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 커트 보네것, "2 B R 0 2 B" (1)

2021. 6. 24. 14:02번역/문학 (소설)

2 B R 0 2 B

 

글쓴이ㆍ커트 보네것
번역ㆍ오성진

 

 

“고민거리가 있나요? 전화를 주세요. 고민을 해결해 드립니다 -- 여태껏 그랬듯이요!”

 

Part 1

 

모든 것들이 문제없이 돌아가는 시대가 도래했다.

 

감옥도, 빈민가도, 정신병원도, 절름발이도, 가난도, 전쟁도 더이상 자취를 감춘 세계.

 

모든 질병에는 각각 고칠 수 있는 방법이 마련되었고 노화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죽음, 심각한 사고는 꼭 원하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모험적인 엔터테인먼트로 몰락한지 오래였다.

 

그리고 미합중국의 인구는 사천 명 이상을 넘기지 않도록 조정되었다.

 

시카고에 어느 산부인과가 맞이한 밝은 아침, 아내의 출산을 앞둔 에드워드 K. 웰링라는 이름의 사내가 대기실에 비치된 의자에 앉아있었다. 병원에서 출산소식을 기다리며 앉아있는 이는 그가 유일했다. 더이상 한날한시에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는 세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웰링은 쉰여섯이었다. 평균수명이 126살인 전체 인구를 감안하면 그는 해봤자 이제 막 청년기를 지나고 있던 차였다. 

 

웰링의 아내에 뱃속에는 세쌍둥이가 있었으며 이 아이들은 두 부부가 맞이하는 첫 자손이었다.

 

젊은 웰링은 등을 굽은 채로 자리에 앉아 양손으로 그의 머리를 쥐어매고 있었다. 그의 미간 위엔 자글자글 구김살이 새겨져있었고 그의 형상이 띄우는 색깔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해 아무도 그의 존재를 인지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대기실의 공기 자체가 비균형적이고 도덕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냄새를 띄고 있어서 그랬는지 웰링의 위장은 성공적이었다. 의자와 재떨이는 벽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놓여졌고 바닥엔 여기저기 벽을 닦다 만 행주들이 널부러져있었다. 

 

대기실은 새롭게 꾸며지고 있었다. 최근 자진해서 죽음을 맛보겠다며 나선 사나이를 추모하는 그림이 새겨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백 살 정도 되는 냉소적인 늙은이가 사다리에 앉아 스스로 가당치도 않아하는 유형의 벽화를 그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생긴 것으로 나이를 짐작할 수 있었던 과거의 기준대로 그를 판단하자면 그의 생김새는 서른 다섯 정도로 보일 게 분명했다. “노화”라는 병균의 치료제가 세상에 손보여지기 전까지 그는 그 정도의 나이였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가 그리고 있는 벽화는 굉장히 깔끔한 정원을 묘사하고 있었다. 벽화에는 하얀색 가운을 입고 있는 남자와 여자, 의사와 간호사가 토양을 갈고 씨앗을 심으며 벌레들을 퇴치하고 비료를 뿌리는 장면이 그려져있었다. 

 

보라색 유니폼을 입은 남녀들은 잡초를 제거하고 늙어버려 더이상 제역할을 못 하는 식물들을 잘라내고 있었으며 병든 이파리들을 모아다가 쓰레기 소각을 담당하는 일꾼들에게 넘겨주고 있었다.

 

절대, 절대, 절대, -- 그러니까 중세시대의 홀란드나 과거의 일본에서도 -- 이 정도로 정형화되고 깔끔히 정돈된 정원은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모든 식물에게는 각각이 필요로 하는 햇빛, 물, 공기, 토양이 정확하게 골고루 분배된 것 처럼 보였다.

 

병원의 잡역부가 유행하는 노래를 작게 흥얼거리며 복도를 내려왔다:

 

자기야, 내 키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나는 이렇게 할거야.
나는 보라색 옷을 입은 여자를 볼 것이며
그 다음엔 이 슬픈 세상과 키스할거야.
너가 내 사랑을 원하지 않는다면
왜 내가 이 공간을 다 차지 해야만 할까?
난 이 낡디낡은 행성에서 멀어질거야,
예쁜 아가에게 내 자리를 가져가달라 해.

 

잡역부는 벽화와 벽화가를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진짜 같네요,” 그가 말을 뗐다, “제가 중앙에 서있는 모습도 상상할 수 있겠어요.”

 

“왜 당신이 이 안에 없다고 생각하지?” 벽화가는 이렇게 말하고는 냉소적인 미소를 내비쳤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이 그림의 제목은 ‘삶의 행복한 정원’인걸.”

 

“‘삶의 행복한 정원'이라… 히츠 박사님에게 감사할 일이죠.” 잡역부가 말했다.

 

그림에 흰색 가운을 입고 있는 사나이중 한 명, 이 병원의 산부인과장을 맡고있는 벤자민 히츠 박사를 일컫는 말이었다. 히츠는 한 번 마주치면 가히 눈이 멀 정도로 잘생긴 사나이였다.

 

“아직 채워질 얼굴들이 많이 보이네요,” 잡역부가 말했다. 벽화에 그려진 인물들의 얼굴이 아직 많이 비어있었다. 모든 빈칸들은 연방중단국의 시카고 지사, 또는 병원의 주요인물들로 구성될 예정이었다.

 

“그럴싸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건 참 부러운 일이네요,” 잡역부가 한 번 더 말했다.

 

벽화가는 그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자네, 내가 이 개같은 그림을 자랑스러워 할거라 생각하는거야?” 그가 말했다. “자네가 보기엔 내가 보는 인생이 이렇게 생겨먹었을 것 같나?”

 

“이게 아니라면 인생을 어떻게 생각하시는데요?” 잡역부가 물었다. 

 

화가는 지저분한 걸레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정도면 좋겠네. 저걸 액자에 걸어보세, 이딴 그림보다 훨씬 더 가감없이 인생을 바라본 예술작품이 탄생할 거야.” 

 

“세상을 너무 우울하게만 보시는 것 같은데?” 청소부가 말했다.

 

“그게 범죄인가?” 화가가 답했다. 

 

잡역부는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는 “할아버지, 여기서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하고 핀잔주듯이 말을 시작하며 더이상 살고 싶지 않은 이들을 위한 전화번호를 읊어주었다. 그는 번호에 적혀있는 영(0)을 “낫(naught)”이라고 발음했다.

 

그 번호는: “투 비 올 낫 투 비(2BR02B, 사느냐 죽느냐)”였다.  

 

번호가 이어주는 기관은 화려한 별칭들을 많이도 가지고 있었고 그 별칭으로는: “자동판매기", “새의 나라", “통조림 공장", “캣박스", “이지-고", “굿바이, 마더", “해피 훌리건", “마지막 키스", “운좋은 피에르", “세양액", “울음이 그치는 곳", 그리고 “걱정 제거소” 등등이 있었다. 

 

“죽느냐 사느냐"라는 뜻을 지닌 이 번호의 주인은 바로 연방중단국의 가스실이었다.

 

화가는 턱을 들어 청소부에게 까딱하고는 “만일 내가 떠나야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더라도 그 ‘통조림 공장'만큼은 갈 일이 없을거야.”라고 말하면서 콧방귀를 뀌었다.

 

“아, 혼자서 마무리짓는 방식을 선호하나 보죠?” 잡역부가 물었다. “다시 생각하세요, 할아버지. 그만큼 지저분한 일도 없어요. 할아버지 시체를 뒷정리해야 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조금 더 나은 방법을 생각해보시는 건 어때요?” 

 

화가는 살아남은 자들이 그의 뒤를 치우며 겪어야 할만한 고통에 일말의 미안함도 없이 “지금 세상은 조금 더 지저분해져도 될 거라 생각하는 편인데 이거 어쩌지...”라고 말했다. 


잡역부는 그 말을 듣고 호탕하게 웃어제끼고는 가던 길을 걸어갔다.

 

한 편 출산을 기다리던 곧 아빠가 될 운명의 남자, 웰링은 고개를 들지도 않은 채 뭐라뭐라 중얼대더니 이내 곧 다시 침묵에 젖었다.

 

이 때, 상당한 성적 매력을 뿜어내는 여성 한 명이 또각또각 소리가 복도 전체에 울릴만한 하이힐을 신고 대기실로 들어왔다. 그녀의 힐, 스타킹, 트렌치 코트, 가방, 그리고 해외에서 건너왔을 법한 모자는 전부 보라색이었는데, 이 색깔을 두고 화가는 “심판의 날에 어울리는 포도색"이라고 농담같이 칭했다.

 

그녀의 보라색 뮈제트 가방에 달린 장식구는 연방중단국, 고객상담팀의 마크였는데 독수리 한 마리가 회전식 문위에 앉아있는 모양이었다. 

 

그 여자는 얼굴에 털, 더 정확하게는 콧수염이 많이 나있었다. 가스실에 일하는 여직원들의 신기한 점은 그들이 일을 시작할 때 얼마나 사랑스럽고 여성스러운 여자였는지는 상관없이 일하기 시작한지 오 년이 되기도 전에 여성들의 얼굴 위에 콧수염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저를 부르신건가요?” 그녀가 조심스레 화가에게 질문을 건넸다. 

 

“당신이 뭐하는 사람인지에 따라서 정답이 완전히 달라지겠지,” 화가가 말했다. “그냥 보았을 땐 출산을 앞둔 여인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상사들 말로는 여기서 포즈를 취해야 한다고 하던데요,” 그녀가 말했다. “제 이름은 레오라 던칸이예요.”

 

“던칸? 그러면 이름처럼 사람들의 인생으로 덩크슛이라도 때리나?” 화가가 짓궃은 투로 농담했다.

 

“예?”라고 되받는 그녀를 보니 그녀가 이해하기에는 농담이 영 시원치않았던 모양이다. 

 

“모른 척 하고 넘어가게,” 화가가 말했다.

 

“정말로 아름다운 그림이네요,” 화제를 돌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레오라가 서둘러 말했다. “천국이나 다름없어 보여요.”

 

“다름없다라…” 화가가 읊조리며 주머니에서 명단이 담긴 쪽지를 꺼내들었다. “던칸, 던칸, 던칸, … 아, 여기 있구만. 자, 영생을 살게 되신 던칸씨. 그럼 여기 그려진 몸중에 당신의 얼굴을 새겨넣고 싶은 몸이 보이실까? 이제 고를 수 있는 것도 얼마 안 남았어.” 

 

그녀는 힘겨운 표정으로 벽화를 관찰했다. “아이고,” 그녀가 말했다, “모두 똑같이만 보이는걸요. 저는 예술에 대해서 아는거라고는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서…”

 

“몸이 거기서 거기지, 안 그래?” 화가가 말했다, “좋아. 파인 아트의 마스터로서… 여기, 여기 이 몸을 추천하지.” 그는 말린 줄기들을 모아다가 쓰레기 소각장으로 향하는 중인 여인을 가리켰다.

 

“어…” 레오라 던컨이 입을 열었다, “그 쪽은 쓰레기를 소각하는 사람이 아닌가요? 저는 고객 관리쪽에서 근무중인데요… 쓰레기 소각이랑은 아무 상관이 없다구요.”

 

화가는 신이난듯 박수를 치며 여자를 비꼬기 시작했다. “좀전까지만 해도 예술 문외한이라고 하지 않았나? 채 일 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나보다 예술에 대해 더 많이 안다는 식으로 달려드는구만! 암요 암요, 그렇고 말고. 쓰레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은 우리 고귀하신 상담원님과는 거리가 있겠죠. 오히려 가지를 치고 자르는 쪽이 더 맞겠네요.” 그는 사과 나무의 죽은 가지에 톱질을 하고 있는 여성을 가리켰다. 그림 속 여성은 레오라와 같은 보라색 옷을 입고 있었다. “저 사람은 어떤가? 마음에 드나?” 

 

“아무리 그래도…” 레오라가 말했다. 그녀는 좀전과 다르게 얼굴이 붉어지며 다소 수줍은 모습이었다. “거기는… 히츠 박사님 바로 옆자리 잖아요.”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건가?” 화가가 물었다.

 

“그럴리가요!” 그녀가 말했다. “단지… 단지 너무 영광이라서 그런거죠.” 

 

“아, 자네 히츠 박사를 꽤나 존경하는 모양인걸?” 그가 말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나요?” 레오라는 히츠 박사의 초상화를 찬양하며 말했다. 그 초상화속 남자는 살이 태닝 되어있었고, 흰머리가 있었으며, 이백 하고도 마흔 살의 전지전능한 제우스를 연상시켰다. “누가 이 분을 존경하지 않겠어요?” 그녀가 다시 말했다. “이 분께서는 시카고의 가장 첫 가스실을 직접 지으신 장본인이신걸요.” 

 

“당신을 히츠 박사 옆에 놓을 수 있는 것보다도” 화가가 말했다, “나를 더 기쁘게 할 수 있을 만한건 없을 것 같군, ‘나무가지 위에다가 톱질을 한다'... 어떤가? 이번엔 사진 속 여인의 행동과 자네 일의 성격이 적절하게 부합한가?”

 

“그건 제가 하는 일과 비슷하죠,” 그녀가 말했다. 어쩐지 그녀는 자신이 하는 진짜 업무에 대해서 조금은 겸손한 것 같았다. 그녀가 정말로 하는 일이란 그녀가 죽인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는 길을 조금이라도 더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원문 출처: 자유 이용 저작물인 커트 보네것(Kurt Vonnegut Jr.)의 '2 B R 0 2 B'를 번역했습니다. 원문을 구할 수 있는 링크를 여기에 남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