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 27. 13:06ㆍ번역/문학 (소설)
2 B R 0 2 B
글쓴이ㆍ커트 보네것
번역ㆍ오성진
Part 2
로라 던칸이 초상화를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그녀가 그렇게나 우러러본다던 히츠 박사가 대기실에 등장했는데, 그의 키는 210센티미터는 족히 넘었다. 박사는 세상에서 중요한 위치를 쥐었으며 이루어낸 성과가 상상을 초월하고 삶의 즐거움으로 가득한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아우라를 세차게 뿜어 내는 바람에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던칸 씨, 던칸 씨!” 히츠 박사는 밝게 외치며 농담을 던졌다. “여기서 뭐하시고 계신가요? 여기는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는 곳이 아니라 바로 세상에 입장하는 곳인데요!”
“제가 박사님과 같은 그림 안에 들어갈 거라고 해요,” 그녀가 수줍게 말했다.
“그거 듣던중 반가운 소식이네요!” 히츠 박사는 진심으로 말했다. “그나저나 이거야말로 정말 아름다운 벽화가 아닌가요?”
“맞아요, 그리고 이렇게 멋진 그림 안에 박사님과 함께 있을 수 있다니 영광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아닙니다,” 박사가 말했다. “저야말로 영광인걸요. 당신같은 여성분들이 없었다면 저희가 누리고 있는 이 아름다운 세상은 있을 수 없던 것이랍니다.”
그는 로라에게 짧게 목례를 한 뒤에 분만실로 향하는 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다시 뒤를 돌아보고 질문을 건넸다. “방금 뭐가 태어났는지 맞춰보실래요?”
“잘… 모르겠는데요,” 그녀가 말했다.
“세쌍둥이!” 그가 외쳤다.
“세쌍둥이!” 그녀도 똑같이 외쳤다. 그녀는 ‘세쌍둥이'라는 단어가 가진 법적인 의미를 두고 놀란 것 이었다.
인구 통제법에 따르면 출산을 앞둔 부모가 자진해서 죽을 사람을 모집하지 않는 한, 아이는 태어나지 못 한다고 규정되어 있었다. 그 말은 즉슨 세쌍둥이 모두가 살기 위해서는 세 명의 지원자를 찾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아이의 부모가 세 명의 지원자를 찾았나요?” 로라 던칸이 말했다.
“제가 마지막으로 들은 바에 따르면,” 히츠 박사가 답했다, “한 명은 구했고 나머지 두 명을 찾기 위해 노력중이라고 했어요.”
“아마 못 구했을 걸요,” 그녀가 말했다. “예약건중에 세 명이나 등록한 사람은 없었거든요. 오늘도 다들 한 명씩만 등록했고… 어쩌면 제가 떠난 다음에 예약이 잡혔을 수도 있겠네요. 보호자 성함이 뭐였는지 아시나요?”
“웰링," 앉아서 출산을 기다리던 남성이 굽어있던 등을 펴면서 말했다. 그의 눈은 뻘갰으며 동공은 흐리멍텅했다. “저, ‘에드워드 K. 웰링 주니어’가 행복하게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의 이름입니다.”
그는 오른손을 들고 벽 한구석 점을 바라보며 짧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그리고 그게 저랍니다,”라고 말했다.
“오, 웰링씨,” 히츠 박사가 말했다, “제가 미처 보지 못 했군요.”
“그런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웰링이 말했다.
“금방 분만실에서 세 명의 아이가 태어났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히츠 박사가 말했다. “아이들은 물론, 엄마까지도 모두 건강하다고 합니다. 지금 막 보러 가려던 참이었어요.”
“우와,” 웰링은 알맹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기쁘지 않아 보이시네요,” 히츠 박사가 물었다. “제 상황에 기쁘지 않을리가요?” 웰링이 힘없이 답했다. 그리고 그는 상황이 심각하지 않다고 말하듯 양손을 공중에 들어올렸다. “단지 갓태어난 세쌍둥이 중에 누가 살지 고르고 제 외할아버지를 ‘해피 훌리건’에 데려다 드린 뒤에 영수증만 받아오면 될 일인걸요. 기쁘지 않을리가 있나요.”
기체같은 움직임으로 웰링 앞으로 금세 다가간 히츠 박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웰링씨, 혹시 인구통제에 무슨 문제라도 있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니요, 따로 별 문제가 있다 하는건 아니었습니다,” 라고 말하는 웰링의 몸은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모든 것이 고우기만 했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으신건가요, 지구의 인구가 이백억이었던 그 때 말이예요. 조금만 둬도 금방 사백억, 팔백억, 천육백억이 되었을 그 때가 진심으로 그립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웰링씨, ‘소핵’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박사가 말했다.
“아뇨,” 웰링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답했다.
“소핵이란 말이죠, 웰링씨, 블랙베리의 과육, 그 속의 낱알 하나하나를 지칭하는 단어랍니다.” 히츠 박사가 말했다. “인구 통제법이 없었다면 이 늙은 행성 위에 인간들은 블랙베리의 소핵처럼 다닥다닥 붙어있어야 했을 뻔 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현재에 불만이 있으신건가요?”
웰링은 아직도 벽에 붙어있는 한 점을 지긋이 응시하고 있었다.
“2000년도에 말이죠,” 히츠 박사가 말했다, “그러니까… 과학자들이 개입해서 법을 제안하기 전에 말입니다, 당시엔 마실 물도 부족했고 먹을거라곤 미역뿐이었어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산토끼 마냥 계속해서 아이를 낳겠다고 신나게 떠들어댔죠. 여기서 더 웃긴건 그렇게 말하면서도 평생을 살고 싶다면서 과학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점입니다.”
“전 제 아이들을 원해요,” 웰링이 조용하게 말했다. “세 아이 모두.”
“당연히 그러시겠죠,” 히츠 의사가 말했다. “인간이라면 응당 느낄만한 자연스러운 감정인걸요.”
“그리고 한 편으로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웰링이 읊조렸다.
“그 누구도 가까운 친척이 캣박스 안으로 들어가길 원하지 않죠,” 히츠 박사는 충분히 공감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람들이 그 이름을 그만 썼으면 좋겠어요,” 로라 던칸이 말했다.
“뭐라고요?” 히츠 박사가 답했다.
“사람들이 가스실을 ‘캣박스'같은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구요, 그런 이름들은 분명 사람들에게 잘못된 인상을 쥐어준다고 생각해요.” 그녀가 말했다.
“정말 맞는 이야기입니다,” 히츠 박사가 말했다. “그 점 만큼은 제가 분명히 잘못했네요.” 그는 자신이 내뱉은 오류를 고치고 지역의 가스실을 부르는 공식 명칭, 그리고 아무도 실제 대화에서 사용하지 않는 그 이름을 말했다. “‘윤리적 자살실’이라고 불렀어야 했는데 말이에요,” 하고 말이다.
“이제야 좀 낫네요,” 로라가 속없이 말했다.
“웰링씨께서 아이들중 누구를 남기겠다고 결정할지는 모르겠지만,” 히츠 박사가 입을 열었다. “인구 통제법 덕분에 그 아이는 행복하고, 넓고, 깨끗하고, 풍요로운 이 행성에 살게 될 것입니다. 바로 저 벽에 그려진 그림처럼 말이에요.” 그리고 히츠 박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 나이가 한참 어렸던 이백 년 전만 해도 말이죠, 어느 누구도 이 세상이 이십 년 이상 지속될 거라고는 꿈에도 예상 못 했습니다. 그 정도로 매일매일이 지옥같았죠. 하지만 지금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저희의 상상이 무엇이든 그걸 이룰 수 있는 아주 멋진 시대가 펼쳐지지 않았습니까.”
짤막한 연설을 마친 히츠 박사는 모든 이빨이 보이도록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지만 그의 미소는 그토록 오래가지는 못 했다. 그의 눈에는 권총을 꺼내들고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서있는 남성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웰링은 히츠 박사를 쏴죽였다. “이제야 한 명 더 살 수 있는 공간이 생겼네요 -- 그것도 엄청나게 큰 공간 말이에요,” 웰링이 말했다.
그는 그 다음으로 로라 던칸의 심장을 향해 총을 쐈다. “죽음일 뿐이야, 별거없어. 단순한 죽음일 뿐이라고.” 그는 소리도 지르지 못 한 채 쓰러진 여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 됐지! 이젠 두 명이 살 수 있어!”
웰링은 말을 마치고 자신의 머리에 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로써 세상에는 그의 세쌍둥이가 들어설 공간이 생겼다.
아무도 달려오지 않았다. 총소리를 듣지 못 했을리가 없을텐데도 아무도, 그 누구도 현장에 달려오지 않았다.
사다리에 걸터앉아 안타까운 현장을 내려다보고 있던 벽화가는 생각에 잠긴 듯이 보였다.
벽화가는 이 작은 행성 위에 태어나길 요구하고, 한 번 태어났으면 최대한 많은 후손들을 남기며, 최대한 긴 삶을 살도록 요구하는 것, 바로 인생이라고 불리우는 한없이 슬픈 퍼즐에 대해서 생각했다.
화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결론이라고는 인생이 그저 기괴하다는 것 뿐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인생이란 그저 캣박스보다도, 해피 훌리건보다도, 이지-고보다도 훨씬 더 기괴할 뿐이라고 말이다. 그는 전쟁을 떠올렸다. 그 다음에는 전염병을, 그 다음에는 기아를 떠올렸다.
남자는 자신이 다시는 그림을 그릴 수 없을거란 사실을 몸으로 알 수 있었다. 그는 페인트를 칠하던 붓이 밑에 놓인 걸레짝 위에 맥없이 떨어지도록 손에 힘을 풀었다. 그리고 그는 그에게 이 ‘삶의 행복한 정원’에 더이상 소비할만한 삶이 남아 있지 않다는 판단을 마치고 천천히 사다리를 타고 밑으로 내려왔다.
그는 웰링의 권총을 들고 진심으로 자신을 쏠 기세로 총구를 관자놀이에 가져다 댔다.
하지만 그에겐 그럴 용기조차 없었다.
그리고 그는 방구석에 놓인 전화기를 발견했다. 그는 전화기를 들고 항상 머릿속에 달고 다니던 번호, “2 B R 0 2 B”에 전화를 걸었다.
“연방중단국입니다,” 전화를 받은 여성 상담원의 목소리는 상당히 따뜻했다.
“가장 일찍 잡을 수 있는 예약이 언제요?” 그가 물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하는게 느껴지는 말투였다.
“네, 늦은 오후 쯤으로 예약을 잡아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 상담원이 말했다. “중간에 취소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조금 더 일찍도 가능할 것 같구요.”
“알겠습니다,” 화가가 말했다, “그럼 그 때 예약을 잡아주시오.” 그리고 그는 상담원에게 이름을 알려준 뒤 철자를 하나씩 불러주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상담원이 말했다. “저희 시가, 저희 나라가, 저희 행성이 선생님에게 감사해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중 가장 크게 감사를 느끼고 있을 사람들은 그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미래의 후세분들일 것입니다.”
끝
원문 출처: 자유 이용 저작물인 커트 보네것(Kurt Vonnegut Jr.)의 '2 B R 0 2 B'를 번역했습니다. 원문을 구할 수 있는 링크를 여기에 남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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