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8: 리차드 코넬, "가장 위험한 사냥감" (완)

2021. 7. 25. 16:50번역/문학 (소설)

가장 위험한 사냥감


글쓴이ㆍ리차드 코넬
번역ㆍ오성진

 

(표지 사진 출처 / 본문 사진 출처)

 

Part 4

 

자로프 장군은 방금 한 말은 잊어달라는 듯이 손짓을 하며 말을 건넸다. “아이반이 선생님께 사냥 복장과 음식, 그리고 칼을 챙겨드릴 것입니다. 모카신 재질의 신발을 신으시는 것을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그래야 자국이 덜 남게 될 테니까요. 섬의 동남쪽에 위치한 큰 늪지대도 피하시는 편이 좋을 거예요. 저희끼리는 ‘죽음의 늪’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거기 일대가 퀵샌드거든요. 한 번은 어느 바보 같은 놈이 말을 안 듣고 그 쪽으로 간 적이 있습니다. 근데 슬프게도 라자루스가 그 놈을 따라갔죠. 선생님이라면 제 심정을 이해하실 수 있을겁니다. 저는 라자루스를 매우 사랑했거든요... 무리에서 가장 괜찮은 사냥견이었죠... 자, 그럼 이제 저도 이만 실례해야 겠습니다. 저는 점심을 먹고나면 항상 저만의 시에스타 시간을 챙기거든요. 한 번 나가시면 낮잠 잘 시간도 없겠지만 아마 당장이라도 시작하고 싶으시겠죠. 저는 해가 질 때 까지 선생님을 따라가지 않겠습니다. 낮에 하는 사냥보다 밤에 즐기는 사냥이 훨씬 더 재미있는 법이거든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무튼 안녕히 가십시오, 선생님. 또 뵙겠습니다.” 자로프 장군은 허리를 숙여 진심이 묻어나는 인사를 건네고는 문을 열어 방을 나갔다.

 

곧이어 다른 문이 열리면서 아이반이 나타났다. 그는 한 쪽 팔 밑으로 카키색 사냥복, 음식이 담긴 잡낭, 길쭉한 사냥용 칼이 담긴 가죽으로 된 칼집을 들고 있었고 그의 오른손에는 이미 장전이 되어있는 리볼버가 쥐어져 있었다.

 

레인스포드는 두 시간 가까이 수풀사이를 헤쳐나갔다. “머리야 돌아라, 머리야 돌아라,” 그가 이를 앙 다문 채 읊조렸다.

 

그의 뒤로 저택의 철창문이 기분 나쁜 쇠소리를 내며 바닥을 내리찍을 때만 해도 레인스포드는 넋이 나간 채로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그는 무조건 자로프 장군과 자신 사이에 거리를 최대한 넓혀보겠다는 심산이었고, 오로지 그 생각만으로 지금까지 도무지 패닉 말고는 다른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에 젖은 상태로 달리고 또 달리고 있던 것이었다. 마침내 제정신으로 돌아오자, 레인스포드는 제자리에 멈춰 서서 지금 그가 처한 상황을 찬찬히 파악해 보았다. 우선 안전하게 섬을 탈출하는 계획은 - 결과적으로 날카로운 암초가 잔뜩 숨어있는 바다를 뚫고 나가야 한다는 뜻이었기 때문에 - 소용이 없어 보였다. 그가 사진 속에 갇혀 있다면 그 사진은 바다라는 액자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 말은 즉슨 해결책은 사진 안에서 찾아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발자국… 따라올만한 발자국을 실컷 만들어주지,” 라고 속삭인 레인스포드는 지금껏 걸어온 수많은 자국들이 복잡하게 엮인 길 대신에 아무 자국도 아직 새겨지지 않은 깨끗한 야생의 땅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그는 발자국을 이용해 정교하게, 그리고 치밀하게 반복되는 경로를 지어냈다. 한 번 가짜 경로를 지어낸 뒤에는 같은 과정으로 다른 곳에도 경로를 만들기를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동일한 작업을 반복하면서 그는 여우사냥에 대해 흘려들은 정보들을 떠올렸다, 가짜 발자국 길을 만들고 사냥꾼이 헤매는 사이에 풀쩍 도망가버리는 여우의 이야기를 말이다. 밤이 찾아오자 그의 다리는 부들부들 떨려왔고 그의 손과 얼굴에는 나뭇가지들에 긁힌 자국들로 가득했다. 밤중에는 작은 실수라도 매우 치명적일 것이란 사실이 명백했기 때문에 레인스포드는 주변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의 몸은 필연적으로 휴식을 필요로 하고 있었던 그는 ‘여우 역할을 수행했으니 이제는 동화속 고양이를 따라해볼 차례인가’라고 생각했다. 두꺼운 몸통, 넓게 퍼진 갖가지 가지들이 자라난 거대한 나무가 가까이에 있었다. 일말의 흔적이라도 남기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레인스포드는 나무를 타고 올라 나무 가랑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팔다리를 넓게 늘리고는 몇 번의 노력으로 대충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휴식을 취하는 동안 그는 자신감과 함께 심리적 안정감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로프 장군처럼 열정적인 사냥꾼이라도 나를 찾아낼 순 없을거야, 그가 스스로에게 되뇌였다. ‘오직 악마만이 어둠 속에서 내가 만든 복잡한 미로를 뚫을 수 있을거야. 그치만 어쩌면 장군이 악마 그 자체일지도 몰라…’

 

위협적인 공기로 그득한 밤은 부상을 입은 뱀처럼 불안정적으로 흘러갔고 레인스포드는 쉽게 잠에 들 수가 없었다. 아침이 다가오면서 칙칙한 회색 구름이 하늘을 덧칠하고 있었다. 때마침 놀란 새소리가 들렸고 레인스포드는 온신경을 그 방향에 집중했다. 무언가 덤불숲 사이를 뚫고 천천히, 그리고 매우 조심스럽게 레인스포드가 걸어온 복잡하게 얽힌 길을 걸어오고 있었다. 레인스포드는 최대한 자세를 낮춰 나뭇잎 사이에 얼굴을 가리고 주변을 둘러보았고 끝내 발견하고야 말았다. 그를 향해 다가오는 것은 한 남자의 실루엣을! 

 

형상의 정체는 자로프 장군 이었다. 장군은 앞에 놓인 땅에 시선을 고정시켜놓고 그가 지닌 집중력을 발휘하며 한 발 한 발 침착하게 걷고 있었다. 레인스포드가 숨어있는 나무 굉장히 가까이에 다가온 장군은 걸음을 멈추고 한 쪽 무릎을 꿇고 땅을 탐색했다. 이 때 레인스포드의 머릿속에는 팬서처럼 뛰어내려 장군을 덮쳐버리는 계획이 떠올랐지만 장군의 오른손에 쥐어진 은색의 작은 자동권총이 눈에 들어왔다. 

 

사냥꾼은 굉장히 헷갈린다는 듯이 머리를 몇 번 가로 저었다. 그러고는 케이스에서 검은색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는데 담배연기에 묻어나는 진한 향수냄새가 레인스포드의 코를 찔렀다. 

 

레인스포드는 입을 틀어막고 숨을 참았다. 장군의 시선은 땅바닥을 떠나 조금씩 조금씩 나무를 따라 올라가고 있었다. 장군을 덮치기 위해 뛰어내릴 준비를 마친 레인스포드는 자리에 그대로 얼은 채, 모든 근육이 아플 정도로 긴장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장군의 날카로운 시선은 레인스포드가 숨어있는 나무 가랑이 바로 밑에서 멈추었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소름을 돋게 할만한 괴기스러운 미소가 장군의 갈색 얼굴 위에 퍼졌다. 장군은 의도가 명백한 도넛 모양의 담배연기를 위로 날려 보냈다. 이후 장군은 뒤를 돌아 조심성 없는 동작으로 그가 왔던 길을 따라 그대로 돌아갔다. 장군의 사냥화가 만들어내는 부스럭 소리는 조금씩 조금씩 멀어져갔다. 

 

한동안 참느라 뜨거워진 공기가 레인스포드의 폐밖으로 뛰쳐나왔다. 처음으로 그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레인스포드를 벙찌게 만들었다. 장군은 정글의 밤에도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었다, 아무리 어렵게 경로를 꼬아놓더라도 장군에게는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레인스포드는 장군에게는 분명 초인적인 능력이 있는 것이 분명했고 그가 사냥감을 놓칠 확률은 굉장히 낮을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두 번째로 레인스포드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훨씬 더 끔찍했다. 너무도 끔찍해서 그의 온몸에 차가운 소름이 뻗치게 만들 정도였다. 장군은 왜 웃었을까? 그는 왜 왔던 길을 되돌아갔을까?

 

레인스포드는 지금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단순한 오해였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랬지만 진실은 자욱한 안개를 걷어내고 천천히 올라오고 있는 저 태양처럼 단순명료했다. 장군은 그를 가지고 놀고 있었던 것이다. 장군은 하루 더 그가 좋아하는 스포츠를 즐기기 위해 그를 살려준 것 뿐이었다. 카자흐스탄 출신의 퇴역군인은 고양이었고 레인스포드는 생쥐였던 꼴이었다. 이 생각이 퍼지자 그는 마침내 진정한 공포의 의미가 무엇인지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머리야, 돌아라. 머리야.”

 

나무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온 레인스포드는 다시 숲속으로 달려들어갔다. 그의 얼굴엔 비장미가 퍼져있었고 그는 온 신경을 곤두세워 두뇌를 활성화시켰다. 그가 숨고 있던데서 삼백 야드 정도 떨어진 곳, 그는 이미 죽어버린 커다란 나무가 굉장히 위험한 자태로 아직 생명력이 남아있는 작은 나무에 기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레인스포드는 음식이 담긴 짐가방을 던져버리고 칼집에서 칼을 꺼내 온 힘을 다해 작업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작업을 끝마친 남자는 백 피트 정도 떨어진 곳에 썩어 문드러진 통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오랜 시간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고양이가 다시 한 번 생쥐와 놀기 위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확신이 잇따른 발걸음과 숨소리의 자로프 장군은 여유로이 레인스포드가 남겨놓은 자국을 따라 현장을 찾아왔다. 무언가를 찾고자 하는 장군의 검은 눈동자를 피할 수 있는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보였다. 잡초가 부러진 흔적도, 작은 나뭇가지가 꺾인 흔적도, 이끼에 묻어난 작은 흔적도, 그 어떤 흔적도 장군의 망을 피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더더욱이 레인스포드가 설치해둔 장치는 장군이 발견하기 전에만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었다. 장군의 발이 덫의 방아쇠 역할을 해줄 나뭇가지에 닿았다. 하지만 나뭇가지에 발이 닿으면서 위험을 직감한 장군은 원숭이처럼 재빠른 동작으로 뒤로 피했다. 간발의 차이로 장군의 반응속도가 조금 늦었던 탓일까, 가여운 나무에 기대 서있던 죽은 나무가 장군을 향해 돌진했고 장군의 어깨에 제대로 한 방 먹이는데 성공했다. 장군이 조금만 더 늦었다면 아마 지금쯤 장군은 나무에 깔린 채 압사당했을 것이었다. 장군은 휘청거리면서도 결코 무너지거나 권총을 손에서 놓치는 일이 없었다. 장군은 다친 어깨를 문지르며 그 자리에 가만히 선 채로 쩌렁쩌렁한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정글 전체에 울리고 있는 장군의 웃음소리에  다시금 두려움으로 차오른 레인스포드의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레인스포드 선생님,” 장군이 불렀다, “제 목소리가 닿는 곳에 계시다면, 물론 계시겠지만, 대단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여태껏 말레이 방식의 사람 덫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을 많이 보지 못했거든요. 저 또한 말라카 지역에서 사냥을 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운이 좋았죠. 레인스포드 선생님, 선생님과의 게임은 갈수록 흥미로워지는군요. 저는 이제 상처 위에 드레싱을 해보러 돌아가봐야 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굉장히 작은 상처라 금방 돌아올 수 있을 겁니다.”

 

장군이 자신의 다친 어깨를 살피며 돌아가고 난 뒤에 레인스포드는 바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마냥 절박한 그는 몇 시간 동안이나 희망이 보이지 않는 여정을 걸었다. 해가 지고 사방이 다시 어두워졌지만 그는 묵묵히,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그의 모카신화로 밟는 땅이 조금씩 약해지는 게 느껴졌고 주변 숲은 전보다 심한 악취를 풍겼으며 공기 또한 한 층 더 두꺼워지고 있었으며 수많은 벌레들은 온힘을 다해 레인스포드의 살을 갉아먹었다.

 

그 때였다. 그가 한 발짝 더 내밀자 마침내 그의 발이 걸쭉한 진흙 속에 빠졌다. 레인스포드는 바로 발을 빼내보려고 했지만 진흙은 커다란 거머리처럼 그의 발을 빨아들이려고 하고 있었다. 갖가지 노력을 다 한 후에야 겨우 두 발을 진흙에서 뽑아낸 레인스포드는 그가 지금 어느 장소에 서있는지 알 수 있었다. 바로 퀵샌드로 가득하다던 악명 높은 “죽음의 늪”에 도달한 것이었다.

 

그의 두 손은 마치 어둠 속에서 누군가 그가 쥐고 있는 신경을 낚아채가려는 것 처럼 꽉 닫혀있었다. 점도 높은 땅의 상태를 떠올리며 레인스포드의 머릿속엔 생각이 떠올랐다. 레인스포드는 퀵샌드에서 십 피트 남짓 물러난 뒤에 마치 선사시대의 거대 비버 마냥 땅을 파기 시작했다.

 

일전에 레인스포드는 프랑스에서 일 초라도 느리게 움직여도 바로  죽을 수 있는 상황 속에서 땅을 파본 적이 있었다. 점점 더 깊어지던 구덩이의 구멍이 그의 어깨선 보다 높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레인스포드는 구덩이를 빠져나와 나무가지들을 모아 끝이 창촉처럼 날카로워 질 때까지 정성스레 깎았다. 그 후 레인스포드는 뾰족한 부분들이 위로 향하게끔 구덩이 바닥에 나무 촉들을 설치한 뒤에 떨리는 손으로 허겁지겁 잡초와 가지들을 묶어다가 구덩이의 도입부를 가리기까지 마쳤다. 땀에 흠뻑 젖고 찌르는 듯한 피로로 고통을 느끼던 레인스포드는 벼락맞은 한 나무의 그루터기 뒤에 몸을 웅크리고 숨었다. 

 

레인스포드는 그를 쫓고 있는 남자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흐물거리는 바닥 위에 찰팍대는 소리도 들었으며 밤바람에 이끌려온 장군의 담배연기에 섞인 향수 냄새도 맡을 수 있었다. 레인스포드는 장군이 다른 때와 달리 유난히 빠르게 걸어오고 있다고 느꼈다, 장군의 발자국 소리에서 조심성이라고는 찾기 힘들었다. 나무 뒤에 웅크리고 있던 레인스포드의 위치상으로는 장군도, 구덩이 함정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매초 마다 일 년이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나무가지들이 날카롭게 꺾이면서 구덩이가 열리는 소리를 듣자 레인스포드는 희열에 가득 찬 함성을 지르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했다. 날카로운 나무창에 표적물이 닿으면서 덫에 걸린 대상이 내지르는 비명소리도 잇따랐다. 레인스포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보기 위해 숨고 있던 곳에서 뛰어나가자마자 바로 뒷걸음질을 쳐야만 했다. 구덩이에서 삼 피트 정도 떨어진 곳에는 한 남자가 서있었고 그의 손에는 손전등이 들려있었다. 

 

“대단하십니다, 선생님,” 장군의 목소리가 레인스포드를 향해 울렸다. “선생님께서 만드신 버마식 호랑이 덫이 제 개중 가장 괜찮은 놈 한 마리를 물어갔군요. 다시 한 번 선생님께서 이기셨습니다. 자, 그럼, 제가 데려온 개들 전부와 함께 계실 때는 얼마나 잘하는지 보고 싶어지는군요. 저는 이만 쉬러 들어가보겠습니다. 가장 즐거웠던 밤을 선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동틀 녘이 되자 늪 주변 나무 위에서 누워있던 레인스포드의 귓속으로 아직 그에겐 두려움에 대해 새로이 배울만한 것이 남아있음을 인지시켜주는 소리가 들려왔다. 굉장히 동떨어진 곳에서 나는 소리였지만 레인스포드는 본능적으로 소리의 출처가 자로프 장군이 풀어놓은 사냥개들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레인스포드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쥐어졌다. 첫 째는 제자리에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자살행위였다. 두 번째로는 도망치는 옵션이 있었는데 이 선택지는 단순히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늦춰줄 뿐이었다. 잠시동안 그는 제자리에 서서 생각에 잠겼다. 문득 발칙한 상상이 그의 머릿속을 방문해주었고, 레인스포드는 벨트를 조이면서 늪에서 떨어진 곳으로 걸어갔다.

 

사냥개들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는 더, 더, 더, 더이상 손볼 수 없을 정도로 더 가까이 다가왔다. 겨우 산등성에 오른 레인스포드는 나무를 하나 골라잡고 올라탔다. 그 후 그는 물길을 따라 사백 미터 남짓도 안 되어 보이는 거리에서 덤불 숲이 술렁이는 장면을 포착했다. 눈살을 찌푸려가며 집중한 레인스포드의 시야에는 자로프 장군의 늘씬한 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장군 바로 앞에서는 또다른 실루엣이 움직이고 있었는데 거대한 어깨가 정글의 높디 높은 풀숲 위로 떠다니는 걸 보아하니 아이반임이 분명했다. 아이반은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 당겨지고 있는 것 처럼 움직였는데 레인스포드는 즉각적으로 아이반이 사냥개들의 목줄을 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이 레인스포드를 찾는 건 이제 시간문제였다. 레인스포드의 머릿속은 광폭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득 우간다에서 원주민들에게 배운 기술을 떠올린 그는 나무에서 미끄럼을 타며 내려왔다. 그는 죽은 나무 뿌리들을 이용해서 이제야 갓자란 어린 묘목에 사냥용 칼을 칼날이 장군이 걸어오고 있는 방향으로 향하게끔 고정시켜 우간다의 스프링 트랩을 완성시켰다. 몇 번이고 칼로 만든 함정이 잘 설치되었는지 확인한 레인스포드는 그 후 죽기살기로 달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냄새를 맡기 시작한 사냥개들은 소리 높여 짖기 시작했고 레인스포드는 드디어 자기가 사냥해오던 사냥감들이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뜀박쥘을 멈춘 레인스포드의 귀에는 사냥개들의 짖는 소리가 예고없이 뚝하고 멈춰버렸고 레인스포드의 심장 또한 마찬가지로 뚝. 멈췄다. 레인스포드의 덫이 제대로 발동한 것이 틀림없었다. 

 

레인스포드는 흥분을 감추지 못 하고 재빨리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서 뒤쪽을 살폈다. 그를 사냥하기 위해 움직이던 무리는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하지만 바닥에 집중하며 아슬아슬한 계곡을 묵묵히 걷고있는 자로프 장군을 발견한 레인스포드는 나무를 오르면서 품고 있던 마음속 희망이 허망하게 죽어버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아이반의 커다란 어깨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서는 칼로 설치한 덫이 완전히 실패한건 아닌 모양이었다.

 

레인스포드가 바닥으로 내려가자 사냥개 무리가 다시 목청껏 짖기 시작했다. 

 

“머리야, 돌아라, 머리야, 돌아라! 머리야! 돌아라!” 온힘을 다해 달리던 레인스포드는 거친 목소리로 읊조렸다. 맞은 편에 서있는 두 그루 나무 사이의 땅위에 떠다니는 파란색 선을 발견한 레인스포드는 무작정 그 사이를 향해 뛰어갔다. 그 사이 사냥개들은 점점 사냥망을 좁혀왔고 목표지점에 도달해서 밑을 바라본 그가 발견한 것은 바로 해변에서 철썩거리는 물살이었다. 험난해보이는 해안 저편에는 대저택을 떠받들며 지극히 우울한 모습으로 서있는 회색 절벽이 보였다. 육 미터 정도 밑의 바다는 사나운 소리를 내며 레인스포드를 끌어내리려 하고 있었다. 레인스포드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사냥개들이 바로 뒤까지 바짝 쫓아온 기운을 감지한 그는 잽싸게 바다 밑으로 몸을 던졌다.

 

장군과 그의 무리가 레인스포드가 뛰어내린 지점에 도착했고 장군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몇 분간 그는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그 자리에 앉아 은색 힙 플라스크를 꺼내 브랜디를 마시는 것과 함께 담배를 태우며 ‘M. 버터플라이'에 삽입된 노래를 코로 흥얼거렸다.



그 날 밤 간만에 정말 근사한 저녁 식사를 즐기게 된 자로프 장군의 옆에는 폴 로저 한 병과 반 정도 남은 샹베르탱 한 병이 놓여있었다. 두 가지 아주 작은 문제가 그의 꿀같이 달콤한 휴식을 방해했다. 첫 째는 아이반을 대체하기가 굉장히 까다로울 것이라는 점이었고 또다른 하나는 그의 사냥감이 그의 손바닥에서 빠져나갔다는 점이었다. 물론 장군은 미국에서 건너온 사냥감이 게임에 끝까지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승리는 여전히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재에서 그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저서를 읽으며 마음을 안정시켰다. 시침이 열 시를 가리키자 그는 침실로 올라갔고 온몸이 너무도 나른해서 눈을 감는 순간 잠에 들 수 있을것만 같았다. 방 안에는 한 줄기 달빛이 내려앉았는데, 그 덕분에 장군은 불을 켜기 전에 달빛을 따라 창가 쪽으로 걸어가 마당을 내려다 보았다. 거대한 사냥개들이 늠름하게 걸어다니는 광경을 보며 장군은 “다음번에는 조금 더 잘해보자"고 말했다. 그리고 장군은 마침내 방에 불을 켰다. 

 

침대에 달린 커튼 뒤에 숨어있던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레인스포드!” 장군이 소리쳤다. “여기엔 도대체 어떻게?”

 

“헤엄쳐서,” 레인스포드가 말했다. “그게 정글 속을 걷는 것 보다 더 빠르겠더라고.”

 

장군은 숨을 한 번 골라쉬며 웃음을 지었다. “경의를 표합니다,” 그가 말했다. “아무래도 선생님께서 승리하신 것 같군요.”

 

레인스포드는 웃지 않았다. “난 아직도 정글의 짐승일 뿐이야,” 그가 쉰 목소리로 낮게 말했다. “준비하는 편이 좋을거야, 자로프 장군.”

 

장군은 허리를 굽혀 그의 생에서 가장 깊숙한 경례를 표했다. “그렇군요,” 그가 말했다. “굉장합니다! 저희 둘 중 한 명은 사냥개들의 만찬이 되겠군요. 나머지 한 명은 이 근사한 침대 위에서 잠을 청할 수 있겠고. 그럼… 시작해볼까요, 선생님.”



이렇게 좋은 침대에서 자보는건 또 처음이군, 레인스포드는 생각했다.

 

원문 출처: 자유 이용 저작물인 리차드 코넬(Richard Connell)의 'The Most Dangerous Game'을 번역했습니다. 원문을 구할 수 있는 링크를 여기에 남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