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13. 19:33ㆍ번역/비문학
행복을 쟁취하는 방법
글쓴이ㆍ버트랜드 러셀
번역ㆍ오성진
제5 장: 피로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피로감이 존재하며 그 중 몇몇은 행복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다른 요소들에 비해 비교적 더 강력한 모습으로 도로 위를 지키고 있다. 순수하게 신체적인 수준의 피로는 - 그 정도가 심각하지 않다는 전제 하에 - 오히려 행복의 원인이 되어주는 쪽이 많다. 몸이 피로할 땐 기분 좋은 수면욕과 적절한 식욕이 생기며 덤으로 휴일동안 보내는 즐거운 시간에 열정이 돋아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 그 정도가 심해졌을 땐, 또 피로 만큼 악독한 문제도 없다. 가장 발달된 국가 몇몇 곳을 제외한 나라에서 소작농 일을 하는 여인들은 매번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노동을 하는 바람에 그녀의 나이 서른이면 이미 청춘도, 그녀의 허리도 다 제 기능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산업주의가 들어선지 얼마 안 되었을 땐, 너무 과도한 노동량에 치인 어린 아이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거나 세상을 떠나는 경우 또한 허다했다. 이제서야 산업주의가 겨우 도래한 중국과 일본 - 그리고 미국의 남부에 위치한 몇몇 주 - 에는 아직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육체적 노동은 정도가 심해지는 즉시 끔찍한 고문과 다를 바가 없으며, 그렇게 지금껏 많은 이들의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할 정도로 늘려왔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가장 발달한 지역들에서는 기술적인 환경이 많이 발전한 탓에 육체적 피로도를 많이 줄이는데 성공했다.
현대 사회의 발달된 기술을 누리고 있는 집단들 사이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종류로 꼽히는 피로는 다름 아닌 신경 피로(Nervous Fatigue)이다. 신경 피로는 유독 잘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발현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매달 월급을 받기 위해 일하는 임금노동자들 보다는 사업가들이나 머리를 쓰는 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더 많이 나타난다.
현대인들이 신경피로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길은 굉장히 멀고도 험하다. 애초에 노동하는 시간 내내 - 그 외로도 바깥이나 집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 도시 노동자들은 지속적으로 소음에 노출되어 있다. 노동자는 분명 소음을 의식적으로 인지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별다른 노력 없이도 터득하겠지만 오히려 그 과정을 통해 그는 그를 피로하게 만드는 소음도 모자라 소음을 무시하는데 힘까지 써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노동자가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생길 수 있는 또 다른 피로의 유형은 바로 낯선 이들이 계속해서 서성이는 환경 속에서 발생한다. 동물들의 것과 같이, 인간의 자연적인 본능에도 자신과 같은 종인 존재들을 탐구하면서 상대에게 적대심을 품어야 할지 아닌지 쉼없이 계산하려는 성향이 녹아있다. 아마 매일 러시아워마다 지하철 위에 몸을 실어야 하는 노동자들이라면 위와 같은 본능을 매번 억제하고 있을 것이며 매번 이렇게 본능을 억누르다보니 궁극적으로 원치 않는 자리에서 만나는 낯선 이들 모두를 향해 화를 지니게 될 것이다. 추가적으로 위에 언급된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아침 일찍, 시간에 맞춰 전철에 타야하는 상황으로 인해 소화불량 상태를 겪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 또한 빼먹을 수 없다. 이 모든 과정을 겪은 뒤에 겨우겨우 사무실에 도착한 검은 양복의 사람은 이미 인간을 혐오하는 마음을 부풀릴 대로 부풀리고는 잿덩이로 불타 버린 수많은 신경 덩어리들을 떠안은 채로 업무를 시작할 것이다. 같은 상태로 직장에 도착한 그의 고용주는 부하 직원들에게 화를 한꺼번에 풀어버리지 못한다. 업무에 지장을 주기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그로 하여금 예우를 갖추게끔 만들지만 이 부자연스러운 공정은 오히려 긴장이 팽배한 분위기 위에 무게를 더해버리곤 한다. 만약 직원들이 주마다 한 번씩 그들의 고용주인 상사의 얼굴을 때릴 수 있다거나 적어도 상사에 대해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직원들이 지닌 긴장감은 자연적으로 풀릴 수도 있다. 하지만 고용주도 고용주 나름의 고민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런 방법으로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직원들이 해고당하는 일을 두려워한다면 상사는 회사가 경영난에 처하는 상황을 가장 두려워할 것이다.
몇몇 이들은 이러한 고민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위치에 올랐을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그 곳에 도달할 때까지 세계에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물론이고, 경쟁사들의 능률이 오르지 못하도록 바라는 걸 놓치지 않는 동시에 힘든 일들을 해내며 거쳐야만 했던 시기를 생각해보면 그마저도 그렇게 부러워 할만한 일이 아닌게 된다. 결과적으로 누군가 안정적인 성공을 취하더라도 그 사람은 이미 긴장되는 상황에 너무도 익숙해지는 바람에 그의 마비된 신경계는 - 이제 더이상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데도 불구하고 - 끊임없이 긴장하는 상황을 갈구하게 될 것이다.
왜 부잣집 자식들은 언급하지 않는지 궁금해할까봐 말을 덧붙이자면, 그들은 다른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 나름대로의 방식을 통해 같은 양의 긴장을 매일매일 마주할 것이 눈에 너무 훤하기 때문에 그들도 여기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도박을 하거나 돈을 걸면서 그들은 그들 아버지가 겪어야만 했던 불행을 고스란히 이어받을 것이다. 그들은 유희적 자극을 위해 자는 시간을 줄여가면서까지 점점 자신의 신체를 썩혀간다. 그들이 드디어 문제를 파악하고 무언가 해보려고 할 때는 이미 본인들의 아버지의 뒤를 밟아 도무지 행복한 상태에 진입할 수 없는 개인으로 변해버린 뒤일 것이다.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신경을 조금씩 죽여 나가는 삶을 이끌고 있으며 알콜의 도움없이는 도무지 즐거움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피로한 상태에 취해있다.
단순히 덜떨어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부자들에 관한 이야기는 제쳐두고 다시 매일같이 스트레스로 가득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일반적인 사람들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이 경우, 대부분의 피로는 걱정에서 비롯되는데 걱정은 삶을 대하는 자세를 가꾸고 정신적인 훈련을 함으로써 충분히 줄여나갈 수 있다. 대부분의 남녀는 자신의 생각을 완벽하게 소유하는데 서툴다. 이 말은 즉슨, 많은 사람들이 이미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른 문제를 가지고 걱정하는 행동을 쉽게 멈추지 못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일에 대한 걱정을 잠자리까지 고이 안고 가며 다음 날 어련히 맞이하게 될 문제들을 맞서기 위해 힘을 충전해야 할 시간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문제를 계속해서 떠올리며 끙끙댄다. 이 과정을 겪은 뒤에 그들은 다음 날, 더 나은 일처리 과정을 만들어내기는 커녕 거의 반인반수 상태의 불면증 환자의 몰골로 근무지에 나타난다. 그들이 계획했던 바와는 반대로 전날 밤에 그다지 건강하지 못했던 상태는 그들의 아침까지 따라가며 판단력이 흐려지고 쉽게 성질을 부리면서 마주치는 모든 장애물에 씩씩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고민할만한 의의가 있다고 여기는 시점에만 힘을 들여 자신이 처한 문제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 밖의 시간에 그는 다른 것들을 떠올리고, 심지어 밤에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기도 한다. 나는 모든 이들에게 바로 앞에 엄청나게 큰 문제를 두었거나 아내가 자신을 속인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있는 순간 마저도 (물론 굉장히 훈련이 잘 된 사람들은 이런 때에도 침착할 수 있겠지만) 단순히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여유로이 걱정을 접을 수 있다고 제안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싶다. 단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일상에서 피어나는 작은 문제들은 그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 시간 외로는 충분히 머리 밖으로 쫓아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필요한 문제들을 제때 떠올리며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체계적인 정신을 운영하는 방법을 배움으로써 취할 수 있는 행복과 효율성의 양은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상당하다. 어렵고 걱정스러운 결정을 앞둔 순간이 온다면 필요한 정보가 모두 한자리에 모이는 순간이 오자마자 온힘을 다해 그 문제에 달려들어 최선을 다해 생각을 쥐어짜내고 결정을 내리기 바란다. 결정을 내린 뒤에는 새로운 정보가 수면 위로 올라올 때까지 그 결정을 돌아보지 않는 쪽을 권고한다. 우유부단한 마음보다 피곤하고 연약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수많은 걱정거리들이 사실 얼마나 하찮은지 깨닫는 것만으로도 많은 불안을 줄일 수 있다. 나는 살면서 다양한 공식 석상에 올라 연설을 해왔다. 처음 연설을 할 때만 해도 관객을 마주칠 때마다 두려움이 엄습해왔는데, 당연히 그렇게 생긴 긴장감 덕분에 제대로 된 연설을 전달할 수 있었을리가 없었다. 이 문제는 내게 매우 큰 벽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연설에 오르기 전마다 내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가 생기기를 염원했으며 연설을 끝낸 뒤에는 매번 피로에 찌든 모습으로 땀을 닦아내며 무대에서 내려오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말을 잘하거나 못하거나 따위의 일에는 본래 세상에 눈썹만큼 작은 여파라도 남길만한 중요성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신경 피로의 상당 부분 또한 이런 방식을 통해 고칠 수 있다. 우리의 행동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중요하지 않으며 그 행동의 성공 여부 마저도 결과적으로 그렇게 중요하다고 볼 수 없다. 우리는 정말로 어떤 유형의 슬픔도 이겨낼 수 있으며 - 충분한 시간만 지나게 둔다면 - 앞으로 평생 행복하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하게 만들 만큼 거대한 문제도 결국 잊혀지게끔 만들 수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한 사람의 에고는 이 세계의 먼지보다 작은 존재이기 때문인데, 그렇기 때문에 만약 한 개인이 자신의 생각이나 희망사항들을 자아를 초월한 다른 공간에 가져다 놓는 법만 배울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일상의 고통에서 벗어나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신경계의 위생 상태 만큼이나 굉장히 중요한 개념을 다룬 학자는 거의 없다. 산업 심리학에서 피로에 관련된 정밀한 연구를 한 바가 있으며 신중히 만든 통계자료를 통해 한 개인이 굉장히 오랜 시간동안 어떤 것에 집중하면 피곤해진다는 결론을 얻은 것도 사실이지만 이 결론은 많은 과학적 자료가 없어도 상식적으로 충분히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이다. 피로를 다룰 때 심리학자들이 주로 관심을 두는 영역은 보통 근육과 관련된 경우가 많으며 가끔씩 심리적 피로를 다룬다 하더라도 보통 학교 아이들에 관한 것이다. 이 중 그 어떤 연구도 정작 중요한 문제를 건드리고 있지 않다.
그들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종류의 피로란 바로 현대인들의 삶 속 어디에서나 녹아든, 감정적인 유형의 피로이다. 이 유형의 피로는 순수하게 지적이며 순수 근력 피로와 마찬가지로 오로지 잠을 통해서만 그 해결책을 구할 수 있다. 정밀한 계산을 요하는 작업처럼 감정이 배제된, 오로지 지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나 잠을 통해 당일에 쌓인 피로를 해소한다. 흔히들 과도한 업무량의 폐해라고 여겨지는 짜증은 사실 그 일 자체에서 생긴다기보다 걱정이나 불안을 통해 생겨난다. 한 개인은 자신이 점점 더 피곤해질수록 더더욱 현상태를 멈추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에 감정적 피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휴식을 방해한다는데 있다. 신경 쇠약의 증상 중 하나로는 자신의 일을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믿음이 생기는 것, 그리고 그 불순한 믿음으로 인해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했다간 끔찍한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여긴다는 점이 있다. 만약 내가 의료계에서 종사하는 사람이었다면 난 자신의 일을 끔찍이 여기는 환자를 만날 때마다 약을 내려 주는 대신에 휴가를 떠나라고 진단해줄 것이다. 일로 인해 생긴 것 같이 뵈는 신경 쇠약은 사실 -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경우들을 고려해보면 - 환자들이 일보다는 일에 집중함으로써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어하는 감정적인 문제가 진짜 원인이다. 그가 일을 그만두는 것을 두려워하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일을 그만두는 것과 동시에 그의 불행에서 잠시라도 시선을 떼어주는 대상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가 두려워하는 문제가 금전적 파산인 경우에는 그의 일과 걱정하는 바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그럴 때 마저도 걱정으로 인해 그는 일에 지나치게 몰입할 것이며 또 그의 판단력은 점차 흐려져 오히려 그가 일을 적게 했을 경우보다 더 일찍 파산을 맞이할 것이다. 한 사람이 무너지는 원인은 언제나 일이 아니라 감정적인 문제가 주를 이룬다.
걱정과 관련된 심리는 절대 간단한 법이 없다. 모든 문제를 제때 떠올릴 수 있도록 두뇌를 단련시켜야 한다고 일찍이 강조한 바가 있다. 여기엔 첫째로 너무 많은 생각에 잠기지 않은 채 그날그날 마땅히 처리해야 할 일들을 정리할 수 있다는 이유가 있다. 두 번째 이유로는 이를 통해 불면증을 고칠 수 있다는 점이 있으며 셋째로는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 효율성과 현명함을 기를 수 있다는 점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류의 방법은 무의식이나 잠재의식을 건드리지 못하는데. 심각한 문제를 맞닥뜨린 경우같은 상황에서는 그 상황에 처한 개개인 의식의 저변에 가지 않는 한 이렇다 할만한 해결책을 찾기가 힘들다. 의식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에 있어 무의식이 과연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연구는 많은 심리학자들에 의해서 다루어져왔지만 그와 반대로 의식이 무의식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는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후자의 경우는 심리의 위생성에 있어 어마어마한 중요성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나 무의식적인 영역에 이성적인 확신이 자리잡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선 심도깊게 주목해야 하는 분야이다. 그리고 이건 걱정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있는 문제이다. 위에서 예로 든 바와 같이 심각한 불행이 자신에게 벌어져서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거기에서 그치게 되면 밤에 그 문제를 떠올리며 예방책을 떠올리는 기능을 활성화시킬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충분한 힘과 진정성을 공들인다면 의식적인 생각을 무의식에 심어놓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무의식의 상당 부분은 언젠가 의식에서 상당한 감정적인 가치를 지녔던 생각들로 이루어져있다. 이 사실로 미루어보면 의도적으로 생각을 심는 것도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되며 이를 통해 무의식은 꽤 유용한 도구로 거듭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어려운 주제에 대해 글을 써야하는 상황을 앞두고 언제나 내가 쥐고 있는 온힘을 바쳐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한다. 그렇게 몇 시간, 때로는 며칠동안 골똘히 생각한 뒤에 - 굳이 표현하자면 -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봐라' 하고 여태껏 생각한 바를 저 밑에다가 던져 준다. 몇 달이 지나고 의식적으로 그 문제를 떠올려보면 항상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채로 나를 반겨주는 생각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 기술을 발견하기 전까지만 해도 난 몇 달 동안 아무 진전이 없다는 사실을 두고 걱정에 빠져 시간을 보내곤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좀체 결론에 일찍 도착하지도 않았거니와 덤으로 그 많은 시간을 허투루 보낸 꼴이 되어버렸다. 그에 비해 요즘엔 그럴 시간에 다른 목표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걱정을 대할 때도 비슷한 류의 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다. 어떤 불행이 들이닥칠 때면 진중한 자세로 온신경을 쏟아서 이 문제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무엇인지 생각해봐라. 머릿속에서 미래에 찾아올 수 있는 불행을 미리 맛봤다면 스스로에게 ‘다시 생각해보니 이건 예상했던 것 만큼 큰 문제는 아니었구나'하고 생각할만한 이유를 만들 수 있는 시간을 주어라. 최악 중의 최악의 상황이라고 한들 한 개인에게 벌어지는 일이 정말 우주적인 중요성을 갖추고 있을리가 없기 때문에 실제로 어떤 문제가 실은 작을 수 있겠다는 사실을 떠올리려고 노력한다면 그 생각을 보조해줄만한 이유는 언제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벌어질 수 있는 일들 중 가장 안좋은 일을 충분히 떠올려보고 스스로에게 확신에 가득찬 목소리로 ‘음, 생각해보니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닐수도 있겠구나'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면 당신은 좀전까지 괴물의 형상을 지니고 있던 문제가 놀라울 정도로 작아져있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같은 과정을 몇 번 반복해야될 수도 있는데, 이 과정을 몇 번이고 진행하면서 최악의 문제를 떠올리는 일을 피하지만 않았다면 결국 당신이 지니고 있던 걱정은 완전히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 일종의 희열이 자리잡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기술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쓰이는 기초적인 기술 중 하나이다. 걱정은 두려움의 일종이며 모든 종류의 두려움은 피로를 자아낸다.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훈련을 통해 한 개인은 일상에서 상당히 많은 피로가 사라질 수 있음을 깨달을 것이다. 가장 해로운 유형의 두려움은 우리가 맞닥뜨리고 싶어하지 않는 위험에서 비롯된다. 종종 우리 머릿속에 끔찍한 생각들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 그 생각들이 어떤 모습인지는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모두에게 비슷할 정도로 끔찍이 여기는 생각이 있기 마련이다. 어느 사람은 암을, 다른 이는 금전적 문제, 또는 부끄러운 비밀이 밝혀진다거나 누군가에게 의심을 받는다거나 어렸을 때 꾸었던 악몽이 현실로 나타나는 일을 떠올릴 수도 있다. 위와 같은 걱정들을 안고 사는 사람들은 아마 두려운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다른 생각을 떠올린다던지 아니면 다른 유희거리로 정신을 사납게 하는 둥, 두려움을 대하기에 잘못된 기술을 체득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모든 유형의 두려움은 마주치지 않을 때마다 거대해진다는 것이다. 두려움에서 생각을 떼어놓을 때마다 불안감은 커져만 가는 상황 속에서 제대로 대처하는 방법은 이성적으로, 그리고 침착하게 그 문제를 똑바로 바라보며 해결방안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초집중 상태로 한 문제를 바라볼 수 있다면 곧 그 문제는 친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렇게 문제를 친숙하게 느낌으로써 문제를 둘러싸고 있던 공포스러운 아우라는 서서히 흐려질 것이며 결과적으로 그 문제는 지루하게 느껴지면서 노력이나 의지로 피했던 전과는 달리 단순히 흥미를 잃어버려 자동적으로 그 문제를 더이상 떠올리지 않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원치 않는데도 특정 문제들이 떠오를 때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평소 할법한 양보다 더 많고 깊은 노력을 기울여서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바로 그 문제에 묻어있는 악취 나는 자극이 떨어질 때까지 말이다.
현대사회의 도덕성이 썩어가는데 가장 크게 기여하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이 두려움을 둘러싼 문제이다. 보통 남자들에겐 - 특히나 전쟁같은 상황에서는 - 물리적으로 우러나는 용기가 요구되지만 그 외 종류의 용기는 아무도 남자들에게 요구하지 않고 있으며 여자들에겐 애당초 조금의 용기라도 기대하는 이가 없다. 이러한 현실로 인해 용감한 여성은 다른 남성이 그녀를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사실을 숨겨야 하며 물리적인 위험을 마주한 상황 외로 용감함을 보이는 남성은 사회에서 아니꼽게 여겨진다. 예를 들어 대중의 여론에 무관심한 모습은 도전으로 간주되며 사회는 어떻게서든 자신들의 규칙을 무시한 이를 벌주기 위해 팔걷고 나설 것이다. 위 문단의 모든 사실은 안타깝게도 사회가 올바르게 가야하는 방향과 정반대의 모습들 뿐이다.
모든 종류의 용기는 성별을 떠나 - 물리적인 용기를 지닌 군인을 떠받들 때와 마찬가지로 - 칭찬받아야 마땅하다. 젊은 남성들 사이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물리적 용기야 말로 여론의 요구에 따라 개인이나 단체에게서 특정한 용기를 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더 많은 용기를 지닐 수 있다면 덜 걱정할 수 있을 것이며, 그를 통해 피로감을 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의식, 무의식의 영역을 통합해서 현대의 남녀가 느끼는 신경 피로의 상당히 많은 부분을 두려움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는 모두가 매우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사실이다.
많은 경우에 피로는 자극을 극도로 쫓아다니면서 생기기도 한다. 한 개인이 잠을 통해 충분한 휴식감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좋은 건강을 유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상당히 우울한 근무 시간 덕분에 그에게 주어진 자유시간을 최대한 즐기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길 수 있다. 여기서 문제는 겉으로 봤을 때 매력적으로 보이며 구하기 쉽기까지 한 종류의 유희거리들은 대부분 사람의 신경을 갉아먹는다는 것이다. 자극을 향한 갈망은, 그 정도가 지나치게 되면, 현재 자신의 우선순위가 뒤죽박죽이거나 자신의 본능적인 영역이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다. 행복한 결혼생활의 초기, 거의 대부분 남성들에겐 그 어떤 자극도 갈구하는 마음이 들지 않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보통 결혼을 미루고 미루다보니, 극적으로 금전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고 결혼을 앞둔 개인들은 이미 - 얼마 가지도 못할 - 불온전한 자극에 찌든 상태에 젖어들었을 것이다. 만약 여론이 젊은 남성들로 하여금 현재 결혼하기 위해 필요한 재정적인 짐을 짊어지지 않고 결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쪽으로 쏠려있다면 많은 남성들은 그들의 업무량 만큼 피로감을 더해주는 유희거리에 빠져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현실에 적용해야한다고 주장하는 바 만큼 부도덕한 일도 없을 것이다. 줄곧 좋은 커리어를 쌓다가 윗세대의 편협함으로 인해 상당한 피해를 보고있는 젊은이들을 구제해주겠다고 나서면서부터 불명예스러운 오명을 써야했던 벤저민 린지(Benjamin B. Lindsey) 판사의 예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 관해서는 뒤에 ‘질투심'을 다루는 장에서 다시 다룰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이만 말을 줄이겠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법이나 기관들을 바꿀 힘이 없는 한 명의 개인으로서는 억압적인 윤리주의자들이 만들고 영속시킨 이 현실과 마주하는게 힘이 들 수가 있다. 그렇지지만 자극적인 유희활동은 결코 행복으로 향하는 길이 아니며 오히려 그로 인해 좀 더 만족감을 안겨줄 수 있는 즐거움을 찾지 못 하고 점점 더 인생에 불만을 느끼며 다시금 더 강한 자극을 찾는 불행한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은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이럴 경우에 신중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상황을 돌아보고 다시금 우선순위를 되짚어 보면서 더이상 그가 추구하던 피로감 섞인 유희거리 대신 그의 건강이나 일을 방해할 수 없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자신의 삶을 재정비하는 것이다. 젊은이들을 위한 극약처방은 바로 사회의 풍속을 바꾸는 것이다. 그런 근사한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 젊은이들은 결국 자신이 결혼할 위치에 도달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미래의 결혼생활에서 행복을 제외할 정도로 사는 일은 굉장히 우둔한 짓이며 더욱이 그렇기에 심한 자극에서 멀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만 한다.
신경 피로를 통해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여파 중에 하나는 바로 신경 피로로 하여금 한 사람과 바깥세상 사이에 벽이 생긴다는 점이다. 신경 피로를 달고 사는 이에게는 모든 일이 그저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흐린 화면으로 보이며 그는 더이상 자그만 속임수나 매너리즘에 짜증을 낼 때 말고는 다른 사람들의 존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또한 그는 식사를 할 때나 햇빛을 맞으며 더이상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겠지만 다른 것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대상 몇 개에 거대한 의미를 둔 채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몰두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통해 그 사람은 거의 휴식을 취하기 불가능한 상태에 도달할 것이며 그 사람이 지닌 피로는 결국 의학적 수준의 도움이 필요한 지경까지 자신의 몸을 불릴 것이다. 이 모든 사항들은 전 장에서 언급한대로 인간이 우리가 서있는 이 행성과 멀어지면 멀어질 수록 떠안을 수 밖에 없는 고통의 일종이다. 하지만 오늘 날 이렇게 집적으로 모든 인구가 한 대 모여 사는 위대한 현대 사회에서 우리 행성과의 연결성을 보존하는 일은 결코 쉬워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 다시 한 번 말하지만 - 난 이번에 글을 쓰면서 오로지 우리의 행복에 관해서 적고 싶기 때문에 이에 대한 문제제기는 여기까지 하겠다.
원문 출처: 자유 이용 저작물인 버트랜드 러셀(Bertrand Russell)의 'The Conquest of Happiness'의 서문과 목차를 번역했습니다. 원문을 구할 수 있는 링크를 여기에 남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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