은 바를 전달할 수 있는 소통법을 터득해둔 터였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해주신 말씀이 사실 그 안에 더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 쯤은 잘 알고 있었다. 그 덕에 나는 여태까지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기를 꺼려하게 되었고, 이 습관으로 인해 다수의 새로운 영역들에 진입할 수 있게 되는 대신,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느 사람들처럼 꽤나 재미없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특이한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은 남들을 잘 읽어내는 데다가 나와 같이 평범한 사람에게 이러한 생각이 담겨있을 때면 언제나 자석같이 접근하게 되는 법이다. 그 덕에 대학교 시절, 나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남성들이 비밀스럽게 지니고 있는 슬픔을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억울하게 정치적이라는 둥, 여러 별명으로 불리며 놀림감이 되기 일쑤였다. 대부분 남성들의 비밀은 찾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모습을 드러내곤 했는데 - 주변 남성들의 비밀을 알게될 것만 같은 기운이 형성될 때마다 나는 언제나 고민하는 척, 자는 척, 공격적인 척을 해야만 했다 - 왜냐하면 당시 내 나이 또래의 남성들이 지닌 비밀이래봤자 어디선가 이미 들어봤을법한 문제인데다가 스스로 너무 감춰오다보니 정확한 진상을 도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이미 많은 교정을 거친 뒤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판단을 감추는 일이란 무한대의 희망을 가진다는 것과 어느 정도 상관 관계가 있다. 난 아직까지도 이 사실을 까먹는 순간 인생에 꼭 큰일이 날 것만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혀있는데, 이건 아버지께서 고상한 체 말해주신 (그리고 나 또한 고상한 체하며 따라할 뿐이지만) “사람 됨됨이란 세상 사람들에게 태초부터 불공평하게 나뉘어져있다"는 말 때문이다.
자, 이제 내가 지닌 특별한 종류의 인내심에 대해 자랑은 이 정도나 했으니 말해보건대, 이러한 성격에도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그 단점은 상황을 가리지 않고 발현되는데, 그마저도 얼마 지나고 나면 어떤 조건에서 발현되는지는 별로 신경 쓰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지난 가을, 내가 동부에서 여기로 돌아왔을 때, 난 세상 사람들이 모두 각자의 위치를 지키면서 도덕적인 삶을 중시 여기고 있길 바랬으며 더 이상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마음 속에 소용돌이와 같은 충동들이 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오직 개츠비 - 이 책에 이름을 새겨넣은 그 남자 - 만이 나의 이런 바람에서부터 면제받을 수 있었다. 개츠비는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도저히 그 안을 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연달아 이어지는 제스처가 사람의 성격을 대변할 수 있다면, 그의 제스처에는 어딘가 굉장히 아름다운 부분이 있었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 삶이 선물처럼 쥐어주는 순간들에 대한 상당히 예민한 성격을 지니고 있달까, 마치 엄청 멀리서 시작된 지진을 감지해낼 수 있는 기계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건 “창의적 기질"이란 이름을 가지고 우리 주변에 숨어 사는 물렁거리는 감수성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질의 것이었다, 그것은 다른 이들에게선 한 번도 발견할 수 없었던,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찾지 못 할,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이자 로맨틱한 마음가짐이었다. 그렇다, 결과적으로 보면 개츠비라는 사람은 괜찮았다. 정작 나로부터 하여금 세상 사람들이 각자 계획한 일들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느끼는 슬픔과 잠깐씩 느끼는 허무한 희열에 향해있던 관심을 거둘 수 있게 해준 것은 오히려 그가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 그의 시야를 가리는 탁한 먼지, 개츠비를 갉아먹는 바로 그 먼지였다.
내가 나고 자란 캐러웨이(Carraway) 가문은 이 중서부에 위치한 도시에서 삼세대를 거쳐 잘 사는 집안이라는 이유로 꽤나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캐러웨이가는 하나의 단단한 혈맹이었는데, 우리에게는 뷰클레흐(Buccleuch)라는 기사들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말이 전해져왔지만, 사실 우리 가문이 넉넉하게 살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바로 내 할아버지의 동생분 덕이었다. 그 분 께서는 1851년도에 여기로 오셨고 남북 전쟁의 용병으로 참전하신 후에 지금껏 우리 아버지께서 도맡아서 운영하고 계신 도매로 철물을 사들이시는 사업을 여셨다.
내가 실제로 가족 사업을 시작하신 종조부를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사람들 말로는 내가 그와 많이 닮았다고 한다. 그 증거로는 아버지 사무실에 걸려있는 종조부의 꽤나 사실적으로 그려진 초상화가 있다. 나는 - 아버지가 졸업한지 반의 반 세기 밖에 지나지 않은 - 1915년에 예일 대학을 졸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전(the Great War)이라고 알려진 게르만족의 민족 대이동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작전을 너무 여과없이 즐긴 탓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내겐 남아나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전장을 다녀오니 세계의 따뜻한 중심으로만 보였던 중서부는 세계 끝에 다 닳아버린 지역 처럼 보였다. 그렇게 난 다시 동부로 떠나 채권 사업을 배우게 되었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은 이미 채권 사업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나 한 명 쯤이야 아직 들어갈 자리가 남아있겠거니 싶었다. 실제로 시작하기 전에 이 문제를 두고 상담을 나눈 이모들과 삼촌들은 마치 내가 어느 초등학교를 들어가야 할지 골라주는 것 처럼 말씀하시다가 끝내 “그… 그래…”라고, 굉장히 무거운 거부감이 깔린 얼굴로 말하셨다. 아버지는 일 년 동안 내게 경제적 지원을 해주시겠다고 하셨고 한참을 미루다가 1922년, 나는 결국 아예 눌러 살 작정으로 동부로 이사오게 됐다.
도심속에서 살만한 방을 마땅히 찾아봐야 했지만, 때는 따뜻한 계절이었고 이제 막 넓은 들판과 친근한 나무들이 깔린 시골을 떠나온 터라 어느 날, 사무실에서 같이 일을 하는 한 젊은이가 사무실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같이 살자고 말하는게 너무 좋은 제안처럼 들렸다. 집은 그 남자가 찾았는데 꽤 오래되어 보이는 월에 팔십달러 짜리 단층집이었다. 그런데 이사를 하기 며칠을 앞두고 그 남자가 워싱턴으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나 혼자만 시외에 있는 그 집에 살게 되었다. 나에겐 개 한 마리 (물론 며칠 있다가 그 개는 도망가버리긴 했지만), 오래된 닷지 차 하나, 그리고 내 잠자리랑 아침밥을 준비해주고 전기레인지 앞에 서서 핀란드어로 그녀 고국의 지혜로운 속담들을 중얼거리는 핀란드 여인이 있었다.
이사를 한 뒤로 하루이틀 정도는 꽤나 외로웠던 것 같다, 어느 날 아침 어떤 남자가 내 가던 길을 멈춰세우기 전까지는 말이다.
“웨스트 에그 마을(West Egg Village)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하죠?” 남자는 도움이 절실해 보였다.
난 그에게 길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나서 조금 걸었더니 난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난 가이드이자 길잡이, 그리고 새로운 땅의 개척자였던 것이다. 그 남자는 내게 별일도 아니라는 듯 넌지시 내게 이 동네에서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자유를 선물해준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영화에서처럼 찬란한 햇살과 나무 위에 활짝 피어오르는 이파리들을 보며 내 인생은 이번 여름을 계기로 다시 시작했다는, 어디선가 한 번 느껴본 듯한 확신을 얻었다.
우선적으로 읽어야 할 책들이 많이 있었고 공기는 또 무척이나 좋아서 건강을 새롭게 되찾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예금 관리와 채권, 그리고 투자 유가 증권에 관련된 책을 열두 권 구입했고, 그 책들은 조폐공사에서 방금 막 뽑아낸 새 돈처럼 붉은색, 그리고 금색으로 책장에 진열된 채로 미다스 왕, 모건, 그리고 마에케나스이 알고 있던 황금빛 비밀들을 내게 풀어줄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 외로 다른 책들도 많이 읽어볼 생각이었다. 대학교 시절, 난 책벌레였는데 - 일 년 동안 “예일 뉴스(Yale News)"에 상당히 진지하고 뻔한 이야기들을 써낸적도 있다 - 이제 다시 나의 그런 면을 살려 전문가들의 유형 중 가장 희귀하다는 “올라운더"가 되어보려고 한다. 결과적으로 인생은 좁은 창으로 바라봐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말은 결코 단순한 속담이 아닌 것이다.
북미에서 가장 이상한 동네에 집을 구하게 된 건 단순한 운의 문제였다. 이 집은 저 호리호리하고 시끌벅적한 섬이 뉴욕의 동쪽으로 뻗어나간 지점에 서있는데, 여기엔 두 가지 특이한 모습을 띄우고 있는 땅덩이가 양쪽에 떡하니 있다. 도시에서 이십 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계란(에그)처럼 나있는 두 개의 거대한 구역, - 둘은 놀라울 정도로 똑같게 생겼고 그 사이에는 작은 만이 하나 있다 - 그 곳은 서반구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바다가 있는 곳에 튀어나와 있었다. 둘은 완전한 타원형이 아니라 마치 콜럼버스 설화에 나오는 계란처럼 바닥이 무너진 모양을 취하고 있는데, 하나도 빠짐없이 완전히 똑같은 둘의 모습에 그 위로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이 매번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채로 발견되었다. 날개가 없는 우리 인간들의 주목을 더 사로잡는 요소는 바로 모양과 크기 빼고는 둘 사이에 닮은 점이 일체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난 그중 서쪽에 위치한 웨스트 에그에 살았었다, 웨스트 에그는 둘 중에… 뭐라고 해야할까, 그래, 조금 덜 멋진 곳이었다. “조금 덜 멋진 곳"이라는 표현은 둘 사이의 확실하게 존재하는 이상하고, 상당히 불길하게 자리잡은 대척점들을 너무 간과한 것 같긴 하지만. 내 집은 웨스트 에그의 가장 끝쪽이자 롱 아일랜드 사운드에서 겨우 오십 야드 떨어진 곳, 그리고 월세가 사오천 달러에 육박하는 호화스러운 두 지역 사이에 있었다. 내 오른편에는 누가 봐도 사치스럽게 거대한 건물이 있었는데, 노르망디에 있을 법한 호텔을 그대로 옮겨놨다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한 편엔 타워가 서있었고 외벽에는 아이비가 자라고 있었고, 대리석으로 지어진 수영장에 사십 에이커는 족히 되는 크기의 정원과 잔디가 있었다. 바로 그 곳이 개츠비의 맨션이었다. 당시 개츠비를 몰랐기 때문에 더 정확하게는, 그런 이름을 가진 한 신사가 살고있는 맨션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 집에 비하면 내 집은 흉물스러웠는데 너무 작아서인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난 달에 겨우 팔십 달러를 내고도 원할 때마다 바다를 볼 수 있었으며 근사한 정원들을 소유한 백만장자들을 이웃주민으로 둘 수도 있었다. 코트시 만을 따라 이스트 에그의 휘황찬란한 하얀 궁전들이 물 위에 비쳤고 차를 타고 그 물 위를 가로질러 톰 뷰캐넌과 저녁을 먹은 날, 진정한 여름은 시작됐다. 데이지는 내 육촌 동생이었고 톰은 대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냈다. 전쟁에서 돌아온 직후에 둘과 이틀 동안 시간을 보낸 적도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 그의 신체로 이룬 업적은 그 외로도 너무 많지만 - 예일대에서 풋볼을 했던 사람 중에서 가장 강력한 이들 중 한 명이었다. 너무도 강해서 전국적으로도 이름을 날릴 정도였고, 쉽게 가지지 못할만한 성공과 인기를 너무 이른 나이에 누리게 되어서인지, 그는 그 이후로 인생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는 중인 모양이었다. 그의 집안도 상당히 부유해서 대학교 시절, 돈문제로부터 자유로웠던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가 시카고를 떠나 동부로 온 이후로 그가 보여준 부유함의 수준은 실로 놀라울 따름이었다. 예컨대 한 번은 그가 호수 공원에서 폴로 경기용으로 기르고 있던 조랑말들을 데리고 온 적도 있었는데, 내 나이 또래에 그런 일을 벌일 정도로 돈이 많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아직까지도 믿기 어려운 문제이다.
둘이 동부로 오게 된 연유는 나도 잘 모른다. 둘은 - 이 결정을 내리는데도 별 특별한 이유가 없었는데 - 프랑스에서 일 년을 보냈으며, 그 이후로도 폴로 경기를 즐기는 부자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상관없다는 듯이 여기저기 건너다니며 지냈다. 그래서인지 여기서는 아예 정착할 계획이라고 데이지가 전화상으로 알려주었을 때 난 그녀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데이지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는 없었지만 톰이라면 기본적으로 분명히 풋볼 경기에서 느낄만한 극적인 박진감을 언제나 갈망하고 있단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뜻한 바람이 불던 어느 날 밤, 그렇게 난 오래 됐지만 사실 제대로 알고 있는 거라곤 잘 없는 두 친구를 만나러 이스트 에그로 향했던 것이다. 붉은색과 하얀색으로 밝게 물든 둘의 맨션은 내가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화려했다. 해변가에서 자라나던 잔디는 꼭 사백 미터 정도 떨어진 정문까지 전력질주 해온 것만 같았는데, 얼마나 빨리도 달렸는지 해시계들과 벽돌로 지어진 도보들, 그리고 정원을 뚫고 달려 그 가속도를 이용해 햇빛을 잘 받을 수 있는 담장 넝쿨이 있는 벽까지 뛰어올라간 모양이었다. 정문에 내리앉은 그늘은 프랑스산 창가를 기준으로 두 갈래로 갈라져있었는데, 창문은 황금색 햇빛을 맞받아치며 따뜻한 바람이 부는 오후의 공기를 향해 활짝이 열려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 현관에선 톰 뷰캐넌이 승마 장비를 갖춰입고 다리를 쫙 벌린 채로 서있었다.
톰은 예일 시절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현재의 그는 단단한 몸과 얇은 머리카락, 그리고 약간은 두꺼워진 입을 지녔으며 건방진 기운을 내뿜어내는 서른 살의 남성이었다. 오만하게 빛나는 그의 두 눈은 그의 얼굴 전체에 우월감을 심어주었고 뭔가 항상 공격적으로 앞을 향하고 있는듯한 인상을 쥐어주었다. 그의 의상 위에 여성스럽게 붙어있는 화려한 장식구 마저도 톰의 남성적인 자태를 감추지는 못했는데 심지어 그가 부츠의 끈을 맨 위까지 묶으려고 허리를 숙였을 때는, 그의 얇은 코트 아래에서 묵직하게 움직이고 있는 엄청난 근육들의 형상들이 다 보일 정도였다. 많은 힘이 깃들어있는 것만 같은 그의 몸은 실로 굉장했다.
원문 출처: 자유 이용 저작물인 F.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의 'The Great Gatsby'을 번역했습니다. 원문을 구할 수 있는 링크를 여기에 남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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