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20. 00:10ㆍ번역/비문학
행복을 쟁취하는 방법
글쓴이ㆍ버트랜드 러셀
번역ㆍ오성진
제15 장: 비개인적인 관심사
이번 장을 통해서 나는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지을 만큼의 거대한 관심사들보다는 그 사람의 일상에서 사로잡힌 일들로부터 쌓아온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게 해줄만한 활동들 또는 관심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평균적인 남성의 삶에서 그의 아내와 아이들, 일, 재정적 상황은 그가 골똘히 하는 생각들과 걱정들의 주요 부분을 차지한다, 설령 그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상대들이 존재한다고 한들, 그들은 남자와 가장 가까운 대상들만큼 그의 생각에 영향력을 쥐고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일과 관련된 관심사들은 ‘비개인적 관심사'의 일부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과학계에 종사하는 사람을 예로 들어보자. 그가 하는 생각이나 행동은 언제나 그가 연구하는 분야와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커리어, 또 커리어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연구를 뚜렷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따뜻하게 대하겠지만 그의 영역과 동떨어져있는 주제의 과학 기사를 읽을 때 그의 태도는 조금 다를 것이다. 그는 거리감을 지닌 채로 기사를 읽으면서 전문적인 잣대를 들이밀거나 비판적으로 굴지 않을 것이다. 혹시 그가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두뇌를 쓰게되더라도 그의 직업과 직접적 연관이 없는 독서가 그에게 휴식의 역할을 되어주고 있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만약 독서가 그가 관심을 보이는 영역이라고 한다면, 독서는 그가 자신의 삶이나 일에 관여되지 않은 주제의 책을 읽을 때만 비개인적인 관심사로써의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한 사람의 주요 활동과 동떨어져있는 관심사들, 이러한 관심사들이야말로 바로 내가 이번 장에서 다루고 싶은 주된 내용이다.
불행, 피로, 그리고 신경과민과 같은 증상의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조금이라도 실용적이지 못한다면 도무지 관심을 가질 수 없어하는 태도에 숨어있다. 이러한 경향의 결과로 의식은 비교적 적은 수의 문제들에서조차 자유롭지 못하게 되며 그 문제들 각각이 지닌 걱정과 불안을 일일이 떠안게 되어버리며 궁극적으로 무의식의 영역이 점점 더 지혜라는 열매를 익혀갈 동안 의식은 -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 쉬는 시간을 한 번도 가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람은 더 쉽게 흥분하게 되고 점차 현명함을 잃게 되며, 신경이 예민해지면서 자신의 시간을 과연 어떻게 분배해야 할지, 그 방법을 놓치게 된다. 이 모든 요소들은 피로의 원인인 동시에 결과로 작용한다. 피로도를 조금씩 쌓아가고 있는 개인은 자신의 비개인적 관심사로부터 점점 더 멀어질 것이고 도무지 숨을 쉴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그의 삶에는 계속해서 피로가 축적될 것이다. 그리고 이 악순환은 한 번 구르기 시작하면 힘든 상황이 찾아왔다고 봐주는 일 없이 끝도 없이 몸집을 키워갈 것이다. 무언가 꼭 해야만 한다는 부담이 없는 비개인적 관심사가 한 개인을 편안하게 해주는 이유는 명백하다. 결정을 내리는 둥, 자유의지를 발휘해야 하는 일들은 - 특히나 무의식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신속히 일을 처리해야만 하는 경우에는 더더욱이 - 상당한 피로감을 부담하도록 만들고, 그렇기에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일단 한숨 자고 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두말할 필요없이 옳다고 본다. 하지만 무의식은 우리가 잠자는 시간 이외에도 활발히 활동한다. 의식이 결정을 필요로 하는 주제 외의 것에 집중을 하고 있을 때면 언제나 무의식은 움직이고 있다. 하루에 자신이 해야할 업무를 마치고 다음 날 다시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일에 대한 생각을 놓고 지낼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일에 대해서 매순간 걱정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일을 잘해낼 수 있다. 아울러 자신의 일을 제외한 영역의 관심사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일하는 시간 외에 생각을 훨씬 더 자유로이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관심사가 그가 일하면서 쓰는 두뇌의 영역과 다른 부분을 쓰도록 하는 것 또한 상당히 중요하다. 의지나 빠른 결정이 없는 쪽의 관심사일수록 좋고 도박처럼 금전적인 요소도 섞여있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며 감정적 피로를 일으킬만큼의 자극도, 의식과 무의식이 동시에 쓰여야 하는 필요성도 없어야 한다. 세상엔 위의 모든 조건들에 부합하는 재미 요소가 많이 존재한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경기를 관람하거나 극장에 가는일, 또는 골프를 치는 일 모두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한 활동들이다. 책에 빠져 사는 사람의 경우, 독서와 거리가 먼 전문적 활동들로부터 상당한 만족감을 얻게될 수도 있다. 얼마나 많은 불안요소가 담긴 문제건 간에 사람이 깨어있는 시간 동안 한 문제에 대해서만 온종일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봤을 때, 남녀 사이에 극명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전반적으로 여성보다 남성이 훨씬 더 일에 대한 생각을 쉽게 놓는다. 주부의 경우에는 남성처럼 바깥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겪게 되는 공간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보통 한 곳에만 있어야 한다. (*역주: 이 책은 1930년 뉴욕에서 출판 된 책이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현재, 2021년에는 전혀 적용되지 않을만한 이야기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 바깥에서 일을 하는 여성의 경우에도 남성과 차이점을 보인다. 그들은 실용적인 중요성을 지니지 않은 문제에는 도통 관심을 가지기 힘들어 한다. 그들의 생각과 활동은 목적에 의해 지배받기 때문에 아무 책임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활동에는 잘 관심을 보이지 못하는 경우의 수가 상당하다. 물론 예외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부정하진 못하겠지만 내가 봤을 땐 사회 전반적으로 많은 여성들이 위와 같이 행동하는 것 같다. 여자 대학을 예로 들자면, 여대에서 근무하는 여성 교사들은, 남자가 자리에 있지 않을 경우, 밤까지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를 이어가는 반면 남학생으로만 이루어진 학교의 남교사들은 그렇지 않는다. 이를 통해 여성들이 남성보다 성실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크게 봤을 때 그들 업무의 질이 높아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이러한 성향은 점차적으로 개인의 생각을 좁히며 어떠한 대상을 향해 이루어지지 않을 환상을 부풀려버릴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쉼의 중요성을 제쳐두고서라도 모든 비개인적인 관심사들에는 다양한 쓰임새가 있다. 첫째로 비개인적 관심사는 인생에 균형감이 생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우리는 우리가 쫓는 목표, 우리를 둘러싼 환경, 우리가 하는 일의 유형에 너무도 쉽게 현혹되기 때문에 인간의 총 활동 범주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이 얼마나 작은지, 또 세상에 우리가 하는 일들에 아무 영향을 받지 않는 대상들이 얼마나 많은지 놓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왜 우리가 이런 정보를 알아야 하죠?”라고 물어볼 당신의 질문에 내가 내놓을 수 있는 답변은 여러개가 있다. 첫째로 바깥 세상에 대해 견문을 넓히는 것은 우리가 하는 일과 관련된 능력을 키워나가는 것 만큼 중요하다는 점이 있다. 이 행성 위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 보다 그다지 길지 않으며 이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이 요상한 행성과 그 행성을 품고 있는 우주에 대해서 최대한 많이 배워야만 한다. 지식을 취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는 것은 - 세상에 완전한 지식은 없다는 사실은 좋은 핑계가 되어주지 못한다 - 귀를 막은 채 연극을 보러 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세상엔 비극적이거나 희극적인, 또는 영웅적인, 이상한, 놀라운 이야기들로 가득차있으며 이 어마어마한 현상에 관심을 지니지 못하는 사람은 삶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 중 하나를 저버린 삶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편으로는 삶에 균형감을 찾는 일이 그 숭고한 목적성만으로 이미 충분한 가치가 있고 우리의 삶 속에서 가끔씩 상당한 위안이 되어준다는 점도 빼먹을 수 없다. 우리 모두에게는 우리가 살고 있는 조그마한 영역, 그리고 우리가 태어난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진행되는 시간에 관해 지나치게 흥분하거나 걱정, 또는 중요시 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우리 스스로를 필요 이상으로 중시하면서 과도하게 느끼는 흥분감에는 남길만한 가치가 있는 요소가 하나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일을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겠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될 수 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일에 중독된 현대인들은 목에 핏줄을 세우고 이에 반박하려 들겠지만,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그저 그런 결과를 부르는 일처리 방식보다 더 적은 시간을 투자하여 좋은 결과를 맺는 일처리 방식이 더 낫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변하지 않는다. 자신의 일을 필요 이상으로 중요시 여기는 자들은 자신의 일이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몇 가지를 제외한 세상 모든 일들의 중요성을 얕잡아보게 되는 광신주의 같은 신념에 빠질 위험이 있으며 섬기는 소수의 대상을 제외한 나머지에겐 약간의 상처를 가해도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하는 문제는 덤이다. 이러한 신경적 질환을 달고 사는 자들에게 우주 속에서 과연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는 정말 얼마나 작은지 깨닫는 것 보다 더 나은 치료제는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직업을 구하는데 필요한 기술을 키우는 데만 집중한 나머지, 세상을 바라보는 견문을 키우는 법을 가르치기를 철저하게 실패해버린 현대 고등 교육의 결점 중에 하나로 보인다. 예를 들어 당신이 정치적 싸움에 관심이 있고 실제로 당신이 응원하는 정당의 승리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고 생각해보자.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 없다고 볼 수 있겠지만 싸워가는 과정에서 이 세상에 더 많은 증오와, 폭력, 그리고 의심들을 낳는 방법을 통해 상대 정당을 이길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다른 나라를 깎아내리는 일이야 말로 당신이 속한 정당이 승리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길이라는 판단이 들었다고 치자. 당신의 정신이 현재를 바라보는데에만 국한되어 있거나 효율성만이 최선이라는 생각에 빠져있다면 당신은 악취가 나는 방법들을 이용하게 될 수도 있다. 그 방식들을 통해 당장의 승리는 얻어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갈수록 잇따르는 결과는 점점 더 재앙에 가까워질 것이다. 반대로 만약 당신에게 과거 야만인들의 느리고, 때때로 서툰 결정도 내릴 줄 아는 방식을 취할 수 있는 마음이나 우주의 시간 앞에서 스스로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위의 예시 속 상황에 처하더라도 한 발 물러서 이 선택으로 인해 자신의 인생에 드리울 수 있는 어둠을 감안하고 신중하게 결정을 고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더 나아가서, 만약 당신이 그렇게 당장 앞에 둔 목표를 쫓아가는 과정에서 좌절을 겪게되었다 한들, 당신 속에 불온전한 방법을 채택하지 않도록 도와준 마음은 당신을 품어주며 다시금 당신에게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을 줄 것이다. 당신은 바로 눈앞에 둔 활동들보다도 조금 더 멀리 있는 미래를 향한 목표를 다시금 떠올릴 수 있게 될 것이며 이는 인류를 조금 더 문명화된 사회로 나아가게끔 도와준 수많은 멋진 이들이 택한 방식이다. 만약 당신이 이러한 관점을 체득했다면, 당신 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행복감은 - 당신의 인생이 어떤 길을 걷게 되건 - 절대 당신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더불어 이러한 관점과 함께하는 개인에게 인생은 모든 세대의 뛰어난 자들과 공감하며 즐길 수 있는 힘을 쥐어주며 더이상 작은 일들에 신경을 쓰는 일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만약 내게 내 뜻대로 고등 교육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쥐어진다면 난 과거부터 전통적으로 존재해온 종교관을 대체 할 수 있을만한 개념을 새로이 도입할 것이다. 새로운 개념은 정통 종교관과 같이 어린 사람들과 지능이 떨어지는 자들, 그리고 반계몽주의자들(obscurantists)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동시에 종교와는 다르게 정확히 증명된 사실들에 그들의 관심이 기울여지도록 힘쓸 것이다. 그렇게 난 젊은 사람들로 하여금 과거를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동시에 확실하게 한 개인에게 우리가 이 행성 위에 사는 시간이 얼마나 일시적인지 깨닫게끔 도와줘야 할 것이다. 또한 이렇게 한 사람이 얼마나 하찮은지 깨닫게 해주는 교육을 통해서 그렇다면 개인이 이룰 수 있는 건 과연 무엇일지, 그리고 세상의 모든 과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 봐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의 깊이를 가진 이 우주에 대해서 알아가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어야 할 것이다. 이전에 스피노자는 인간들끼리의 결속과 인간의 자유에 대해 쓴 적이 있는데 - 철학과 학생이 아니라면 그가 쓴 형식과 언어의 특징상 그가 정확히 뭘 말하려고 하는지 파악하기가 도무지 힘들 수 있지만 - 그 본질은 위에서 언급한 가상의 교육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바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깨달음의 순간이 얼마나 짧았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만약 단 한 번이라도 영혼의 위대함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스스로를 옹졸하게 작은 문제에도 조바심 내며 자아에 갇혀 사는 운명으로는 평생 행복감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을 몸소 알고 있을 것이다. 영혼의 위대함을 꺼낼 줄 아는 사람은 우주가 보내오는 작은 바람이라도 맘껏 들어올 수 있도록 생각의 창을 크게 열어둘 것이다. 그는 정말 인간의 한계가 허락해준 만큼의 삶을 인정한 채로 세상을 바라보며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고 사람들이 어떤 것에 빠져있든 결국 그 대상은 우주의 일부일 뿐일 것이라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또한 그는 자신과 같이 세상을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 보면, 세상만큼이나 대단한 존재라고 일컬을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게 될 것이다. 주변상황, 그리고 두려움의 노예로 살던 생에서 탈출한 경험을 통해 사람은 심오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며 그의 삶에서 겪어나가는 우여곡절에도 그는 행복한 사람으로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위에 나열해놓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다시 우리의 바로 앞에 놓인 주제, 비개인적 관심사 얘기로 돌아오자면, 비개인적인 관심사가 행복을 향한 길 위에 위대한 조력자가 되어줄 수 있는 데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의 인생에도 꼬이는 상황들은 생기기 마련이다. 미혼남을 제외한 남성 중에 기꺼이 배우자와 말싸움을 하는 남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병을 지닌 아이를 둔 부모 중에 악질의 불안감을 느끼지 않은 사람도 없을 것이고; 사업을 하는 사람 중에 경제적인 문제로 고민을 짊어진 적이 없는 사람도 없을 것이며; 전문직에서 종사하는 사람들 중 실패의 차가운 눈빛을 두려워한 적이 없는 사람 또한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걱정 거리의 원인이 되는 요소들 외의 영역에 존재하는 대상에 관심을 둘 수 있는 능력은 큰 이점을 지녔다. 걱정은 들지만 불안해하는 것 외로 할만한 일이 없을 때, 어떤 이는 체스를 즐길 수도 있고, 다른 이는 추리 소설을 읽을 수도, 어떤 사람은 천문학에 잠시 빠져볼 수도 있을 것이다. 긴장이 되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다른 곳에 도무지 놓지 못하는 상태에 비해서 위의 세 가지 예시 모두 현명한 판단 아래 이루어지는 행동이다. 매우 사랑하던 사람의 죽음을 대하는 슬픔에는 이와 상당히 비슷한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세상에 비탄에 빠짐으로써 긍정적인 효과가 생긴 적은 없다. 비탄이라는 감정은 피할 수 없으며 언제나 예상 범위 안에 두고 있어야 하는 동시에 그 크기를 최소화시키도록,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어쩔 땐 단순히 우리가 지닌 감수성을 공격하는 것만이 불행한 상황 속에서 느끼는 비탄감을 빼내는 방법이다.
물론 한 사람의 생각이 슬픔으로 인해서 일순간에 나약해져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나는 그럼에도 모든 사람이 운명이 건네준 최악의 상황을 마주치면, 그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온힘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것 뿐이다. 그 크기가 얼마나 될지는 몰라도, 본인에게 해롭거나 누구에게 해를 가하지만 않는다면, 무언가에 잠시라도 빠져 머리를 쉴 수 있게 해줘야된다. 이 때 피해야 할 대상으로는 술과 마약이 있을 수 있다. 술과 마약의 목적은 약물을 즐기는 아주 잠시 동안만 생각을 뭉게버리는데 있다. 적절한 해결책은 생각을 일시적으로 눌러버리기 보다는 새로운 창구로 인도해주는 법이다, 적어도 현재 마주한 안타까운 불행과는 저멀리 떨어져있는 새로운 종류의 생각으로 통하는 창구로 말이다. 만약 평생을 몇 가지 관심사에만 집중해왔으며, 그 관심사들엔 이미 슬픔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상태라면 삶에 위와 같은 해결책을 들이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퍼부어야 할 것이다. 불행이 닥쳐올 때 올바른 자세로 견디고 싶다면, 행복한 순간에 미리 관심사의 폭을 넓혀놓고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잠시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본인 스스로 인식할 수 있게끔 유도해주어야 한다.
적절한 양의 활력과 열정을 지닌 사람은 불행을 마주칠 때마다 평소 지녀온 외적인 관심사에 한 번씩 몸을 담구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그를 마주한 불행이 치명적인 정도로 커지지 못하게 조절할 것이다. 하나의 상실, 또는 다수의 상실을 겪은 뒤에 패배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인간을 보며 그가 지닌 감성적인 면을 우러러보는 대신 우리는 그에게 부족한 활력을 떠올리며 슬퍼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관계가 언제나 끝을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을 살면서 좁은 영역에 힘을 쏟으며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는 일은 상당히 해로운 일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모든 사항들을 통틀어 보아, 현명한 방법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란 부수적인 비개인적 관심사를 소유하는 것을 목표로, 그들을 찾을 때마다 자신의 삶의 중심에 놓인 중요한 관심사들 주변에 차곡차곡 쌓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원문 출처: 자유 이용 저작물인 버트랜드 러셀(Bertrand Russell)의 'The Conquest of Happiness'의 서문과 목차를 번역했습니다. 원문을 구할 수 있는 링크를 여기에 남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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