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8. 21. 16:39ㆍ번역/비문학
무라카미의 책을 읽을 때 당신이 읽고 있는 사람
© dpa picture alliance / Alamy / The Atlantic
글ㆍRowan Hisayo Buchanan
번역ㆍ오성진
2020년 4월 7일
*그의 번역된 초기작들은 새로운 형식의 이야기들을 전세계 대중 앞에 데려와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인물을 베스트 셀러 작가로 만드는 데 크게 일조했다.
책은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여느 상품들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소설가들은 아이폰이 아니다. 새로운 작가가 등장한다고 해서 지난 날의 작가들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샐리 루니를 향한 사랑이 아무리 강한들, 그녀의 등장으로 오스카 와일드는 한물 지나간 과거의 인물이라고 치부할 이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엠마 클라인을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그녀가 조앤 디디온을 능가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한 명의 작가가 다른 작가를 대체하지는 못하는 법이다. 그러나 처음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가 대중에게 소개되었을 땐, 마치 그가 기존의 것을 전부 능가한 작가인 것 처럼 세상에 소개되었다.
처음으로 하루키의 소설을 영어로 번역한 인물은 알프레드 번바움이었다. 그는 무라카미의 작품을 이렇게 표현한다. “엄청난 힘으로 독자 얼굴을 강타하는 오에 겐자부로, 아베 코보, 카라 쥬로, 나카가미 겐지와 같던 일본 문학에 완전히 반대되는 힘.” 이러한 반응이 유행처럼 번져 하나의 흐름이 되었다는 사실은 1989 뉴욕 타임즈에 기재된 <양을 쫓는 모험>, 미국 대중을 타겟 삼아 번바움이 처음으로 번역해낸 무라카미의 소설의 비평문에서 더 눈에 띈다. 허버트 미트갱은 이를 두고 “국제문학시장에서 여태껏 보기 힘들었던 진보… 이것은 아베 코보, 미시마 유키오, 가와바타 야수나리의 전형적인 이야기들과 확실히 다르다.” 다른 미국 비평가들도 이에 공감을 표하며 무라카미의 데뷔에 찬사를 보내는 의미로 기존의 일본 작가들과 그를 떨어뜨려놓고 인식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무라카미 또한 자신은 일본 문학보다 미국 문학에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적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프레임은—그러니까 그의 탁월한 글쓰기가 다른 일본 작가들과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시각은—작가이자 사회운동가 니케시 슈크라가 “하이랜더 신드롬Highlander syndrome”이라고 부르는 현상과 같다고 볼 수 있다. “하이랜더 신드롬”이란 동일한 인종이나 소수자 그룹의 개인들끼리 붙어 한 명의 승자를 뽑아야 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현재 몇백만부의 책 판매수를 올렸으며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마저 이름을 알 정도로 유명해진 무라카미는 현재 일본 문학의 선두에 서있는 인물이 되었다. 이를 소재로 삼은 <Who We’re Reading When We’re Reading Murakami(무라카미의 책을 읽을 때 우리가 읽고 있는 사람)>은 데이빗 카라시마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어떻게 세계 독자들에게 사랑받게 되었는지에 대해 쓴 얇지만 매력적인 논문이다.
© Soft Skull Press
이 책의 일본판 표지에는 작가 무라카미와 그의 "번역된 목소리"가 꼭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제목은 서적에 윗부분에 일어로 나열되어있는데 무라카미의 이름만 알파벳으로 적혀있다. 영문판본에서는 이러한 배치를 볼 수 없다는 점은 이와 같은 디자인이 문화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어떤 이가 무라카미의 영문판 서적을 살 때에는 책을 쓴 작가와 동시에 출판 공장의 힘이 담겨져있는 결과물을 양손에 받아가는 것이다. 소설가들은 아이폰과 결코 같지 않지만 블록버스터 소설을 만들 때만큼은 미국 시장도 한 몫 한다. 카라시마는 무라카미가 어떻게 그런 대규모 시장으로 던져졌는지에 초점을 맞춰서 책을 진행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책에 담은 내용은 “무라카미의 작품이 영어로 출판되는데 가장 처음으로 기여한 색채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들”이라고 한다. 책을 펼쳐내면서 그는 각 인물들을 추적하고 그들이 무라카미의 국제적 성공에 기여한 바들을 높게 여기며 그들이 편집한 부분들에 대해서도 다룬다.
책의 작가인 카라시마는 그의 독자들에게 "번역에서의 땜질(translational tinkering)”이란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무라카미의 첫 번역가였던 알프레드 번바움과 코단샤 출판사의 편집자이자 당시 미국 시장으로 뚫고 갈 만한 방법을 찾고 있던 엘머 루크의 이야기로 화두를 던진다. 무라카미의 세번째 소설, <양을 둘러싼 모험An Adventure Surrounding Sheep>은 주인공이 자신과 잠자리를 나누던 여주인공의 죽음을 알자 시작되는 비현실적인 미스테리를 다루었다. 원래 이야기는 70년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번바움과 책의 편집자였던 루크는 "미국인들—특히 뉴욕의 미국인들—을 독자로 상정"하고 있었으며 책의 배경보다 "현대적"이기를 바랬다고 한다. 그렇기에 1989년, 미국에 책을 출간했을 때, 책에서 시대상을 그리는 부분들은 모조리 빼버렸다. 또한 책속의 시대적 배경 이후에 나온 로날드 레건 대통령의 연설에 동의하는 듯한 분위기를 추가하기도 하고 책의 제목을 <양을 쫓는 모험A Wild Sheep Chase>으로 바꾸기도 했다. (실제로 번바움은 "이 제목이 원제보다 훨씬 낫지 않나요?"라는 말을 했던 것으로 기록된 바가 있다.)
그들은 무라카미의 차기작,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Hard-Boiled Wonderland and the End of the World>에서 1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을 없애버리기도 했다. 작가인 무라카미가 자신의 책에 소위 "비논리적인" 부분들을 넣고 싶다고 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독자들이 흥미를 잃을까 두려웠던 번바움과 루크는 상당한 양을 잘라내기를 강행했다. 특히, 그들이 잘라낸 부분들 중에 "분홍 옷을 입은 여자Girl in Pink"라는 캐릭터도 있었는데, 이 캐릭터의 역할은 주인공이 미로를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원본에는 총 4페이지 가량 그녀가 자신의 분홍색 자전거에 대해 노래하는 부분이 있다. 터프츠 대학교에서 일어과 부교수직을 맡고 있는 호시 히라타는 카라시마에게 이러한 편집은 원본을 폭력적으로 검열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입장을 표했다. 그는 삭제된 부분 중에서 "분홍 옷을 입은 여자"는 성적으로 과감한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 부분이 일부 섞여있다고 했다. 히라타는 삭제된 여자와 주인공 간의 대화들을 예시로 들었는데, 그 중 특징이 강한 두 부분은 다음과 같다:
"저기," 소녀가 책을 내려놓으며 나를 불렀다. "정말로 내가 당신의 정액을 삼키는 것을 원하는 게 맞아?"
그리고
"서버렸어."
"어디 보자," 분홍색 옷을 입은 소녀가 말했다. 나는 잠시 주춤거렸지만 그녀에게 보여주기로 결심했다. 도의적인 질문을 더 하기에는 너무 피곤했다. 게다가 내가 세상에 있을 날은 얼마 남지 않기도 했다. 17살 여자애에게 건강하게 발기된 내 성기를 보여준다고 해서 세상에 심각한 사회 문제를 야기시킬 것 같진 않았다.
"이렇구나..." 소녀는 나의 발기된 성기를 보고 말했다. "만져봐도 돼?"
위와 같이 편집된 부분들에 관한 질문에 루크는 장면이 성적이어서 잘라낸 것이 아니라 "말이 안 될 정도로 터무니 없기 때문"이라고 밝히면서 "작가나 책이 오해를 사지 않았으면" 했다고 말했다. 루크는 분홍 옷을 입은 여자의 나이가 크게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은 하지 않은 듯이 덧붙였다. "만약 12살 정도의 나이였다면 얘기가 달랐겠지만요." 루크도, 카라시마도 분홍 여성의 선정성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에 대한 문제나 그녀가 나온 부분을 그대로 실어넣었다면 과연 미국 독자들의 오해를 불러일으켰을지에 관해서는 그 이상 파고들지 않았다. 카라시마는 여기서 문학 비평가 기트 마리앤 한센Gitte Marianne Hansen의 말을 인용한다. 그녀는 이 부분들이 잘려나간 것이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는데, 그 이유는 그녀는 "무라카미 소설 내에서 섹스가 묘사된 부분들은 소설 속 인물이 스스로를 알아가거나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캐릭터간의 의사소통이지, 외설적인 이야기로 접근하면 안 되며, 그렇기에 이러한 단어들이나 이미지들이 잘려버린다면 그러한 분위기 또한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상에 자신의 작품이 번역되는 과정에서 변화를 겪는 모습을 봐야만 했던 작가는 무라카미가 처음이 아니었다. 정확히 어디에서 기준을 잡고 이를 바로잡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오랜 기간 동안 열띤 토론 주제가 되어왔다. "분홍 옷을 입은 여자"가 야기시킨 질문은 번역에 관해 블라디미르 나보코브가 쓴 에세이를 상기시켜준다. 에세이에서 그는 "논리를 이해하면서도 무지한 이들이 두려워 행동을 삼가는 사기꾼들은 얼마나 한심한가! 위대한 작가의 품안으로 감사하게 안기는 대신에 그는 구석에서 위험하고 지저분한 것을 가지고 놀고 있는 독자라는 작디 작은 집단의 눈치나 보고 있다." 위의 부분들을 삭제하는 것이 과연 좋은 결과를 불러웠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차치하고서라도 분명한 사실은 그들이 단순히 책의 길이보다 더 많은 것에 변화를 주었다는 사실이다. (루크와 번바움이 임의적으로 추가한 변화는 한가지 더 있다: 책에는 번바움의 아버지를 가리키는 레퍼런스가 추가되었다.)
그와 번바움의 편집에 대해, 루크는 "무라카미를 진정으로 따르는 사람들이 저희의 편집방식을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무섭군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이 누린 자유를 떠나 그들은 무라카미를 위한다는 일념 하에 선택들을 해왔다고 믿는다고 했다. 그들은 자신의 직업 타이틀이 요하는 항목들보다 훨씬 많은 일을 했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글을 쓰고 싶다고 말을 한 무라카미를 위해 루크는 그에게 살만한 장소를 직접 구해다주기도 했다. 루크와 번바움은 그들이 만든 추가한 변경사항들의 대다수가 오로지 미국의 대중들에게 무라카미가 다가갈 수 있도록 이루어진, 무라카미가 원했던 바라고 말했다. 무라카미는 일본의 편집자들보다 미국의 편집자들이 더 많은 일을 한다고 직접 말한 적이 있다. 어쩌면 이는 루크와 번바움의 편집 스타일을 향한 칭찬이었을지도 모른다, 무라카미는 레이몬드 카버의 작품을 동경한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고 카버가 뉴요커의 에디터 고든 리쉬에게 매번 수차례 편집을 받은 사실은 유명하다. 오늘날까지도 무라카미는 이에 대한 입장을 모호하게 말한다, 그는 번바움을 두고 "정교한 번역가라기 보다는 '소개자'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밝힌 적이 있어서 어쩌면 번바움이 너무 선을 넘은 것일수도 있다는 점을 암시하기도 했다.
무라카미 문학의 인기가 자라면서 그는 초기 공편자들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도약을 했다. 1992년 정도에 무라카미는 루크에서 노프Knopf 출판사의 개리 피스케욘Gary Fisketjon으로 담당 편집자를 바꿨다. 루크는 "무라카미 엔진"에 시동을 거는 역할을 해내는데 일조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영광이었다"며 무라카미를 향한 사랑을 드러내보였는데, 그가 과연 무라카미에게 방해되는 인물이었는지 무라카미가 미국 출판사로 옮기면서 생겨난 피해자였는지에 대한 사실 여부는 현재까지도 모호하다. 무라카미가 노프 출판사에서 처음 펴낸 책은 그의 단편선이었는데,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번바움을 포함한 많은 번역가들이 대거 참여해서 번역해냈다. 그렇지만 노프에서 처음으로 출판한 무라카미의 장편소설은 제이 루빈이 번역했었다. 번바움은 자신이 해고당한건지—아니면 무라카미에게 앙금을 사서 관계가 끊긴건지—아니면 오히려 자신이 주체적으로 일을 그만둔건지도 모른 채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야만했다.
제이 루빈 역시 무라카미의 작품에 상당히 많은 변화를 주었다. <태엽 감는 새 연대기The Wind-Up Bird Chronicle>은 일본에서 세 권에 걸쳐서 출판된 것에 반해 미국에선 한 권으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루빈은 원작의 몇 부분들이 읽기에 "혼란스럽다"는 이유로 "정갈하고 깔끔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총 25,000 단어에 달하는 부분들을 잘라내었다고 한다. 알려진 바로는 통째로 번역본을 만들지 않고 작업 도중에 편집을 강행했던 루크와 번바움과는 다르게 제이 루빈은 완성본과 편집본, 총 두 개의 작업물을 만들어냈다. 노프 출판사는 둘 중 짧게 편집된 버전을 선택했다. 피스케욘은 원본을 그대로 번역한 버전은 "미국에서 팔리기가 완전히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그가 맞았을 수도 있다. 그때 출판된 <태엽 감는 새 연대기>는 여러모로 무라카미가 미국 시장에서 새로운 기록을 새웠던 책으로 알려져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선택들이 무라카미가 해외에서 성공하는데 얼마나 기여했는지, 아니면 편집이 없었더라도 작가로서 지닌 무라카미의 비전이 빛을 발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가 되었다.
무라카미에 대한 트리비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카라시마는 정말 무라카미를 위해 일곱 명의 스시 요리사들로 이루어진 파티가 벌여졌는지, 무라카미가 카버를 몇차례나 봤는지, 혹은 아예 그와 본 적이 없는지에 관한 뒷이야기들도 소개한다. 여기서 소개되는 일화들은 이런 이야기들이 어떻게 무라카미에 관련된 신화가 되었는지만 생각하고 읽어도 충분히 흥미롭다. 무라카미의 초기작들에 집중해서 분석한 카라시마는 무라카미가 대중에게 인식되는 방향이 매번 변화를 맞이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어쩌면 무라카미가 요구해온대로 언젠가 편집되지 않은 영어로 번역된 무라카미의 원작이 세상의 빛을 보는 날이 찾아올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어쩌면 우리가 무라카미의 작품을 이해하는 바를 가장 많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세계 독자들에게 출판될 다음 세대의 일본 작가들의 작품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널리 알려진 일본의 소설가 가와카미 미에코와 무라카미가 진행한 인터뷰에서 미에코는 무라카미에게 그의 작품에서 여성 캐릭터들이 표현되는 방식에 대해 묻는 부분이 있다: "제 주변에 여성 친구들이 자주 제게 이런 질문을 해요. “여성들이 그런 식으로 나오는데도 어떻게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을 그렇게나 사랑하는거야?” 선생님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이 그려진 형식에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거죠." 가와카미는 약간의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아 무라카미의 소설 속 여성 캐릭터들이 섹스를 통해 남성들에게 "변화의 창구, 계기,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보여지는지를 지적하며 이러한 방식을 통해 여성들은 "극적으로 성적이기만 한 역할"의 틀에 갇힐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무라카미가 어떤 여성 캐릭터들은 정말 잘 만들었다고 덧붙인다. 가와카미가 무라카미에게 이렇게까지 말할 수 있는 데에는 그녀의 소설, <젖과 알Breasts and Eggs>이 여성이라는 주제를 다룰 때 "여태껏 볼 수 없었던 굉장한 종류의 이야기"라는 찬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촉망받는 신예 작가와 베테랑 작가 사이에 인터뷰는 미국 독자들을 위해서도 번역이 되어 출간됐는데, 해당 도서가 국제적으로 상당한 반응을 이끌었다는데서 현시대 일본 소설이 국제적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가와카미 미에코, 오가와 요코, 츠무라 기쿠코, 가와카미 히로미, 무라타 사야카를 포함한 다양한 새로이 등장한 일본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 영어권 독자들을 위해 번역되고 있는 현실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물론 무라카미 말고도 여태껏 많은 일본 작가들의 작품이 번역되어 온 것도 사실이지만 요즘 들어 일본이나 일본 문학을 향한 특별한 관심이 없는데도 위 작가들 중 한두 명의 작품을 읽고 느낀 평가를 나누는 대화를 자주 가졌기 때문이다. 드디어 무라카미 말고 다른 작가구나, 이렇게 생각했던 순간이 정확히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어찌보면 그것 또한 일종의 함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여성작가들이 무라카미를 대체할 필요는 없다. 한 문화에서 오로지 한 작가만이 모든 조명을 받고 있을 때 사람들은 그 문화의 전체를 위해 들고 일어날 줄 알아야만 한다. 한가지 이상의 목소리가 존재할 때 비로소 우리는 대화를 나눌 준비를 갖출 수 있고, 그것이야말로 정말 신나는 일 아니겠는가.
*역주: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서 굳이 굳이 덧붙이자면, 이 사설(내지는 북리뷰)를 처음 읽었을 때 흥미롭다고 생각해서 번역을 마음먹었는데 하필이면 바로 이전에 번역해둔 인터뷰 내용이 발췌되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같은 내용이 연속되는데다가 이번 글에서 그 부분을 발췌하는 데 배경에는 가와카미 미에코의 입장을 두둔하는 목소리를 지녀서 약간의 경각심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녀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터뷰를 번역하면서도, 심지어 지금도 딱히 그녀의 입장에 동의하진 않기 때문입니다. 이상, 피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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