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5: 샬롯 퍼킨슨 길먼, "누런 벽지" (1)

2021. 9. 7. 23:23번역/문학 (소설)

누런 벽지


글쓴이ㆍ샬롯 길먼
번역ㆍ오성진

 

(표지 사진 출처 / 본문 사진 출처)

 

Part 1

 

존과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이렇게나 역사적 가치가 묻어나는 멋진 건물에서 여름을 보내는 일이 흔치는 않을거야.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맨션일지, 귀족들 사이에서 대대로 전해져온 사유지일지, - 나에겐 그저 귀신 들린 집처럼 보이지만 - 나로선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여기서 로맨틱한 분위기까지 더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쨌든 여기에 무언가 이상한 기운이 있단 점 만큼은 부정하지 못할 것 같아.

 

그게 아니라면 그렇게 싼값에 팔릴 수 있었을까? 그리고 왜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거주하는 사람이 없었을 수 있을까? 내가 이런 생각을 내비칠 때마다 존은 비웃지만 뭐 어쩌겠어, 이 정도는 모든 이들이 결혼에서 겪는 과정인걸.

 

존은 극도로 현실적인 사람이야. 그이는 믿음이나 미신과는 거리가 멀고, 어떠한 이야기도 만지거나 보거나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면 공개적으로 비웃곤 하지.

 

존은 의사인데, 어쩌면... (보통 이런 이야기는 살아있는 자에게 할 리가 없겠지만 이 종이는 죽어있는 동시에 내 머리에 굉장한 위안거리가 되어주기 때문에 여기다가는 몇 자 적을 수도 있을 것 같아) … 정말 어쩌면 존의 성격이 바로 그래서 내 병이 빠르게 낫지 않는게 아닐까?

 

있지, 그이는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어주지를 않는다니까!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만 할까?

 

만약 명성이 높은 의사이자 자신의 남편인 사람이 친구들과 친척들을 불러다놓고 나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단지 약간의 신경 쇠약을 겪고 있는 것 뿐이라고… 조금, 아주 조금 히스테리를 부릴 때가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면… 정말 난 이럴 때 뭘 어떻게 해야만 하는걸까?

 

내 오빠도 의사이면서 높은 명성을 지니고 있는데, 오빠마저 남편과 똑같은 소리를 할 뿐이야. 

 

그래서 인산염(phosphate)인지, 아인산염(phospites)인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여튼 그거랑, 토닉을 챙겨먹으면서 산책, 공기, 그리고 운동을 해줘야 하는 상황이야. 참, 상황이 좋아질 때 까지 “일”을 하나도 못하게 된 건 덤이고.  

 

개인적으로 그들이 내놓은 처방이 이해가 되지 않아.

 

내 생각엔 마음에 드는 일을 하면서 재미도 느끼고 변화도 겪는 편이 훨씬 더 나를 위한 해결책이 되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하지만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만 할까?

 

그래도 이렇게 글은 - 그들은 이것마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지만 - 꾸준히 쓰고 있는 중이지만 매번 교묘하게 거짓말을 뱉어야 하거나 일기를 쓰고 있는 장면을 들킬 때마다 상당한 반대를 맞닥뜨려야 한다는 점이 너무도 힘든 일인 것만큼은 분명해.

 

가끔 난 내 상황에서 반대가 줄어들고, 사회에 나갈 기회와 자극이 늘어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번 하곤 하지만 존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 제일 안 좋은 것이 바로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너무 골똘하게 생각하는 일이라고 해. 솔직하게 말하면, 존이 그렇게 말해버리는 바람에 난 내 상황에 대해서 생각할 때마다 매번 마음 한 켠에 죄책감이 들어.  

 

그러니까 이제 이 얘기는 이 쯤까지만 하고 이제는 집 이야기를 좀 해줄게.

 

차도는 좀 멀리 떨어져 있고 마을에서도 삼 마일 정도 떨어져 있어서 건물이 외롭게 서있긴 하지만… 그래도 정말 근사한 곳이야! 책에서 읽었던 영국 건물들이 떠오르는 느낌이야, 울타리에, 벽에, 철컹 소리를 내면서 잠기는 철문에, 정원사들 같은 사람들이 각각 살고있는 작은 집들도 주변에 엄청 많으니까.

 

정원은 또 얼마나 예쁜데! 이렇게 크고 그늘진 정원은 살면서 본 적이 없어, 정원 전체에는 오솔길이 나있고 길다란 포도들이 주렁주렁 달린 나무들이 길들을 따라 서있고 나무들 밑에는 쉴만한 벤치도 있어.

 

온실도 몇 개 있었는데, 이젠 다 무너져버린 모양이야.

 

무슨 법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아, 상속인하고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문제였던 것 같은데… 뭐, 어쨌든 거긴 이제 몇 년 째 사람들이 드나드는 일이 없대.

 

그것 때문에 조금 으스스한 기운이 들긴 하지만 이 집에서도 분명히 비슷하게 요상한 느낌이 들어.

 

하루는 달이 환하게 뜬 밤에 존한테 집에 뭔가 씐게 분명하다고 말하기도 해봤는데, 그이는 그냥 찬바람이라고 말하고 창문을 쿵 닫아버렸어.

 

존을 생각하면 가끔씩 이유도 모르게 부아가 끓어오를 때가 있어. 살면서 이 정도로 예민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 아마 내 신경 문제 때문일거야.

 

존은 내가 그렇게 화가 난다는 건 나한테 자제력이 없다는 신호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너무 힘들지만 감정을 조절해보려고 노력중이야, 적어도 그이 앞에서는...  너무 힘들어. 

 

존이랑 같이 쓰는 방에는 맘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어. 난 문을 열면 마을 광장이 훤하게 보이고 창문 주변에 장미로 가득, 옛식 친츠(*chintz, 꽃무니가 날염된 광택 나는 면직물) 벽걸이가 걸린 밑층 방이 좋겠다고 그렇게나 말했는데 존은 그런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그 사람 말로는 밑에 방은 창문이 하나밖에 없고 투베드를 넣기에 넓지도 않으며 원할 때 마다 갈만한 방이 주변에 없는 게 싫대.

 

존은 매사에 조심스럽고 날 언제나 사랑해줘, 그리고 내가 약간씩 흔들릴 때도 특별히 어떻게 하란 식으로 지시를 내리지도 않아.

 

내게 매시간마다 챙겨먹어야 할 약도 지어주고, 늘 날 돌봐주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불만이 생길 때마다 너무 죄책감이 들곤 해. 

 

그이 말로는 우리는 이 곳에 오로지 내 상태 때문에 온 것이라고, 내게는 지금 많은 휴식과 신선한 공기가 필요하대. “운동은 힘이 있을 때 할 수 있는거야, 애기야,” 그가 말했어, “그리고 식욕이 있어야 음식을 먹겠지, 하지만 공기는 가만히 있어도 언제나 들이마시잖아.” 그래서 우리는 여기, 공기 좋은 꼭대기층 탁아실을 쓰게 된거야.

 

방은 커, 층 사방에 창문이 있어서 공기랑 햇빛도 잘 들어오고. 처음엔 유아를 위한 방이었다가, 그 다음엔 놀이터, 그 다음엔 거의 뭐 체육관처럼 변한 모양이야. 아무래도 애기들만을 위한 방이라기엔 창에는 철창살이 있고 벽에는 링같은 것들이 있으니까. 

 

벽지랑 그 위에 칠해진 페인트는 마치 남학생들이 거쳐간 자리처럼 보였어. 침대 위쪽에 벽지는 몇 군데 - 내가 겨우 닿을 수 있을만한 위치까지 - 찢어져 있었고 방의 반대편에 낮은 곳에도 찢어진 자국들이 있었지. 살면서 이렇게 못난 벽지는 처음이야.

 

벽을 뚫고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이 생긴 저 무늬는 정말 예술적으로 범할 수 있을만한 모든 죄를 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거든.

 

벽지의 무늬를 따라가는 사람의 눈을 속여가면서 머리를 아프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이 무늬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 끝으로 쫓아가면 꼭 자살해버리고 말아. 말도 안 되는 각도로 떨어지면서 보도 듣도 못한 모습으로 스스로 몸을 부숴가면서 말이야.

 

벽지의 색깔은 또 어떻고, 거북하다 못해 소름이 끼칠 정도야. 그을린 자국 같이 탁한 누런 색인데 매일 천천히 방향을 바꾸면서 방 안을 왔다가는 햇빛 때문에 그마저도 색이 조금 바랬어. 

 

부분부분 연하면서 이상할 정도로 야릇한 오렌지색이 묻어있고, 나머지 부분엔 흉한 유황색으로 칠해져 있어.

 

그러니까 당연히 애들이 싫어했을 수 밖에! 나만 해도 오랫동안 이런 방에서 지내는 일은 상상도 못할 것 같아.

 

존이 이쪽으로 오고 있어서 오늘은 여기까지 써야할 것 같아, 저이는 내가 한 글자라도 끄적이는 꼴을 못 보거든.

 


   

여기에 온지 이 주가 지났네. 첫째 날에 글을 쓴 뒤로는 더 이상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아서 이제서야 다시 노트를 집었어.

 

지금 나는 괴상한 놀이방 창가 쪽에 앉아서 글을 쓰는 중인데, 너무 약해진 체력을 제외하고는 지금 내 글쓰기를 방해할 만한 건 없단 얘기지!

 

낮 시간 동안은 존이 집에 오는 일이 없어, 어떤 날은 상태가 심각한 환자를 치료해줘야 한다고 밤에도 오지 못할 때도 있지.

 

내 상태는 심각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치만 이 신경 쇠약 때문에 만만치 않게 우울하다는 것도 사실이야.

 

존은 내가 정말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알지 못하고 있어. 그 사람 말로는 지금 내게 고통스러워 할 이유가 없다는데, 그런 말을 하면서 스스로 안심을 하려는 모양이야.

 

당연히 그냥 신경 문제이긴 하겠지. 오히려 그래서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못하고 있는 이 현실이 더더욱이 죄스러워.

 

처음부터 난 존에게 큰 도움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았어, 진정한 휴식과 안정감을 줄 수 있을 줄 알았지. 근데 날 좀 봐, 결혼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짐짝 노릇이나 하고 있는 나를!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옷을 정갈하게 입고, 사람들을 접대해주고, 집안을 정돈하는 일 밖에 없지만, 이런 작은 일들을 할 수 있게 되는데 까지 내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았는지 아마 다들 놀랄걸?

 

메리가 애들하고 잘 놀아줘서 그나마 다행이지. 애는 또 얼마나 이쁜데!

 

신경 문제가 도져있는 바람에 여태껏 그 애와 한 공간에 있을 수가 없게 됐어.

 

아마 존은 살면서 한 번도 신경 문제를 겪어본 적이 없었을거야, 내가 벽지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날 크게 비웃는 걸 보면 말이야.

 

처음엔 존도 벽지를 새로 깔아주려고 했는데, 그 사람 말로는 내가 별 중요하지도 않은 걸 바라고 있는거래. 신경증 환자한테 이런 발상만큼 안 좋은 게 또 없다고 하더라고. 

 

그 사람 말로는 지저분한 벽지 다음엔 무거운 침대틀, 그 다음엔 철창살이 달린 창문, 그리고 방문까지 점점 더 원하는게 많아만 질거라고 했어.

 

“여기 오길 정말 잘했다는 건 알아야 해,” 그가 말했어, “그리고 자기야, 이건 정말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인데, 고작 삼 개월 짜리 렌탈을 하면서 집 구석구석을 뜯어 고치는 일은 별로 좋지 않은 생각인 것 같아.”

 

“그럼 밑층으로 방을 옮기게라도 해줘,” 나는 이렇게 말했어, “밑에 방들은 예쁘기라도 하잖아.”

 

그랬더니 존은 나를 품안에 안아주면서 복받은 줄도 모르는 귀여운 아기 기러기라고 불러주고는 지하실을 하얗게 칠할테니 그 다음에 거기로 옮기고 싶으면 말해달라고 하더라.

 

딴 건 모르겠지만 그이가 침대틀하고 창문 같은 것들에 대해서 말한 건 동의하게 되더라고.

 

물론 이 방이 아늑하고 공기도 잘 통해서 보통 사람들이 원할만한 요소가 많고, 더 중요하게는 안 그래도 바쁜 남편을 더 귀찮게 하려는 사람이 되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누구보다 잘 아니까 그 쯤에서 나도 얘기를 관뒀어. 

 

이 널찍한 방에 서서히 정이 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야, 저 흉측한 벽지만 빼면 말이지. 

 

창문 한 쪽으로는 정원을 볼 수 있어, 이상하리만치 깊은 그늘을 늘어뜨린 나무, 요란하게도 생긴 옛날 꽃들하고 덤불들 까지도 다.

 

다른 쪽 창문으로는 강하고 강 위에 있는 개인 집에 딸린 부두가 있는 예쁜 전망이 보여. 그 집에서부터 예쁘게 떨어지는 그늘진 선이 있거든, 그 선에서부터 시작해 무수한 갈래로 난 길 위에 사람들이 걷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존은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자제하라고 했으니까 참아보려고 해. 그 이 말로는 나한테 상상력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려는 습관이 붙어 있는 한 내가 가지고 있는 신경 쇠약의 증세는 계속해서 드세지면서 필요도 없는 것들을 향한 욕구가 생길 거라고, 그래서 언제나 스스로 드는 마음을 잘 돌봐야한다고 해. 그이 말대로 하려고 노력중이야.

 

내 상황이 글이라도 자유롭게 쓸 수 있을 정도로 괜찮았다면 내 안에 뭉쳐있는 생각들도 풀어 놓고 머리도 좀 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가끔씩 있어.

 

생각은 그런데, 이상하게 실제로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매번 힘이 빠지더라고.

 

조언해줄 사람나 동료 한 명 없이 일을 지속하는 건 너무 힘든 것 같아. 존 말로는 내 상태가 정말로 괜찮아지면 우리 사촌인 헨리랑 줄리아 집에 시간을 길게 잡고 놀러가자고 했어; 그러면서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들을 지금 시기에 만나는건 내 베개 밑에 폭죽을 놓는 거랑 다름없는 짓이라고 덧붙이더라.    

 

얼른 이 병이 나았으면 좋겠어.

 

그런데 지금은 그런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을 때가 아니야, 내가 봤을 때 이 벽지는 자기가 나한테 얼마나 끔찍한 영향을 주고 있는지 스스로도 알고 있는 것만 같단 말이야!

 

벽지를 보다 보면 어느 부분부터 무늬가 반복 되다가 뚝 하고 목이 부러진 사람 마냥 길게 늘어져서는 거꾸로 매달린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은 지점이 있단 말이야.

 

그 건방지면서도 영원할 것만 같은 그 부분을 보고 있으면 언제나 기분 좋게 화가 나곤 해. 그림자들은 시퍼렇게 치켜 뜬 두 눈을 한 번을 꿈뻑이지 않고 위, 아래, 그리고 양옆으로 사방팔방 기어다녀. 벽지에 있는 형상들은 모두 밑을 내려다보거나 위를 올려다보면서 눈을 마주칠 뿐, 한 번도 같은 높이에서 서로의 눈을 마주하는 일이 없어.

 

살아있지도 않은 물체를 보면서 이 정도로 많은 감정을 본 적은 살면서 처음이었어, 말하지 않아도 쟤네한테 감정이 얼마나 있는지 너도 잘 알고 있겠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텅 빈 벽을 보는 시간 동안 혼자 즐거워도 하고 무서워해 하면서 즐긴 적이 종종 있어. 다른 애들이 장난감 가게에서 느꼈던 종류의 즐거움보다 훨씬 더 큰 즐거움이었어.

 

어렸을 적 우리 집 책상에 달린 손잡이가 내게 얼마나 착하게 윙크를 해줬었는지, 집에 있었던 의자 중 하나는 얼마나 듬직한 친구처럼 보였는지 아직도 선명히 기억해.

 

그 때만 해도 난 무서운 일이 생길 때마다 그 의자에 앉으면서 안정감을 느끼곤 했어.

 

그 때에 비하면 이 방에 있는 가구들은 - 밑층에서 가져와서 그런지 - 도저히 조화로운 부분을 찾을 수가 없어. 이 방이 애들 놀이방으로 쓰일 때 있었던 유아용품들은 다 치워버렸을거야, 그럴 수 밖에! 여기처럼 난잡한 공간은 살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든. 

 

내가 말했던 것처럼 벽지는 군데군데 찢어져 있는데, 어쩔 때 보면 우리 오빠보다 더 나랑 가까운 것 같기도 해. 나를 싫어하는 마음은 같더라도 벽지한텐 참을성이 더 있나 봐.

 

바닥은 또 어떤데. 여기저기 찢겨지고, 구멍도 나있고, 깨져있기까지. 석고 반죽 여기저기에 헤쳐진 자국도 많이 나있어, 처음부터 이 방에 덩그러니 있던 침대는 전쟁 지역에서 구해온 것 같이 생겼고.

   

그래도 그런건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아, 유일하게 신경 쓰이는 건 바로 벽지야.

 

존의 여동생이 오고 있어. 아가씨는 사람이 참 따뜻한데다가 나를 너무 잘 보살펴주기까지 하지! 아가씨한테 글을 쓰는 모습을 들키면 안 돼. 

 

아가씨는 살림을 완벽하게 보는데 그보다 더 나은 일자리를 가지고 싶어하는 헛된 꿈도 가지고 있지 않지. 내가 봤을 때 분명히 아가씨도 글쓰기가 내 상황에 매우 안좋다고 생각하는게 틀림없어!

 

그래도 아가씨가 방을 나간 뒤에는 언제든지 다시 글을 쓸 수 있어, 창문으로 천천히 멀어지는 아가씨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말이야.

 

저 길을 걷다보면 양갈래로 길이 나뉘는 부분이 있는데 길 한쪽은 예쁘게 그늘진 구불구불한 길이고, 나머지 하나는 열려있는 시골길이야. 그 길도 정말 예쁜데, 거기에 느릅나무랑 풀밭이 기가 막히거든.

 

저 벽지 밑에는 특정한 밝기에만 보이는 숨겨진 무늬가 있는데 이건 또 다른 구역에 있는 무늬들보다 훨씬 더 무서워. 특정 시간에만 - 햇빛이 알맞게 떨어지기만 하면 - 보이는데, 그 때 마저도 그렇게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아.

 

그런데 조건만 잘 맞으면 벽지에서 이상하고, 왠지 모르게 자극적인, 명확한 형체가 없는 모양이 못난 무늬 뒤를 우왕좌왕 떠돌고 있는 모습이 보여.

 

아가씨가 벌써 계단까지 왔어!

 

원문 출처: 자유 이용 저작물인 샬롯 퍼킨스 길먼(Charlotte Perkins Gilman)의 'The Yellow Wallpaper'을 번역했습니다. 원문을 구할 수 있는 링크를 여기에 남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