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 W. W. 제이콥스, "원숭이 손" (완)

2021. 7. 4. 21:53번역/문학 (소설)

원숭이 손


글쓴이ㆍW. W. 제이콥스
번역ㆍ오성진

(그림 출처)


Part 3

노부부는 집에서 2마일 정도 벗어난 곳에 위치한 거대한 공동묘지에 아들의 시신을 묻어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둘은 약속한 듯이 그림자 안에 숨어 침묵에 잠겼다.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는 바람에 처음에는 제대로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던 두 늙은이에게는 시간이 흐를수록 둘이 감당해내기 너무도 힘든 이 사태의 무게를 덜어줄만한 새로운 일들이 벌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무심하게도 시간은 별일없이 흘렀고 그들의 헛된 기대는 점점 식어만 가서 두 노인이 지니게 된 고통스러운 마음에 더 많은 짐을 짊어주었다. 그들은 가끔씩 몇 마디만 주고받을 뿐, 제대로 된 대화도 하지 못 할 지경으로 길고 지루한 하루하루를 보내며 지냈다.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까, 새벽에 옅은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켠 화이트씨는 침대 위에 혼자만 누워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둠이 가득히 드리운 방 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창문 바로 옆에서는 소리를 죽이기 위해 애써 참고있는 듯 새어나오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몸을 일으켜세워 침대에 걸터앉은 남자는 울음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침대에 다시 눕는게 어때,”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창가는 추워.”

“제 아들은 지금 더 추울거예요,” 늙은 여인이 말하고는 그제서야 울음보를 터뜨렸다.

그녀의 울음소리는 그의 귓등에 닿기도 전에 사라졌다. 침대는 따뜻했고 졸음 그득한 그의 눈꺼풀에는 계속해서 그 무게가 더해져만갔다. 그렇게 그는 선잠에서 깬지 일 분도 채 안 되어서 다시 잠에 빠졌지만 그의 아내가 온 힘을 다해 외치는 탄성소리에 다시 눈을 떴다.

손2!” 그녀가 괴성을 질렀다. “원숭이 손!

식겁한 남편은 침대에서 번쩍 뛰어올랐다. “어디? 어딨는데? 뭐가 문제야?”

그녀는 휘청거리며 남편에게 걸어갔다. “원숭이 손을 내놔,” 그녀가 속삭였다. “설마... 없애버린건 아니지?”

“탁자 위에 있어.” 그가 답했다. 그의 눈은 놀란 다람쥐의 그것과 같았다. “왜 그러는건데?”

그녀는 울음과 웃음을 동시에 터뜨리고는 허리를 굽혀 남편의 볼에 입을 맞췄다.

“이제서야 떠올랐어,” 그녀가 새어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 하며 말했다. “왜 지금껏 생각하지 못 한거지? 당신은 왜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 한거야?”

“아니 글쎄, 뭘 생각 못 했냐고 하는거야?” 그가 물었다.

“아직 소원이 두 가지나 남았잖아,” 그녀가 빠르게 답변했다. “소원은 한 가지만 이루어졌으니까 말이야.”

“아들을 잃은 걸로도 충분하지 않아?” 그는 화에 가득찬 목소리로 대들었다.

“아니지,” 부인은 승리감에 젖어 흐느꼈다. “하나 더 빌어보는거야. 얼른 내려가서 그 징그럽게 생긴 물건을 가져와. 그리고 우리 새끼가 다시 살 수 있게 소원을 빌어.”

남자는 침대에서 일어나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그의 팔다리를 덮고 있는 이불을 제꼈다. “당신… 당신 정말 미친거 아니야?!” 그의 목소리는 공포심에 젖어있었다.

“가져와,” 그녀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얼른 가져와서 소원을 빌… 오, 하나님, 내 새끼, 내 새끼!”

그녀의 남편은 성냥에 불을 지펴 초를 켰다. “당장 침대에 도로 누워,” 평정심을 잃은 그가 말했다. “지금 당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해?”

“첫 번째 소원이 들어졌잖아요,” 여인은 땀을 흘리며 다그쳤다, “그러면 두 번째 소원이 안 될 것도 없죠.”

“우연일 뿐이야,”하고 남편이 말을 더듬으며 답했다.

“당장 집어와서 소원을 빌어!” 여자가 흥분에 젖어 몸을 떨면서 소리쳤다.

늙은이는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목소리는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허버트가 죽은 지 벌써 열흘 째야, 그래서 그 애는.. 내 입으로 말하고 싶지도 않아... 옷가지로만 겨우 우리 아이임을 확인할 수 있었잖아… 그 때도 그렇게 힘들게 봤으면서 지금은 어떻게 보려고 이러는거야?”

“되돌려 놔,” 여인이 소리치며 남편을 문까지 끌고갔다. “당신 생각에는 내가 무서워 할 것 같아요? 내가 먹이고 키운 내 아이를?”

남편은 하는 수 없이 어둠을 뚫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벽에 손을 더듬어가며 한 발 한 발 걸어가던 그는 탁자를 기어코 찾아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물건은 제자리에 있었다. 그는 과연 사지가 뜯겨나간 아들을 살려낸다는 해괴망측한 소원을 어떻게 빌어야 할지를 두고 깊은 고민에 잠겼다. 땀에 젖은 그의 눈썹은 차가웠고 남자는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채 테이블 주변을 한참을 빙빙 돌았다. 겨우겨우 다시 계단을 찾아낸 그는 두려움에 떨리는 몸을 이끌고 한 걸음씩 심판의 방을 향해 걸어갔다.

방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아내의 모습은 많이 낯설었다. 창백한 아내의 얼굴은 무언가를 엄청나게 갈망하는 듯 했고 인간의 것이 아닌듯한 느낌도 서려있는 듯 했다. 남편은 점점 그의 배우자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소원을 빌어!” 그녀가 강한 목소리로 윽박질렀다.

“말도 안 되는 짓이라는거... 당신도 알잖아,” 그가 더듬거렸다.

소원을 빌어!” 아내는 같은 말을 반복하며 재촉했다.

남편은 물건을 쥔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나는 내 아들이 다시 살아났으면 한다...”

원숭이 손은 바닥에 떨어졌고 늙은이는 두려움에 휩싸인 눈빛으로 그것을 바라봤다. 이후 남편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고 눈에서 불길이 일고있던 아내는 창문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블라인드를 올렸다.

그는 극심한 추위에 오한이 들 때 까지 자리에 앉아 간간이 창문 밖을 노려보고 있는 아내의 실루엣을 곁눈질했다. 벌써 촛대보다 낮게끔 녹아내린 초는 천장에, 그리고 손에 땀을 쥐게할만한 형상의 그림자를 한참동안 벽 위에 흩뿌리다가 제일 강렬한 불꽃을 뿜어내고는 장렬히 꺼졌다. 이번에는 다행히 원숭이 손에 효력이 없었다는 생각에 노년의 남성은 차마 말로 표현을 다하지 못할만큼 안도감을 느끼며 다시 침대로 돌아가 누웠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슬픈 표정의 아내도 조용히 그의 옆으로 기어가 잠자리에 들었다.

둘 다 아무말이 없었다. 방 안엔 오로지 똑딱거리는 시계소리, 문밖에 계단이 삐걱거리는 소리, 벽 건너편 쥐새끼들이 찍찍거리는 소리만이 간간이 들릴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을 감싼 어둠에는 노부부를 억누르려는 듯한 무거운 기운이 배어 있었다. 용기가 날 때 까지 기다리며 한참동안 누워있던 남자는 마침내 성냥 하나를 태워 여분의 초를 가지러 아래층으로 걸어갔다.

그가 계단을 밟자마자 성냥불은 꺼졌다. 노인이 성냥갑에서 다른 성냥을 꺼내기 위해 잠시 발걸음을 멈춘 바로 그 때, 현관문에서 너무 작고 긴밀해서 겨우 들릴까 말까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남자의 떨리는 손은 성냥갑을 떨어트렸다. 꼼짝없이 서있게 된 노인은 노크 소리가 다시 날 때까지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노인은 몸을 돌려 재빨리 방으로 돌아가 문을 잠궜다. 두 번째 노크 소리는 온 집안에 들릴 정도였다.

이게 무슨 소리야?” 부인이 소리치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쥐,”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쥐새끼가 계단에서 내 앞을 지나갔어.”

그의 아내는 침대에 몸을 세워 앉아 공중에 귀를 기울였다. 다시 한 번 큰 노크 소리가 온집안에 퍼졌다.

“허버트예요!” 그녀가 소리쳤다. “허버트가 온게 분명해요!”

그녀는 문을 향해 달려가려 했지만 한발짝 더 빠르게 움직인 남편이 그녀의 팔을 세게 쥐었다.

“나가서 뭘 할건데?” 남자가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 아들이야, 허버트가 왔다고요!” 그녀가 울부짖으며 그의 손목을 떨쳐내기 위해 몸을 흔들었다. “공동묘지에서 집까지 2마일이나 떨어졌다는 사실을 까먹고 있었네요. 오느라 시간이 조금 걸렸나 봐요. 이제 제 팔을 놔주세요, 제발. 당장 내려가서 문을 열어줘야 해요.”

“제발, 제발 저걸 들이지 마,” 남성이 떨면서 소리쳤다.

“허버트는 당신 자식이예요, 제자식이 무서운 거예요?” 그녀는 팔을 흔들면서 소리쳤다. “날 보내줘요. 엄마가 간다, 허버트. 엄마가 금방 갈게.”

현관문에는 한 번 더 노크 소리가 울렸고 또 한 번 울렸다. 갑자기 팔을 비틀면서 남편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노년의 여성은 방문을 향해 달렸다. 그녀가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동안 그녀의 남편도 침대에서 나와 그녀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 그는 바들바들 떨며 아내가 문에 달린 체인과 문고리를 하나씩 풀리는 소리에 귀기울였다. 다음으로 들려오는 건 그녀가 숨을 헐떡이며 내뱉는 목소리였다.

“빗장,” 여인이 크게 울부짖었다. “당장 내려와요! 빗장에 손이 닿지가 않아요!”

하지만 이 때다 싶었던 남편은 바닥에 엎어져 손발을 바삐 움직이며 오로지 원숭이 손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두 눈에 불을 켰다. 그의 목표는 문 밖의 것이 집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소원을 들어주는 물건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는 집 안엔 쉼없이 쏟아지는 노크 소리와 함께 아내가 부엌에서 의자를 들고 문까지 낑낑대며 끌고가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빗장이 천천히 제껴지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는 비로소 바닥 한 쪽에 숨어있던 원숭이 손을 찾아냈다. 광기에 젖어 땀으로 범벅이 된 노인은 몸을 일으켜 세워 오른팔을 들고 세번째, 마지막 소원을 외쳤다.

일순간에 노크 소리는 사라졌지만 아직도 소리의 잔향만은 집안 곳곳에 온전히 울리고 있었다. 아내가 의자를 뒤로 치우고 벌컥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차가운 바람이 계단을 타고 날아와 그의 피부에 닿았을 즈음, 실망과 슬픔으로 가득한 그의 아내가 뿜어낸 길고도 큰 소리에 비로소 용기를 얻은 남자는 부인의 곁으로 달려가 문 밖을 확인했다. 어느 인적도 느껴지지 않는 조용한 길 위, 건너편 가로등 불빛은 빠른 속도로 꿈뻑이고 있었다.


원문 출처: 자유 이용 저작물인 W. W. 제이콥스(W. W. Jacobs)의 'The Monkey's Paw'를 번역했습니다.
원문을 구할 수 있는 링크를 여기에 남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