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 The Public Domain Review, "냄새를 그림으로, 해변에 밀려온 고래 이야기"

2021. 8. 8. 20:43번역/비문학

Picturing Scent

The Tale of a Beached Whale

 

냄새를 그림으로,

해변에 밀려온 고래 이야기

 

글쓴이ㆍ리지 맑스 (Lizzie Marx)(https://publicdomainreview.org/contributors#lizzie-marx)

번역ㆍ오성진



What can visual art teach us about scent, stench, and the mysterious substance known as ambergris? Lizzie Marx follows a “whale-trail” across history to discover the olfactory paradoxes of the Dutch Golden Age.

 

시각 예술이 우리에게 향, 악취, 그리고 ‘용연향(ambergris, 龍涎香)’이라고 불리우는 수수께끼 물질에 대해서 알려줄 수 있다면? 리지 맑스는 역사 군데군데에 퍼진 고래의 자취를 쫓으며 네덜란드의 황금기, 그 당시 코를 찌르던 냄새의 역설적인 면모를 밝혀낸다.


PUBLISHED

July 21, 2021

게시일ㆍ 2021년 7월 21일

 

 

※퇴고 예정일은 2021/08/15이오니

※이 날짜 이후로 읽어주길 바라며※
※놀러와주신 당신에게 매우 감사함※

***근데 이 글은 아예 퇴고를 안 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 혹여나 15일 이후에도 그대로라면 맘편히 이 글을 놓아주시기 바랍니다.

 

Jan Saenredam, Beached Whale at Beverwijk, 1602 — Source.

1602년, 잰 샌레담(Jan Saenredam)이 그린 ‘Beverwijk 해변에 떠밀려온 고래 (Beached Whale at Beverwijk)' — Source.

Foul Omen

불길한 징조

 

During the seventeenth century, whales, of various species and sizes, were washed up on the shores of the Netherlands. Sometimes the creatures were already seized by decay; other times, they were beached alive, bellowing deafening groans while being crushed by the sheer weight of their own bodies. While they decomposed, gases would build up, sometimes culminating in a fetid explosion. If the tide did not sweep away the whale, a long and arduous process followed, in order to break down the mass and clear away the site.

 

17세기동안 다양한 종류와 크기의 고래들은 네덜란드의 해변에 떠밀려오곤 했다. 어떤 때에는 이미 부패해서 죽어있는 상태로 떠밀려왔으며, 또 다른 때에는 산채로 떠밀려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신체가 부서지는 도중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굉음을 내질렀다. 고래의 몸이 부패하면서 그 안에는 가스가 쌓였고 때때로 쌓인 가스가 한계치까지 쌓이면 악취가 진동하는 폭발로 이어지기도 했다. 사체가 사체 위를 오가는 조류에 쓸려 바다로 떠내려가지 않을 경우엔 잔해들이 사라지고 현장이 정리될 때 까지 굉장히 길고도 힘겨운 과정이 잇따라야만 했다.

 

The colossal creatures attracted onlookers who were fascinated by the spectacle, and among the throng were artists, who, armed with drawing requisites, recorded what they saw, and what they smelled.1 Jan Saenredam depicted a sperm whale that beached on December 19, 1601. The whale is stranded on its side, showing its underbelly to the coast. Hordes of visitors congregate around the swollen cadaver and clamber over its body to inspect it. The descriptive border further details the state of the whale, picturing its gaping mouth on the left, and its back on the right, which has been split open, pouring out tresses of entrails. Positioned near the whale’s mouth, Saenredam pictures himself recording the cadaver on a sheet of paper flapping in the coastal winds. At the scene’s centre is Count Ernest Casimir of Nassau-Dietz, military leader and nephew of the stadholder Prince Maurice of Nassau. In his left hand is a lavish tasselled handkerchief, elevated to his nose to block out the stench.

 

거대한 고래 시체가 해변에 만들어낸 장관은 수많은 구경꾼들을 불러모았는데 구경꾼 중에는 마침 화구를 들고 있던 화가들도 있었으며 그들은 자리에서 직접 본 것, 그리고 맡은 것을 기록했다. 잰 샌레담(Jan Saenredam)은 1601년 12월 19일날 해변가로 쓸려온 향유고래를 그렸다. 고래는 밧줄로 묶인 채 땅에 고정되어 있었으며 바다를 등지고 배를 까뒤집었는데 더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몰려든 군중은 고래의 부풀어오른 시체 주변을 살피기도 하고 몸 위로 올라가기도 했다. 그림의 디테일은, 왼쪽으로 몸을 돌린 채 크게 벌려진 입, 안을 볼 수 있도록 갈라져 있는 등, 그 사이로 머릿카락처럼 쭈뼛쭈뼛 튀어나온 내장, 등등 당시 고래의 상태를 잘 표현해냈다. 샌레담은 고래의 입 주변에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표현해내기도 했다. 그가 그려낸 장면의 정중앙에서는 군 지휘자이자 당시 총독의 조카이기도 했던 나싸우(Nassau) 가의 백작, 어니스트 캐시미르(Ernest Casimir)가 서있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으며 그는 악취를 막기 위해 왼손에 든 고급스러운 태슬로 장식된 손수건을 코에 가져다 대고 있다.

 

The Latin verses that foot the print, written by the Dutch writer and poet Theodorus Schrevelius, evoke the fetor, reading:o

 

네덜란드의 작가이자 시인인 테오도러스 슈레벨리우스(Theodorus Schrevelius)가 그림 위에 라틴어로 적은 각주는 읽는 것만으로도 현장에 있던 악취가 떠오르도록 도와준다:

 

Its formlessness, its opening running deep into its innards,

And its mouth, from which fluid and great quantities of blood flow.2

 

그것엔 형체가 없었으며 구멍을 통해 고래 온 몸을 훑고 난 뒤,

어마어마한 양의 피와 액체들이 오갔을 입을 통해 바깥으로 뛰쳐나왔다. 

(+ 여기서의 ‘그것'이 ‘내장’인지 ‘냄새'인지 문맥 재확인 필요.)

 

In addition to the entrails that are pictured tumbling out of the whale’s mouth and back, the print exudes a foul atmosphere. Faced with the whale’s pervading stench, the Count’s handkerchief appears futile.

 

그림이 자아내는 분위기는 마치 우리에게 고래의 입과 등을 뚫고 쏟아져내린 내장으로도 아직 현장의 불쾌함을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알려주는 듯 하다. 고래가 뿜어내는 악취 앞에서는 백작의 손수건은 그저 천쪼가리에 불과해 보인다.

 

Detail from Jan Saenredam, Beached Whale at Beverwijk, 1602. Depicted is Saenredam himself sketching the whale (left), tumbling entrails, and a handkerchief to block the stench held by Ernest Casimir of Nassau-Dietz (right) — Source.

 

잰 샌레담(Jan Saenredam)이 그린 ‘Beverwijk 해변에 떠밀려온 고래'(1602)에 담겨진 디테일. 좌측앤 샌레담 본인이 고래를 그리는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그 옆에는 쏟아져내린 고래의 내장, 그리고 손수건으로 악취를 막으려고 하고 있는 어니스트 캐시미르의 모습도 묘사되어 있다. ((좌),(우)로 표기해주고 싶었는데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리…) — Source.

 

The whale was, according to Schrevelius, a monster; not only for its terrifying stature, but because it was believed to be an omen. Monsters were by definition the messengers of future catastrophes, as monstrum, monster in Latin, meant both a monster, in the modern sense, and a portent.3 The whale’s warnings manifested within days of its arrival, when there was a solar eclipse on December 24, 1601. It was followed by an earthquake nine days later, and by a lunar eclipse on June 4, 1602. The ominous events play out in the print’s heavy border.

 

슈레벨리우스는 고래를 괴물(Monster)이라고 불렀다고 알려졌는데 이는 죽어가는 고래의 끔찍한 자태뿐만 아니라 당시에 고래는 불길한 징조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는 괴물과 -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 징조를 의미하는 단어인 라틴어 monstrum에서 따온 단어 ‘Monster’의 뜻 그 자체가 미래에 찾아올 재앙들을 알려주는 메신저를 의미한다는 이유도 있었다. 고래와 함께 해변가 위로 떠밀려온 불길한 징조는 며칠 안에 그 효력을 발휘했다. 1601년 12월 24일에는 일식이 찾아왔고 9일 뒤인 1602년 6월 4일에는 월식과 함께 지진이 일어나기도 하며 그림에 그려진 현장에는 모진 일들은 하나둘씩 벌어지기 시작했다.

 

In 1618, the engraving was reworked, to illustrate another calamity that struck the Dutch Republic after the whale’s arrival. Beneath the top border, emerging from the clouds, is Death, a skeletal figure whose arrows shoot down a winged woman. The shield of three crosses identifies her as the Maid of Amsterdam. Death presided over the city in 1601–02 during an outbreak of plague, and the print suggests that the sperm whale’s arrival was its prophet.

 

1618년, 고래가 발견된 후로 새로이 벌어진 재앙을 표현해내기 위해서 위에 소개된 판화에 죽음(Death)이 구름을 뚫고 나와 날개달린 여인을 화살로 겨냥하고 있는 해골의 모습이 덧붙여졌다. 여인이 들고 있는 세 개의 십자가가 새겨진 방패를 통해 그녀가 ‘메이드 오브 암스테르담(Maid of Amsterdam)’임을 알 수 있다. 1601년에서 1602년 사이 생겨난 전염병을 통해 많은 사상자가 생겨났으며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사람들은 고래가 바로 재앙의 전조였다고 생각했다.

 

Detail from Jan Saenredam, Beached Whale at Beverwijk, 1618. This later state of Saenredam’s print adds a skeleton shooting down the maid of Amsterdam, in reference to the plague of 1601–02 — Source.

 

1618년, 새로운 판화가 덧붙여진 잰 샌레담의 ‘Beverwijk 해변에 떠밀려온 고래'의 디테일. 이 새로운 버전의 그림에는 1601년에서 1602년 사이에 떠돌아다닌 전염병을 상징하는 해골이 ‘메이드 오브 암스테르담(Maid of Amsterdam)’을 화살로 겨냥하고 있는 모습이 추가되었다. — Source.

 

Early Modern medical theory asserted that disease spread through the odours emitted from stagnating and foul matter. In the wake of another outbreak in the Dutch Republic between 1667–1669, the German polymath Athanasius Kircher’s volume about the plague, Scrutinium Physico-Medicum Contagiosae Luis, Quae Pestis Dicitur, was translated into Dutch from Latin. He reported that the causes of the plague included cadavers, foul air, and rotting whales washed up on the shores.4 Perhaps the invisible pestilential emissions from the whale could stretch further than the coast, and insidiously seep into the cities. The Count’s handkerchief takes on a new, ominous layer of significance in the second version of the print. Indeed, he holds his handkerchief against the awful smells of decay, but also as protection from the pestilential fumes.

 

일찍이 현대 의학은 질병의 근원은 바로 고래의 부패한 사체에 침체된 불결한 물질들이 방출하는 악취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았따. 1667년에서 1669년 사이에 네덜란드에서 또한번 전염병이 일자 독일의 현자, 아타나시우스 커처(Athanasius Kircher)가 전염병에 관련해 펴낸 책 Scrutinium Physico-Medicum Contagiosae Luis, Quae Pestis Dicitur’이 라틴어에서 네덜란드어로 번역이 되어 출판되기도 했다. 그는 전염병의 사유로 거리 위에 시체들, 오염된 공기, 그리고 해변에 쓸려온 채로 썩어가는 고래의 사체들을 손꼽았다. 고래에서 뿜어나오는 역병을 일으킬 수 있는 기체가 보이지 않는 채로 해변을 벗어나 서서히 도시 안으로 진입했다는 추론은 충분히 가능해보이는 가설이다. 이렇게 보면 백작이 들고 있던 손수건은 시체의 악취를 막는 것 뿐만 아니라 병에 걸리지 않도록 기관지를 막아주는 용도로도 보이는 새로운 시각이 생긴다. 

 

An Olfactory Paradox

후각적 역설

 

While the plague descended on Amsterdam, there lay an olfactory paradox deep within the whale’s bowels stranded at Beverwijk. When undigested squid beaks irritate the intestines of a sperm whale, it can produce an exceptionally fragrant substance, known as ambergris. The mass can grow over years until the sperm whale either expels it, or it ruptures the intestine, eventually breaking free from the body. The substance gradually rises to the ocean’s surface, and with exposure to salt water and sunlight, its olfactory composition changes from an abhorrent faecal stink, to the beautifully formed, alluring fragrance of ambergris.5 The grey mass of ambergris may spend years at sea before it is washed up on land, where it becomes perfectly camouflaged on a stone beach.

 

암스테르담에 전염병이 퍼져나가는 동안 Beverwijk 해변에 드러누운 고래의 뱃속 깊은 곳에선 후각적 역설(An Olfactory Paradox)이 자리잡고 있었다. 오징어의 부리가 소화되지 않은 채로 향유고래의 내장속에 남아있다면 앰버그리스(ambergris)라고 알려진 굉장히 향긋한 물질이 생길수도 있다. 이 물질이 향유고래 안에서 쌓이고 쌓이다보면 향유고래가 이를 배출하던가 아니면 결과적으로 향유고래의 소화기능을 방해해서 스스로 향유고래의 몸을 비집고 바깥으로 튀어나온다. 이 물질은 해면 위로 천천히 떠오르며 소금물과 햇빛에 노출되면서 고래의 배변에서 나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끔찍한 악취에서 점차적으로 일품인 향을 형성하게 된다. 앰버그리스를 둘러싼 회색 물질들은 땅위로 올라온 뒤로 물에 완전히 씻겨져나갈 때 까지 몇 년의 시간이 걸리며 그 때까지는 해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로 위장한채 몸을 숨기고 있다.

 

In Early Modern Europe, the source of ambergris remained an enigma. Ambergris might have been food for whales, or it was considered to have come from an underwater island, or from the mud of mountains; or it was honeycomb that had fallen from rocks by the sea, or the aromatic excrement of East Indian birds, whose diet of fragrant fruit and insects was believed to give the ambergris dung its delightful smell.6 The Wittenberg scientist Justus Fidus Klobius was partial to the avian theory, and his volume dedicated to ambergris illustrates four of the sea birds occupying a rocky landscape among the buzz of insects. A kneeling man harvests the excrement, and near the sea, another ambergris gatherer searches for further deposits. No less than eighteen hypotheses for the origins of ambergris are listed in Klobius’ volume, all of which remained inconclusive for more than a century.7

 

초기 현대 유럽에서는 앰버그리스의 출처가 수수께끼로 남아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앰버그리스가 고래가 먹는 음식이거나, 해저의 섬에서 나온 물질, 산진흙이 뭉쳐서 생겨난 물질, 동인도의 새들이 - 동인도에 거주하는 새들의 주식은 향긋한 과일과 벌레였다 - 배출한 향기로운 배설물, 등등 다양한 가설들을 떠올리며 그 출처를 궁금해했다. 비텐베르크(Wittenberg)의 과학자 저스터스 클로비우스(Justus Fidus Klobius) 마저 앰버그리스의 출처를 동인도의 새라고 보는 편이었으며 앰버그리스를 다룬 그의 저서에는 네 종류의 바다새가 바위들로 이루어진 지역에 앉아있는 그림이 싣기도 했다. 무릎을 꿇고 있는 남성은 새들의 배설물들을 받고 있으며 그림의 배경 뒤쪽을 보면 또다른 사람이 혹시 놓쳤을지도 모르는 배변을 찾아다니고 있다. 클로비우스의 저서에는 앰버그리스의 출처를 두고 열여덟개 이상의 가설을 내놓고 있는데 그 중 하나도 한 세기 이상이 흐르는 시간 동안 이렇다 할만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The excrement of an East Indian bird, which was once believed to be ambergris, is collected in a bowl. An illustration from Justus Fidus Klobius's Ambræ historiam (1666) — Source.

 

그림에서는 한 때 앰버그리스라고 추정되던 동인도의 새의 배설물을 받기 위해 바구니를 들고 기다리는 남성이 보인다. 저스터스 클로비우스의 저서, ‘Ambræ historiam’(1666)에 실린 그림. — Source.

 

Great fortune came to those who discovered ambergris. Georg Eberhard Rumphius, a botanist working for the Dutch East India Company (VOC), describes encountering an unimaginably large piece in his book on natural history. Towering at nearly six feet, the lump was acquired by the Amsterdam chamber of the VOC in 1693 from the King of Tidore (the Moluccas), fetching an estimated 116,400 gilders, roughly €1.13 million today.8 The accompanying illustrations make no allusions to its potent fragrance, but they keenly observe the ambergris’ craggy, marbled, sinuous topography.

 

앰버그리스를 발견한 자들에게는 많은 돈이 주어졌다. 동인도에 위치한 네덜란드계 회사(VOC)에서 근무를 하던 식물학자, 죠그 룸피우스(Georg Eberhard Rumphius)는 자연의 역사를 담은 본인의 저서에 거대한 크기의 앰버그리스를 마주친 경험을 적어놓았다. 1.8미터 정도 되는 크기의 이 커다란 앰버그리스는 1693년, 티도레 섬(몰레카 제도)의 왕에게 현대 돈으로 치면 1,130,000유로 정도의 가치가 되는 돈을 지불한 뒤에 VOC의 암스테르담 지부에서 보관을 맡았다. 밑에 첨부된 그림은 당시 앰버그리스에서 피어나는 향기를 담아내지는 못하지만 앰버그리스의 딱딱하면서도 부드러운, 물결 모양의 외형을 잘 묘사했다.

 

Illustrations of the ambergris bought by the Dutch East India Company, from Georg Eberhard Rumphius's D’amboinsche rariteitkamer (1705) — Source.

죠그 룸피우스의 책 ‘D’amboinsche rariteitkamer’ (1705년)에 실린 VOC가 구매한 앰버그리스의 삽화  — Source.

Ambergris was often acquired out of a desire to fragrance and flavour. It graced the breakfast table of Charles II, King of England, where it was scattered on scrambled eggs up until his death in 1685, when the potency of the seasoning masked the suspect poison that allegedly killed him. Half an ounce of finely grated ambergris constitutes the Dutch recipe for Amber-Podding, a hedonistic potpourri of lard, almonds, sugar, white bread, musk (a fragrant secretion from the musk deer), and orange blossom water, cooked with the ambergris in pig’s intestine.9 In addition to flavouring food, the substance impregnated leather goods, to sweeten the foul residues from the tanning process. In Saenredam’s scene, the visitors who spectated the beached sperm whale at Beverwijk are warmed by leather gloves and fur muffs, which probably lingered with the scent of ambergris. Standing before the beached whale, the visitors come face-to-face with their decomposing perfumer.

 

보통 앰버그리스는 그 특유의 향과 맛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영국의 왕 찰스 2세의 아침상에도 스크램블 에그 위에 뿌려진 채로 많이 오르기도 했는데 풍문에 따르면 앰버그리스의 향 때문에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독의 냄새를 맡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굉장히 얇게 갈린 앰버그리스 15그램 정도 Half an ounce of finely grated ambergris constitutes the Dutch recipe for Amber-Podding, a hedonistic potpourri of lard, almonds, sugar, white bread, musk (a fragrant secretion from the musk deer), and orange blossom water, cooked with the ambergris in pig’s intestine. 앰버그리스는 식재료로 쓰이는 용도 말고도 가죽이 햇빛에 닿을 때 쉽게 변색하지 않을 수 있도록 코팅을 씌어주기도 한다. 샌레담이 그린 장면을 보면 향유고래를 보기 위해 현장을 찾은 많은 사람들이 장갑, 머플러 등등 주로 가죽이나 동물의 모피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사람들은 고래가 그 자리에서 뿜어내는 앰버그리스 향수를 현장에서 자신들의 옷가지 위에 묻히고 싶었던 것이다.

 

Spectators dressed in leather gloves and a fur muff, typically scented with ambergris. Detail from Jan Saenredam, Beached Whale at Beverwijk, 1602 — Source.

가죽과 모피 재질의 옷을 입고 몰려든 구경꾼들의 모습. 잰 샌레담의 ‘Beverwijk 해변에 떠밀려온 고래'(1602년)에서의 디테일. — Source.













The potency of ambergris was thought to make it resistant to maladies. Early Modern medical theory asserted that while malodorous matter could harbour disease, fragrant substances could protect the body. Ambergris is included in incense recipes to fumigate the home, and added to decoctions of sweet waters, to rid the body of pestilence. One of the most beguiling pieces of plague protection is the pomander, a pendant that held fragrance. The name comes from the Latin pomum ambrae, apple of ambergris, as a primary component in the pomander’s composition was the sperm whale’s perfume. Various scented balms were once stored in the six compartments of this luxurious silver segmented pomander. Ambergris probably mingled with cinnamon, rosemary, cloves, and other aromatics. Some pomander recipes called for amber, the fossilised tree resin that was distinct from ambergris, but whose fragrance was also associated with warding off disease.10 To the Early Modern nose, ambergris was one of the defining scents of plague protection. The rotting cadaver in Saenredam’s print illustrated the source of Amsterdam’s troubles, and, paradoxically, deep within its bowels, where fragrant ambergris dwelled, was its solution.

 

앰버그리스는 질병으로부터의 면역력을 길러줄 수 있다고도 여겨졌다. 초기 현대 의학계는 고래에서 뿜어내는 악취가 인간의 신체에 병을 일으킬 수 있는 동시에 앰버그리스에서 나오는 물질은 반대로 신체를 보호해준다고 주장했다. 앰버그리스는 집에서 뿌리는 용도의 향수 안에도 들어갔으며 병을 이겨내기 위한 용도로 사람들은 물에 섞어 마시기도 했다. 앰버그리스를 이용해 병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 중 가장 매력적인 것은 다름아닌 포맨더(pomander, 향을 품고있는 펜던트 형태의 물체)였다. 포맨더의 이름은 앰버그리스의 사과향이라는 뜻의 라틴어 ‘pomum ambrae’ 에서 따왔으며 실제로 포맨더의 가장 주요 부분을 차지하는 원료는 향유고래 속에서 나오는 향수였다. 이 은으로 만들어진 호화스러운 포맨더 안에는 다양한 향기를 담은 연고 형태의 물체가 총 여섯 부분에 나뉘어져 들어있었다. 아마 그 안에 앰버그리스는 시나몬, 로즈마리, 클로브, 그리고 다른 향료들과 섞여있었을 테지만 어떤 포맨더는 앰버그리스 대신에 화석화된 나무에서 나오는 송진과 같은 앰버(amber)를 넣기도 했는데 기능적으로 병을 예방시켜준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샌레담의 그림에 묘사된 썩어가는 고래의 사체는 당시 암스테르담이 겪어야만 했던 문제를 보여준 동시에 그 몸 안에 향기로운 앰버그리스가 숨어있는 깊숙한 곳에서는 또 역설적으로 문제의 해결책이 떡하니 있었던 것이다. 

 

Silver Dutch pomander engraved with birds perched on foliage (ca. 1600–25). All of the segments containing fragrance can be opened — Source.

은으로 장식된 네덜란드의 포맨더(1600-1625년경 추정). 각각 다른 향이 담겨있는 부분들은 따로따로 열릴 수 있었다. — Source.

Smeared Oils on a Flat Surface

평면 위에 펼쳐진 고래 기름

 

Some decades after the beached whale foretold the fate of Amsterdam, visitors in the city came to admire the latest works by Rembrandt van Rijn in his studio. As Rembrandt’s biographer Arnold Houbraken recounts, when visitors edged closer to the paintings, the artist pulled them away, saying, “The smell of the paint would irritate you”.11 Oil paint combines pulverised pigments with linseed oil, a sharp-smelling binding medium which is extracted from pressed flax seeds. The compound produces a wonderfully supple and jewel-like paint that can achieve fine details and varying textures. In Rembrandt’s self-portrait, he does not use oil paint sparingly, but practically sculpts with it. He smears out flesh-coloured oils to construct his nose, and in order to evoke the folds of his headpiece, he scrapes out lines of blue and yellow paint revealing the dark ground beneath. In the studio, the odour of linseed oil must have been a disruptive force, and Rembrandt used it to persuade his visitors to distance themselves from the painting, to best behold the rough, impasto slicks of paint. The painting has retained most of its lustre, but the odour, in time, has faded.

 

암스테르담의 불길한 징조를 가져다 준 고래가 해변에 쓸려온지 몇 세기가 지난 후 몇몇 사람들이 렘브란트의 최근 작품들을 확인하기 위해 그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당시 렘브란트의 전기를 도맡아 기록하던 아놀드 휴브라켄(Arnold Houbraken)의 말에 따르면 방문객들이 그림에 점점 다가가려하자 화가는 그들에게 그림에서 떨어지라고 하며 “그림에서 나는 냄새가 작품 감상을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유화에는 가루로 분화된 아마인유(linseed oil, 페인트가 잘 섞일 수 있도록 사용하는 아마씨를 짜서 나온 기름)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 덕에 상당히 호화스러운 가치를 지닌 그림 속에 세세한 디테일과 다양한 질감을 살릴 수 있었다. 렘브란트가 자화상을 그릴 때 그는 기름을 골고루 사용하는 대신 거의 기름으로 페인트를 굳혀가며 거의 조각을 하듯이 작업을 진행했다. 그는 코를 만들기 위해 살색 기름을 겹겹이 발랐으며 얼굴에 튀어나온 부분들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파란색과 노란색 물감을 사용해 그 밑에 그늘진 부분들을 살려주었다. 아마인유에서 흘러나오는 냄새로 가득찬 그의 작업실은 꽤나 불쾌했을 것이며 렘브란트는 그 점을 이용하여 그를 방문한 사람들로 하여금 페인트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의 작품들이 당시에 지녔던 강렬한 인상은 현재까지도 보존되어 왔지만 작품에서 풍기던 냄새는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졌다. 

 

Rembrandt van Rijn, Self-Portrait, 1669 — Source.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의 자화상(1669년)— Source

Rembrandt van Rijn’s headpiece is created with thick applications of oil paint. A detail from Rembrandt van Rijn, Self-Portrait, 1669 — Source.

렘브란트의 두상에 파란색, 노란색 물감과 함께 깊이가 표현된 부분 — Source.

 

To truly triumph over the odour of paint, it was believed that an artist needed to create works that captivated the viewer, so much so that the studio’s astringent atmosphere was rendered imperceptible. Almost twenty years before Houbraken wrote about Rembrandt’s studio, the artist and critic Roger de Piles remarked that a poor work would, “smell always of the Pallet”.12 If a work of art did not do enough to stimulate the viewer’s imagination, the scents of reality would creep in, and the painting was reduced to some smeared oils on a flat surface. But perhaps De Piles’ aphorism came with exceptions. An encounter with a still life of rotting fruit may not have drawn the viewer’s attention back to the studio. Rather, through the odour of glistening oil, their imagination could be roused, and the sharp scent of rot brought to life.

 

당대 사람들은 작가가 그림이 풍기는 냄새를 진정으로 극복하기 위해서 그의 그림이 보는 이들이 환경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그들의 시선을 완벽하게 사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Almost twenty years before Houbraken wrote about Rembrandt’s studio, the artist and critic Roger de Piles remarked that a poor work would, “smell always of the Pallet”.12 작품이 감상자의 상상력을 충분히 자극시키지 않는 순간 현실의 냄새가 풍길 것이며, 그럴 경우에 작품은 단순히 냄새나는 기름을 덕지덕지 발라놓은 캔버스로 전락해버릴 것이다. But perhaps De Piles’ aphorism came with exceptions. An encounter with a still life of rotting fruit may not have drawn the viewer’s attention back to the studio. Rather, through the odour of glistening oil, their imagination could be roused, and the sharp scent of rot brought to life.







An abundance of scents could be discerned in paintings. With microscopic precision, artists depicted the materiality of the Dutch Republic’s exhaustive inventory. Allusions to odours can be seen through landscapes, grand history paintings, scenes capturing daily life, and portraits. They are diffused from little coal fires and bubbling pots, humorously excreted, and exuded from stagnating matter. Scattered among artworks is the paraphernalia devoted to fragrance: clay pipes, snuff boxes, pomanders, chatelaines, sweet bags, nutmeg graters, incense burners, teapots, apothecary jars, fans, gloves, and illustrious fragranced centrepieces. In Saenredam’s print, it was the whale’s spilling guts and the Count’s handkerchief that inferred an odorous atmosphere. Through recording the visual in works of art, the olfactory was made known, and the viewer’s imagination was stirred.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풍부한 냄새를 인식할 수 있다. 당대 화가들은 굉장히 정밀한 표현들을 통해 너무 과도하게 물질주의적인 사회로 변질된 네덜란드 사회를 표현해냈다. 냄새는 풍경화, 역사적인 순간, 일상을 담아낸 장면들, 그리고 초상화, 등등 다양한 형태로 그림 속에서, 그리고 밖에서 활개쳤다. They are diffused from little coal fires and bubbling pots, humorously excreted, and exuded from stagnating matter. 이와 같은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림 곳곳에는 포맨더, 스너프 박스(snuff box), 피우는 향, 장갑, 등등 향과 관련된 물품들(*퇴고시 유의: 향과 관련된 물품들이 아니라 “실제 배경에 존재했을 향을 떠올리게끔 하는 물품들”이 더 맞을 듯!)이 많이 그려져 있었다. 샌레담의 그림에서는 내장이 터져나온 고래의 복부와 백작이 쥐고있는 손수건이 이러한 역할을 해주었다. 물론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시각적인 순간을 기록하는 것임에도 화가들은 여러가지 장치들을 통해 그 안에 후각적인 요소가 존재함을 분명히 했고 이를 통해 감상자의 상상력은 자극되었다. 

 

A Bone on a Building

벽에 걸린 고래 뼈

 

The whale trail concludes at the Town Hall of Amsterdam, rendered precisely by Pieter Saenredam, whose father Jan had witnessed the monstrous whale at Beverwijk more than half a century earlier. Although the Town Hall had burned down years ago (Rembrandt drew its smouldering ruins), Saenredam painted the scene from memory, using some of his earlier sketches to detail the pastel structures with tufts of weeds, crumbling stonework, and idly swaying shutters, as well as little figures wandering down the street and resting beneath the arcade. It is on the arcade of the vierschaar, the High Court of Justice, that a thick bowed whale rib can be seen shackled above the left arch. The source of the rib is unknown, however it was already fastened to the façade when Jan Saenredam beheld the stranded sperm whale in 1601.13 Even before the whale landed at Beverwijck, the monsters had made an impression on Amsterdam.

 

어느 날 해변으로 떠밀려온 고래로 시작한 이 이야기는 암스테르담 시청에서 마무리를 짓는다. 반세기 전에 이미 고래를 직접 마주한 경험이 있는 아버지를 둔 피터 샌레담(Pieter Saenredam)은 굉장히 세밀하고 정교하게 시청을 캔버스 위에 묘사했다. 시청은 불길에 휩싸여 사라진지 몇 년이 지났지만(무너진 시청의 잔해들은 렘브란트가 그렸다) 다행히도 피터는 머릿속으로 기억하던 시청의 모습과 모아뒀던 스케치들만을 이용하여 벽에 피어오른 식물, 건물의 어느 부분에 금이 갔는지, 그늘진 통로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등등을 완벽하게 재현해낼 수 있었다. 아치형으로 열린 공간이 딸린 통로들 중 자세히 보면 왼편에 있는 어느 문 위에는 고래의 갈비뼈가 묶여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갈비뼈의 출처가 정확하게 밝혀져있지는 않지만 잰 샌레담이 해변에서 고래를 그리기 이전부터 이미 걸려있던 것 만큼은 확실하다. 고래가 Beverwijck의 해변으로 떠밀려오기 전부터 암스테르담 사람들은 이미 고래를 괴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Pieter Jansz. Saenredam, The Old Town Hall of Amsterdam, 1657 — Source.

피터 샌레담(Pieter Jansz. Saenredam)의 암스테르담의 구시청(The Old Town Hall of Amsterdam, 1657)Source.

The whale rib is suspended from a chain over the arcade of the High Court of Justice. Detail from Pieter Jansz. Saenredam, The Old Town Hall of Amsterdam, 1657 — Source.

왼편 위쪽에 보면 벽에 고래 갈비뼈가 걸려있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 샌레담의 그림에서 따온 디테일. — Source.


















Whale bones could often be found prominently displayed on public buildings. In 1577 the tail and lower jawbone from a stranding of sperm whales were hung in the hall of the High Court of Holland in The Hague, as an eternal memorial.14 And when the merchant Jan Huyghen van Linschoten returned from his voyage to Nova Zembla in 1596, he presented a whale’s jawbone to the City Hall of Haarlem, to display and commemorate the curiosity.15 While the whales had gone through a lengthy process to be stripped of their former selves, their bodily presence could remain through residual visceral odours. The skeleton of a whale that landed in Livorno in 1549 was displayed in the Loggia dei Lanzi in Florence. However it was not long before the display had to be dismantled. Within the bones, the marrow had advanced its decay, and it exuded an intolerable stench.16 Whalers in the seventeenth century attempted to moderate the smell by drilling holes in the bones to drain it of fluids, but with little success.

How the whale rib must have roused the imagination, to dwell on the beast that swallowed Jonah, to marvel over the vastness of God’s creation, or to conceive of the thrashing creatures that the whalers harpooned in the Northern settlement of Spitsbergen. So too might it have conjured up stories of the strandings on Dutch shores. Were the bone at the Town Hall to emit the scent of decomposition — for sources withhold the details — the mind’s eye of the beholder could restore flesh to the whale, and drift in thought to the beach where its counterparts decomposed.

 

고래뼈가 공공기관의 벽에 위풍당당한 자태로 걸려있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해서 1577년, 홀란드의 중앙법원의 법정의 천장에는 고래의 꼬리뼈, 그리고 턱뼈가 걸려있기도 했다. 한 번은 잰 린쇼텡(Jan Huyghen van Linschoten)이라는 이름의 상인이 1596년에 노바 젬블라(Nova Zembla)로의 원정을 다녀온 뒤 인간의 호기심을 상징하며 축복하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네덜란드의 하를럼(Haarlem) 시청에 고래 턱뼈를 바치기도 했다. 물론 고래들은 긴 시간을 통해 살점이 뜯겨나가고 몸이 썩어가는 과정을 견뎌야 했겠지만 그럼에도 남아있는 뼈대에는 선명했던 현장의 냄새가 남아있었다. 1549년 리보르노(Livorno)에 떠내려온 고래의 뼈대는 플로렌스의 로기아 데 란지(Loggia dei Lanzi) 박물관에 전시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뼈는 엄청난 악취를 풍기기 시작했다. 17세기의 고래잡이들은 안에 있는 액체를 빼내기 위해 뼈에 구멍을 뚫어보기도 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How the whale rib must have roused the imagination, to dwell on the beast that swallowed Jonah, to marvel over the vastness of God’s creation, or to conceive of the thrashing creatures that the whalers harpooned in the Northern settlement of Spitsbergen. So too might it have conjured up stories of the strandings on Dutch shores. Were the bone at the Town Hall to emit the scent of decomposition — for sources withhold the details — the mind’s eye of the beholder could restore flesh to the whale, and drift in thought to the beach where its counterparts decomposed.

 

Lizzie Marx is a History of Art PhD Candidate at Pembroke College, University of Cambridge, where she explores the visualization of smell and its meanings in seventeenth-century Dutch art. In 2018–2019 she was an Andrew W. Mellon Fellow at the Rijksmuseum, and she is the Research and Exhibition Assistant of Fleeting – Scents in Colour, an exhibition at the Mauritshuis on smell in seventeenth-century art, and co-author of the exhibition publication.

 

리지 맑스(Lizzie Marx)는 캠브리지 대학의 부속학교인 펨브로크(Pembroke) 대학에서 예술사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녀의 주요 관심사는 17세기 네덜란드 예술계에 있었던 후각의 시각화와 그 의미를 파악하는데 있다. 2018년에서 2019년 사이에 그녀는 앤드류 W. 멜론 (Andrew W. Mellon) 선임 연구원 자격으로 리직스 박물관(Rijksmuseum)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더불어 그녀는 ‘플리팅  - 색 안에 냄새 (Fleeting - Scents in Colour)에서 연구와 전시보조를 맡고 있기도 하며 전시 기획과 내용을 담은 책을 출판한 공동저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