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22. 18:29ㆍ번역/문학 (소설)
가장 위험한 사냥감
글쓴이ㆍ리차드 코넬
번역ㆍ오성진
Part 3
“저기요! 저길 보세요!” 장군은 으슥한 어둠으로 그득한 정글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레인스포드의 눈에는 오로지 검은색 어둠만 보일 뿐이었지만 장군이 버튼 하나를 누르자 이내 곧 저 멀리 바다까지 환한 불빛들이 일렬로 켜졌다.
장군은 멍한 표정의 레인스포드를 바라보며 실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유일하게 바깥과 연결되는 물길입니다, 불빛이 드리운 길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시에는 살이 찢겨 나갈 정도로 날카로운 암초가 떼를 지어 바다괴물처럼 입을 떡 벌리고 숨어있는 구역으로 넘어가게 되어버리죠. 암초의 날은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해서 배들을 마주쳐도 제가 이 호두를 부시듯이 손쉽게 부숴버리곤 합니다.” 장군은 바닥에 호두를 떨어뜨리고 곧이어 신발굽에 맞추어 으깨버렸다. “아, 네,” 그가 마치 질문에 답하듯이 말을 이어갔다, “참고로 여기 이 섬 전체에 전기가 공급되고 있습니다. 말씀드린대로 저희는 문명화된 채로 지내려고 노력하니까요.”
“문명화되었다고요? 그러고도 사람들을 쏴죽이시는겁니까?”
장군의 검은 눈동자에 기어이 화가 묻어났지만 그마저도 잠시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생긋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역시, 선생님께서는 올바른 생각으로 꽉 찬 청년이시군요! 하지만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그런 짓은 해본 적이 없다고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야만적인 행위는 꺼리는 편이거든요. 저는 이 섬에 방문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최선의 환경을 제공해드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오신 분들은 여기에 지내시면서 양질의 음식과 운동을 충분히 즐기실 수 있죠. 사냥에 나서기에 최적의 몸을 만드는 겁니다. 아마 내일 직접 보실 수 있을겁니다.”
“직접 볼 수 있다니… 그게 무슨 뜻이죠?”
“제 훈련소를 방문하시게 해드리겠습니다,” 장군이 미소를 지었다. “지하에 있죠. 그 곳에서 열 명 남짓의 사냥감들을 육성하고 있습니다. 스페인에서 출항한 ‘산 루카'라는 범선의 선원들이죠. 지지리 운도 없지, 섬을 지나다가 방금 말씀드린 암초를 만나는 바람에 여기로 오게 되었습니다. 여러모로 퇴화된 종이라고 봐도 무방하죠. 배에는 나름 적응 했을지 모르겠지만 여기 정글에서는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 할테니까요.” 장군은 손을 들어보였고, 일시적으로 웨이터 일을 도맡아 서빙을 하던 아이반은 상당히 두꺼운 터키산 커피를 가져왔다.
레인스포드는 티가 안 나게 혀를 내밀어 커피에 다른 것을 탄 건 아닌지 확인했다.
“단순히 게임일 뿐입니다, 선생님,” 장군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밑층에 내려가서 그 중 한 명에게 사냥을 나가자고 제안하는거죠. 그러고선 필요한 만큼의 음식과 훌륭한 날이 달린 칼을 쥐어준 뒤에 최대한 숨을 수 있도록 세 시간 정도를 먼저 줍니다. 세 시간이 지나면 저는 오로지 총 한 자루, 그 중에서도 가장 사정거리가 작고 질이 안 좋은 총을 들고 저택을 떠나는겁니다. 제 사냥감이 제 포획망을 삼 일동안 피해낸다면 사냥감의 승리로 게임은 끝납니다. 그리고 만약 그 전에 제가 사냥감을 찾아낸다면..." 여기서 장군은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사냥감의 패배로 게임이 끝나게 되죠.”
“만약 사냥감이 이 ‘게임'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면 어떻게 되죠?”
“아,” 장군이 말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죠. 만약 원하지 않는다면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게임입니다. 정 사냥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저는 그 사람을 아이반에게 넘겨줍니다. 아이반은 위대한 러시아의 제왕을 위해 채찍형을 도맡아 집행한 전적이 있는 인물인지라 아이반에게는 또 아이반대로 그만의 스포츠가 있습니다. 선생님,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언제나, 사람들은 언제나 저의 사냥감이 되는 쪽을 선택하더군요.”
“...만약 그 사람들이 승리할 시에는 어떻게 되죠?”
장군 위에 미소가 넓게 퍼졌다. “여태껏 제가 져본 적은 없습니다,” 장군은 서둘러 이 뒤에 말을 덧붙였다, “선생님께서 제가 자랑질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만... 사냥감으로 선정된 사람들을 사냥할 때 겪는 문제라고는 고작 해봐야 대부분 굉장히 초보적인 문제들 뿐입니다. 물론 가끔씩 제대로 된 적수를 만날 때도 있습니다. 그 중 한 명은 거의 이길 뻔 하기도 했죠, 개들을 풀어 결국 제 승리로 만들기 전까지는 말이예요.”
“개들이라뇨?”
“이 쪽으로 한 번 와보시겠습니까, 말로 백 번 설명하기 보다는 한 번 보여드리는 편이 나을 것 같군요.”
장군은 레인스포드를 창문 더 가까이에 서서 밑을 볼 수 있도록 안내했다. 섬에 켜진 불빛을 통해 볼 수 있게 된 바닥에는 괴기스러운 그림자들이 춤을 추고 있었고 레인스포드는 열댓마리는 되어보이는 커다랗고 시꺼먼 무언가를 포착할 수 있었다. 그들이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그들의 눈은 일제히 초록색 광선을 뿜어내고 있었다.
“제 생각에도 조금 많은 것 같긴 합니다,” 레인스포드의 표정을 자세히 관찰하던 장군이 말했다. “매일 밤 일곱 시 정각에 개들을 풀어주는데 애들이 밖에 있는 동안 그 누구라도 집 안에 들어오려고 하면 -- 혹은 반대로 누군가 집밖으로 나가려고 한다면 -- 그 사람에게 굉장히 후회스러운 상황이 벌어질 것 만큼은 분명한 일이죠.” 장군은 말을 마치고 폴리 베르제르(Folies Bergere) 바에서 나올만한 노래를 흥얼거렸다.
“자 그러면,” 장군이 말했다, “새로이 박제된 머리들로 완성된 전시장을 보여드릴까 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저와 함께 서재로 가주시지 않겠습니까?”
“오늘 밤은,” 레인스포드가 말했다, “이만 쉬러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자로프 장군님. 몸상태가 정말 말이 아니라서요.”
“아, 그러신가요?” 장군이 배려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어봤다. “하긴... 선생님께서는 한참을 수영하셨으니 당연히 피곤하시겠죠. 푹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실 겁니다. 제가 마련해드린 침대에서 주무신다면 새로 태어난 사람처럼 몸에 활력이 넘치실 거예요, 여기에도 기꺼이 제 돈을 걸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함께 사냥을 나가봐도 좋을 것 같군요, 제게 꽤 쓸만해보이는 사냥감이 한 명 남아있거드…”
장군이 이야기를 마치기도 전에 레인스포드의 두 발은 빠른 걸음으로 침실로 향했다.
“오늘 밤 저와 함께 사냥 가지 못 하셔서 아쉽습니다,” 장군이 레인스포드의 등을 향해 말했다. “오늘 밤은 꽤 재미있는 사냥이 이루어질 예정이었거든요. 큼지막하고 강한 흑인입니다. 꽤 쓸만해 보이던데… 피곤하시다니 어쩔 수 없네요. 좋은 밤 되십시오, 선생님. 필요한 만큼의 휴식을 얻으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장군의 말대로 침대는 최상의 상태였고, 레인스포드의 근육은 한 마디 한 마디 마다 피로에 찌들어있었다. 그럼에도 레인스포드의 신경은 잠잠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기에 그는 두 눈을 크게 뜬 채 가만히 누워있을 수 밖에 없었다. 문밖 복도에서 들릴 듯 말 듯한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마자 레인스포드는 벌떡 일어나 문을 부술 생각으로 온힘을 다해 방문을 들이박았지만 방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힘없이 창가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가 바깥을 살펴보았다. 그의 방은 여럿 있는 타워중에 하나, 그 중에서도 굉장히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대저택에서 설치한 불빛은 모두 꺼졌고 그와 동시에 주변 일대는 순식간에 새까만 침묵 속으로 다시 잠겨버렸다. 하지만 한 줄기 달빛만은 희미하게나마 빛을 발하고 있었는데, 레인스포드는 그 옅은 빛을 통해 일 층의 마당에서 물결처럼 넘실대며 계속해서 새로운 그림을 만들어내는 그림자들을 보았다. 창가에 서있는 레인스포드의 숨소리를 들은 사냥개들은 일제히 창가쪽으로 고개를 들었고 그들의 눈에서는 여전히 선명한 초록색 불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레인스포드는 다시 침대로 돌아가 누워보았다. 다양한 방식을 통해 그는 잠에 들어보려 노력했다. 아침해가 뜰 때가 다 되어서 겨우 졸음이 찾아왔지만 마침 또 그 때 그는 저 멀리 정글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총성을 들어버리고 말았다.
그 날 자로프 장군은 점심식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뒤늦게 나타난 장군은 과거 잉글랜드의 대지주의 옷차림을 빼닮은 트위드 재질의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는 레인스포드의 상태에 대해 배려심 넘치는 목소리로 여러가지 물어봤다.
“상태가 좋아졌다니 다행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제 상태가 문제군요,” 장군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 어젯 밤에 저를 오랜 시간 괴롭혀오던 과거의 불만사항이 스멀스멀 다시 피어오르는 걸 느꼈거든요.”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레인스포드의 눈빛을 확인한 장군은 “사냥이 따분하다는 생각 말입니다.”
장군은 두 번째 크레페수제트를 입에 집어넣으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어젯 밤 사냥은 그닥 재미가 없었습니다. 사냥감으로 뽑힌 놈이 상상 그 이상으로 멍청했어요. 아니 글쎄, 그 머저리가 지나간 길에는 죄다 발자국이 떡하니 남아있지 않겠습니까? 뱃놈들 문제가 바로 이런겁니다. 애초에 머리가 덜 떨어진다는 건 언급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도대체 숲속에서 어떻게 해야 살아남는지, 가장 기본적인 상식도 없다니까요? 너무도 뻔하고 바보같은 짓들만 해댑니다. 가장 짜증나는 부류죠. 샤블리 한 잔 더 드릴까요, 선생님?”
“장군님,” 레인스포드가 강경하게 말했다, "저는 당장 이 섬을 떠나고 싶습니다.”
장군은 덤불같이 복잡하게 얽힌 눈썹을 올려보였다. 정말로 마음에 상처를 입은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선생님,” 장군이 항의했다, “선생님께서는 이제야 막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사냥도 해보시지 않았...”
“오늘 떠나고 싶습니다,” 레인스포드가 말했다. 그는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장군의 눈빛이 한없이 어두워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로프 장군의 얼굴 위에 밝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장군은 먼지 묻은 병을 들어 쉽게 맛 보기 힘들 정도로 질이 좋은 샤블리를 레인스포드의 잔에 따라주었다.
“오늘 밤,” 장군이 말했다, “저희끼리 사냥을 합시다. 선생님과 저, 단 둘이서 말이죠.”
레인스포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장군님,” 그가 말했다. “저는 사냥하지 않을 것입니다.”
장군은 어깨를 으쓱해보이고는 온실에서 자란 포도 한 알을 품위있게 입에 넣었다. “선생님의 소원대로 하시죠,” 그가 말했다. “선택은 오로지 선생님에게 달려있습니다. 하지만 왠지 제가 드린 제안이 아이반에게 가는 것 보다는 선생님 입맛에 훨씬 더 맞을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장군은 한쪽 구석에 서있는 거인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아이반은 레인스포드를 노려보며 두꺼운 양팔을 꼬고 넓은 가슴 위에 세워두고 서있었다.
“설마… 농담이시죠…?” 레인스포드가 흐느꼈다.
“선생님,” 장군이 말했다, “제가 사냥에 대해 말할 때 만큼은 그 언제보다 진심이라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제가 개발해낸 사냥은 지쳐있는 저희의 뇌에게 영양가 넘치는 영감을 쥐어줄 것입니다. 제대로 된 적수를 지금껏 바로 앞에 두고도 이제서야 알아봤군요, 한 잔 올리겠습니다.” 장군은 잔을 들었지만 레인스포드는 맥없이 앉은 채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선생님께서도 꽤 즐거우실겁니다,” 장군은 흥이 넘쳐흐르는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의 두뇌 대 저의 두뇌. 선생님의 기술 대 저의 기술. 선생님의 힘과 지구력 대 저의 힘과 지구력. 야외에서 펼쳐지는 두 사냥꾼의 체스 한 판! 그리고 거기에 걸린 건 그 가치를 따질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대가... 흥미롭지 않나요?”
“정말 제가 이길 경우에는...” 레인스포드가 쉰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제가 세 번째 날 자정까지 선생님을 찾지 못 한다면 기쁜 마음으로 패배를 인정하겠습니다,” 자로프 장군이 말했다. “제 배가 여기서 가장 가까운 마을의 중심지로 선생님을 모셔다드릴 것입니다.”
레인스포드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그대로 읽은 카자흐스탄 출신의 남성이 덧붙였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신사이자 스포츠맨으로서 제가 한 말은 분명하게 지키겠습니다. 뭐,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답례로 선생님께서도 여기에 계셨던 일은 일절 언급하지 마셔야겠죠.”
“그딴 제안에 제가 동의할리가 없잖습니까,” 레인스포드가 말했다.
“아,” 장군이 말했다, “그럴 경우엔 말이죠... 이걸 저희끼리 지금 이야기할 이유가 있을까요? 삼 일 뒤에 바로 이 자리에서 뵈브 클리코 한 병을 사이에 두고 다시 조율해보면 될 문제인데 말이예요. 그게 아니라면...”
장군은 손에 쥔 와인을 홀짝였다.
원문 출처: 자유 이용 저작물인 리차드 코넬(Richard Connell)의 'The Most Dangerous Game'을 번역했습니다. 원문을 구할 수 있는 링크를 여기에 남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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