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20. 14:39ㆍ번역/문학 (소설)
가장 위험한 사냥감
글쓴이ㆍ리차드 코넬
번역ㆍ오성진
Part 2
악수를 제안한 남성을 보며 레인스포드의 머릿속에 바로 든 생각은 그가 말도 안 되게 잘생겼다는 것이었다. 그 다음으로 레인스포드에게 든 생각은 장군의 얼굴에는 무언가 굉장히 독창적인, 너무도 특이해서 거의 이상할 정도의 기운이 서려있다는 점이었다. 키가 큰 장군이 중년의 나이가 지났을 거라는 사실은 선명하게 새하얀 그의 머릿결을 통해 유추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썹과 콧수염만큼은 마치 레인스포드가 뚫고 와야만 했던 정글의 밤처럼 칠흑같이 어두운 검정이었다. 마찬가지로 시꺼먼 그의 눈에서는 굉장한 광채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의 광대뼈, 높은 콧대, 주로 명령을 내리는 사람에게 어울릴 법한 어두운 톤의 얼굴은 귀족의 모습, 그 자체였다. 장군은 옆에 서있는 거인에게 몸을 돌려 작은 손짓으로 신호를 주었고 장군의 손짓을 읽은 거구의 남성은 총을 거두고 뒤로 물러섰다.
"저와 함께 지내고 있는 아이반은 상상 이상으로 강한 남자입니다,” 장군이 말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능이 살짝 떨어지는 귀머거리의 운명을 타고났죠. 평소에는 멍청하게 있다가도, 그의 민족성 때문인지, 어쩔 때는 상당한 잔혹성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러시아 출신인가 보죠?”
"카자흐스탄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며 지은 장군의 미소는 그의 붉은색 입술과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저와 같은 지역 사람이죠.”
"들어오시죠,” 그가 말했다, "이야기는 언제든지 안에서도 할 수 있으니까요. 더이상 여기에서 이야기하면 위험합니다. 자, 옷, 음식, 휴식을 원하시겠죠? 저희 집에서 전부 제공해드리겠습니다. 선생님께서 쉬시기에 이 곳만큼 좋은 곳은 없을거예요.”
장군은 입모양으로 아이반에게 무언가를 지시했지만 그의 입 밖으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레인스포드 선생님, 괜찮으시다면 아이반을 따라가시죠.” 장군이 말했다. "마침 오시기 전에 저녁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던 차였습니다. 다이닝 룸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제 생각엔 제 옷이 선생님 몸에 딱 맞을 것 같으니 너무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벙어리 거인을 따라 들어간 방에는 굉장히 높은 천장과 여섯 남자가 누워도 여유로이 잘 수 있을만한 거대한 침대가 레인스포드를 맞이해주었다. 레인스포드는 아이반이 건네준 옷을 만지며 기사 신분의 윗사람들에게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런던의 어느 재단사의 손길이 닿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이후 아이반을 따라 들어간 다이닝 룸은 여러가지 의미로 대단했다. 마치 중세시대의 장엄함을 떠올리게 했는데, 오크 나무로 만든 패널은 봉건제 사회 속 어느 남작의 집을 연상시켰고 마흔 명은 족히 앉힐 수 있을 것 같아 뵈는 식탁, 그리고 높은 천장 또한 인상적이었다. 복도에는 사자, 호랑이, 코끼리, 무스, 곰, 등등 지금껏 레인스포드가 봐온 사냥감 중에 점점 더 크고 아름다운 순으로 많은 동물의 머리들이 박제되어 있었다. 마침내 도달한 커다란 테이블 끝에는 장군 혼자 앉아있었다.
"칵테일 한 잔 어떠신가요, 레인스포드 선생님,” 그가 제안했다.
장군이 만들어 준 칵테일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그 맛이 좋았는데 레인스포드는 뿐만 아니라 테이블 위에 리넨, 크리스탈 장식, 식기류, 도자기 또한 모두 최상급 품질임이 분명했다.
둘은 크림이 가미 된 빨간색 수프, 보르시치(borshch)를 먹었는데 수프의 깊은 맛은 러시아 사람의 입맛에 알맞을만한 맛이었다. 자로프 장군은 미안하다는 듯한 말투로 "저희 저택에는 왠만하면 문명화된 물건들만 들여놓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다면 미리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바깥 사회에 나가본지가 너무 오래돼서 말이죠… 혹시 지금 드린 샴페인이 너무 오랜 시간 배에 있던 탓에 맛이 가버린건 아니었을지 걱정이 되네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레인스포드가 단언했다. 그는 지금껏 만나본 호스트 중에 장군만큼 사려 깊고 호의적인 진정한 코스모폴리탄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장군이 레인스포드를 불편하게 만드는 점이 있었다면 그건 레인스포드가 식사를 하다말고 고개를 들 때마다 마치 자신을 관찰하고 있는 듯한 장군의 눈초리를 마주해야 했다는 점이었다. 장군은 레인스포드의 속마음까지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혹시,” 자로프 장군이 말했다, "제가 선생님 성함을 알고 있었다는 점에 놀라셨을 수도 있겠군요. 저는 영어, 불어, 러시아어로 출판된 사냥에 관한 책이라면 전부 가리지 않고 읽었습니다. 선생님, 저란 사람은 딱 한 가지를 위해 존재할 뿐이예요. 그리고 그 것은, 이미 눈치 채셨다시피, 바로 ‘사냥’입니다.”
"안 그러셔도 박제된 채 걸려있는 사냥감 머리들이 꽤 인상깊었습니다,” 레인스포드가 굉장히 맛있게 요리된 필레 미뇽(Filet Mignon)을 먹으면서 말했다. “특히나 물소 머리는 제가 본 것 중에서 가장 크더군요.”
"아, 그 녀석 말이죠. 말도 마십시오, 그 놈을 잡을 때 꽤 애를 먹었습니다.”
"물소가 머리로 들이박기라도 했단 말인가요?”
"저를 머리에 이고 나무에 찍어버렸죠,” 장군이 말했다. "두개골에 금이 가긴 했습니다만… 잡았으니 됐죠.”
"저는 평소에도,” 레인스포드가 말했다, "물소야말로 맹수중에 가장 위험한 사냥감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잠시동안 레인스포드의 말에 대꾸 하지도 않고 생기 넘치는 붉은 입술로 미소를 짓던 장군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요, 선생님. 죄송하지만 방금 하신 말씀에는 오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가장 위험한 사냥감은 물소가 아닙니다.” 남자는 천천히 와인을 마시고 말을 이어갔다. "적어도 이 섬, 그리고 이 섬 안에서도 제 사유지에서는 더더욱이 그렇죠,” 장군은 한 층 더 느린 톤으로 말을 마쳤다, "저는 그보다도 훨씬 더 위험한 사냥감을 사냥하고 있습니다.”
레인스포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섬에 맹수가 있긴 한가요?”
장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맹수 중에서도 으뜸인 놈이 있죠.”
"정말요?”
"아, 물론 여기에 자연적으로 서식하는 놈은 아닙니다. 제가 섬으로 데리고 와야 하는 경우가 많죠.”
"장군님, 도대체 뭘 수입해오신건가요?” 레인스포드가 물었다. "호랑이라도 데려오신건가요?”
장군은 엷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뇨,” 그가 말했다. "호랑이 사냥은 몇 년 전부터 저에게 아무런 자극이 되지 않더군요. 호랑이들이 가지고 있는 반응의 수는 모두 파악했습니다. 새로운 상황을 만들려고 해봤자 모든 수가 훤히 보이는 지경이 되어버린거죠. 그래서 호랑이 사냥에는 스릴이 없습니다, 진정으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달까요... 레인스포드 선생님, 저는 위험한 상황에 놓여야만 비로소 살아 숨쉰다고 느낄 수 있답니다.”
장군은 주머니에서 황금색 담배 케이스를 꺼내 그의 집을 직접 찾아준 손님에게 은색의 필터가 달린, 긴 검은색 담배를 권해주었다. 케이스 안에 향료를 뿌렸는지, 담배에서는 강한 향이 나고 있었다.
"선생님과 저는 인생에서 쉽게 맛보기 힘든 사냥을 즐기게 될 것입니다,” 장군이 말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그치만 저희 둘이 무슨…” 벙찐 레인스포드가 말을 더듬었다.
"지금 알려드리죠,” 장군은 레인스포드의 말이 채끝나기도 전에 답을 시작했다. “분명히 좋아하실 겁니다. 이것 만큼은 저로서도 겸손할래야 그렇지 못 하는 부분이라 염치를 불구하고 그대로 알려드려야 할 것 같네요. 저는 굉장히 뜻깊은 일을 해냈습니다, 바로 새로운 자극을 창조한 것이죠... 포트 와인 한 잔 더 어떠신가요?”
"저야 좋죠.”
장군은 서로의 잔을 채우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신께선 어떤 인간들을 시인으로 만드시곤 하시죠. 몇몇은 왕으로, 몇몇은 거지로 말이예요. 그리고 저, 바로 저는 신께서 사냥꾼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제 손은 방아쇠를 잡기 위해 만들어 졌다고 아버지께서 말하곤 하셨죠. 아버지는 크림 반도에 이십오만 에이커 정도의 땅을 보유하신 대부호이신 동시에 모든 종류의 스포츠를 즐기시던 분이셨죠. 제가 다섯 살 때 아버지는 저에게 작은 총을 쥐어주셨습니다. 저만을 위해 모스크바에서 만들어진 총이었죠, 참새같은 걸 잡기에 적절한 총이었어요. 아버지가 사냥하기 위해 따로 키우시던 칠면조를 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아버지는 저를 혼내시던 법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저를 명사수라고 불러주시며 칭찬하셨죠. 카프카스 산맥에서 처음으로 곰을 사냥했을 때, 제 나이는 고작 열 살이었습니다. 인생을 살며 매번 사냥을 해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겠죠. 제가 군에 들어가서 - 당시만 해도 귀족의 아들들은 모두 입대를 해야만 하는 풍조가 있었습니다 - 카자흐스탄의 한 부대를 통솔할 때 마저도 제 관심사는 오로지 사냥에만 쏠려있었습니다. 저는 모든 종류의 지형에서 모든 종류의 사냥감을 사냥해보았습니다. 선생님께 제가 잡은 동물의 수를 말씀드리는게 불가능할 정도이죠.”
장군은 이야기를 잠시 멈추고 담배 한 모금을 마시고 천천히 연기를 내뿜었다.
"아시겠지만 당시 러시아의 상황이 워낙에 좋지 않았습니다, 군주도 나라를 떠날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저도 얼른 도망 나왔습니다. 러시아의 거의 모든 귀족들이 많은 걸 잃어야만 했죠. 저만큼은 - 이건 정말 다행인 일입니다 - 미국에서 지원해주는 보안에 계속해서 돈을 지불하던 터라 꽤 많은 재산을 그대로 보유할 수 있었죠. 덕분에 몬테 카를로에서 찻집을 열거나 파리에서 택시를 운전해야만 하는 상황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 너무도 자연스럽게, 계속해서 사냥을 시작했죠. 선생님의 나라에서 유명한 로키 산맥에서는 회색곰들을 사냥했고, 갠지스에서는 악어들을, 동아프리카에서는 코뿔소들을 사냥했습니다. 육 개월 동안 병상에 누워있을 정도로 물소가 강하게 들이받은 것도 바로 아프리카에서 였죠. 병상에서 나온 뒤에 저는 바로 아마존으로 재규어를 사냥하러 갔습니다, 당시에 들은 바로는 재규어만큼 영악한 놈이 또 없다고들 하더군요. 하지만 그닥 칭찬해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카자흐스탄 출신의 장군은 잠시 말하다 말고 한숨을 뱉었다. "제가 가진 경험, 도구에 비하면 재규어는 그리 어려운 상대가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진심으로 가슴이 미어질 정도로 실망했습니다. 하루는 텐트에 누운 채로 두통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사냥이 점점 재미가 없어진다는 사실에 머리가 아파왔거든요. 그리고 기억하시겠지만, 사냥은 제 인생, 그 자체입니다. 제가 들은 바로는 미국의 사업가들도 퇴직한 뒤에 비슷한 증상을 보이며 미쳐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들 하더군요.”
"네, 뭐, 크게 틀린 말은 아닐겁니다,” 레인스포드가 답해주었다.
장군이 미소를 지었다. "저는 그들처럼 미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러기 위해선 무언가라도 해야만 했죠. 자, 여기서 말씀드려야 할 건 바로 제 머리 안에는 분석적인 뇌가 앉아있다는 점입니다, 선생님. 아마도 그게 바로 제가 무언가를 쫓는 걸 이렇게 까지 즐길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겠죠.”
"확실히 그렇겠네요, 자로프 장군님.”
"그래서 말이죠,” 장군이 말을 이어갔다, "저 스스로에게 물어봤습니다. '왜 더이상 사냥을 하면서 즐겁지 못할까?’ 하고 말이죠.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저보다 훨씬 더 젊으신 데다가 사냥 경험도 훨씬 더 적겠지만 그래도 이 문제에 대한 답 정도는 아마 예상해내실 수 있을겁니다.”
"그 답은 뭐였죠?”
"간단히 말해 이겁니다, 사냥이라고 하는 것이 저에게는 더이상 스포츠로 다가오지 않는게 문제였던 거죠. 사냥이 너무 쉬워졌다는 말입니다. 저는 언제나 목표한 사냥감을 잡았습니다. 언.제.나. 말이죠. 완벽함만큼 지루한 것도 없는 법인가 봅니다.”
장군은 새로이 꺼낸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 어떤 동물도 제 적수가 되어주지는 못 했습니다. 이건 절대 제 자랑 같은 것이 아니라 단순한 수학적 확실성에 더 가깝습니다. 동물에게는 해봤자 태초에 주어진 본능과 다리밖에 없죠. 본능이란 본래 이성적인 사고에 적수가 되지 못합니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는 제 인생에 있어 매우 비극적인 순간이였단 사실 만큼은 확실하게 말해드릴 수 있겠군요.”
레인스포드는 테이블 안 쪽으로 몸을 더 숙여 저택주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제가 꼭 해야만 하는 일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영감을 받는 순간이었죠,” 장군은 말을 이어갔다.
"그… 해야만 하는 일이란게 뭐였죠…?”
장군은 사람이 눈앞에 장애물을 손쉽게 뛰어 넘기고 보여줄만한 미소를 소리없이 지어보였다. "기존에 없었던 사냥감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그가 말했다.
"'기존에 없었던 사냥감'이라니요?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어려운 농담같이 들리는군요.”
"그럴리가요,” 장군이 답했다. "저는 사냥에 대해서 만큼은 절대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저는 정말로 새로운 동물이 필요했고 마침내 그 동물이 뭔지도 알아냈죠. 그게 바로 제가 이 섬을 사다가 그 중간에 저택을 짓게 된 사연이랍니다. 이 섬은 제 목적에 정확하게 맞아 떨어집니다. 여기저기 제각기 다른 발자국으로 둘러싸인 정글, 절벽, 늪지… 완벽하죠.”
"자로프 장군님, 하지만 말씀하신 사냥감은 아직 말씀해주시지 않았는데요?”
"아,” 장군이 답했다, "그렇군요, 이 안에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냥감이 도사리고 있답니다. 그 어떤 사냥도 여기서의 사냥과 견줄수가 없을 겁니다. 저도 그 녀석들을 매일같이 사냥합니다만 한 번도 지루해진 적이 없어요. 이 곳엔 제 지능을 따라잡을 만한 사냥감이 있거든요.”
점점 레인스포드의 표정위에 불안감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저는 사냥하기에 이상적인 동물을 원했습니다,” 장군이 설명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이야기했죠, '과연 이상적인 사냥감의 자질이란게 뭘까?’ 하고 말이예요. 질문에 대한 답은, 너무도 당연하게도, '용기와 교활함, 그리고 무엇보다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동물은 없는걸요,” 레인스포드가 반박했다.
"친애하는 동료 사냥꾼 선생님,” 장군이 실망한 듯이 눈썹을 찌푸렸다, "동물 중에서도 사고를 할 수 있는 종이 딱 하나 있을텐데요.”
"하지만… 설마…” 레인스포드의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맞습니다, 그러면 안 될 이유라도 있나요?”
"자로프 장군님, 진심이 아니시죠? 이건 분명히 악질의 농담일텐데 제가 이해를 못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저는 사냥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다고요.”
"사냥이라고요? 자로프 장군님… 세상에… 지금 말씀하신 건 사냥이 아니라 살인이지 않습니까.”
장군은 순수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레인스포드를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선생님처럼 도시적이고 문명화 되신 청년분이 아직도 사람 생명의 가치를 두고 낭만적으로 생각하고 계시다니요. 선생님께서 전쟁터에 계셨을 때만 하더라도-”
"...하더라도 저는 살인을 두둔하는 사람으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레인스포드는 고집스럽게 상대방의 말을 대신 마무리 지었다.
장군은 광기에 젖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답답한 분이실 줄이야!” 그가 말했다. "아무리 미국분이라고 하더라도, 세상에, 선생님처럼 교육도 제대로 받으셨을 젊은 분이 요즘 시대에 중세 빅토리아 시대에서나 할 만할 생각을 하시고 계실줄은 몰랐네요. 마치 신식 리무진에 타고 봤더니 '옛날식 담배상자’를 발견한 꼴이네요… 그래도 뭐, 이해는 합니다, 분명 청교도 교리를 따르시는 금욕적인 조상분들 밑에 태어나신 분이시겠죠. 미국의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경우라고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선생님, 저와 한 번 사냥을 나가신다면 선생님도 분명 흠뻑 빠지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여기에 제 돈을 걸 수도 있습니다. 선생님 안에 언제나 새로운 스릴을 갈구하는 마음이 숨어있는게 제 눈에는 보이는걸요.”
"말씀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사냥꾼이지, 살인자가 아닙니다.”
"아이고,” 장군이 말했다. 이번만큼은 그마저도 조금은 심기가 불편해보였다, "또 다시 그 불편한 단어를 꺼내시다니요. 하지만 제가 선생님의 양심선언에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삶이란 강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강자에 의해 쓰이고, 또 필요에 의해서는… 강자가 취해가기도 하는 거죠. 세상에 모든 약자들은 단지 강자에게 희열을 주기 위해 존재할 뿐입니다. 그런데 왜 저에게 주어진 그런 축복을 썩혀 둬야만 하는거죠? 저는 강할 뿐 아니라 사냥을 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사냥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라도 있나요? 제가 사냥하는 건 지구의 쓰레기 같은 존재들입니다. 흑인이건, 중국인이건, 백인이건, 잡종이건 주변에서 떠돌던 배에서 밀려오는 선원들이라면 전부 저의 사냥감이 되는 것이죠. 아마 관리가 잘 된 순수 혈통의 말이나 사냥견 한 마리가 그런 이들을 모아놓은 집단보다 더 가치가 높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사람인걸요,” 레인스포드는 얼굴이 붉어졌다.
"맞습니다,” 장군이 말했다. "그렇기에 더더욱이 제가 그들을 사냥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저에게 희열을 안겨주거든요. 아무리 못났다고 한들, 결국 사고를 할 수 있는 인간들이지 않습니까? 그 점이 바로 그들을 위험한 사냥감을 만드는 것이죠.”
"그럼 어디서 사람들을 구해오나요?”
장군은 왼쪽 눈을 감아 윙크를 해보였다. "이미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이 섬을 '쉽 트랩(Ship Trap)’이라고 부른다고 하더군요,” 그가 말했다. "어쩔 때는 노하신 바다의 신께서 저에게 몇 명을 보내주시기도 하지만 신이 정해주신 운명이 조금 심심하게 풀려나간다 싶으면 저 스스로 운명에 재미를 부여해보려고 하는 편입니다. 잠시… 창가쪽으로 저와 함께 가주시겠습니까?”
레인스포드는 장군의 안내에 따라 창가로 걸어가 광활한 바다를 바라보았다.
원문 출처: 자유 이용 저작물인 리차드 코넬(Richard Connell)의 'The Most Dangerous Game'을 번역했습니다. 원문을 구할 수 있는 링크를 여기에 남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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