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19. 21:42ㆍ기록/그냥
자전적인 글은 편지 형태로 써야 조금 더 잘 나오는 성격인건지 아니면 저도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는건지 모르겠지만, 성별이나 이름도 없는 ‘불특정 독자’를 상상하며 그 분에게 편지를 쓰듯이 ‘-습니다', ‘-요'같은 말투를 쓰게 된 점, 양해바랍니다.
얼마 전에 제가 재학중인 대학교에서 제공해주는 총 17회의 심리 상담의 마지막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별히 스스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느낀 적은 없었지만 예전부터 영화에 상담사와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나올 때면 ‘오, 해볼만 하겠는걸?’하고 늘 생각이 들기도 했고, 또 무엇보다 무료로 진행된다는 점이 매력적이어서 신청을 했던 터라 큰 기대를 하지는 않고 시작했었던 상담입니다. 상담을 하면서 이야기한 내용으로는 제 안에 남성성이 부족한 것 같다는 점과 외롭다는 점, 그리고 내집단의 결핍 등을 문제삼아 생각나는대로 얘기했던 것 같습니다. 상담사 선생님께서 ‘그럴 땐 이렇게 하세요’, 또는 ‘그건 조금 잘못된 것 같네요'라고 한다던가 그와 반대로 ‘뭐든지 말해보세요, 괜찮아요'라거나 ‘그래도 성진씨는 사랑받는 사람입니다' 같은 한없이 좋기만 할 뿐인 이야기마저 일절 없이 단순히 정말 듣는 행위에 집중해 주신 덕분에 참 많이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제가 그렇게 믿는지, 아니면 단순히 지나가는 생각인건지 이렇다 할 만한 계산도 없이 생각이 나는대로 저도 모르는 사이 안에 쌓여있던 이야기들을 풀어놓았습니다. 살면서 누군가와 이야기만을 하기 위해 마련한 시간을 보내본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제 안의 이야기들을 내놓을 수 있는 기회는 여러모로 많은 도움이 되어주었습니다. 신기한 건 상담을 진행할수록 점차 제 안의 문제가 처음에 제가 생각했던 것 과는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점입니다. 물론 말을 꺼낼 핑계거리로 지어낸 고민거리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가끔씩 걸리던 부분들이긴 했던 터라 조금 신기했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며 (이야기를 나눴다고 하기엔 주로 일방적으로 제가 말하긴 했지만,) 저란 사람에 대한 정보를 알게모르게 많이 수집할 수 있었는데, 그 중 예로는 저는 생각보다 그렇게 외롭지도, 내집단을 필요로 하지도, 남성성이 적다는 사실을 문제시 하지도 않다는 점을 깨닫고 기분이 한결 나은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게 떠오릅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문제삼아 왔던 것들이 실은 내게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는 일주일동안(실제로는 한 이틀 정도 였을겁니다, 아마도) 좋은 기분으로 지내던 와중에도 마음 속에 허한 부분이 줄어들지는 않길래 또다시 고민에 빠졌습니다. -- 이건 다른 이야기지만, 어느 한 쪽으로 읽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몇 자 추가하자면, 이렇다보니 저는 간간이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건 아닌지 스스로 고민도 해 봤는데 실제로 우울한 상태에 계시는 분을 한 번 뵌 이후로는 저는 단순히 생각이 많은 편인 걸로 깔끔하게 정리됐습니다 -- 그러던 중, 아마 마지막 상담을 하기 전전날 즈음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제가 도대체 왜 가끔씩 허하다거나 힘이 없다고 느끼는지 문득 깨달았습니다. 저는 제대로 쉬는 법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잠 같은 걸로 겨우겨우 하루를 살만한 체력을 저당 잡아놓은 뒤에 어제와 같은 하루를 살아내고 또다시 잠에 들기를 반복했던 것입니다. 쉬는 것은 뭘까? 암만 생각을 해봐도 이렇다 할만한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쉽게 생각하면 ‘해야만 할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힘을 충전시켜주는 무언가' 같지만 과연 그것이 쉼의 본질일까, 하면 또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뭐 여하튼, 마침 글을 쓰고 싶어지기도 했겠다, 주제도 있겠다, 이에 대해서 글을 써보자는 생각을 일주일 전부터 해오다가 오늘이 되어서야 기어코 뿌듯한 손놀림으로 글자들을 써내려가기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이후로도 하나씩 체험해보고 쉰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적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이 글들을 한꺼번에 부를 수 있을만한 이름을 정하고 싶은데, 당장에 떠오르는 거라고는 “쉼” 뿐이네요. 아무쪼록 소개는 어느 정도 된 것 같고, 그럼 언제마다 쓸지, 얼마나 쓸지 기약도 없이 진행하는 [쉼]의 첫 번째 글을 제멋대로 시작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글로는 아무래도 어쩌다가 휴식을 제대로 못 취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는지, 제 나름대로 추론한 바를 적어보려 합니다. 지금 살고있는 집은 은평구에 위치한 어느 옥탑방입니다. 아마 2018년 2-3월 정도였을 거예요, 군대를 전역한 뒤에 소설을 쓴답시고 (당시에는 소설을 쓰려면 서울에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바보 같지만 지금도 생각은 똑같습니다) 글을 쓰면서 게스트하우스에 얹혀 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글만 주구장창 썼었는데 점점 저만의 공간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세상에는 사람들과 있으면 있을수록 힘을 얻는 분들이 있는 반면에 적정시간을 넘으면 사람들과 있는게 힘이 버겁기도 하고 오히려 혼자 있을 때 힘을 얻는 분들이 있는 모양입니다. 당시엔 몰랐지만, 지금 알기로는 저는 그 후자에 속하는 사람인지라 게스트하우스에서 무료 숙박을 대가로 일을하며 지낸다는게 마냥 쉽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홍대 놀이터 앞에 어느 시끄러운 술집, 구석에 있는 굉장히 조용한 주방에서 일했었습니다. 어쨌든 저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려면 보증금과 월세를 벌어야만 할테니까요. 두 달인가, 세 달 쯤 제가 모은 돈에 아버지의 도움도 받아서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왔습니다. 아직도 이사를 온 첫 날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많이 고생한 스스로에게 자축하는 분위기라도 만들어주기 위해서 플레이스테이션을 샀었는데 어색한 침대에 누워 그 전 날까지 다른 사람이 자던 공간속에서 게임을 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밤을 지샜던 기억이 생생해요. 그렇게 얻게 된 집, 일 년이 조금 넘는 기간동안 단편소설들과 장편소설 두 편을 썼습니다. 나중에는 장편소설을 이곳저곳에 투고하기까지 하고 몇 달 간 맘졸이며 지냈었는데 -- 너무도 당연한 결과겠지만 -- 모두에게 “안타깝습니다, 저희 출판사와 맞지 않네요"하는 식의 어디에서 복사해서 붙여넣은 것만 같은 답장이 날아올 뿐이었습니다. (그와중에 제대로 읽어봐주시고 연락주셨던 문학동네와 어느 독립출판사의 편집자님들에게는 아직까지도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여하튼,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고 그 뒤로 또다른 결심이 서서 대학교를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편입시험을 봤고 정말 운이 좋게도 마침 집하고 가까운 대학교에 들어가게 되어서 아직까지도 위의 옥탑방에 거주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저는 벌써 지낸지 삼 년이 다 되어가는 이 집에 살면서 아르바이트, 과외, 학원, 학교 뭐가 되었건 꼭 해야 하는 일이 없었던 날이 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다 할 일이 없는 날이 생겨도, 혼자 있자니 불안하고 누군가와 같이 시간을 보내자니 그건 또 휴식시간을 빼앗기는 것 같다는 어리석은 생각도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코가 어디있고 눈이 어디있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퉁퉁 부은 채로 일어나서도 얼마 있지 않아 할 일을 하러 집 밖으로 바로 나가야만 했고, 할 일을 마친 뒤에는 카페에 가서 과제를 한다던지, 책을 읽는 척을 한다던지 하다가 툴툴거리면서 집에 돌아왔습니다. 왜인지 일찍 집에 돌아가게 되면 뭔가 다들 열심히 살아가는 하루를, 나혼자만 일찍이 종료해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면 암만 일찍이어도 아홉 시 이후였고, 보통은 열 시에서 열한 시 사이에 돌아왔던 것 같아요. 그 정도 시간이 되면 더이상 ‘남들은 지금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을텐데'하고 착각하면서 드는 죄책감이 다음날 다시 왕성히 활동할 것을 기약하며 수그러든 뒤입니다. 그러면 편의점에서 사간 맥주 네 캔, 또는 와인같은 걸 매일같이 마셨습니다, 유튜브나 보면서 말이예요. 사실은 일주일에 두세번 싫은 소리를 한 친구에게 “야, 넌 맨날 그 소리냐"라고 할 때의 그런 “맨날"이 아닙니다. 저는 실제로 매일 술을 마셨습니다. 그게 저에게 쥐어진 유일한 휴식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뭔지도 모르고 바로 앞에 있는 일들만 처리하다가 눈을 떠보면 밤 열 시가 넘은 시간에 저는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고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영상을 틀어놓고 새벽 두세시까지 주구장창 술을 마시고 다음 날 낮이 되는 시간에 느즈막이 일어나서 황급하게 집 밖으로 나가기를 반복한거죠. 이렇게 글로 써보고나니 참 멍청한 생활이었구나,라는 생각도 들지만 굴레라는게 또 그 안에 있을 때는 제대로 자신의 꼬라지를 볼 수 없게 되는 탓인지 당시만 해도 괜찮게 살고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니 저도 모르는 사이에 휴식이 필요해졌을 수 밖에요. 쉰다고 생각하며 해오던 것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저로 하여금 날마다 더 많은 휴식을 요하게끔 만드는 상황이 반복되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그렇다보니 중간고사, 기말고사 기간이 되면 말도 안 되는 만큼의 피곤에 찌들었습니다. 평소 미리미리 하기 보다는 미루고 미루다가 정말 마지막 순간에 몸에 있는 힘을 죄다 써가면서 과제를 해내고 제출했기 때문에 그와중에 평소처럼 술을 마신다거나 늦게 일어나는 삶을 지속하면서 체력을 위험할 정도로 갉아먹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학기의 기말고사 기간도 마찬가지였는데 이번엔 처음으로 정말 눈이 안 떠질 정도로 피곤한 2-3주를 지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매일같이 일찍 잠에 들어야지, 일찍 일어나야지, 규칙적으로 살아야지, 생각했던 내용들이 조금 더 절실히 와닿았던 시간이었습니다. 때마침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는 제주도로 삼박사일 정도 놀러갔는데 지내다보니 그 곳보다 더 생활을 규칙적으로 만드는데 좋은 곳이 없겠더라구요. 할머니, 할아버지는 두 분 다 일찍 주무시러 가시고 새벽같이 일어나시니까요. 당신들과 자는 시간을 같이 한다면, 그리고 서울로 돌아가서도 그대로 지낸다면, 그토록 바라던 규칙화된 생활을 만들 수 있을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열두시에 자고 일곱시에 일어나자는 규칙과 함께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지 말자는 규칙도 만들고 두 가지 규칙을 따르면서 지낸지 벌써 한 달 정도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간 체력적으로 많은 안정을 찾았고, 지금껏 ‘쉰다’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벌써 아홉시 반이 되어버린 관계로 오늘은 이만 여기까지 적겠습니다. 아무래도 두시간 반 뒤에는 잠에 들어야 하니까 이제 그만 집에 가봐야 해서요. 요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매일 아침 한 시간씩 걷고 있는데 다음 글에서는 이 활동을 통해 어떤 부분에서 휴식을 했다고 느끼고 있는지 몇 자 적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들 좋은 기억 많이 쌓아가는 여름을 보내고 계신거면 좋겠습니다,
오성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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