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4: F. 스콧 피츠제럴드, "이치에 맞는 일" (완)

2021. 7. 14. 11:42번역/문학 (소설)

이치에 맞는 일


글쓴이ㆍF. 스콧 피츠제럴드
번역ㆍ오성진

 

 

(사진 출처)



Part 4

 

이듬해에도 무더운 9월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테네시의 어느 도시, 구릿빛으로 피부를 바짝 태운 청년이 기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그는 긴장한듯이 주변을 둘러보고 역에서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는 점에 안심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후 남자는 택시를 타고 도시에서 가장 좋다고 알려진 호텔로 도착했고 페루에서도 여전히 쓰고 있는 그의 이름, 조지 오켈리 밑으로 예약된 방에 만족스럽다는 듯이 입장했다.

 

그는 몇 분간 창가에 앉아 익숙한 거리들을 내려다보았다.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떨리는 그의 손은 전화기로 향했고 그는 조심스럽게 기억을 따라 번호를 눌렀다. 

 

“혹시 존퀼이 집에 있나요?”

 

“제가 존퀼인데요.”

 

“아…” 불안해질 뻔했던 목소리를 부여잡고 그는 친숙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나야, 조지. 내 편지는 받았어?”

 

“응. 오-늘쯤 너 전화가 올 줄 알았어.”

 

마냥 감정의 변화가 섞여있지 않은 그녀의 침착한 목소리가 살짝 거슬렸지만, 다행히 예전만큼 괴롭지는 않았다. 이 목소리는 낯선 이의 것일 뿐, 그를 볼 마음은 충분히 담겨있다고 생각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잠시 수화기를 내려놓고 숨을 고르고 싶어졌다.  

 

“널 본 지도 꽤… 오래 됐네.” 그의 목소리는 성공적으로 차분하게 전달되었다. “벌써 일 년도 더 됐으니까 말이야.”

 

사실 그는 며칠이 지났는지 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다시 얼굴보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너무 좋을 것 같아.”

 

“한 시간 안에 거기로 갈게.”

 

그는 전화를 끊었다. 사계절이 흐르는 동안 매시간, 매분, 매초 그가 고대해오던 시간이 드디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여자가 결혼이나 약혼, 그게 아니면 최소한 누군가와 만나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의 전화에 이렇게 시큰둥하게 반응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의 인생에서 다시는 지난 십 개월같은 시간은 없을 것이라고, 없어야만 한다고 그는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는 두 가지 예상치 못 한 기회를 통해 젊고 특출난 공학자임을 당당하게 증명해냈다. 첫 번째 기회는 페루에서 받은 제안이었고, 기회를 잡아 페루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땐 곧바로 뉴욕에서 그에게 제안이 들어왔다.이 짧은 기간 내에 그는 가난했던 시절에서 무사히 탈출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위치를 거머쥘 수 있었다.

 

그는 화장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햇볕에 그을려진 그의 피부는 어두웠지만 그는 그건 또 나름대로 그에게 잘 어울리는 색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느낀지는 일주일 정도가 지났는데 그 뒤로 거울속 자신을 볼 때마다 그는 꽤나 만족스러워 했다. 한 층 더 단단해진 그의 골격 또한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부여해주는 요소중 하나였다. 어딘가에서 눈썹 일부분에 상처를 입고 아직도 무릎에 고무 밴드로 감싸매야 생활이 가능했지만 변해가는 그의 모습에 관심을 보이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마냥 못본 척 지나치기에는 그의 나이가 아직 너무 어렸다.

 

옷, 그가 입고있는 옷 또한 봐줄만 했다. 리마에 거주하는 그리스인 재단사가 이틀에 걸쳐 그만을 위해 재단해준 옷이었다. 그렇다보니 옷에 엮인 이야기를 여자에게 꺼내지 않기에도 그의 나이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이미 관련된 정보는 편지에 모두 적어보낸 상태였다. 유일하게 그가 존퀼에게 자랑 대신에 넣은 말이라고는 기차역에서 그녀와 마주치고 싶지 않다고 말한 요청 뿐이었다.

 

페루의 쿠스코라는 도시에서 온 조지 오켈리는 해가 하늘 중천에 뜰 때 까지 한 시간 반 정도 호텔방에서 기다렸다. 깔끔하게 면도를 마친 매력적인 피부색의 남성은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고는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바깥으로 나갔다. 호텔 정문에서 그를 태우고 출발한 택시는 남자가 오랜 시간 알았던 집을 향해 바퀴에 힘을 실었다.

 

스스로 숨을 얼마나 가쁘게 쉬고 있는지 인식한 남자는 자신의 반응이 기뻐서 보이는거라고 생각하며 애써 넘겼다. 그는 그녀의 동네로 돌아왔고 분위기를 보아하니 그녀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상태였다. 조지는 그것만으로도 매우 만족스럽다고 여겼다. 남자는 여자에게 뭐라고 해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지만 동시에 지금 이 순간이 그의 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 될 것이라는 사실 또한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지난 일 년 동안 꿈의 여자 없이는 진정한 성공도 없을 것이라 느끼게 된 남자였다, 성공을 위한 동기는 모두 여자를 위한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는 설령 그녀를 가질 수 없다고 하더라도 변한 모습으로 잠시만이라도 그녀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마침내 차창 밖에 그녀의 집이 보였고 남자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 매우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그가 구 개월 동안 혼자 상상했던 풍경과는 하나도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쩌면 모든 것이 변했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수도 있겠다. 그녀의 집은 그가 상상한 것보다 작고 누추해보였고 지붕 위에는 윗층 창문에서 새어나와 그 위를 감싸고 있는 마법 구름 같은 것도 없었다. 남자는 초인종을 눌렀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흑인 하녀가 그를 맞이해주었다. 아가씨가 금방 내려오신다고 하셨어요, 하고 하녀가 말했다. 입술이 말라붙은 사내는 하인의 안내에 따라 거실로 들어갔고 집안으로 한 발짝씩 옮길 때마다 그가 느끼는 비현실성은 커져만 갔다. 남자 앞에 놓인 공간은 그가 상상속에서 몇날며칠을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던, 고대의 힘이 깃든 거대한 방이 아니라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방이었다. 남자는 자신이 앉고 있는 평범하게 생긴 의자를 바라보며 그 스스로 상상속에서 색깔, 생김새, 분위기 등 여러 가지를 변형시켜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이 열리고 존퀼이 방 안으로 들어온 순간, 남자의 시야에 비치는 광경은 전체적으로 순식간에 흐릿해졌다. 그녀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잊고 있었던 그의 얼굴은 새하얘졌으며 목소리는 작아지다 못해 그의 목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연한 녹색 드레스를 입고 있던 존퀼은 황금색 리본으로 길고 어두운 생머리를 묶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그녀가 왕관을 쓴 것 처럼 보이게 했다. 익숙한 벨벳색 두 눈은 그를 바라보고 있었으며 고통스러울 만큼 아름다운 존퀼을 마주하고 있던 존의 머릿속에서는 전기가 흐르고 있었다.

 

남자가 안녕, 하며 인사를 한 뒤 둘은 서로를 향해 한 발자국 가까이 서며 악수를 했다. 남녀는 어색해하며 서로 멀리 떨어진 의자에 각자 자리를 잡고앉아 상대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돌아와줬구나,” 하고 여자가 말했고 “지나가는 길에 요즘 어떻게 지내나 보러 왔어,” 하고 남자도 여자를 따라 별거 아니라는 듯이 답했다.

 

남자는 목소리에 묻어나는 떨림을 줄이기 위해 최대한 시선을 여자의 얼굴에서 멀리했다. 아무래도 먼저 말을 꺼내야 할 의무는 먼저 만남을 제안한 남자쪽에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상황을 가지고 자랑을 하지 않고서야 도무지 할 말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들의 마지막 만남이 전혀 일상적인 성격의 것과는 멀었던 탓에 이제와서 날씨에 관한 이야기를 꺼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말이다.

 

“이건 실수였어,” 창피해하는 표정의 남자가 갑자기 내뱉었다.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네, 혹시 내가 이렇게 불쑥 찾아왔다고 불편한건 아니지?”

 

“어.” 너무도 짧고 비인간적으로 슬픈 대답은 남자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약혼했어?” 조지가 물어보았다.

 

“아니.”

 

“누구, 좋아하는 사람은... 있어?”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남자는 머쓱한 표정으로 다시 침대에 몸을 묻었다. 그에게 더이상 꺼낼만한 주제가 다 떨어져버리고 말았고 남자는 뭐라고 해야 좋을지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둘의 대화가 그의 계획대로 흐르지 않고 있는 것 하나만큼은 분명했다. 

 

“존퀼,” 남자가 말했다. 이번에 그의 목소리는 한결 편안해진 톤이었다, “우리 사이에 그런 일이 있었던 뒤로 꼭 한 번 돌아와서 너를 만나고 싶었어. 내가 앞으로 살면서 그 무엇을 하던간에 절대 너를 사랑했던 만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을거야.”

 

이건 전날밤 남자가 몇 번이고 연습한 대사였다. 여러번 연습할 당시만 하더라도 그가 그녀를 향해 가지고 있는 마음, 여유를 가지고 더이상 상대를 다그치지 않을 수 있게 된 태도, 부드러움, 그가 원하는 모든 걸 지닌 채 완벽하게 입밖으로 나왔지만 막상 시간이 지날수록 무거워지는 공기 속에서 말을 뱉고 나니 그가 한 말들은 모두 진부하고 도무지 진정성이 묻어나지 않았다. 

 

아무 답이 없던 그녀는 약간의 미동도 없이 앉아있었고 남자를 지긋이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엔 세상에 모든 의미가 담겨있거나 아니면 일말의 의미도 없는 듯이 보였다.

 

“날 더 이상 사랑하지 않지?” 남자가 평범한 목소리로 여자에게 물어보았다.

 

“응.”

 

시간이 조금 지나 캐리 부인이 방에 들어와 남자에게 그가 이뤄낸 성공적인 업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녀가 쥔 지역신문에는 남자에 관한 반토막 짜리 칼럼이 적혀있었다. 이쯤 되어서야 남자는 그가 아직도 앞에 앉아있는 여자를 되찾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가끔씩 사람들은 과거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믿었고 그에게도 그런 일이 벌어지기를 바래왔던 것이다. 

 

“자 이제,” 캐리 부인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둘 다 좀 요 앞에 국화 키우시는 분이라도 만나고 오는게 어떻겠니. 그 아주머니가 신문에서 존 이야기를 읽고 특별히 나한테 너희들을 초대하고 싶다고 하시더라.”

 

둘은 국화 정원으로 걸어갔다. 거리 위를 걸었는데 남자는 여자의 비교적 짧은 발걸음이 그의 발걸음 사이사이에 총총 소리를 낸다는 점을 의식하며 자기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국화 여인은 꽤 자상했고 그녀의 국화들은 모조리 거대하고 상당히 아름다웠다. 여인의 정원은 분홍색 국화, 하얀색 국화, 노란색 국화, 온통 국화들로 가득차있었는데 그 양이 어마어마해서 정원에 서있기만 해도 작년 여름으로 다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을 안겨주었다. 여인의 정원은 사이에 작은 통로를 두고 두 개의 다른 구역으로 나뉘어있는 구조였는데 두 번째 구역으로 안내해주던 여인이 먼저 통로로 들어섰다.

 

바로 그 때,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존퀼이 먼저 갈 수 있도록 조지가 몸을 비켜주었지만 그를 지나치는 대신 존퀼은 가만히 서서 남자를 얼마간 바라보았다. 물론 둘 중 한 명도 웃음을 띄지 않고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지만 그보다는 둘간에 떠도는 침묵이 제일 큰 문제였다. 서로의 눈을 마주보던 둘은 동시에 짧고 가쁜 숨을 내뱉고 나서야 두 번째 정원으로 들어갔다. 그게 다였다.

해는 천천히 지고 있었다. 두 남녀는 꽃을 사랑하는 여인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생각에 잠긴 채 집으로 나란히 걸어갔다. 조지는 존퀼의 아버지에게 남미에서 겪은 일들을 하나씩 이야기해주었고 앞으로 그의 미래는 순탄할 거라는 사실 또한 잊지 않고 일러주었다. 

 

해는 천천히 지고 있었다. 두 남녀는 꽃을 사랑하는 여인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생각에 잠긴 채 집으로 나란히 걸어갔다. 조지는 존퀼의 아버지에게 남미에서 겪은 일들을 하나씩 이야기해주었고 앞으로 그의 미래는 순탄할 거라는 사실 또한 잊지 않고 일러주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존퀼과 조지는 그들의 사랑의 시작이자 마지막이 되어준 방에 단둘이 남아있었다. 존에게는 마지막으로 이 방에 존퀼과 함께 있었던 지가 너무도 오래인 것 처럼 느껴졌고 그 사실은 그로 하여금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프게 만들었다. 저기 보이는 소파 위에서 남자는 한 때 그가 다시는 맛보지 못 할 정도의 강력한 고통과 슬픔을 느낀 적이 있다. 그는 다시는 그 정도로 약하거나, 그 정도로 지쳐있거나, 그 정도로 가난하지도, 그 정도로 한심하지도 않을 수 있는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십오 개월 전에 자신의 이름을 딴 청년 안에는 현재의 자신이 더이상 가질래야 가질 수 없는, 굉장히 순수한 것, 믿음이나 따뜻함, 그 둘을 섞은 것 보다도 커다란 어떤 것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지했다. 이치에 맞는 일, 그렇다, 그들은 이치에 맞는 일을 한 것이었다. 슬픔에 젖은 조지는 그의 청춘을 가져다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힘과 성공에게 팔아버린 것이었다. 이제 와서야 알게되었지만, 그의 청춘에 피어난 사랑에는 다시는 찾지 못 할 신선함이 묻어나있었던 것이다.

 

“나와 결혼해주지 않을거지?” 그가 조용하게 말했다.

 

존퀼은 그녀의 어두운 머리를 조용히 끄덕였다.

 

“난 평생 결혼하지 못 할거야,” 그녀가 답했다.

 

남자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에 워싱턴으로 갈거야,” 그가 말했다.

 

“아…”

 

“가야만 해. 뉴욕에 가야하는데 가는 길에 워싱턴에 들려야 할 일이 있거든.”

 

“여기서까지 일얘기야?!”

 

“아-아니야,” 남자는 결코 아니라는 듯이 심하게 부정하며 말했다. “단지… 거기에 몇 번 들릴 때 나한테 잘해준 사람이 거기 살고 있어서 가려던 것 뿐이야.”

 

이건 남자가 즉석에서 말이었다. 워싱턴 주에는 그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남자는 말하면서 건너편 여자의 눈치를 찬찬히 살폈다. 그리고 그녀가 인상을 살짝 찌푸린 순간, 그러니까 그녀의 눈이 감겼다가 다시 크게 열린 순간을 포착했다.

 

“그치만 가기전에 내가 너를 봐오면서 느낄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해주고 싶어. 그리고 우리가 다시는 못 볼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까… 너만 괜찮다면 내가 이야기해주는 동안 예전에 하던듯이 너가 내 무릎 위에 한 번 앉아줬으면 좋겠어.”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사라져버린 지난 봄, 그녀가 자주 했던대로 남자의 무릎위에 앉았다. 남자의 어깨 위에 기댄 그녀의 머리와 그녀의 익숙한 몸은 남자를 짜릿하게 만들었다. 여자를 감싼 남자의 팔은 그녀를 조금 더 꽉 끌어안았고 남자는 최근 들어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편안함을 만끽하며 뒤로 누워 공중에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남자는 여자에게 뉴욕에서 보냈던 끔찍한 2주간의 생활, 그리고 어떻게 그 짧고 힘들었던 생활이 뉴져지에서 높은 보수를 주는 매력적인 일을 따내면서 막을 내리게 되었는지 이야기 해주었다. 처음 페루에서 일자리를 제안 받을 때 그는 그 기회를 별로 석연치 않게 생각했다. 그가 제안받은 일은 쿠스코로 항해하는 선에서 조수로 일하는 것이었는데 배 위에 사람들 중 겨우 열 명만 실제로 쿠스코로 다녀와 본 경험이 있었다. 십 일이 지났을 때, 모험단장은 황열병에 걸려서 사망했는데, 이게 그에게 엄청난 기회로 돌아왔다. 바보가 아니라면 잡을 수 밖에 없는 기회, 엄청난 기회...

 

“‘바보가 아니라면 잡을 수 밖에 없는’?” 남자의 이야기를 듣던 여자는 순수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설령 바보라도 잡을 수 밖에 없는 기회였지,” 그가 말을 이어나갔다. “전부 너무 좋았어. 그 뒤로 내가…”

 

“그래서,” 여자가 다시 끼어들었다,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너가 단장 자리를 대신했으면 좋겠다고 한거야?”

 

“‘대신 했으면 좋겠다’라니?” 여전히 고개를 젖힌 채 소파에 등을 대고 있던 남자가 답했다. “대신 해야만 했어. 일을 하던 중에 도무지 낭비할 시간이 없었거든…”

 

“단 일 분도?”

 

“단 일 분도.”

 

“이거 할 시간도 없었겠네…”라고 얘기하고는 그녀가 말을 멈추었다.

 

“뭘 할 시간?”

 

“일로 와 봐.”

 

남자는 재빨리 머리를 앞쪽으로 내밀었고 여자도 그와 동시에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이제 막 핀 꽃처럼 수줍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아니지,” 남자는 여자의 입술 안쪽으로 속삭였다. “이 입술에 쓸 시간은 언제든지 찾을 수 있지.”

 

남자의 말은 그의 인생에서, 또 그녀의 인생에서 앞으로 남은 모든 시간을 지칭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와 입을 맞추는 순간 남자는 깨닫게 되었다. 원하는 것을 찾을 때 까지 영생이 주어진다 한들 그로서는 더이상 작년 4월에 그녀와 보냈던 시간들을 되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남자는 너무도 긴 시간 동안 가지고 싶어했고, 결코 흔하지도 않은 그녀를 팔에 핏줄이 보일 때 까지 꽉 끌어안을 수 있었지만 결국 그녀는 밤에 살랑거리는 바람처럼 손으로 쥘 수 없는 존재가 되었음을 인식하고는 팔에 힘을 풀었다.

 

뭐, 어쩔 수 없지, 그는 되뇌였다; 4월은 이제 없다고, 봄같은 4월은 다시는 없을거라고. 세상엔 수천, 수만개의 다양한 사랑이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똑같은 사랑은 있을 수 없는 법이다. 

 

 



원문 출처: 자유 이용 저작물인 F.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의 'The Sensible Thing'을 번역했습니다. 원문을 구할 수 있는 링크를 여기에 남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