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그마그단 탈퇴 선언서 魔其魔其團 脫退 宣言書

2022. 6. 15. 15:12기록/그냥

 


나는 주어진 일을 하다가도 정말 내가 지금 잘하고 있긴 한건지, 도무지 감이 안잡힐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별다른 지적은 없어서 어떤 일을 계속 하다가도 칭찬이라도 한 번 들었다 치면 얼른 숨을 데부터 찾곤 한다. 고민 상담도 그런 식으로 갸우뚱하게 만드는 일 중에 하나다. 열심히 들으려고는 하는데 도대체 어떤 점에서 내가 들어주는 모습이나 자세, 또는 말이 마음에 들은건지 - 어쩌면 정말 그냥 고민을 들어주는 사람의 수 자체가 적어서 그런 걸지도 몰라 - 많은 사람들이 내게 고민을 상담해오거나 외롭다고 호소한다. 어쨌든 그런 일환으로 오늘도 친구 OO에게 고민상담전화가 왔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정작 만나자고 하면 만나질 않으니 통 모르겠다고, 자신을 가지고 노는 것 같다는 것이 고민의 요였다. 순간 덜컥, 내 얘긴가 싶었다. 나도 그렇게 얼른 단정짓고, 얼른 마음을 표현하고, 얼른 마음이 식고 하기 때문에 OO이에게 의견을 말해주면서도 마치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 것 같아 꽤나 마음이 동했던 것 같다. 혹여나 까먹을까 전화를 마친 후에 후다닥 구글독스에 내가 한 말들을 순서나 문법도 정리하지 않고 올렸는데 별로 글을 쓸 일도 없는 요즘, 신나서 글을 쓴게 좋아 블로그에도 한 번 올려본다. 아마 당분간 생각날 때 마다 들리면서 두세번 정도 열심히 고친 다음에 부끄러운 마음이 적당히 차오르면 비공개로 바꾸지 않을까.

 

누군가를 좋아하는 사람들, 모두 화이팅.

오성진 드림


2022년 06월15일, OO한테 통화하면서 해준 얘기를 정리한 내용

 

"자니? ... 자!!!!!!!"


우선 이 글은 모두가 아니라 나와 같이 마음속에 마그마그를 지닌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글이다.

세상엔 타인들의 마음을 읽어내고 상황이 벌어지기도 전에 전개가 그려지는 능력을 가진 극소수의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어떤 조건으로 이런 능력이 형성되는지 아직도 파악을 못했다만 그래도 이들의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다. 왜냐면 내가 이 그룹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남에게 어떻게 설명을 할 수 있는 노릇도 아니고 설명을 해봤자 매번 정말 사람들이 믿어줄지도 미지수이기 때문에 사실 별쓸모짝에도 없는 경우가 많다. 그냥 관찰력이 조금 높다, 정도의 이 능력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남의 이야기에 공감을 하는데 특화되어있을 뿐, 오히려 이 능력 때문에 애당초 일어나지 않은 일에도 무언가 얻을 것 같은 길이 잘 보이지 않으면 달려들지를 않고 벌어지지 않았는데도 스트레스를 받는다던가 사람들과 오랜 시간 있다보면 정신의 힘이 극도로 줄어드는 부작용이 너무 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성격을 가진 이들에겐 상황 뿐만 아니라 사람, 그리고 사랑 또한 마찬가지로 다가온다. 사랑이란 애당초 확률도 모르고, 실패할 확률이 높아도 진행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살아온대로 확률이 적으니까, 불안하니까 피하게 되는 대상인 것이다. 오히려 관계를 맺기까지 필요한 시간(흔히들 썸이라고 하는 그 기간) 따위를 두고 당연히 확률이 적은 시기에 확률이 적은 상황을 "간파"했다고 착각하며 그러한 시간들을 가식, 불필요한 형식이라고 오해하고 불편해한다. 그리고 모든 마음을 표현해버리면 내 마음대로 마음을 표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은 이걸 왜 못 받아주지?’ 또는 '왜 쟤는 이걸 받고서도 아직 사귀는 단계로 넘어가려고 하질 않지?' 같은 아찔한 상상도 한다. 그러다가는 세 달 정도 있다가 잘 풀릴만한 일이어도 한 달 안에 괜히 혼자 꿍시렁꿍시렁하다 쌓인 마음을 견뎌내지 못하고 홧김에 다 풀어버리고 싶어서 와르르 토하듯이 내려놓게 되고, 당연히 그 관계는 아무런 관계로의 진전이 되지 않고 막을 내린다. 마음을 털어놓은 사람은 '휴, 하마터면 다칠 뻔 했잖아'하면서 애써 스스로를 칭찬하고, 그의 마음을 한꺼번에 알게된 정상인은 '뭐야, 이 새끼' 같은 생각을 하게 되며 블랙 코미디식의 그림과 함께 말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당신이 착각하는 것 처럼 당신을 이용 대상이나 감정 쓰레기통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당신이 말을 잘 들어주는 성격의 고마운 친구라는 생각으로 가까이 지낸다. 그런 생각으로 지내다가 언젠가 '오, 이 사람 꽤 근사하잖아'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순간이 - 제발 있기를 - 올 때, 그 때 만나면 되는거다. 그리고 그걸 기다려준다고 생각하는 편이 있고 그 순간까지 노력을 한다고 생각하는 편의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전자의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은 -- 안타깝게도 우리들은 이 집단에 속하는데 -- 수동적으로 사랑을 대하며(당하며) '내가 이미 다 정해놓은 결과물/그림'이 짜맞춰지는 날을 초조하게, 그리고 수동적으로 기다리면서 자신의 마음만 썩힐 뿐이다. 반대로, 후자의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사랑에 참여하며 '내가 원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고, 그 사람에게 좋은 모습을 비춰주기 위한 변수'를 만들기 위해 매순간 자의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사랑의 현장에 임한다. 이들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단순히 "사귀는 상태", 또는 "결혼한 상태" 같은 무식한 명칭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우리들은 썸이나 좋아하는 단계, 표현하는 단계, 등등을 답답하다고 여기는 유형이다. '이미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는데 뭔 형식이 필요해'라는 생각에는 '나는 이 사람을 좋아하니까 이 사람이 나를 같이 좋아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으며, 그로 인해 이 사람이 나에게 조금의 호감 표시를 하더라도 나는 그렇게 해석할거야'라는 괴랄한 대전제가 깔려있음을 인지해야만 한다. 사귀기까지, 관계를 맺기까지, 몸을 나눌 때까지, 자신 스스로조차도 마주치지 못한 진심을 나눌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이 당연하고 그 순간도 없이 누군가를 좋아한다('이 사람 괜찮다'할 때의 '좋다'가 아니라 '이 사람 정말 둘도 없이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다'할 때의 ‘좋다')는 마음을 확신하는 것은 어리석디 어리석다. (진짜로!)

어차피 세상에 이 여자 말고 39억하고도 오천명이나 더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보라. 과연 그 중 당신들이 죽기 전까지 여성들을 만날 수 있는 대상은 몇이나 될지. 그 중에서 지나치는 사람들은 1/1,000,000보다도 한참 떨어질 것이며 그 지나치는 사람들 중에서도 눈이 마주칠 사람들은 다시 1/1,000, 어떻게 어떻게 만나는 사람 중 손끝이라도 닿을 사람은 1/1,000, 말이라도 나눠볼 사람들은 또 다시 1/1,000, 세계 인구 중에서 당신의 생활 동선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또 다시 1/1,000, 이런 식으로 줄이고 줄이다 보면 당신이 살면서 정말 "만날" 수 있는 여성들의 수는 50명도 되지 않는 것이다. (50도 너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사람들이 많고, 나랑 정말 말도 안되게 통하는 사람들이 그 중에 있다'는 이유로 확률에 모든 것을 맡기고 그들과 만나는 날을 고대했다가는 큰코 다치기 마련이다. 

 

"사랑해!!!!!!!!!!!!!!!!!!!!!!!"

 

그리고 -- 이게 오늘 정말 하고 싶은 말인데 -- 당신같은 사람은 하나의 성격, 성향, 취향, 생각, 믿음, 신념 같은 근사한 것들보다는 지금 당장의 섹스, 따뜻한 말, 그녀의 살, 그녀를 통제하고 싶은 마음 뿐이라서 다가가는 온도가 너무도 높고, 그렇다보면 다가가는 시간이 마땅히 필요한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화상을 입힐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중 가장 큰 문제는 이 문제의 근본인 온도를 고치지 않는 한, 당신은 평생을 당신과 같은 생각으로 당장의 섹스, 당장의 말, 당장의 필요, 당장의 군림, 당장의 대결, 당장의 승부, 등을 원하는 사람, 즉 다가감의 온도가 마그마처럼 높은 사람과만 금방 만났다가 금방 헤어지게 될 것이다. 그 후에는 '누군가와 물론 잠깐 뿐이었지만 통했다'는 착각으로 그 경험을 결론짓고는, 최악의 경우엔 ‘세상에는 역시 나와 정말 통하는 사람들이 어딘가 존재하긴 해!’라고 생각을 하게 되는 수도 있다.

우리는 분명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태도로 만난 사람들은 과연 당신의 생각과 느낌, 취향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히 당신과 같이 사랑에 임하는 온도가 자신과 남에게 쉽게 상처를 줄 정도로 너무나 높아서 당장에 서로의 성기를 애무해줄 대상을 찾고있는 사람들이었을까?

"마그마그는 잠을 자는 법이 없다. 움직임을 멈추는 순간 마그마로 이루어진 몸이 식으면서 굳어버리기 때문이다."


난 이번 통화에서 느낀 바를 계기로 이제껏 나에게, 남에게 피해만 되어온 내 맘 속 더러운 불꽃에 작별인사를 건네겠다.

굿바이 마그마그, 그동안 함께여서 즐거웠다.










...







에잇, 즐겁긴 개뿔! 뒈져라, 찌질한 마음!

 


 

(***P.S. 추가로 한마디만 적어보자면, 성격을 개조하자라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주어진 능력은 제때제때, 올바른 곳에 쓰자는 취지이다.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정말 착하고 각각 음지에서 조그만 착한 일들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 제일 잘 알아. 어떻게 하다보니까 추가로 세마디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