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5. 2. 00:24ㆍ기록/그냥
Q. 많아질수록 줄어드는 것은?
:침착맨의 해명 영상을 통해 본 현 한국 사회에 만연한 언어 문제
오성진 (20182117)
1. 침착할 수 없었던 침착맨의 어느 날
나는 늦은 나이에 편입을 하고 주로 혼자 작업 하는 번역일을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한 날이 아니고서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생활의 주를 이룬다. 그래서인지 휴식도 혼자 집에서 취하게 될 때가 많은데, 그런 내게 심적으로 안정감을 쥐어주는 매체는 유튜브의 침착맨 채널과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그리고 가끔씩 보는 유퀴즈가 전부이다. 주로 컴퓨터나 책의 글자들을 많이 보는 내게 이 매체들은 하루를 마무리할 때, 아니면 혼자서 밥을 먹을 때 틀어놓고 봐도 머리가 지치지 않을 정도의 온도를 지녔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같이 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유튜브를 틀었는데 침착맨이 “(※욕주의) 디시인사이드 실베 좌착맨 논란에 대하여”라는 영상을 게시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름처럼 침착하게 말했지만, 제목처럼 욕도 많이 들어가있었기에 평상시에 내가 보던 영상들의 온도와는 확실히 거리감이 있었다. 내용을 들어보니 ‘디시인사이드’라는 정치색을 띈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침착맨을 두고 ‘그가 올린 여럿 영상들과 그의 과거 행적들을 보아 그는 좌파일 수 밖에 없다’라는 식의 글들을 계속해서 양성해내고 있는 데에 대한 침착맨의 해명 영상이었다. 평소 주로‘과학 특강’이라던지 ‘이집트 특강’ 등등 긴 시간 동안 편안한 주제로 이야기하는 침착맨의 모습만 봐왔기에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하고 그들이 올린 근거들을 하나하나 보았다. 첫째로 윤석열 대통령을 폄하하는 단어(이마저도 영상을 보고 처음 알았다)인 “윤도리”를 방송에서 무슨 뜻인지 검색했다는 이유, 둘째는 윤석열 후보가 당선된 후에 그의 이름을 연상시키는“유니짜장”을 먹었다는 이유, 셋째는 그가 예전부터 해오던 게임인 “역전재판”이라는 게임이 변호사 주인공을 통해 검사를 이기는 내용이라는 점, 넷째, 세계적으로 스트리머(인터넷 방송인들) 사이에 유명한 “세상에 문이 많을까, 바퀴가 많을까?”라는 주제로 방송을 했다는 점, 그리고 이 명제 속에 “문”이 문재인 전대통령을 연상시키고 “바퀴”는 바퀴벌레를 연상시킨다는 점들이 있다. 이 외로도 침착맨은 웹툰 작가 시절 정치를 정확히 모르고 대다수의 언론과 여론이 대통령을 욕하고 있는 점을 자신의 만화에 재미 요소로 몇 번 사용했고, 마침 자신이 만화를 그릴 때마다 전부 우파쪽 인물이 대통령 직위를 맡고 있었다는 점도 언급했다. 이렇게 모으고 나면 모르는 사람이 봐도, 그리고 침착맨을 즐겨보는 사람들의 세상, 아니면 커뮤니티 사이트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세상의 이치가 정확히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이해를 못해도 ‘아니 뗀 굴뚝에 연기가 날까’하는 생각과 함께 침착맨이 정말 한 쪽 성향을 지니고 있겠구나, 쉽게 넘겨짚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도 있겠다고 충분히 생각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여태껏 아무 대처도 하지 않았던 침착맨은 자신을 두고 욕하는 사람들은 괜찮지만 그 사람들을 통해 그런 식으로 넘겨짚는 사람들, 그렇게 넘겨짚고 자신을 위로하거나 조심하라며 자신의 표현을 되려 제한하려는 사람들이 너무도 늘어 방송을 켰다고 말하며 이 41분 남짓 되는 영상이 재생되는 동안 진심을 다해 남들이 말하듯 자신이 정말 어느 한쪽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거나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여기에 제시된 근거들과 같이 단순히 이 문제를 거론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나는 엄청난 오해를 살 수도 있지만, 바로 그런 이상한 현상에 너무도 감정적인 요동을 깊게 느껴서 부족한 글쓰기 실력이지만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이런 식의 “언어 제한”은 사회에서 점차적으로 줄여야 되지 않겠냐는 말이 담긴 글을 적어 세상에 던지고 싶었다.
2. 과연 새롭고 재밌기만 하면 정말 다 괜찮은 것일까?
물론 나처럼 침착맨을 여가생활의 수단으로 생활 속에 들이고 그가 여태까지 어떤 영상들을 만들고 어떤 마음들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했는지는 침착맨이라는 유튜브 채널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설명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침착맨이 무고하다고 느끼는 것은 나의 마음이지, 나 또한 결국 때때로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에 침착맨의 뒤를 쫓아 증거들을 모아다가 실증적인 자료를 제출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침착맨이 과연 정치적 색깔이 있을까?”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과연 우리가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현상들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요즘 사회를 힘없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다른 현상들을 근거로 삼아 조금 더 나열해보겠다. 가장 우선 침착맨은 좌파쪽이라는 허구의 의심을 받으며 사람들의 비판을 받았다면 다음으로는 우파친향적인 선택을 했다고 비판을 받게 된 한 예능 프로그램을 소개해보겠다. 내가 가끔씩 보는 프로인 ‘유퀴즈’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유퀴즈는 윤석열 당선인을 출연시켰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인들을 포함해 반대쪽 정당을 옹호하는 수많은 세력에게 비판을 받았고 심지어 프로그램이 폐지될 수 있는 위기에도 처했다. 어영부영 지나간 듯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이 사건이 있고 난 직후에 유퀴즈를 방영하는 tvN 사에서 많은 영향력을 펼치고 있던 김민석 PD, 박근형 PD, 민철기 PD,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예능 PD인 정종연 PD등 엄청난 인재들이 줄줄이 퇴사하면서 막대한 결과를 초래했다는 사실을 결코 무시할 수가 없다. 더이상 하나의 커뮤니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우리의 삶까지 자신들의 색깔과 맞지 않는 키워드가 등장한다면 검열이 가해지는 세상이 이미 도래한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이렇게 범해지는 표현적 검열들은 직업 뿐만 아니라 우리 실생활 속에서도 많은 제약을 가져왔다. 첫째로는 노무현 전대통령을 비판하던 한 커뮤니티 사이트가 어미에 “-노”를 사용하며 노무현 전대통령을 비꼬는 듯이 말하는 문화를 시작했고 그 후로 내 친한 경상도 친구들도 말을 하는데 원래 같았으면 자연스러울“-노”를 말끝에 붙이기가 영 찝찝하다고 말했다. 또한 페미니스트 커뮤니티 중에 극적으로 공격적인 성향을 지닌 커뮤니티에서는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을 가깝게 둔 수화를 남성들을 조롱하는 의미로 썼는데, 그 뒤로 “조금만 더 주세요” 라던지 “요만큼만 빼주세요”라고 말할 때 지금까지 사회에서 응당 써오던 손모양을 만들기가 영 어색해져버렸다. 그렇다고 이러한 언어 제한들은 꼭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부터 발발된 것만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이러한 유형의 검열은 많이들 이루어지고 있다. “나 때는 말이야”가 이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이러한 말투가 섞인 말을 들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면서 건강한 웃음을 샀겠지만 “라떼는 말이야”라는 식으로 패러디까지 이루어진 지금, 비슷한 말이나 내용이라도 꺼낸다면 “꼰대”라는 호칭을 피하기가 정말 힘들게 되어버렸다. 마지막으로 내 개인적인 경험을 추가해보자면 MBTI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표현의 제한을 느낀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내가 속하는 INFP라는 유형은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등 내가 자주 사용하는 사이트들에서 주로 “우울하고 혼자만의 망상에 빠져있고, 조용한 성격”으로 놀림을 받거나 내지는 “지켜줘야 하는 대상”처럼 여겨지는 바람에 MBTI가 한참 인기 있었을 당시에는 – 그리고 지금도! - 함부로 내 감정이나 혼자 있겠다는 말을 잘 하지 못했다.
3.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누구의 얼굴에 침을 뱉고 있는 것일까?
차분하다고 논리적인 것이 아니며, 웃고있다고 그 사람이 화를 내지 못한다는 확신도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개념은 단순히 상반되는 두 가지 성격으로 나뉘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색이건, 슬픔을 느끼는 유무이건, 조언이나 잔소리도 단순히 우리가 어떤 성격을 더 많이 띄고 있는지 쉽게 표현하기 위해 정해놓은 이름일 뿐 사실 완전히 하나의 성격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기에 그 정도를 파악하고, 이해하고, 대화를 해야만 한다. 최근 들어서 친구들 사이에서 “-셈”이나 “-ㅁ”과 같은 동사의 명사형으로 대화를 하지 않으면 도무지 부끄러운 기분이 드는 일 없이 메신저 상에서 소통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이번에 -런 일이 있었는데 -렇게 느꼈어.”라고 “-어”로 말을 마치는 순간 상대방에게 비웃음을 살 것만 같다는 두려움이 생겼기 때문이다. 너무도 많은 개념들이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활발하게 생겨나고 있는 오늘 날, 내가 즐기지도 않는 곳들에서 사회에 있던 개념을 뺏어가 이상한 의미로 만든 뒤에 다시 사회 속으로 몰래 가져다 놓고 있고, 이에 눈치만 보던 나는 어느샌가부터 스스로를 검열하게 되고 만 것이다. 새로운 표현, 재밌는 표현들이 주는 웃음과 특정 의미의 되새김은 분명 좋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을 반기며 하하호호 하는 와중에 원래 자리에 있던 의미들과 글자들을 잊게 된다면 결국에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은 누구일까? 이는 우리 모두 깊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임에 틀림없다.
*키워드: 침착맨, 커뮤니티 사이트, 검열, 언어, 제한
*요약문: “침착맨”과 크고 작은 다른 예시들을 통해 현 사회에서 본인이 발견한 가장 큰 언어적인 문제를 담아보았다. 새로운 단어들을 만들 뿐만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던 언어를 가져가 한쪽에 유용하게, 또는 다른 쪽에 피해가 가도록 사용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표현에 제한이 오게 되었으며 우리 모두 바쁘고 각자 해야하는 일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러한 문제가 지나치도록 내버려 둔 결과 벌써부터 제한이 걸린 표현들의 수는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쌓여만 가고 있다. 그렇게 늘어난 비자발적 사어(死語)들의 시체들을 바라보며 모두 같이 어느 정도 지점에 선을 그려야 할지, 고민을 나눠봐야 할 시기가 찾아왔다.
"인문사회글쓰기"라는 수업을 듣다가 과제로 쓴 글이었는데 과제로 "침착맨"을 주제로 삼은 것도 참 특이하고, 그만큼 재밌게 썼고, 또 앞으로 학교에 제출할 글이 몇 개 없겠단 생각에 게시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말 개방장을 많이 좋아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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