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1: THE FAMILY

2022. 11. 21. 15:09매일/번역


1) 오늘의 할 일: 번역 계획 2시간.

2) 총작업시간: 908.5HRS + 2HRS

3)

현재 내 번역과 이 블로그의 향방에 대해서.

이 글은 내 한풀이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내 앞으로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글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심호흡을 한 뒤 키보드에 손을 올려본다.

일기를 쓰자는 생각을 자주 한다. 자주 했다. 자기 전이나 일어나서 그 날의 할 일들을 기입하는 노트, 단어장, 글쓰기 소재 — 이중에서 세상에 빛을 발할 아이들은 몇이나 될까 —를 적는 노트, 과외 일지, 먼지 수북히 쌓인 목표 일지 노트와 돈 관리 노트. 게다가 이 블로그에 나날이 번역한 일지를 기입하는 걸 보면 참 기록하는 걸 좋아하는 유전자가 내 안에 있는 것 같은데. 그리고 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걸 보면 글도 쓰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왜 일기가 되었건, 소설이 되었건 긴 글을 쓰는데 이렇게나 많은 마음을 요할까.

여기에는 크게 세가지 정도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첫째. 경험의 부족. 긴 글이라 하면 사회적 자본의 부족함이 없을 당시에 행복하게 있지도 않은 외로움을 토로하면서 간간이 쓰던 일기나 군전역 이후에 매일 두 페이지 분량의 소설을 썼던 적 이후로는 사실 잘 써본 기억이 없다. 당시엔 지금처럼 시간의 제한을 둔 게 아니라 특정 분량을 목표로 작업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둘째. 뭔가의 부족. 어렸을 때 부터 우악스러운 성격의 아버지 덕분에 질리도록 칭찬을 들으며 자라왔고 (시금치를 잘 먹어도 칭찬을 들었다) 부족함 없이자랐다고 떳떳하게 할 수있을만한 환경에서 컸다. 그럼에도 뭐가 그렇게 부족한지 남들의 인정을 갈구하는 구멍이 나있는 것 같다. 이 문제로 심리 상담을 받자니 대부분 그런 것 같아서 사는데 별 문제는 아닐 것 같아서 말았다. 그래도 계속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이다. 단적인 예로 이 블로그. 포트폴리오로 쓰지도 못할 번역일지인데 이걸 어디에 쓰려고 공개적인 곳에 오늘은 이거했다, 내일은 이거했다 쓰는건지.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가끔씩 감정적인 얘기를 한다거나 음악을 자꾸 올리는 이유는 무엇인지. 무슨 인정을 받고 싶어서 이렇게 사는건지 모르겠다. 지금 내 나이 또래에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그 누가 나를 인정해준다고 해서 내가 정녕 행복해질까. 답은 너무 쉽게 내릴 수 있지만 그럼에도 인정을 갈망하는 욕구는 계속된다. 싫지는 않다. 문제라기 보단 정말 성격이거나 인간의 본성 중에 하나인 것 같아서 꼭 바꾸고 싶지만은 않다. 이런 마음이 있기에 긴 글을 언젠가는 쓰겠지, 하고 계속 생각하게 되는 딜레마도 형성이 된 거니까. 다크나이트의 조커같은 거랄까. 그래도 정도가 너무 심해지면서 행동거지도, 말투도 전부 사람들이 좋아하는 오성진의 모습만을 꼬집어서 부분이 전체인냥 살게 되는 것만 같아 얼마전에 인스타그램도 지우고 카톡의 프로필 사진들도 전부 내렸다. 여하튼 그래서 그렇다. 그런게 내 안에 있는데 어떻게 무언갈 쓰고 그걸 또 고치는 열정을 들인 결과물을 혼자 쟁여놓을까. 그래서 혼자 일기를 쓴다든가 나만 볼 수 있는 곳에 글을 보관한다든지 하는 고상한 취미를 키울 일은 일절 없다.

마지막으로 용기의 부족. 어째서인지 옆에서 봤을 땐 참 조용하게 사는 것 처럼 보일텐데 나한테는 내인생이 하루하루 약속을 지키기 위해 험난한 소용돌이 속에서 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하나의 루틴이 생기면 그 루틴을 해내기 위해 노력하고 못하면 못하는대로 마음의 짐을 얹어가면서 살다가 맥주 네 캔을 위장에 들이붓기를 반복했다. 그래서 새로운 무언가를 내 삶에 들이는데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냥 해도 될텐데. 하다가 재미없으면 빨리 포기해버려도 좋은데. 하고 싶은걸 하게 될 때, 매일 해야 하거나 그래서 그 일을 싫어하게 된다거나 하는 걱정을 왜 미리부터 하는건지. 막상 이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터놓고 글을 써보니 얼마나 부질없는 걱정이었는지 알겠다. 그래서 소설을 쓰지 못해왔고 그래서 심하게 루틴화된 인생을 어루만져줄 생각을 잘 하지 못했다.

아, 술은 얼마전부터 마시지 않고 있다.

2021년 4월 6일. 처음 블로그를 개설해 번역을 계속 진행하기 시작한 날부터 오늘까지 무려 594일이 지났다. 맨 처음엔 자유 이용 저작물(Public domain)을 소개하고 주기별로 각 텍스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알찬 에세이를 게시하는 Public Domain Review의 글들을 번역하기를 한 서른개? 했었나? 스무개? 하여튼 꽤 했던걸로 기억한다. 게다가 상당히 초반이기도 했고 현재 내 번역 방식인 [읽기-번역-퇴고] 과정을 다듬던 시기였어서 글 하나당 작업하는 시간이 꽤많이 걸렸던지라 오랜 기간동안 매달렸던 걸로 기억한다. 연습이라고 생각하고 하루에 90분씩 매일 우겨넣다보니 힘든 기억보다 재밌던 기억이 대다수다. 정말로.

그리고 뭐였더라. 번역에 회의감이 들었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 이유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번역에 관한 거였는지 그 외적인 문제였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아도 뭐랄까, 일을 구하지 못해서라던가, 번역이 재미가 없어서라던게 아니었단 것 하나는 확실하다. 여하튼 그래서 소설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소설에도 작품이 나온지 75년이 지난 작품이라면 자유 이용 저작물로 치부된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기뻤던지. 그것도 근데 미국에서나 그렇지 한국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법은 아닌 것 같아서 어쩌지 싶었지만 실제로 출판할 일도 없고 금전적인 사유로 이 블로그에 번역물들을 기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또 소설을 번역하고 에세이를 번역하면서 점점 더 재미있는 작업을 이어나갔(던 것 같)다.

또 뚝. 끊겼었는데. 아. 그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진행한 번역신인상에 도전했었다. 모집부문이 영화, 단편 소설, 또 뭐까지 해서 총 세 개 였던 것 같은데 번역을 하면서 영화 자막에 제대로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런 선택을 했었던 것 같다. 작품도 마음에 들었고. 이 작품을 통해서 정말 작품의 질을 떠나, 감독의 의도를 떠나, 전달하고자 하는 바에 방향성만 일관적이라면 결국에 번역가는 일반 시청자나 독자보다 더 많은 것을 얻어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기억이 있다. 한 한두달 작업했고 멋모르고 작업한지라 정말 재밌었다.

번역신인상은 올해 10월 말에 결과가 공지되었는데 나는 붙지 못했다.

그렇게 즐겁긴 했지만 다소 기계적이었던 번역을 이어가다가 그렇게 한 번 툭, 무언가를 위해서 길게 시간을 잡고 임하다보니 번역신인상에 공모를 마친 후에는 마치 팽팽하게 당겨있다가 놓여진 고무줄 마냥 피융피융 그 다음엔 뭘해야할지도 모른채 정신이 없었다.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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