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무라카미 하루키: "실용적이어야만 한다."

2022. 8. 30. 15:28번역/인터뷰

[인터뷰]

무라카미 하루키: '사람들은 더 다채롭고 창의적이면서 예술적인 이야기들을 듣고 싶어하는 모양이에요. 거기에 제가 할 말은 여전히 하나뿐입니다: ‘실용적이어야만 한다.’.'

 

 

 

작가의 부모는 그가 미쯔비시에 취직하기를 바랬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러는 대신 젊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재즈바를 열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신간 <1Q84>의 출판 기념으로 엠마 브록스는 수수께끼 작가와의 인터뷰를 위해 하와이로 떠났다.

 

 

'가끔씩 제가 왜 지금 소설가로 살고 있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어요.' 사진: 가디언지의Marco Garcia

 

글ㆍEmma Brockes

번역ㆍ오성진

 

 

총 1,000페이지가 넘는 길이의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간, <1Q84>는 세 권에 나뉘어 출판되었다. 쓰는 데만 총 3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이 책은 뉴욕에서 호놀룰루로 향하는 11시간의 비행 중에 반 정도를 읽을 수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무라카미는 시무룩해보였다—분명 책을 쓰는 데 걸리는 시간과 읽는 데 걸리는 시간 사이에 괴리감은 작가에게 언제나 안좋은 소식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소설의 힘이 얼마나 굉장한지 확인하기에 과연 비행기 뒷편 이코노미석보다 적절한 공간이 있을까? 그의 신작을 읽는 11시간 동안 나는 무라카미의 세계 속에 완전히 빠져있었다.

 

산에 둘러싸인 와이키키의 하얏트 호텔. 우리는 이 호텔의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에서 거의 완벽에 가까운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무라카미라는 작가의 인상은63세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스케이드보드를 즐겨타는 청소년을 떠오르게 한다. 그는 하와이, 일본, 그리고 그가 “어딘가"라고 부르는 곳, 총 세 장소에서 자신의 시간을 나눠쓰는 듯 했다. 이 "어딘가"라는 장소는 그가 매일 아침 소설을 쓰는 동안 사라지는 곳, 그의 소설 속 캐릭터들로 가득찬 곳이다. 그의 스타일. 그러니까 수수께끼 같고, 현실을 관통하며, 억누른 감정이 꾹꾹 담겨있는 이야기를 거리감이 느껴지는 방식으로 풀어내는 그의 글쓰기 방식은 오늘날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의 문학이 전세계 사람들 사이에 공유되는 하나의 문화로 발전하는데 일조했다. 내가 하와이로 떠나기 전에 한 친구는 무라카미에 대한 사랑을 쏟아내며 “무라카미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이고 싶어하는 마음을 내비쳤다.

 

“저는 제가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작가는 인터뷰 도중 한 번 이상 이렇게 말했다. “저는 그냥…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일 뿐입니다… 네.”

 

무라카미를 둘러싼 어딘가 쿨한 아우라는 그가 20대때 재즈클럽을 운영했던 화려한 과거와 더불어 그만큼 화려한 그의 아이언맨 같은 루틴에서 비롯되는 모양이다. 최근 그의 회고록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그가 설명한 바와 같이, 무라카미는 보통 아침 4시에 일어나 정오까지 글을 쓰고 오후 일과로 마라톤을 준비하고 오래된 레코드 상점들을 둘러보다가 9시가 되면 부인과 함께 집으로 귀가한다. 작가의 혼란스러웠던 20대를 잡으려는 집착과 같은 마음에서 시작된 그의 루틴은 대중 사이에 신기한 삶의 방식으로 인식되면서 그의 소설만큼이나 명성을 얻었다. 복잡한 구조로 되는 스토리를 1,000페이지의 긴 분량으로 담아낸 책을 삼 년 만에 쓰려면 이러한 자기절제력은 필수적인 것이다.

 

작은 황소처럼 견고한 무라카미에게 글을 쓰는 일이란 순수하게 물리적인 힘의 문제이다. “강인한 신체는 매우 중요합니다. 3년 간, 그것도 매일, 글을 쓰려면 강한 신체가 필요하죠. 물론 정신적인 힘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물리적인 강함이에요. 이것은 굉장히 중요해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강해야만 하죠.”

 

했던 말을 반복하는 그의 말하기 방식은, 단순히 자신의 스타일을 뒷받침하는 습관인지 일본어에서 영어로 통역되면서 생기는 부작용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말하는 모든 것에 마치 굉장한 의미가 있는듯이 들리게끔 만드는 효과를 톡톡히 해냈다. 작가는 자신의 달리기에 담긴 은유적인 중요성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매일 무언가를 해낸다는 것은 그의 글쓰기를 위해 일종의 카르마를 키워나가는 것과 같다고 말이다. “네,” 그가 말한다. “으으으으음.” 생각하는 소리조차 길게 내는 무라카미였다. “저에겐 매일 아침 문을 열 만한 힘이 필요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실제로 문을 열어제치는 듯한 몸짓을 보였다. “저는 매일 서재에 가서 책상에 앉은 뒤 컴퓨터를 킵니다. 바로 그 순간에 저는 그 문을 열어야만 하죠. 굉장히 크고 무거운 문입니다. 그 문을 통해서 다른 차원으로 가야만 하죠. 물론 은유적인 수준에서의 얘기지만. 한 번 넘어간 후엔 반드시 다시 이쪽 세상으로 다시 넘어와야만 합니다. 그리고 잊지 않고 꼭 문을 닫아야만 해요. 문을 열고 닫는 데 들이는 힘은 순수하게 물리적인 힘이에요. 그래서 제가 그 힘을 잃는 순간, 저는 더이상 소설을 쓸 수 없게 될 겁니다. 단편이나 조금 쓸 수 있을지도. 하지만 장편은 절대 쓰지 못할거라고 장담합니다.”

 

매일 아침 그러한 행동을 하는데에는 두려움 같은 감정도 섞여있나요?

 

“그냥 루틴일 뿐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크게 웃어보이는 무라카미. “그 원리는 너무도 재미없어서 지루하기까지 할걸요. 단순 루틴이에요. 그래도 지루할진 모르겠지만 루틴이란 굉장히 중요한 것이죠.”

 

루틴을 통해 들어가는 곳에 혼돈같은 게 있기 때문일까요?

 

“네. 도착지는 무의식입니다. 그 혼돈 속으로 가야만 해요. 하지만 그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행위 자체는 루틴이죠. 실용적이어야만 해요. 그래서 저는 매번 소설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실용성이라고 말하고 다니지만 그런 말을 들은 사람들은 대개 지루해하죠. 실망한 걸지도. (웃음) 사람들은 더 다채롭고 창의적이면서 예술적인 이야기들을 듣고 싶어하는 모양이에요. 거기에 제가 할 말은 여전히 하나뿐입니다: ‘실용적이어야만 한다.’”

 

무라카미처럼 일찍 일어나는 사람은 거의 두 사람 분의 삶을 살 수 있다. 이 사실은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 안에 나뉘어진 인격의 외부 또는 내부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를 반증한다. 그의 새 소설은 히로인, 아오마메가 – 그녀의 이름은 일본어로 “완두콩”을 의미한다 – 도쿄 고속도로의 교통 체증에 갇힌 택시 안에 앉아있는 장면과 함께 나름 현실적인 시작을 맞이한다. 년도는 1984년, 작가가 조지 오웰에게 보내는 일종의 인사일 것이다. 늦지 않기 위해 아오마메는 택시에서 내려 낡디 낡은 비상용 계단을 타고 지상으로 내려간다. 도착한 곳이 평행 세계라는 사실을 깨달은 아오마메는 자신이 놓인 평행세계를 “1Q84”라고 부르기로 한다. 여느 무라카미의 소설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소설은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현실적인 나레이션과 – 공중에 떠다니는 시계, 폭발하는 개, 죽은 염소 입에서 튀어나오는 “작은 사람들”이란 집단까지 – 말도 안 되는 초현실주의의 집합체로써 독자를 홀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환상인지 혼동하도록 만드는 장치로 가득한 소설이다. 

 

“독자들은 물음표 투성인 풀장에 빠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고 말거예요,” 동석한 1Q84의 편집장이 스타 작가에게 말한다. “이렇게 내용이 모호하고 불분명한 글의 원인을 독자들이 ‘작가의 게으름’이라며 탓할 가능성이 있어요.” 

 

이에 1Q84의 작가는 이렇게 반론한다. “모름지기 작가라는 사람이 이야기를 ‘굉장히 흥미로운 방식으로’ 엮어내서 독자들이 책을 끝까지 읽게끔만 한다면야, 누가 그런 작가를 두고 ‘게으르다’고 부를 수 있을까요.” 1Q84는 출간된 첫 달에 일본에서 백만부가 팔렸다. 

 

무라카미의 배경에는 작가 스스로도 불가사의하다고 여기는 요소들이 존재한다. 그는 왜 자신이 작가가 되려고 했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고 한다. 어느 날 문득, 한번도 그쪽으로 장래를 염두해본 적 없던 그에게, 야구 경기를 관람하던 도중에 갑자기 그런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해는 1978년. 당시 20대 후반부였던 그는 애완동물 고양이의 이름을 따서 ‘피터 캣’이라고 불리던 재즈바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의 삶에 있어 일종의 저항기라고 불릴 수 있는 시기는 막을 내리고 있었다. 60년대에 성장기를 보낸 그는 교수 집안의 유일한 아들이자, 집안일을 보는 아내를 두었으며 같은 세대에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자신에게 기대되는 삶을 거부했다. 그는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했고 더 공부를 하는 대신에 돈을 빌려 재즈바를 열고 음악을 사랑했던 그의 삶을 완전히 누리기를 택했다. 그의 주변 친구들도 전부 시대에 저항했다. 어떤 이들은 자살을 택하기도 했고, 이는 무라카미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다. “그들은 사라졌어요. 난해한 시대였죠, 아직도 제 친구들이 그리워요. 그래서인지 예순 세살이 되었다는 사실에 종종 놀라기도 하죠. 마치 저만 살아남았다는 기분도 들고요. 그들을 떠올릴 때마다 살아야겠다는 감정이 떠오릅니다. 강하게 살아남아야겠다는 감정이요. 제 삶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요, 삶 자체가 바로 사는 이유가 됐죠. 살아남았기 때문에 삶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어요. 그래서 소설을 쓸 때면 종종 죽은 이들을 떠올리곤 해요. 제 친구들 말이에요.”

 

그는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당시 처했던 상황이 얼마나 위험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는 엄청난 빚덩이를 안고 있었고 아내와 함께 바에서 장시간 일했으며, 자신의 미래에 대해 아무런 확신이 서지 않았었다. “1968년에서 69년,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시기였어요. 흥분으로 가득찬 동시에 그만큼 위험도 컸죠. 판돈이 컸어요. 이길 수 있다면, 많이 딸 수 있었지만 지기라도 한다면 삶이 무너질 정도의 피해를 볼 수 있었던 시기죠.”

 

판돈이라. 그가 운영하던 재즈바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있는걸까?

 

“아아아,” 무라카미는 신음을 냈다. “결혼이 바로 그 도박이란 말입니다! 스물, 스물하나였어요. 세상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었죠. 멍청했어요. 순진했죠. 도박과 같았죠. 제 인생을 건 도박. 그래도 살아남았어요. 뭐, 어느 정도는.” 

 

그의 아내, 타카하시 요코는 그의 첫번째 독자였다. 야구 경기를 보던 도중 그의 두뇌 속에 반짝인 이야기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표되었는데, 이 책으로 무라카미는 일본에서 작가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무라카미는 한동안 바를 운영하면서 글을 썼는데, 그는 이 시기를 두고 자신이 작가로서 성장한 과정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시기라고 한다. “제겐 재즈 클럽과 충분한 돈이 있었어요. 그래서 생계를 위해서 글을 쓸 필요가 없었죠. 그러한 환경은 매우 중요합니다. 무라카미는 <노르웨이의 숲>이 일본에서 삼백만 부 이상 팔리고 난 후에 재즈바의 경영권을 포기했다. 그는 아직도 가끔씩 평행세계 중에 자신이 재즈바에서 계속 일하고 있는 버전의 삶을 떠올리곤 한다고 했다. 그는 그 삶을 택했어도 지금보다 덜 행복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평행 세계에 존재하고있을 제 다른 삶들에 대해서 생각하냐고요? 음아. 네. 그게 말이죠, 아직도 상당히 이상해요. 가끔씩 제가 왜 지금 소설가로 살고 있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어요. 꼭 소설가를 해야만 해서 이 직업을 택한 적은 없거든요. 알 수 없는 어떤 일이 일어났고, 저는 작가가 됐어요. 그것도 꽤 성공한 작가가 되었죠. 미국이나 유럽에 가도 많은 사람들이 저를 알아봅니다. 이상했어요. 몇 년 전에는 바르셀로나에 가서 사인회를 열었는데, 1,000명 가까이 왔어요. 소녀들이 입까지 맞추더군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하고 저는 너무 놀랐어요.”

 

무라카미는 계획 없이, 그의 본능에 따라 글을 쓴다. 가장 최근 발표된 그의 소설은 그가 차를 타고 도쿄의 거리 한복판에 서있던 중 떠오른 발상에서 시작되었다. ‘꽉 막힌 도로 위에 나가 비상구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인생이 바뀔까?’ “그게 시작점이죠. 그 때, 꽤 큰 책이 되겠구나 하는 예감이 들곤 해요. 상당한 열의를 필요한 책이 되겠구나, 하고요. 제가 알 수 있던 건 우선 그 정도였어요. 5,6년 전에 해변의 카프카를 낸 뒤로 새로운 책이 떠오르기를 기다렸어요. 그리고 떠올랐죠. 드디어 말이에요. 커다란 프로젝트가 될 거란 건 알고 있었어요. 직감이죠.”

 

1Q84와 같은 길이의 책인데도 마치 생략된 부분이 많은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은 무라카미의 특징적인 기술이다, 물론 몇몇 독자들은 이를 두고 불만을 가지기도 하지만. 소설 속에 인위적인 부분들은 인위성에 관해 얘기한 작가의 말을 통해 어느 정도 납득될 수는 있지만 작가 특유의 너무도 진지한 톤은 가끔씩 독자들의 화를 돋구기도 한다. “작중 주인공 덴고는 하늘에 떠있는 두 개의 달을 보기도 하고 요양원 안 아버지의 침대에선 공기 누에고치가 만들어지는 것을 본 뒤로는 무엇을 봐도 놀라지 않죠.”

 

일찍이 발표된 그의 소설에서처럼 작중 가장 부드럽고 감성적인 장면들은 전부 소설의 주된 줄거리와 떨어져있다. 상업적인 히트작을 만들어 보겠다는 일념하에 작가가 최대한 대중적으로 집필한 노르웨이의 숲에서 이런 장면은 주인공과 그의 여자친구의 부친 사이에 존재했었다. 그리고 1Q84에서는 아오마메가 관심을 두고있는 덴고라는 캐릭터와 죽어가지만 자식 입장에서 사랑하지는 못할 것만 같은 그의 아버지 사이에 이러한 장면들이 존재한다. 그가 만든 캐릭터 중 대다수가 좋지 않은 유년기를 보낸 점이 우연은 아닐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제가 어렸을 땐 스스로 폭력을 당했다고 느꼈던 시기가 있어요. 저희 부모님께서는 ‘아이란 어떻게 커야만 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고 저는 그런 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죠. (웃음) 그래서 부모님께서 제게 좋은 성적을 바라셨지만 저는 그만큼 좋은 결과를 받지 못했어요. 장시간 공부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그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었어요. 저는 굉장히 일관적인 사람입니다. 부모님께선 제가 좋은 학교에 들어가 미쓰비시 같은 회사에 들어가기를 바라셨죠. 하지만 그것도 안했어요. 저는 독립적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대학생 신분으로 결혼을 하고 재즈클럽도 열었죠. 별로 좋아하진 않으셨어요, 부모님께선.”

 

부모님의 반응은 어땠나요?

 

“뭔가를 하시진 않았고 그냥… 실망하신 듯 했어요. 어린 나이에 부모에게 그런 유형의 실망감이 있다는 사실을 떠안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제 부모님은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꽤 상처를 받았죠. 저에겐 아이가 없습니다. 가끔은 제게 아이가 있었다면 어땠을지 생각해보기도 해요. 전혀 그려지지가 않죠. 유년기 때 부모님과 행복한 관계를 지니지 못했던 제가 행복한 아버지 노릇을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정말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대체 작가는 어떻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신감을 펼치게 된 걸까?

 

“자신감이라… 제가 10대였을 때요? 제가 뭘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저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어요. 음악을 듣는 것도 좋아했고 고양이도 좋아했죠. 그렇게 세 가지요. 그래서인지 외동인데도 제가 뭘 좋아하는지 알고 있다는 사실 덕분에 제 나름대로 행복할 수 있었죠. 그 세 가지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변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서 자신감이 샘솟는거겠죠.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삶은 마치 길을 잃은 기분일테니까요.”

 

일본에서 지식인으로서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 무라카미가 내놓는 의견은 언제나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수줍음이 많고 겸손한 그는 대중 앞에 서기를 꺼려하지만 그의 책을 통해 국가적 차원의 토론에 참여한다. 95년도에 발생한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 소식에 그는 사건과 관련된 <언더그라운드>를 집필했다. 그는 일본인 소설가로서 자신의 국가를 대표하는 데 책임감을 느끼기에 고향에서도 꺼리는 미디어와의 접촉을 해외에서 감행한다.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인 레이먼드 챈들러를 포함해 다양한 서양 도서들을 일본어로 번역했다. 일어에서 영어로의 번역은 너무 어렵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는 자신의 소설을 절대 번역할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해봤자 작업을 함께해온 번역가들과 표현 몇 개를 두고 말싸움을 할 뿐이라고.

 

올해 초, 쓰나미와 지진이 일본을 뒤덮었을 당시 그는 호놀룰루로 거처를 옮겨 지내고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번 재해로 인해 나라의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자신감을 상실했어요. 저희는 전쟁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해서 열심히 일해왔죠. 60년 동안 말예요. 경제가 좋아질수록 우리는 더 행복해졌어요. 하지만 결국엔 얼마나 일을 더 하든 사람들의 행복은 늘지 않았죠. 그 때 지진이 들이닥쳤어요. 많은 사람들이 집과 고향을 버리고 대피했죠. 정말 비극같은 일이에요. 우린 기술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죠. 그런데도 원자력 공장은 이제 악몽이 되어버렸죠.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지금까지 삶의 방식을 대폭 바꿔야겠구나. 일본에게 있어서 그게 커다란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작가는 현사태를, 그가 세계 역사의 판도를 바꾸었다고 평하는, 9.11 테러와 비교한다. 소설가의 시선에서 9.11 테러는 사실이라는게 믿기지도 않을 확률의 "기적적인 사건"이라고 한다. "비행기가 그 두 건물을 뚫고 지나가는 영상들을 보고 있으면 기적같다는 생각이 들곤 해요. 그 사건을 두고 '아름답다'고 표현하는게 정치적으로 올바를리야 없겠지만 그 안엔 분명 특이한 유형의 아름다움이 깃들어있다고 생각해요. 사실이기엔 너무도 완벽할 정도죠. 아직도 정말 그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믿을 수 없어요. 어쩔 땐 두 비행기가 빌딩을 뚫고 지나가지 않았다면 세상이 지금과 많이 달랐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무라카미는 현재 일본인들이 겪고 있는 변화는 너무 많은 것을 잃고 나서야 오늘날 정말 던져야 하는 질문이 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깨달음이라고 해요. 작가 스스로 지닌 우선 순위는 단순하다고 그는 말한다. 예를 들면, 그는 자신에게 돈이 얼마나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있죠, 어느 정도 부유하면 말이죠, 가장 좋은 건 돈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에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 중 최고는 자유, 그리고 시간이죠. 저는 제가 일 년에 얼마나 벌어들이는지 몰라요. 감히 추측도 못하죠. 세금은 또 얼마나 내는지도 모르죠. 세금에 대해서 생각하긴 싫거든요.”

 

그리고 긴 적막.

 

"좋지 않은 꼴이죠. 그런건 제 회계사와 아내가 해결해요. 둘은 저에게 하나도 알려주지 않죠. 저는 그냥 일을 할 뿐이에요." 

 

아내를 향한 작가가 지닌 믿음의 크기란!

 

"저희가 결혼한지는 4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어요. 그녀는 지금껏 저의 친구로 있어줬죠. 우리는 보통 대화를 나눠요, 언제나 대화이긴 하지만. 아내가 저를 많이 도와줍니다. 제 책에 관해서 조언도 아낌없이 해주죠. 저는 아내의 의견을 존중하거든요. 물론 가끔 말로 다툴 때도 있어요, 아내가 말을 조금 심하게 할 때도 있거든요. 대화가 그렇게 흐를 수도 있는 법이죠."

 

어쩌면 그에겐 그런 식의 대화가 필요한걸지도 모른다.

 

"그럴지도. 만약 제 편집자가 저에게 똑같이 말했다면 화가 정말 많이 났을지도 몰라요." 무라카미는 어깨를 으쓱해보인다. "편집자로부터 떠난다는 것은 언제나 제게 선택이지만 제 아내로부터는 제가 떠날래야 떠날 수가 없죠."

 

작가의 아버지는 2년 전에 별세하셨고, 어머니는 아직 살아계신다고 한다. 그는 소설가로서 이룬 자신의 성공에 대해 두 분이 행복했기를 바라지만 아직도 과연 그랬을지에 대한 확신은 들지 않는다고 한다. 무라카미에겐 아버지의 죽음 이후 위안으로 삼을만한 자신만의 방법이 있었다. 그는 하와이의 러닝클럽에 가입했고, 그 클럽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멤버라고 말한다. 그는 달리고 쓴다. 매일. 지속성이야말로 제일 중요한 덕목이다. "책읽기를 좋아해요. 음악도 좋아해서 레코드를 수집하기도 하죠. 그리고 고양이. 지금은 고양이를 한마리도 키우고 있지 않지만 동네를 산책하다가 고양이를 발견하면 언제나 기분이 좋아진답니다."



 


 

*2011년 10월 18일에 개제된 위 인터뷰는 자유이용저작물이 아니며 무단 복제나 이용을 철저히 금합니다. 본문서를 볼 수 있는 링크는 여기에 남겨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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