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8: 어니스트 헤밍웨이, 그럼에도 태양은 오른다: 제1 장

2022. 1. 6. 14:21번역/문학 (소설)

The Sun Also Rises

그럼에도 태양은 오른다

 

글쓴이 · Ernest Hemingway
번역 · 오성진

 

(표지 사진 출처 / 본문 사진 출처)

 

- 제1 장 -

 

로버트 콘은 한때 프린스턴 대학의 미들웨이트 복싱 챔피언이었다. 이런 말을 했다고 내가 그깟 복싱 타이틀에 연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지는 말길. 단지 로버트에게 그 타이틀은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로버트는 복싱에 대해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아니, 오히려 복싱을 싫어했다고 하는 게 더 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로버트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받았던 수모를 겪으면서 불거진 열등감과 수줍은 성격을 이겨내기 위해 굉장히 고통스럽고 힘든 방식으로 복싱을 배워야만 했다. 그에게 거들먹거리는 사람을 언제든지 KO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의 마음 속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물론 전반적으로 너무 수줍은데다가 착하기까지 한 성격을 지닌 그가 체육관 밖에서 싸움을 하는 모습은 상상하지도 못할법한 일이지만 말이다. 그는 일명 ‘거미손’이라고 불리우던 켈리가 가장 아끼는 제자였다. 거미손 켈리는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의 무게를 떠나 모두 페더웨이트처럼 권투를 하도록 가르쳤다. 그리고 그 방식이 로버트에게 맞아 떨어진 것이었다. 복싱을 할 때의 로버트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로버트의 실력이 너무도 좋은 바람에 신이 난 거미손은 그와 수없이 시합을 겨뤘고 결국 로버트의 코는 영구적으로 꺾여버렸다. 이 사건으로 인해 로버트는 복싱을 더 싫어하게 되지만 동시에 요상한 만족감을 가지게 되었고, 이 만족감 때문인지, 그의 코는 점차 괜찮아 보였다. 그가 프린스턴에서 보낸 마지막 해에 로버트는 엄청난 양의 책을 읽는 버릇을 들여 결국 안경을 쓰기도 했다. 그와 같이 수업을 들은 사람들 중에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그가 미들웨이트 복싱 챔피언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난 솔직하고 진실된 느낌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들은 잘 믿지 못했는데, 특히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모두 너무 완벽하게 이어지면 더더욱 그랬다. 그리고 난 언제나 로버트가 사실은 한 번도 미들웨이트 복싱 챔피언이었던 적이 없었던 건 아닐까, 하고 의심했고 어쩌면 말이 그의 얼굴 위를 밟거나 어렸을 때 무언가에 얼굴을 박아버린 건 아닐지, 의심했지만 결국 거미손 켈리를 아는 지인을 통해 로버트의 이야기가 전부 진실이었다는 사실을 확인 받았다. 당시 로버트를 아끼던 거미손 켈리는 그를 단순히 기억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는 로버트가 어떤 사람으로 자랐는지 종종 궁금해했다고 했다.

로버트 콘은 그의 아버지를 통해 뉴욕에서 가장 부유한 유대인 가족, 그리고 그의 어머니를 통해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유대인 가족 중 일원이었다. 그가 프린스턴 입시를 준비했던 군사관학교을 다니던 로버트는 풋볼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이며 활약을 펼쳤는데, 당시 그에게 그의 신분이나 인종에 대해 언급하는 이가 없었다. 아무도 그에게 스스로 유대인이라고 느끼게 하거나 자신들과 다른 사람이라고 느끼게 한 적이 없었다… 그가 프린스턴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는 워낙에 착하고, 친화력이 좋고, 수줍음 많은 소년이었고 그런 그의 성격 덕에 그는 대학 생활 중 난처한 상황에 자주 빠지곤 했다. 로버트는 그렇게 쌓인 감정을 복싱으로 풀곤 했다. 그렇게 프린스턴을 졸업했을 때 머릿속에는 고통스러운 자기 인지가 그의 얼굴에는 무너진 코가 새겨진 로버트는 자신에게 처음으로 잘해준 여성에게 결혼을 당했다. 결혼한 지 5년이 지난 그에겐 세 명의 아이들이 있었고, 남은 자산이 어머니에게 넘어가면서 그의 아버지가 남겨주신 5만 달러는 거의 다 떨어져갔고, 그의 부유한 아내 밑에서 불쌍한 몰골로 불행한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가 아내의 끔찍한 손아귀에서 벗어나기로 겨우 결심한 순간, 그의 아내는 애당초 미니어쳐를 도색하는 남자와 바람이 난 상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로버트는 그가 떠나면 그의 빈자리를 두고 괴로워 할 아내를 걱정해 몇 달 동안 이혼을 미뤄오던 터라, 그녀의 빈자리는 그에게 꽤나 건강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혼 절차를 밟은 후에 로버트는 서해안에서 살기 위해 동네를 떠났다. 캘리포니아에서 그는 문학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과 친구를 맺었는데, 처음 받았던 오만 달러에서 조금 남은 생활비로 근근히 버티던 그는 지인들을 통해 예술지의 비평을 쓰는 일자리를 구했다. 그가 쓴 비평은 캘리포니아의 카멜시에서 출간되기 시작해서 끝내 매사추세츠주의 프로빈스타운까지 퍼져갔다. 그 즈음에 천사처럼 순수하다고 소문이 난 로버트는 자문위원회의 일원으로서 사설란에 그의 이름을 당당히 올렸고, 시간이 지나 편집장이 되었다. 그 후에 그는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벌어들이는 돈은 순전히 그의 돈이었으며 스스로 다른 이들의 글을 편집할 수 있는 권한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래서인지 잡지가 너무 비싸지는 바람에 그가 일을 관둬야만 했을 때 그는 꽤 오랜 기간 동안 슬퍼했었다.

하지만 마냥 슬퍼만 하기에는 일을 그만 둘 당시에 로버트에겐 이미 골머리를 썩히는 다른 문제가 있었다. 당시 로버트는 잡지사에서 그가 지닌 권위를 이용해 부귀영화를 누릴 생각으로 그에게 접근한 여성에게 진작에 잡아 먹힌 지 이미 오래된 터였다. 그녀는 로버트에게 상당히 강압적으로 굴었었는데, 로버트에게는 그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만한 기회가 단 한번도 오지 않았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가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믿었다는 점이었다. 잡지사가 잘 되지 않을 것 같자 그녀는 곧바로 로버트에게서 정이 떨어진 것 처럼 굴었고 그와 만나는 동안 캐낼 수 있을만한 모든 걸 누리기로 마음먹은 그녀는 로버트에게 그가 글을 쓸 수 있도록 유럽으로 가서 살자고 제안했다. 그들이 유럽으로 온 뒤로 여인은 유럽의 대학을 다니며 그곳에서 삼 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첫 해는 여행으로, 마지막 두 해는 파리에서 보낸 이삼 년동안 로버트에게는 브래독스하고 나, 이렇게 두 친구가 있었다. 브래독스는 로버트의 문학 친구였고, 나는 로버트의 테니스 친구였다.

로버트를 쥐락펴락하던 여인의 이름은 프란시스였는데, 그녀는 유럽에서 보내는 둘째 해의 끝자락에서 자신의 외모가 점점 노화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이후에 여태껏 로버트를 별 신경도 쓰지 않는 소유물, 내지는 착취 대상으로 생각하던 그녀는 한순간에 돌변해서 로버트가 자신과 결혼하도록 설득하는데 온신경을 다 쏟기 시작했다. 이 기간 동안 로버트의 엄마는 로버트에게 매달 삼백 달러의 용돈을 보내고 있었다. 이 년 반이라는 기간 동안 로버트가 다른 여자에게 눈독을 들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로버트는, 당시 많은 유럽인들이 그랬듯이, 미국에 있고 싶어한다는 사실 빼고는 적당히 행복한 삶을 이어나갔고, 그는 유럽에서 지내는 동안 다시금 글쓰기와 친해졌다. 그는 소설을 하나 써냈는데, 그가 쓴 소설은 당시 문학 평론가들이 내놓은 악평을 받을 만큼 형편없지는 않았다… 물론 과연 좋은 소설이었냐고 물어본다면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로버트는 책을 많이 읽었고, 브리지(*Contract Bridge, 콘트랙트 브리지) 게임과 테니스를 즐겨했으며 동네 체육관에서 복싱도 자주 했다.

프란시스가 그를 어떻게 대하는지 처음 알게 된 건 우리 셋이 같이 식사를 한 날이었다. 우리는 식당에서 식사를 한 뒤에 커피를 마시러 베르사유 카페(Café de Versailles)로 향했다. 커피를 마신 뒤에 우리는 브랜디를 몇 잔씩이나 마셨고, 난 이제 그만 가봐야한다고 말했다. 잠시만 앉아보라던 로버트는 주말에 우리 둘끼리 떠날만한 여행을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마을을 떠나 길고 긴, 근사한 산책길에 오르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나는 함께 스트라스부르(Strasburg)로 비행기를 타고 가서 셍뜨오딜르(Saint Odile)나 알자스(Alsace)가 아닌 그 어디든 다른 곳으로 함께 걷는 코스는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스트라스부르에 사는 여자 한 명을 아는데, 그 사람이 동네 구경을 시켜줄 수 있을거야.” 내가 말했다.

누군가 테이블 밑으로 내 다리를 찼지만 난 실수라고 넘기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 곳에 산지 이 년이 다 되어가는 여자인데, 그 동네에 대해 알만한 건 다 알고 있어. 괜찮은 사람이야, 정말.”

테이블 밑 발길질은 계속되었고 로버트가 여태 일부러 내 다리를 찼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프란시스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턱은 하늘 높이 올라가 있었고 그녀의 표정은 점점 굳어갔다.

“근데 뭐,” 내가 서둘러 덧붙였다, “굳이 스트라스부르는 가서 뭐하겠어? 브뤼허(Bruges)나 아르덴(Ardennes)에 가는 편이 아무래도 훨씬 나을텐데 말이야.”

그제서야 안색이 나아진 로버트는 더이상 내게 발길질을 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난 좋은 밤을 보내라고 말하며 떠날 준비를 했다. 로버트는 신문을 사러갈 겸 내 마중을 나가주겠다고 선뜻 나섰다.

“진짜 왜 그래,” 로버트가 말했다, “그 스타라스부르에 산다는 여자 얘기는 왜 괜히 꺼내가지고… 프란시스 얼굴 못봤어?”

“아니, 내가 그런 걸 왜 신경 써야 하는건데? 내가 스트라스부르에 사는 미국 여자를 안다는 게 프란시스한테 도대체 뭐가 그렇게 큰일이냐는 말야.”

“미국이건 영국이건 별반 차이없어. 그 어떤 여자가 되었건 난 여자들 주변으로 갈 수 없어. 그건 어떻게 해볼 것도 없이 지켜야만 하는 법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마.”

“너가 프란시스를, 아니 여자를 몰라서 하는 말이야. 안에서 저 여자 얼굴을 보기나 했어?”

“아, 됐고,” 내가 말했다, “상리스(Senlis)에 가자, 그럼.”

“심술 부리지 마.”

“심술 부리는 거 아니야, 상리스가 얼마나 좋은데. 거기 가서 그랜드 서프(Grand Cerf)에서 지내면서 등산 몇 번 타고 돌아오면 좋을 거야.”

“좋네, 그 정도면 좋겠어.”

“그래, 내일 테니스장에서 봐,” 내가 말했다.

“좋은 밤 보내, 제이크,” 로버트는 카페로 천천히 향했다.

“신문 까먹었잖아,” 내가 말했다.

“맞네.” 그는 나와 함께 도로 끝에 있는 키오스크까지 걸어갔다. “제이크, 정말 심술난 거 아니지?” 신문을 꺼내든 제이크는 나를 보고 물어봤다.

“정말 아니라니까? 난 괜찮아.”

“테니스 칠 때 보자,” 로버트가 말했다. 난 그가 신문을 들고 카페로 걸어가는 걸 가만히 바라보았다. 난 뭐가 어떻건 여전히 로버트를 좋아했지만 아무래도 프란시스는 그를 꽉 쥐고 있는 것만 같았다.

 

*원문 출처: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의 'The Sun Also Rises'를 번역했습니다. 이 작품은 올해, 2022년 1월 1일에 들어서 자유 이용 저작물로 등록되었으며 책을 볼 수 있는 링크는 여기에 남겨두겠습니다.


옮긴이의 말: 작년에 처음 시작한 '자유 이용 저작물 번역하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처음으로 번역한 문학 작품이 아마 헤밍웨이 선생님의 단편 소설 작품이었던 것 같았는데 그 때 상당히 글의 기운이 좋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감사하게도 올해에 들어 선생님의 첫 장편소설 데뷔 작품인 'The Sun Also Rises'이 자유 이용 저작물로 등록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뒤 바로 번역을 진행해보았다. 현재로서는 이 책 전부를 번역하기로 마음 먹었는데, 아직까지는 1장만 읽어봤지만 여전히 시원시원한 비유와 문체에 재밌는 여정이 될 것 같아서 많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